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으로 세상을 발아래 굽어볼 정도로 높은 자리에 올라선 박범훈의 삶의 소리는 조용하다. 어쩔땐 너무 조용해서 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다. 자연에 대해 사람에 대해 더구나 음악에 대해 늘 하심(下心)하기 때문이다. 박범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문사학중 하나인 중앙대학교 제12대 총장에 선임됐다. 그에게 또다시 ‘최초 국악인 출신총장’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이다.
“총장 소임을 맡게해준 교수님들의 열린 사고를 먼저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예술경영의 마인드를 행정마인드와 경영마인드로 인정해준 교수님들이 빚어낸 작품인 것입니다. 그런 만큼 더욱 잘해야 겠지요.”
박 신임 총장은 행정을 예술로 본다. 그리고 경영 역시 예술로 본다. 그가 평생을 매진해왔던 ‘작곡’은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는 또 지휘자이기도 하다. 창조된 곡들을 잘 화합에서 완벽하게 소리로 시현 해내는 것처럼 ‘경영’과 ‘행정’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힘은 ‘역사’와 ‘소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는 국악계의 ‘마이더스 손’으로 불리고 있을 정도로 강력한 경영능력을 보여줬다. 박 신임총장이 조직했던 국악악단과 단체들은 생존력이 2년을 넘지 못한 국악계에서는 ‘신화’로 불릴 정도로 곳곳에 뿌리를 내리며 잘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거대한 종합대학이 생존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은 바로 새로움을 창출해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늘 새로운 것을 창출해내는 나는 이미 그런 충분조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봅니다. 새로움을 창조해서 잘 조화를 이뤄 실현해내는 것처럼 대학을 이끌어간다면 내 전공능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국악계에서는 박범훈 신임총장에게 참으로 ‘인덕’이 많은 사람이라고 통한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런 말을 부정한다. 철저하게 불교적 인(因)과 연(緣)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덕’(德)을 쌓는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중 하나입니다. 먼저 남에게 보시하고 베풀어야 복이 쌓이는 것입니다. 인덕을 쌓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복이 있다는 것은 좋은 말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을 무시하는 말일 수 도 있습니다. 맺어진 인연의 종자를 키우기 위해 남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애써야 합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인덕인 것입니다.”
박 신임총장은 최고의 지성인들이 모인 종합대학의 총장소임을 ‘업’을 닦는 과정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총장소임을 맡는다면 그것 역시 ‘업’을 소멸하고 닦는 일중 하나라는 것이다.
창조적 예술마인드 대학경영에도 도움
나의 가장 큰 무기는 버릴줄 아는 것…
총장 소임 맡았지만 불교음악 작곡은 계속
우리 현대국악계의 대부이기도 한 박범훈 신임총장은 불교음악계의 대부이기도 하다. 불교음악인들과 불교인들에 대해 그는 ‘우리식구’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가 불교음악계와 불교계에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갖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대목이다. ‘농익을 대로 농익어 최고의 작곡과 지휘실력’을 갖고 있는 박범훈 신임총장이 종합대학경영에 매진하는 것은 ‘불교음악계’나 한국국악계의 손실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정작 그의 걱정은 다른곳에 있었다. 현재 다양한 장르에서 작곡되고 불리어지고 있는 불교음악에 대한 흐름을 걱정했다. 박 신임총장의 불교음악에 대한 지론 첫째는 바로 불교음악은 불교음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래방에서 부르든 술을 먹고 길거리에서 부르든 법당에서 부르든 그 노래속에는 ‘부처님 말씀’과 ‘불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소통되고 있는 대부분의 불교음악들은 불교와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제목만 불교인 경우가 많다는 것에 대한 질타였다.
“이제 불교음악은 다양한 장르에서 많은 젊은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이제는 제대로된 역량을 갖고 대중들과 호흡할 수 있는 기대치를 소화하고 있습니다. 불교계에서는 이런 젊은 인재들을 위해 마당을 펼쳐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불교음악의 현대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박범훈 신임총장은 세상을 맑게하는 ‘아름다운 소리’를 가진 사람이다. 따사로운 봄날의 햇살을 담은 구름처럼 부드럽고, 때로는 먹이를 보고 포효하는 사자처럼 강함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때가 되서 ‘버리고’ ‘비울’줄 아는 ‘무욕’(無慾)의 진리를 실천하는데 있다.
