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대상: 길튼교회 채성렬 목사. 2022. 10. 16. 주일예배 설교.
제목: 진짜처럼 교묘한 거짓신앙을 분별하라.
(러닝타임 45분 48초)
본문: 역대하 24장 17-22절
유튜브 조회수 5만 8천회.
1. 들어가기
길튼교회 채성렬 목사는 박보영 목사(인천방주교회 원로목사/ 마가의 다락방 원장/(전) 피부과 전문의/ (전) 감리교단 목사/ (현) 독립교단 소속) 사단에서 양성한 유망 목사로 알려진다. 천안안서교회가 경매로 넘어가게 되었던 지난 6월, 나는 유튜브로 안서교회의 담임목사가 피부암 투병 중이라는 것과 그 밖의 여러 사정을 알리며 낙찰금을 모금해달라고 호소한 일이 있는데 그때 박보영 목사가 내 영상을 보고 천안안서교회에 긴급 자금을 투입해서 교회를 되찾은 일이 있다. 박보영 목사를 멘토로 모시는 많은 제자들 중 하나인 채성렬 목사가 내 유튜브 영상을 본인의 교회에서 방영했다는 전언을 듣고 그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해둔 덕에 설교 비평 대상이 되었다. 채목사의 많은 설교 중 이 설교의 썸네일과 제목이 눈길을 끌어 무작위 선정했음을 일러둔다.
2. 본 설교 요지
채목사는 요아스 왕이 그의 멘토였던 여호야다 사후 야훼 신앙을 버린 점,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의 엄중한 경고에 격노하여 그를 죽인 점 등을 언급하고, 요아스처럼 자기가 뜨거운 신앙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여 스스로를 기만하는 이들이 있다고 지적한다. 교회 활동에 열심이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싸늘하게 식어버린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채목사는 요아스와 같이 갑자기 변해버린 것처럼 보이는 그들이 실은 ‘주님을 만나지 못한’ 이들임에도 남의 눈에 인정을 얻으려고 인위적 열심을 부리다가 어떤 기회에 그 가면을 벗어던지기 때문에 변한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해석한다.
“이게 바로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또 내 가족과 자녀들이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목회하면서 느낀 건 뭐냐면 분명히 지난주까지 열심을 다하고 땀 흘려가면서 봉사하고 그러는데 한 주 사이에 신앙이 어이없이 무너지는 그런 일들을 종종 보게 되는 거야. 이게 도대체 저는 이해가 되질 않는 거에요. 분명히 저번까지 뜨거웠는데 한순간에 그게 다 무너져 버리는 거야.” (13:01-13:30)
채목사는 이런 이들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스스로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거에요. (중략)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열심히 내가 봉사하는 것이라고 하면 그러면 직분 못 받으면 삐지고 교회 나가버리는 거야. (중략) 딱 핀트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한순간 다른 사람으로 돌변해 버리는 거에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거는 십자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요.”(13:36-15:10)
요아스의 변절의 원인을 추적하면서 채목사는 첫째, 스스로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며, 두 번째 멘토를 잃었기 때문으로 꼽는다. 여호야다와 같은 멘토의 필요성을 언급한 뒤 22분 5초부터 채목사는 자신의 멘토인 박보영 목사를 만나게 된 일화로부터 박목사가 자신을 어떻게 훈련시키고 가르쳤는지 소개하여 43분대까지 이어간다. 채목사는 요아스처럼 변절하지 않으려면 1. 성령의 지속적인 인도를 구하고, 2. 하나님이 보내신 멘토를 귀히 여기며, 3. 살리는 공동체에 꼭 붙어있도록 권면한다.
3. 비평적 소견
교회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종교적 행습의 열심만으로 진실한 신앙을 가진 듯 착각하지 말 것을 경고하면서 요아스 왕의 비극적 말로를 해석하는 채 목사의 설교 전개는 별다른 무리 없이 도출할 수 있는 교훈적 요소를 거의 다 끌어낸다. 그러나 정작 채 목사가 경고하는 바로 그 성령 없는 종교적 열심을 자기가 설교 내내 조장하고 선동하고 있음을 모르는 것이 비극이다.
채목사는 수시로 과격하고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해 회중을 압박하고 있다. 매우 여러 곳에 나타나지만 대표적으로 이런 표현을 보자. “(25:12) 수많은 여러 가지 가르침들이 있었지만은 그중에 도대체 누가 맞는지 모르겠는걸. 그리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내 판단조차도 옳은지 모르겠어요. 물론 성경이 있죠. 그런데 이 성경을 해석하는 내 판단이 옳은지조차도 모르겠고.”, “(25:50) 한 가르침의 줄기를 붙잡고 이게 맞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내 전부를 걸고 간다 하더라도 마지막에 그거를 당겨봤을 때 이게 썩은 동아줄이면 나 어떻게 되냐고요.”, “(26:03) 이거는 한번 실수하면 끝나는 거에요. 한번 실수하면 여러분들.”, “(26:09)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한번 실수하면 영원히 완전히 운명이 갈라지게 되는 거야. 그래서 밤을 새 가면서 기도해서 하나님 제게 정말 하나님 사람 좀(보내주세요)”
채목사가 바른 성경해석체계와 신뢰할 멘토를 절박하게 구했던 당시 심경과 그의 파토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대체 이 맥락에서 채목사가 말한 ‘한번 실수하면 영원히 완전히 운명이 갈라지며 끝장나는 것’의 정체는 무엇인가? 위 발언에 따르면, 채목사는 성경의 다양한 해석체계들 중 하나에 자기 전부를 걸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해석체계를 진리 자체로 간주한다. 심지어 해석체계를 잘못 선택했다가 썩은 동아줄이면 영원히 완전히 운명이 갈라져 지옥에 떨어지는 것과 같은 파국을 맞는다고 믿는 것 같다. 정말 우리가 성경의 해석체계들 중 하나를 선택한 것만으로 영원히 완전히 운명이 갈리게 되는가? 성경 해석에 내 전부를 걸어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단순하고 맹목적인 사고방식인지 채목사는 모르는가? 우리가 구원받을 믿음을 가졌던 영의 신비로운 그 순간에 성경해석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기는 했던가?
