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여서는 안 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고의적으로 속일 수밖에 없는 일들도 있다. 이것을 때로는 선의의 수단, 또는 삶의 지혜라고도 말한다. 1997년도 어느덧 내 나이 61세 회갑이 되는 해였다.
가족들이 모이면 회갑에 대한 의견들이 나오곤 할 때 나는 말했다.
"큰 잔치는 하지 않아도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온 지난날들이 너무도 감사해서 장로님, 권사님, 안수 집사님들 모시고 감사 예배를 드렸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을 하자
"그이는 펄쩍 뛰면서 요즘 세상에 회갑 하면 욕먹는다. 회갑은 무슨 회갑이냐?"
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 우리 자녀들 5남매는 아버지 있는 데서는 전혀 회갑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지네들끼리만 수군수군 하더니 최종 결론을 나에게만 이야기했다.
‘어머니가 써 놓은 시가 100여 편 되는데 출판사에 맡기면 돈이 많이 드니까 철성이가 편집을 해서 제 친구네 인쇄소에 부탁을 해 600권을 만들어서 타월(수건) 하나에 책 한 권씩 선물하고, 점심은 200명분 배달 뷔페로 진천 관광호텔에 맞추었어요, 손님은 우리 교회 항존직(장로, 권사, 안수 집사)과 어머니의 가까운 친지들로 하고, 장소는 수련원 식당에서 하고, 교인들 가정에는 주일날 예배 마친 뒤에 책 한 권씩 드리기로 했어요.’
이 말을 들은 나는
"너희들 축하 금 받을 생각 있으면 아예 하지를 마라"
했더니 큰아들로부터 모두들
"아! 그야 물론이지요."
한다.
막내 철성이는 96년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문학과 사회’에 시인으로 등단하여 제 일도 바쁘지만 엄마의 시집 ‘풀 부채 향기’ 책을 편집하느라 혼신을 다하고 있을 때 우리 진천 중앙교회에서는 11. 24일 월요일부터 27일 목요일까지 시인 고훈 목사님을 강사로 모시고 부흥 사경회를 하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갈망하는 기회였지만 나에게는 더욱 더 하나님께 은밀한 감사 기도를 드리면서 고대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써 놓은 시에 대한 심사평도 받고 조언을 듣고 싶어서였다. 나는 이때 내일이면 ‘풀 부채 향기’ 시집이 나오게 되어 있었다.
집회 셋째 되는 날 그이(남편)는 고훈 목사님에게 수련원 구경을 시키려고 가서 식당을 들어서니 하얀 벽에 `이 월순 권사 회갑 및 시집 출간 감사 예배` 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어 두 분이 동시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수련원을 건축하고 이런 행사는 처음 있는 것으로 아주 깔끔하고 아담한 새 집이었다. 나 역시 그 사실을 몰랐는데 우리 아이들 5남매가 아버지 몰래 이렇게 해 놓은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속이는 일이 벌어져 깜박 속임을 당했다.
지난달 10월 26일에는 우리 교회에서 장로 세분, 안수 집사 여섯 분, 시무권사 일곱 분이 임직을 받았다. 그 중에 한사람인 나도 권사 임직을 받았다.
현수막에 넣는 이름이 사모라고 해도 어색하고 마땅치가 않은 터에 권사라고 쓰이니 글 문구가 제자리를 찾은 듯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하나님은 매사에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어 먼저 예비하시고 진행하시는 그 섬세한 도우심에 더욱 감사를 드렸다.
이렇게 해서 첫 번 속임을 당한 그이는 다시 두 번째 속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강사 목사님 숙소인 진천 관광호텔을 들렸을 때의 일이다. 호텔 사장님이 목사님(남편)에게 인사를 하는데,
“저희 집에서 회갑 손님 점심을 출장 뷔페로 맞추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더라는 것이다. 이때 그이는 다시 또 깜박 두 번째 속임을 당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속임’ 하면 구약성경에 나오는 야곱이가 생각난다. 야곱이는 자기가 아버지를 속인만큼 보다 더 강도 높은 속임을 외삼촌에게 당하고 자식들에게 당하고 수십 년 눈물의 세월을 보냈던 생애가 생각난다. 우리 아이들은 완강하게 거부하는 아버지에겐 이렇게 고의적으로 속일 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집념으로 빈틈없이 꼼꼼하게 저들의 계획을 이루어 갔다. 이것은 효심에서 울어 나오는 선의의 행위로 윤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님을 저들도 미리 간과했기 때문이리라.
집회 마지막 날엔 강사 목사님(고훈)이 교인들 앞에서 이런 놀라운 일들을 말씀하셔서 알지도 못했던 평신도들까지 다 알게 되어 모두들 깜짝 놀랐다. 그이는 가만히 있었으면 조용히 상의도 할 것을 펄쩍 뛰며 결사반대했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두 번씩 이나 속임을 당했고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고의적으로 속일 수밖에 없었다.
(1998. 11. 21. 토)
첫댓글 효심에서 울어난 윤리에 어긋나지 않은 속임입니다.
"속일 수밖에 없었다" 진솔하게 참 잘 쓰셨어요. 사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