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에서 손님에게 음식을 서빙하는 여직원 몇 명이 내게 면담을 요청해 왔다. 가게에 관한 일은 매니저를 통해 대부분 해결되기 때문에 나와 만나려고 하는 것은 특별히 나의 개입이 필요한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저것 머릿속으로 가늠해 보았지만, 짐작되는 바가 전혀 없었다. 아르바이트하는 어린 학생이 대부분이라 자기네들끼리 싸움이 있었나 했는데, 그들은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최근에 고용한 한국 직원 A에 대한 불평이었다.
A는 영어도 잘하고 공부도 많이 한 청년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혼기를 놓쳐 나이 오십이 다 되도록 독신으로 지내고 있다. 고지식한 그는 남들은 눈치껏 대충하는 일도 꼼꼼하게 하느라 다른 직원들이 오 분이면 할 일을 그는 삼십 분씩 걸려 끝내기도 한다. 기계로 세척하는 그릇도 손으로 뽀득뽀득 완벽하게 씻은 후 세척기에 넣었다. 세척기 안에서 뜨거운 물과 세제로 소독이 된다고 해도 손으로 씻어야 안심이 되는지 그는 자기 고집대로 했다. 주방에서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여러 번 내게 그에 대해 불평을 했었다. 그러나 요령이 없어서 그렇지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그만두게 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이 손에 익으면 차츰 나지리라 여겼었다.
그런데 홀의 직원들이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은 좀 의외였다. 그들이 어렵게 꺼내놓은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대학생인 그들은 이십 대 초반이다. 거의 아버지뻘인 그가 그녀들에게 너무 가까이 접근해 온다는 것이다. 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다. 자기네와 일반적인 대화를 할 때도 그는 너무 가까이 서서 한다고 했다. 칼질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며 손을 잡았다고도 하고 피곤하냐 물으며 어깨를 주물렀다고도 했다. 전화번호를 달라고 조르기도 했단다. 난 어안이 벙벙해졌다. 내가 보기에 그는 여자들에게 치근덕거리는 남자는 아니다. 사람들과 시선도 잘 맞추지 못하고 말수도 별로 없다. 아무래도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어떤 오해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성추행에 관한 한 한국보다 엄격한 미국이고,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주인인 나에게도 책임이 있어 간과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난 그를 불러 주의를 주어 다시는 그런 불편함을 없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예상대로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노란 무를 써는 모양이 하도 어설퍼서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 어깨가 결리는지 주무르고 있기에 자기가 마사지를 해 준 거란다. 전화번호는 왜 물어보았냐고 하니 집에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있어 그것을 주려고 그랬단다. 미국에서는 상대방의 의견을 물어보지 않고 그렇게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고 하니, 자기도 미국에서 오래 살아서 미국 문화를 잘 안단다. 본인은 절대로 나쁜 마음으로 그런 것이 아니니 아무 잘못이 없다고 했다. 나의 경고로 조금은 조심하는 듯 보였지만 그는 계속 어린 여직원들에게 친절을 베풀었고 여직원들은 다시 내게 그 사실을 알려왔다.
바뀔 가능성이 없는 그의 친절 때문에 나는 그를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 나이에 다시 다른 직장을 찾아야 하면서도 끝까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그가 답답하다 못해 안쓰럽기까지 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고집불통으로 만들었을까? 혼자서 살아내야 하는 이민 생활에서 그는 그런 것들로 자기 방패를 삼고 있는 것일까?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힘든 마음으로 오래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