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닥치면,
계절보다 더 빨리 눈을 소환해 시린 기억 속에 잠기는 철 지난 아저씨들에게,
눈 내리는 마을들은 시간도 공간도 불분명한 안갯속의 회색지대이다.
시간은 어제에서 와서 내일로 흘러가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는 소멸하지 않는 시간이 있는 것일까?
돌아갈 고향도 없었고, 딱히 지켜야 될 조국도 없이 유럽을 배회하던
러시아 혁명기의 유태인들, 마르크스도 레닌도 로쟈 룩셈부르그. 트로츠키에게도
이데올로기는 그들이 유일하게 돌아갈 수 있는 꿈, 진리의 권력이었을까.
유태인이었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67세 되던 해에 그의 인생에서
단 한편뿐인 장편소설 "닥터지바고" 를 출판했는데, 1957년이다.
이 소설은 그 당시 러시아 나이로는 너무 오래 산 늙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셈이다. 죽을 날이 낼 모레인 이 늙은 작가에게 이 소설은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가? " 를 규명한 회고록 쯤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은 죽으면 무엇으로 남는 가?" 이다.
그이의 주장에서, 영혼은 기억 속에 남는다.
파스테르나크는 소설의 프롤로그를 마치고 부록으로 자신의 시 25편을 올리고
작품을 끝낸다.
그이의 회고에서,
"사람은 다른사람의 기억 속에 존재하고 삶 자체가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세상에 시인이 한명이라도 남아 있는 한 나는 기억될 것이다.라고 쓴다.
이 작가가 70세의 나이로 죽었을 때, 스탈린의 탄압 속에서 몰래 그의 시를 읽었던
추모객들이 줄을 이었다.
기억해 주는 거, 이걸 우리는 의리라고 불러도 무안하지 않을 것이다.
https://youtu.be/1RCp927TI6M
주말의 명화에서 우리와 오랜 세월 함께했던,
우리들 모두의 인생영화 "닥터 지바고"는 1958년 노벨상을 수상했던 시인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유일한 장편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이 영화는 눈과 함께 항상 우리에게 소환되는 추억의 영화다.
원작 소설을 이해하는 데는, "시인이었던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에 밑줄 그어야 될 거 같다.
닥터지바고는 소설이 러시아에서 출판되지도 않았는데 노벨상을 받았고 영화가 만들어졌다.
엄밀히 말하자면, 소설과 영화는 제목만 같지 서로 다른 이유와 목적성을 가지고 달린다.
1965년 개봉된 이 영화는, 197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에서 상영됐는데, 감독은 영국인 데이빗 린, 이집트인
오마샤리프 (지바고 역), 영국인 쥴리 크리스티 (라라 역)가 출현했다. 게다가 배급사는 미국의 MGM이었으며
제작자는 이태리인 카를로 폰티, 영화가 먼가 좀 이상하게 다국적이다. 10대 때 이 영화를 접한 내겐 거짐
쓰나미급 충격이었다.
주인공 유리 지바고와 라라는 우랄산맥 깊은 시골마을 바리키노의 얼음궁전에서 마지막 운명적인 사랑을 나눈다.
우랄산맥은 시베리아에서 몽골을 거쳐 카자흐카지 까지 이어진 2천 킬로의 산맥으로, 우랄을 기점으로 동양과 서양이
둘로 나뉜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오지의 공간, 지평선까지 온통 눈으로 덮인 대 평원을 가로질러 열흘 밤낮으로
기차를 달려야 바리키노에 갈 수 있는데, 그곳에 그들이 사랑을 나누는 얼음궁전이 있는 셈이다.
이곳은 시인인 작가가 설정한 혁명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고,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사랑하기 좋은 공간이다.
마치 이순원이 그의 소설 "은비령"에서 한계령과 곰배령의 중간에 은비령을 설정하고, 그곳에서 2천5백만 년 만에
만나는 혜성처럼 운명적인 "바람꽃"과의 인연을 꿈꾸 듯이.
둘다 소설적 개연성이 빠지는 시적인 공간이다.
소설 속의 시간은 1905년 러시아 혁명과 1차 세계대전, 1917년의 볼셰비키 혁명과 볼셰비키의 붉은 군대와
콜챠크의 백군이 적백 내전으로 천만명의 동족상잔의 전투를 벌이는, 혁명의 시간이다.
