"촌에서 온전히 농사로 먹고살기란 힘 들제, 다행히 여그는 관광지라 부지런만 하면 생활비는 벌어 쓸게 있단 말이제..."
두 아이를 데리고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귀농이라는 걸 하여 힘겨워 하는 나에게 고참 농부 천연이는 한 가지를 권유하였다.
그래서 시작한 것은 해수욕장이 즐비한 변산반도에 붙어있는 격포항에 포장마차(비,풍,초)를 펴는 일이었다.
한욱이가 포장마차에 들어서는 품새가 평소와 사뭇 다르다.
한 손을 다쳤는가 셔츠를 찢었을 듯 흰 천으로 감은 손에 붉은 피가 흥건히 배어 나와 있다. 그는 소주를 시키더니 큰잔으로 단숨에 훌쩍 들이킨다.
잠시 후에는 한욱이 주위로 뱃사람들이 세 네 명 몰려와서는 옆자리로 앉는다.
"너 왜 그러냐~ 아, 손님들 있는데서..."
".........."
한욱이는 말이 없다.
"꼴이 뵈기 싫으면 각시를 내 놓고 장사를 말아야 제.... 뭐 하는 짓이여."
연거푸 또 다른 사내의 잔소리가 이어지자,
"여편네가.... 주는데로... 꼬박, 꼬박 술 받아 쳐 먹고...씨 발~"
한욱이는 고개를 돌려 탁 하고 피 섞인 침을 뱉어낸다.
"아, 그랄시면, 각시를 내 놓지 말 여~ 등 때 밀어 장사시킨 건 언젠 겨~"
"난, 말임시 가게에 있다가도 남자손님 들면은 슬그머니 나오네. 마누라도 맘놓고 장사혀야제...다 사내 맘이 매 한 가지여, 사 먹는 술 한 잔도 여자가 권하면 좋을 것이고...아, 그러자고 돈 쓰는 거 아녀?...."
한욱이 옆에 앉아 소주 한 잔을 훌쩍 들이키는 나이 지긋한 염섭씨가 하는 말이다.
비풍초에서 일련의 번잡을 겪는 이들은 격포항 어촌계 회원인 뱃사람들인데, 저마다 가지고 있는 배 한 척씩은 소유하고 있다.
어촌계 회 센타에 가게 한 칸씩을 맡아 있는 어부이자 가게주인인, 그래도 깡촌에서는 어깨에 힘 들어있는 부류들이며 가게는 대게 그들의 아내가 장사를 하는 경우이다.
남편이 바다에 나가 고기를 낚으면 물 좋은 놈은 골라 아내가 하는 가게에 넘긴다. 바다를 찿아 온 관광객 상대로 회 뜨고 반찬 곁들여 팔고는 찌스레기 나머지 고기들은 경매에 넘기니 하루 잡은 고기는 허실이 거의 없는, 대부분이 수입이 그저 짭짤하다..............................
어촌계의 총무인 한욱이는 게 중에서 나이가 어린 측인데 그의 아내도 나이 서른 중반에 회 센타 각시들 중에서도 젊은 측에 낀다.
회 센타 안으로 여자들의 간식을 만들어 배달 간 적이 있어 한욱이 각시를 보았는데, 몸집 좋고 칙칙한 중년의 여러 여자들 중에서 젊고 곱상한 것이 화사하게 한 눈에 들어오는 남 다른 여자가 에이동 7번의 한욱이 각시이다.
자연, 회 먹으러 오는 손님 중에서는 주로 남자들이 한욱이네 가게로 많이 몰리고 또 그녀에게 술이라도 한 잔 권하면 그 각시는 꾸벅꾸벅 잘 받아 마시며 웃음을 흘리는 것이 젊은 한욱이에게는 여간 속이 상하지 않을 일이다. 오늘에야 좀 경우가 심하다 싶었던 게 마치 주막에 잡부대하 듯 추군 대는 손님에게 한욱이는 멱살을 잡고 병을 깨고는 상을 뒤엎고 하여 주위에서 말리는 뱃사람들에게 끌려나와 이렇게 포장마차에서 화를 풀고 있는 중이다.