하나님의 자녀는 한 번의 실수로 영원하고 완전하게 운명이 결판나는 존재가 아니다. 더구나 백퍼센트 완벽한 성경해석체계를 전수받고 사도바울과 같은 멘토를 만난다 해도, 그것이 그 개인에게 영원하고 완전한 운명의 결정타가 되지 않는다. 그 반대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성경 지식이 부족하고 뚜렷한 멘토도 없고 죄의 행실로부터 충분히 탈피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자기 자녀로 받으신 성도를 완전한 사랑과 지혜로 때를 따라 신비롭게 ‘인도하신다.’ 성도는 내 행위와 열심과 선택의 치열한 외줄타기를 통해 영원하고 완전한 운명으로 건너가는 아슬아슬한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채목사는 인간 쪽에서 뿜어내는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결단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바람에 하나님의 열심과 목자되심을 크게 간과하였고, 결과적으로 그는 과거의 결사적인 결단과 선택이 오늘의 자기를 만들어주었음을 자랑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가 계속해서 이런 유형의 설교를 즐겨 한다면 그의 청중들은 더욱 어떤 유형으로 굳어가게 될까? 바르고 옳은 결정과 선택을 위해 그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광적인 신앙 행태를 보일 것이다. 청교도적 삶과 윤리를 힘쓸 것이다. 노숙자를 만나기만 하면 자기의 옷을 벗어주느라 바쁜 채목사처럼 강박적으로 선행의 열매를 추구할 것이다. 믿음이 있다면 열매를 보이라고 촉구하는 이토록 균형잡인 설교에 어찌 반박하랴. 문제는 열매 맺는 주체가 뿌리인지 가지인지 분명치 않은 채, 자기의 선택과 결정이 영원과 완전을 결정짓는다는 맹목성과 강박에 잡힐 채성렬목사의 경주마들이 요아스의 운명과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는 내 불길한 예감이다.
결론이다. 채목사는 내 가족과 자녀들이 요아스처럼 변절하지 않도록 생명 놓고 기도하라고 강조한다. 천국 문 들어갈 때까지 마음을 놓지 말라고 당부한다. 45분 11초에는 “주님을 만났다고 안심하지 마십시오”라고 한다. 이렇게 절박하고 집요하게 하나님을 붙들고 늘어지도록 간청하는 채성렬 목사는 확실히 훌륭한 멘토의 자질을 가진 것 같다. 그런데 주님을 만났어도 안심하지 않고 생명을 걸고 기도하면 내 자녀가 요아스처럼 변절할 수 있는 상태로부터 구원될 수 있는 것인가? 그 말은,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위해 생명을 걸어 기도하지 않는 바람에 요아스의 변절이 벌어졌다는 의미가 되고 만다. 사실 채목사의 설교에는 이런 맹점들이 많다. 멘토가 그토록 중요한 존재라면 여호야다와 같이 위대한 멘토가 왜 요아스의 껍데기 신앙과 거짓 종교심을 진작에 경고하며 가르치지 못했는지 정도는 한마디쯤 언급해줘야 하지 않는가?
요아스의 문제를 진단하고 본문을 주해함에 있어 채성렬 목사는 열정적이고 맹목적인 신앙적 차원으로만 해결하려 하고 있다. 요아스를 한 개인의 신앙적 문제로 볼 것인지, 이스라엘의 상습적이고 고질적인 훼절의 문제로 볼 것인지에 따라 설교의 심층과 지평이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채목사는 본문 주해를 위한 수고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는 부흥주의, 혹은 열정주의적 설교만으로도 환영받는 교회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가 선택하고 결정한 그의 동아줄이다. 만약 그것이 썩은 줄이라 해도 영원하고 완전히 끝장나지는 않을 것이다. 잘못된 것을 알고 돌이키도록 부지런히 목양해주시는 하나님께서 그를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토록 완전하고 영원히 은혜로우신 주님을 만났음에도 안심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채목사와 그의 교회가 몹시 아슬아슬하다. 그래서 기도한다. 그 과잉 열정이 썩은 동아줄임을 부디 알아차리기를. 부디 은혜의 능력을 온전히 믿고 안심하며 가볍고 기쁘게 달려가기를.
(끝)
2023. 10.29.
주의검을보내사
https://youtu.be/NhIqJM4QSsA
첫댓글 저렇게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안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겠네요
그 평안함과 안식이 얼마나 큰 은혜와 새로운 힘을 주는지 저분은 알지 못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