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는 카트를 끌고 손녀는 골라 담고!
솔향 남상선/수필가
우리 속담에‘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의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의 정서는 짐승이 아니라면 외면하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식이 있건 없건 인간이라면 요욕칠정(五慾七情)에서 비롯되는 그 숱한 애환은 피할 수 없는 것이리라.
자식이 있으면 때때로 걱정과 고민에 빠져 노심초사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이 있어 얻게 되는 기쁨과 즐거움도 무시할 수는 없는 사실이다. 자식을 잘 키우려고 하는 모성애와 부성애서 비롯된 정성 사랑 그 노작의 열매는 보람이 될 수도 있다. 또 자식이 없었을 때는 의기소침하고 무기력했던 사람이 자식이라는 소망의 존재가 생겨 의기충천하여 더 열심히 뛰고 그로 인해 삶의 활력소까지 생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전립선 암 환자였다. 하늘이 내려주신 기적으로 지금은 정상이 됐지만 주기적으로 3개월에 한 번씩 서울 아산 병원에 가서 정기 진료를 받아야만 했다. 상경하여 병원에 갈 때마다 걱정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식이 있어 그런 걱정은 하지 않고 살았다. 자식이 없었다면 병원 갈 때나 아플 때마다 사고무친(四顧無親)의 고독에 마음이 무거웠겠지만, 자식이 있어 기우(杞憂) 같은 생각은 묶어놓고 살았다. 자식 남매가 이 아비의 보호자가 되어 병원 진료 마칠 때까지 내 수족이 돼 주었기 때문이다. 자식 남매가 교대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연차를 내고 나와 보호자 역할을 해 주었다.
우리말에‘울타리’와‘버팀목’이란 단어가 있다. 자식만큼 든든하고 힘이 되는 버팀목과 울타리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도 자식 나름이겠지만 세상에는 불효하는 자식보다 효도하는 자식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지난번 아산병원 갈 때에는 딸애가 연차를 쓰고 따라와 내 울타리 버팀목이 돼 주었다. 이번 2월 21일 아산병원 진료에는 아들이 연가를 내고 승용차를 끌고 나와 내 보호자가 돼 주었다. 반포보은(反哺報恩)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아들이 서울대학을 나왔지만 이 아비를 생각하는 마음도 서울대 마크가 부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진료를 마쳤다. 걱정하지 않고 상경하여 받은 진료라서 그런지 결과도 마음을 편케 해 주었다. 며칠 전에 며느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산 병원에 내원했다가 그냥 가지 말고 저희 집에 와서 식사를 같이 하자는 전화였다. 그렇잖아도 하나밖에 없는 손녀가 눈에 밟혀 어려웠는데 전화초대까지 한 거였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 하더니 아들도 똑같은 얘기를 하는 거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아들 차를 타고 목동 집으로 향했다. 며느리는 하나밖에 없는 딸을 데리고 학원에 가고 없었다.
며느리가 돌아왔다. 집 음식보다는 맛집 음식을 먹자고 했다. 유명세를 타는 맛집 음식점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보고 싶었던 손녀가 학원에서 곧장 돌아왔다. 초등학교 3학년인데도 학원에 시달리며 공부하는 손녀가 너무 안 돼 보였다. 꼬옥 안아주는 포옹으로 할아버지 체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용돈 봉투를 손에 꼭 쥐어 주었다. 손녀가 많이 좋아했다. 저녁 식사 마치고 식구 모두 이마트 쇼핑을 나가자고 제안했다.
아내가 그림자처럼 곁에 있을 때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 - 나는 카트를 끌고 아내는 사고 싶은 상품을 골라 카트에 담는 평화경 - 이 세월이 지났어도 한으로 남아 있어서였다. 응어리 진 한을 푸는 대리만족을 하고 싶어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 보낸 지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보고 싶은 아내는 꿈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보고 싶은 아내의 흔적은 빛바랜 사진 한 장만뿐이었다. 하나 더 있다면 TJB 교육대상 받을 때 방송국에서 만들어준 DVD 속에 아내의 영상이 들어 있다. DVD를 틀면 골동품 같은 아내의 영상이 나오고 목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아내가 보고 싶고 그리울 때는 틀어 놓고 흐느끼며 한을 달래는 유일한 보물이라 하겠다.
지난 수년 전에도, 꿈에서도 만날 수 없는 아내가 그리워 아내의 친구였던 서울 인천 대전에서 사는 3분을 초대했다. 아내와 친하게 지냈던 분들이기에 그들을 통해 대리 만족을 하기 위해서였다. 발상은 그럴 듯했지만 허사였다. 대리 만족이라는 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그런 미련 때문이었다. 오매불망 잊지 못하는 아내와 가져 보지 못했던 평화경의 모습을, 손녀와 며느리 아들을 통해서 만들어 보고 싶어서였다.
‘할배는 카트를 끌고 손녀는 골라 담고!’
할배는 카트를 끌고
손녀는
커트에 게임기와 장난감 등등을 골라 담고,
며느리는
한 달 먹을 과일 야채 육류를 카트에 포개 실었다.
골라 실은 게 한 짐인데
행복은 천만 배로도 안 되는 하늘땅땅이었다.
첫댓글 행복을 만끽하시는 선생님의 미소가 그려지는 따뜻한 글입니다.
앞으로도 내내 건강하셔서 자녀분들의 효를 마음것받으시기를 바래요.
사모님과의 사소한 일상이 더욱 생각나실 것 같습니다. 항상 자녀분들과 화목하게 잘 지내시니, 사모님께서도 기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