한욱이 생각에는 손님보다도 그 지경이 되도록 아무 손님에게나 헤헤작 거리는 각시가 더 괘씸한 생각이다.
해양수산부는 칠 팔 년 전에 격포항을 개발의 명목으로 백사장을 콘크리트로 매립하고는 큰배도 접근 할 수 있게 선착장과 하역을 쉽게 하는 크레인, 관광객을 위한 상가 건물과 경매장, 주차장 그리고 회센타 두 동을 건립하였다.
그 중에서 회센타 두동은 격포 어촌계에서 장기 임대를 하였고 어촌계 회원들은 격포항이 자기네 것이 된 양 자부심 같은 걸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스스로 등대길이나 채석강 주위의 난잡한 좌판장수들을 정화사업이라 해서 고발하여 쫓아내고 회센타는 대부분은 어촌계회원이 우선적으로 입주하였다.
작든 크든 배를 가진 선주인 그들은 회 가게를 운영하였다. 대게는 남자는 고기를 잡아오면 장사는 아내가 맡아서는 한층 수입이 나아지게 되어 격포항에서는 전에 없이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측이 되었다.
이른바 개발의 이득을 보게 된 경우이다.
포구마다 마을마다 새마을 지도자는 없어도 이장 밑에 반드시 개발위원장이라는 직책은 있다. 저마다 개발이라는 허울로 파헤치는데 혈안이 된 것은 당장은 어떤 경로이로던지 크고 작은 이익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해서 변산반도에 그럴듯한 풍광 주위에는 반드시 상업적인 건물이 들어 서 있고 그 정도가 심해저 급기야 꼴불견으로 변해 가는 것이다.
전통적인 갯가의 아낙들이 회 센타에 장사를 시작하면서 그녀들은 행동거지부터 세련되고 당당해졌으며 남정네들은 여자들이 적잖은 돈을 번다는 명목으로 그녀들의 현실을 인정하다가는 나중에는 주눅 들어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그런 모든 눈에 거슬리는 것은 현 세태에서 부정도 불만도 할 수 없는 당연지사로 생각해버린다.
각시 소중하다고 집구석에 처박아 두기란 회 센타에서 벌리는 만만치 않는 벌이가 더 아까울 만도 하다.
고기잡이하는 어촌계 회원이라서 다 회센타에 가게 맡아서 하는 건 아닌 것이다.
게 중에 말발이나 좀 서고 이리저리 눈치 꾀나 돌아가는, 바닥에서는 그리 무시당하지 않으면서도 어촌계 간부나 또는 유사하게 인정받는 부류들이다. 거기다가 제 마누라가 장사쯤 치고 나갈 정도는 되어야 그나마 장사를 합네 하는 것이다.
"바가지하고 여편네는 밖으로 돌리면 깨지게 마련인데 말 여~"
한욱이 생각에는 제 각시는 그런 일상적인 세태보다도 도를 좀 지나친 듯 한데, 오는 손님마다 배실배실 웃음을 헤프게 흘리는 것이 타고난 성격이 남에게 호의적이라 할까 그런 것이 다른 가게보다도 남자 손님이 월등히 많은 이유 중에 하나가 되는 듯 싶다. 고정적으로 찾아오는 단골 남정네들도 꾀 여럿인 듯 싶은데, 아내는 차라리 그런 남정네 상대하는 장사를 즐기는 듯 하였다.
고기잡이에 장사까지 더해서 또래보다는 넉넉한 수입으로 바닥에서는 나야! 하고는 살지 만은 어째 마누라 앞세워 돈 번다는, 손가락질 당하는 것만 같아서 늘 마음 구석에 불쾌한 심정이 깔려 있는 터이다. 무엇보다도 여편네가 술집 잡부나 되는 양 회나 썰어서 올릴 일이지, 꼭 옆자리에 엉덩이 들여 밀고는 술 잔 같이 받아서는 헤헤거리는 꼴에 언제 한 번 사단을 낼 거라는 다짐을 늘 상 해 오던 터이다.
"정진이, 석희도 어찌 보면 불상 혀~"
영철이 처 은순 엄마의 말이다.
