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월요일마다 논어반 강의를 들으려 갔는데 강의가 시작 되고 겨우 10여분이 자났을까?
자주 전화를 않던 경주 동생으로 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기를 들고 강의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오며 "무슨 일이냐?" 하고 전화를 받으니
"오빠, 정서방이 운명했다."
고 ....
그날 그 시간은 언제 올지 모른다더니...
대구동생,덕천, 아내에게,
그리고 상조회를 운영하는 정지순 대표,
보람 상조회 권과장등
몇 곳에 전화를 하여 장례 절차와 장례식장을 결정하고
조퇴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가방을 챙겨 서 아내와 함께 동서울 고속버스 터미널에 서둘러서 갔으나 차시간이 맞지않아서
한 시간을 대기한 후에야 16시30분 경주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경주행 버스에 앉아 고향길을 다닐 때는 언제나 연인을 만나러 가는 소년처럼 설레고 기뻤었건만 이번 경주 길은 좀 달랐다.
이 도령을 기다리며 옥중에서 千思 萬憶으로
고뇌하던 춘향의 쑥대머리 같은 기분으로 차창을 내다보며 상념에 잠겨서 내려간 귀향 길이었다.
연연세세 화상사요
세세연연 인부동이라더니
반월성에 피는 저 꽃은 내년에도 피겠지만
경주를 찾아오는 관광객은 해마다 다르겠지
정서방의 운명 소식을 접하고 보니
1961년 중학교를 같이 입학한 54년전의 그 날 이후 그와 함께했던 반 세기도 더 되는 그 세월이 수유같이 흘러갔다.
단석산 ,불국사 석굴암을 함께 오르 내렸던 까까머리 소년 시절이 어제같도다.
쪽샘 육거리 자취집,근화 여고 뒷 골목, 반월성,석빙고,첨성대,서천변,
황성 공원 공설 운동장에서 함께 목아터져라 부르던 교가:
~꽃다운 혼 피어 올라 서라 벌 천년
수정 앞 남산에 옥돌이 난다.
젊은 가슴 품은 뜻을 갈고 닦는 곳
이상에 불타는 ...그 이름 경주고등학교
아~,아.~ 영원한 마음의 고향아, 마음의 고향아~~~
푸른 저 동해에 해 떠 오른다.~~~
아련히 흘러간 54년 세월이 走馬燈같이 떠오른다.중학교,고등학교를 같이 다니던 사이인데 야릇한 인연으로 나의
매제가 되어, 중학교,고등학교 동기외에 또 하나의 인연을 더 맺어
아들 셋을 두고 잘 나가던 기십억 대 부자라던 그 사람이
IMF란 괴물을 만나서 세상사 마음대로 안된다고 애꿎은 술병만
좋아하더니 ....
오고 가는 문상객의 기억속에 남아 있는 그의 삶이 반추되고 ...
평소엔 자주 서로 만나지 못했으니 불귀의 길을 떠나간 그의 빈소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생전의 그들 각각의 삶속에 기억 된 대로 남아 있는 계산서에 따라 그의 삶속에 아쉬웠던 점을
고집이 세었고, 자기 주관을 지나치게 집착하고 , 너무 포부가 컸었다는등...
이야기하면서 안타까워하지만
실은 아무도 그의 삶을 대신 하여
살아 줄 수도 없었겠지만
또 그르려고 한 사람인들 누구 있었을까?
공자왈 不在其位 不謨其政이라 했으니
어찌 남의 삶에 감이야 콩이야 했으리요..
멀리 당진에서 경주까지 다녀가신 사돈이 고맙고
두 아이 를 친정 어머님께 맡겨두고 친정 아버지와 같이 문상을 다녀간
며느리도 대견하구나
남아 있는 이들의 삶속에 남겨진
그의 삶의 잔영속에
함께했던 추억을 반추해 본다.
흑백으로 살다간 그를 생각하며
한국SGI 회원들의 봉사와 기도도 고마웠다.
그들과 이께다 회장의 평화의 詩 이야기도 함께하며
그들의 헌신에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내일이면 떠나 갈 고인의 염습 관경 참관과
고인과 나와 중학교 동기인 정사장의
적극적인 배려도 ,그의 업무 관련
귀중한 체험담도 유용하고 참고가 많이 되었다.
그의 69년 노심초사의 삶의 도정이 겨우 3일장이란 마무리 행사 속에
내일이면 한 줌의 재로 떠나 갈
고인의 명복을 빌어본다.
어화 세상 사람들아
어제 청춘 오늘 백발이라
요순우탕, 문무주공, 공맹안중,
정,주자가 도덕이 관천하사
만고 성현으로 칭송하나
미미한 우리인생 그 누가 알아주리
강태공, 황석공, 사마양저, 손빈, 오기
戰必勝 ,攻必取로 만고명장이라 일렀건만
한번 죽음 못면했네
채미하던 백이숙제 千秋名節이라 일렀건만
수양산에서 아사했고
말 잘하던 소진,장의 열국제왕들을 다 달랬으나 염라왕은 못 달래어
춘풍세우 두견성에
슬픈 혼백 되어 있고
맹상군의 계명 구폐 ,신릉군의 절부구조
만고 호걸이라 일렀건만
한산세우 미초중에
일부토만 가련하다.
통일천하 진시황도 아방궁 높이 짓고
만리 장성 쌓아 놓고 6국 제후 조공받고
불로초 불사약을 찾아 오라고 동남 선녀
오백명을 삼신 산으로 보냈으나 결과도 모른체
사구평대 저문 날에 여산의 황초 뿐이로다.
동남 제풍 목우유마 상통 천문 하달지리
전무후무 제갈공명, 난세 간웅 위왕 조조도
모연 추초 처량하다.
역발산 초패왕도 시불리혜 추불서라
우미인의 손목잡고 눈물속에 이별할제
오강의 풍랑중에 73전 가소롭다.
사마천,한퇴지, 이태백,두목지는 詩賦 중에 문장이요,
월 서시,우미인과 왕소군 양귀비는
만고 절색이라 일렀건만
황량고초 되어 있고
안기생,적송자는 동해상의 신선이라
말만 듣고 못 보았네
2시간의 고로속에서 69년의 세속 풍진이
한웅큼의 분골이 되어 유골함에 담겨져서
봉안소에 모셔지니
헛되고 헛되도다
장례절차를 모두 마치고 다시 경주 시민 장례식장으로 돌아와서
2박3일 함깨한 찬지들과 국밥 한그릇 씩을 나누고
터미 널을 향하여 걸으니 길가에는
관광 나이트 클럽, ㅇ ㅇ 병원 .ㅁ ㅁ 약국 ,
봄철 왕창 세일을 한다는 백화점,ㅇ ㅇ ㅇ 노래방,
? ? ? 모텔,ㅎ ㅎ ㅎ 여관 등
고인이 한평생 오가며 지나 다녔을
그 골목 길을 지나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12시20분 동서울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첫댓글 만나면 헤어지는 게 인생사 섭리이거늘~~
고인의 명복을 빌어드립니다.
귀부인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