“지금껏 다른 사람들보다 덜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젊었을 때나 나이들었을 때 이 길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걸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버리고 비울 줄 아는 도리를 그대로 살면서 실천했습니다. 4년이 지나면 저는 또다시 제 갈길을 갈 것입니다. 그런 삶의 태도가 오늘 이 자리에 오기 까지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박범훈의 방은 난향으로 가득찼다. 진흙묻은 소가 난향에 목을 씻고 지나간다. 깊은 동토의 땅 연꽃피는 소리 들린다. ‘옴’.
- 불교음악과의 인연
해인사 아침예불 장엄함에 매료
‘붓다’등 30여곡 찬불가 작곡
박범훈 인생의 화두는 ‘소리 연(緣)’이다. 소리를 통해 이 세상 모든 것과 ‘소통’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다. 한국현대국악계의 최고봉인 박범훈은 ‘숙명’과 ‘운명’을 뛰어넘는 소리와의 ‘연’(緣)으로 세상을 광활하게 주유했다. 부처님은 그에게 ‘묘음보살’의 영혼을 부여한 것 같았다. 그의 영혼과 고통속에서 창작된 곡들은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대중속으로 대중속으로 걸어들어 가는 행운을 누렸다. 서양음악이라는 거대한 음악문명의 홍수속에서 우리국악과 불교음악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는 버팀목이었던 것이다.
1948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난 박범훈이 불교음악과 큰 인연을 맺은 것은 해인사와의 인연 때문이다. 지인들과 함께 방문한 해인사 아침예불에 참석했다가 그 장엄함에 감동을 받은 후 현대 불교음악사에 길이 남을 ‘붓다’를 작곡하게 되기 때문이다. 찬불가와 국악의 만남을 통해 박범훈은 현대 한국국악사와 현대불교음악사에 새로운 장을 열게된다.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장 재직시에 그는 매년 부처님오신날 마다 국립극장무대에 불교음악공연을 개최했다.
그 당시만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그는 태연히 해낸 것이다. 그후 1996년 광덕스님의 요청으로 국악교성곡 ‘부모은중경’을 시작으로 ‘보현행원송’‘무상계’ ‘탑돌이’ 등 30여곡의 찬불가와 대형합창곡을 창작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그가 10년만에 이뤄논 성과는 현대불교음악사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는 계기가 됐다.
박범훈은 또 불교음악사에 대한 이론적 토대도 마련했다. 한국불교음악의 교과서인 박사학위논문 ‘불교음악의 현대적 전래와 한국적 전개에 관한 연구’는 불교음악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그런 업적들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 바로 〈한국불교음악총론〉이다. 그런점에서 그는 우리시대의 ‘진감’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 약력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음악담당 △1983년∼現 중앙대 음악대 한국음악과 조교수 △1987년 중앙국악관현악단 창단 △1993년 9월 아시아민족악단 창단. 한국대표로 활동 △現중앙국악관현악단 단장, 서울국악예고 이사장 △1994년∼現. 오케스트라 아시아 상임지휘자 △1995년∼1999년 국립국악관현악단 초대단장 겸 예술감독 △1999년 중앙대 이사장 비서실장 겸 법인사무처장. 2000년 서울국악예술중학교설립 및 이사장. 2001년 중앙대학교 부총장. 2004년 오케스트라 아시아 예술감독, 서울 국악예술중 고등학교 이사장, 2005년 2월3일 중앙대학교 총장.
■ 주요 작품
△교성곡 붓다 △교성곡 보현행원송(普賢行願頌) △중주곡 사랑의 춤 △창과 관현악(편) 긴아리랑, 신아리랑,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보리 이루리 △꽃을 바치나이다 △무상계 △찬미의 나라 △어화 너 △길 △가야지 △탑돌이 △한오백년 △상주모심기노래 △태평가 △방아타령 △적과 샤큐하치 △신내림, 1999. 1986년 ‘피리산조연구’, 1992년 ‘작편곡을 위한 국악기 연구’ 1994년 ‘박범훈의 찬붉가’ 2000년 ‘한국불교음악연구’ 2004년 ‘소리연’
첫댓글 니무 지장보살 마하살.....()()()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