정진이 처나 석희 아내는 격포항에 큰 횟집에 다닌 지가 각기 십 년이 더 된다.
시골에는 시집 올 여자가 없는 마당에 정진이나 석희는 농사일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각시를 얻었고 그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제 동창이 주인인 격포항에서 젤로 크다는 횟집으로 그녀들을 일 자리를 정해 준 것이다.
이제는 그녀들이 받는 월급이 농사짓는 남편들의 수입보다도 훨씬 더 많다. 자연히 가정에서 경제권은 여자들이 쥐게 되고 모든 힘의 균형이 그 쪽으로 쏠려 버렸다.
석희 각시를 처음 대 했을 때 그의 아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차림새가 호사스러워 농사꾼 아내가 아니라 동네 유지인 조각공원의 사모님인가 했었다.
정진이 각시 역시 신랑 일하는 모습을 팔짱 끼고 바라다 볼 뿐, 고양이 손도 빌린다는 농번기에도 손 끝 하나 까닥 하는 법이 없다. 옆에서 그러는 정진이 각시를 보노라면 참, 매정하고 싹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영철이 처가 익산에서 소격으로 살림이 내려오고는 농한기에 잠시 두 여자의 알선으로 그 횟집에 일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남 먹는 거 수발 드느니 차라리 농사일 하겠다며 체질에 안 맞아 이내 그만 두었다고 한다.
은순 엄마는 자세히는 말을 하지 않으나 두 여자들이 격포항의 횟집에 다니며 하는 행실이 그리 평범에 조차도 이르지 못하다는 데에서, 또, 그럴 것이다 하는 각시일지라도 치맛자락 놓칠세라 비위 맞추어 가며 땅만 파는 두 남정네가 불쌍하다는 것이다.
"저그 각시들은 하고 잡은 거 다하고 다녀도 이 ~, 죽도록 땅만 파면서 여편네 눈치보고 살지라우..."
그네들의 각시는 이미 시골의 아낙이 아니라 여느 도시의 세태에 젖은 현세적인 여인과 다를 바가 하나 없는 것이다.
"아~ 말임시 요새는 여자가 애인 한 둘 가지는 게 능력이란 말임 시~"
그녀들은 어쩌면 도시의 유행을 조금도 뒤쳐지지 않고 쫓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본 각시 최고 데 이 잉~"
가끔씩 우리 집 방문을 빼꼼이 열어 들어다 보고는 소주 한 잔하고 가는 수석이 형님 말이다. 괴팍한 그의 성격을 견디지 못하던 각시는 오래 전에 딸 하나 두고 떠났다.
그런 후로 좀 모자란다는 두 번째 각시를 얻어 보았으나 마음고생만 하고 자식과 관계에서나 역시 끝이 좋지 않더라며 과거사를 묻지 않아도 주절거린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첫 각시를 놓친 것이 후회된단다.
그가 내 뿜는 긴 담배연기와 같이 오래된 회상을 한참이나 하고는 돌아가고는 하였다.
동엽이도 각시와도 헤어졌다. 그는 요즘 여자들이 기본적으로 촌에는 붙어 있지 못한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동엽이 각시는 아들 둘을 남기고 헤어졌다기보다는 숫제 도망 간 것이다. 동엽이에게는 적으나마 배 한 척은 가지고 있는데, 영광에 원자력 발전소가 생긴 후로는 수온이 높아져서 근해어업이 많이 황폐해지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쭈꾸미라던가 갑오징어, 전어 철에 풍어라도 진다면 하물며 농사짓는 거보다야 비교가 되겠는가.
그러나 동엽이 생각에는 뚜렷한 이유 없이 자신과 아이들을 팽겨쳐버린 각시가 요즘 여자들의 고생을 감당치 않으려 하는 보편적인 형태들이라 생각해 버리고 만다.
그나마 동엽이 나이또래는 이럭저럭 각시 하나씩 얻어서 자식농사라도 지어 보기나 하였으나 그 보다 더 젊은 노총각 층은 뱃일을 하던지 농사를 하던지 장가들 들지 못하고 사 십을 바라보고들 있는 것이다.
공사장에서 눈을 다쳐 한 눈이 희멀겋게 검은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상기는 막 사 십 줄에 들어섰다. 그는 장애도 입은 터에 더구나 촌에 사는지라 아예 장가 들 생각을 접고 있다. 뜨거운 한 여름에 논에서 피사리라도 하다가는 정 갑갑하면 오토바이를 몰아서 해수욕장 주변을 한 번 빙 돌아보면서, 벗고 다니는 여자들을 힐끗 곁눈질하다가는 되돌아와서는 막걸리로 목이나 축일 판이다.
그 윗집에 도회적인 느낌을 지닌 경수도 삼 십대 후반으로 만만치 않은 나이지만 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디로 보나 배울 만큼 배우고 인물도 좋지만은 촌을 벗어나지 않을 바에야 쉽사리 혼사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스스로가 잘 안다.
"통일교에 나가야~ 혀... 일본 여자에게 장가 든디야~"
교회를 통해서 장가드는 경우도 드물지 않고 동남아 색시들이 촌에서 며느리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도 낯설지 않는 일이다.
명준이는 도시를 떠돌며 막노동 하다가 단골술집에 수발 들던 색시를 아내로 맞았다.
명준이의 콸콸한 성격은 각시가 동네에서 책잡힐까 봐서 꼼짝 못하게 묶어두고 있고 그 각시 또한 행여나 오해 살 일 있을까 각별히 행동을 조신하게 하는 것이다.
복연이는 원체 부유한 집안 환경인 덕인지 각시 얻어도 제대로 절차를 거쳐 책잡힐 일이 없는 경우이다. 그 댁 아이들도 부잣집 아이들답게 번듯하게 잘 자라고 있다.
그러나 촌에서 부잣집 며느리로 일 잘 하던 그의 각시도 내내 농사일을 지속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결국, 복연이는 아내의 소원 데로 농사일을 마다하고 격포 해수욕장 앞에 식당을 차렸다.
#農業新經濟學
공장,
쬐끄만한 거 돌리면,
생산, 쬐끔 된다.
큰 공장 돌리면,
생산 많이 된다.
장사,
작게 펼치면,
돈, 적게 번다.
크게 펼치면,
돈, 많이 번다.
농사,
조금 지으면,
빛, 조금 진다
많은 농사지으면
빛 많이 진다.
우리동네
제일 많은 농사짓는 상운 네
보따리를 싼다
해수욕장 앞에서 식당 한 덴다,
大農에서 영세상인으로 진급하는 것이다.
마을에는 조각공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시효라고 하는데 초로의 사내는 이름 있는 스승으로부터 기술을 전수 받아 선친이 물려 준 야산을 온통 조각상으로 세워 널리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
그 집에 천문대가 있다는 것과 어디론가 실려나가는 조각상이 수 천 만원씩 한다거나 뭐, 그런 것보다도 나에게 흥미로운 것은 나이들은 주인 사내보다도 그의 아내가 턱없이 젊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 댁 아이들도 아직 어려서 내가 아이들 등교시키러 가는 길에 역시 그 부인도 아이들 태워주러 승용차를 운전하여 만나게 되는데, 서로 목례를 하여 인사를 건네고는 하였다.
각시 구경하기 힘든 시골에서 조각공원에 주인은 어떻게 하여 젊은 여자에 늦은 아이들 낳고 살고 있을까? 각시는 무슨 연유로 해서 나이 든 신랑에게 시집 온 것일까?
의문은 추론의 날개를 달아서 내가 그 부인을 마주칠 때마다 솟아오르고는 하였다.
따져 보자면 복연이처럼 촌 부자는 그래도 제대로 장가를 들고, 또 더 한 부자인 조각가는 젊은 상대와 재혼도 한다지만 그저 그런 보통의 경우인 촌놈에게는 내 나라에서 색시 만나기란 보통의 일이 아닌 셈이다.
평생을 농부로서 땅만 파던 천연이는 촌을 한 번도 떠나 본 적이 없다.
서울에서 가방공장 다니는 뒷집 처녀가 그 공장에 같이 근무하는 언니 뻘 되는 아가씨를 소개해 주어 각시을 만났다.
그 각시는 천연이를 만나고는 농사일을 처음 해 보지만 체질적인 농사꾼이다.
키가 자그만 한 각시는 고추를 따거나 마늘을 심거나 밭에 멀칭을 하기 위해 비닐뭉치를 끌고 다니는 힘 든 일조차도 남자들보다도 빠르고도 일이 완벽하였다.
가을에 고구마 캐러 그 댁 밭에 품앗이 가보면 천연이 각시는 이 고랑 저 고랑을 헤매며 먼저 고구마 넝쿨을 걷고, 멀칭 비닐 벗겨내고 그러고는 두렁 헤집어 알토란같은 고구마를 찾아내는 품새가 마치 토끼 한 마리가 온 밭을 휘 젖듯이 차라리 깡충깡충 뛰었다. 그러면서 어느 사이에 샛거리를 척하니 챙겨 오는... 신기할 정도로 농사일을 척척 감당하는 것이다.
사람 좋은 천연와 야무진 각시, 그 부부를 지켜보노라면 참 잘 만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누구나 그러할 것이다.
山內의 중학을 졸업하고 집안에서 곱상히 농사일 도우며 성당에 다니던 우태미의 경자의 눈에 드는 이가 소격포 가마니 공장에 영철이였다.
어린 나이 적부터 어른 맞대기로 일을 척척해 내는 장사 같은 기골에 경운기에 가마니 한 가득 싣고는 농가마다 또는 장터에 배달 다니는 그가 여간 믿음직스럽지 않은 천상 사내로 보여졌다.
그의 손에 이끌려 갓 스물에 서울로 야반도주까지 하고는 결국 결혼까지 하고는 이날 여즉까지 가정을 뒷바라지하는 경자는 조선의 여인상이다.
경자는 영철이에게 누나 같은 아내였다. 공사장의 십장으로 동료 일꾼들 몰고 다니며 술이며 하투며 하느라 제대로 돈을 집으로 들이지 않아도, 여럿의 일꾼들 데리고 집으로 닥쳐도 경자는 늘 동생이나 동생친구들 보살피듯이 대접하여 영철이가 이날 이제껏 주위에는 인심 안 잃고 사는 것이다.
심지어 영철이가 이 집 저 집 드나드는 술집 색시나 공사장에 아줌마들과 작거나 크게 바람을 피워도 그 뒤처리를 그저 큰소리 내지 않고 처리하기도 하였다. 도시 생활에 실증을 내고 고향으로 되돌아 온 영철이를 따라 내려와 농사일을 아무렇지 않게 감당해 내는 경자이다. 어쩌면 영철이 특유의 그 느긋한 행동은 그의 아내의 포용력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소격포마을에 젊은 이장 충식이는 갯마을에 사는 후배 여식을 아내로 맞았다.
똑같이 해안에 살아도 온전히 농사만 지어먹고 사는 사람들은 뱃사람들을 좀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사납고 욕 잘하고 독하다 해서 뱃놈, 뱃놈! 한다.
"아~ 뱃놈, 뱃놈 하지 말여~어!"
"허~ 그려 뱃님일세!"
그런 뱃사람의 딸은 소격포로 시집와서 농사를 지어도 독하게 한다.
신랑과 함께 마을에 노는 땅 중에 괜찮다 싶으면 제다 도지를 내어 그 규모가 동네에서 제일이다.
충식이는 마을이장 유세로 놉 불러오기가 한 결 수월하니 농사일도 손이 모자라 때를 놓치는 일은 거의 없다. 충식이 각시는 앞이 캄캄해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늦은 시간에도 놉을 쉽게 집에 보내지 않기로 유명하다.
"어디 일 간다요?"
"예, 이장네...."
"우메~ 그 집 일, 수월찮은디...."
나는 그 집 일 갈 때마다 초주검이 되어 돌아오고는 했다.
어땠거나 독한 각시와 계산 빠른 신랑은 촌에서는 드물게 농사만 지어서도 빛내지 않고도 새집을 지을 만큼 대단한 경우이다.
이렇게 천연이나 영철이, 충식이 각시와 같은 일상적인 경우였던 것이 이제 우리 농촌에서는 부러워해야 할 흔치 않는 대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