이 소설이 우리에게 소구력 깊게 작용하는 거는, 이름만 달랐지 우리나라와 너무도 똑같이 이데올로기가
동족 상잔의 살육전을 가져오는 비극의 역사공간을 다루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이 숨어서 사랑을 나누는 공간의 동쪽, 시베리아의 바이칼에서는 백군의 수반이자 러시아국 총사령관
콜차크제독이 살해돼 바이칼호에 빤스만 입힌 채 버려졌다. 이르크추크에서 도망친 백군 25만 명이 바이칼에
숨어들었다가 영하 50도의 얼음판에서 죽고 봄에 얼음이 녹으며 모두 수장되었다. (영화 제독의 연인 무대)
이 시기는 블라디보스톡에는 미국의 해병대가 상륙하고 러시아에 프랑스. 일본군. 영국군이 진주하는 시기이며,
스바보드니(자유시 참변)에서 홍범도와 김죄진의 부대가 무장해제 되고 굶주림에 쫓겨 다니던 시기이다.
영화에선 눈 쌓인 설원을 시네마스코프의 롱테이크 화면이 지나간다.
데이빗 린의 다른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온통 모래밖에 없는 광활한 사막을 비추 듯이,
타이가 설원을 넓게 잡아내서 달리는 기차의 장면은 비극적 사랑을 나누기 딱 맞는 영상으로
영화 상영 내내 우리를 압도한다.
그들이 사랑을 나누는 창밖으론 밤마다 늑대가 다가와 울고 인적이 끊긴 설원에서는 잔혹한 전투가 벌어진다.
붉은군대의 적군이 휩쓸고 간 마을을 콜차크의 백군이 불태우며 지나가고, 거기에 지역 의용군이라는 빨치산이
들어오고 도처에 마적단이 도사리고 있다. 막스의 이론에도 없는 내전은 기본계급인 농민. 노동자를 천만명이나
굶주림에 죽이고 있다. 그 빨치산에 잡혔던 지바고는 마가목의 붉은 열매가 새들에게 잔치를 벌여주는 눈밭에서
목숨을 건 탈출을 하며 라라에게 돌아간다.
그 속에서 외롭고 불안한 사랑을 나누는 둘의 행각은 운명적이라고 역설하듯이, 그들의 밤은 뜨겁고
봄에 피어오른 들판 가득한 수선화는 너무도 아름답다.
그런데 혹한의 시베리아에서 무장 해제 당한 우리의 홍범도. 김좌진부대는 어떻게 먹고살았을까?
은비녀를 팔아 독립군자금을 내던 조선의 백성들은, 북간도를 탈출한 그들이 어디에 있는 지도 몰랐는데.
레닌의 코민테른에 보고된 문서에서 대한 독립군은 때로는 빨치산 때로는 마적단으로 보고 되었고.
그들에게 식량을 수탈당하고 마을이 초토화 됐다는 민원이 빗발쳤다. 이들은 꿈과 이상이 없던 단순
폭력배였을까? 전쟁터의 총알은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을 가려서 꽂히지 않는다. 동일한 시기의 지바고의
사랑은 운명적이었고, 그들에게 전쟁은 선택사항이었을까?
참, 너무도 시적인 그들의 사랑은 회색지대에 있다.
작가의 이념적 지표는 꼭 표현하자면 좌파와 우파의 중간지대이며 주인공 지바고 시선은
혁명가와 시인 사이이다. 시인이었던 작가는 세상과 미래의 중간쯤에 회색 지대를
설정하고, 세상 밖이 아니고 자기가 설정한 내면세계를 열나 달려간다.
그러므로 세상과 혁명에 대한 서사의 결론은 주인공의 자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소설 속에는 두 커플 네 명이 주인공이 나오는데. 유리지바고와 라라 (안티포바),
지바고의 부인 토냐 (안토니나 그로메코) 그리고 라라의 남편 파샤 (가명, 스트렐리니 코프)이다.
여기서 유물론자이자 혁명가인 파샤는 내전의 참상을 지켜보며 자살한다.
그러니깐,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 반쪽은 파샤이며, 우리가 영화에서 보여주는
러시아 여자의 사랑이라는 관음증 섞인시선을 넘어 파샤 자살 쪽으로 관심을 돌리면
온전하게 한쪽으로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파스테르나크는 자전적인 작품에서 자신이 평소 열정적으로 흠모했던 미래파 시인 마야코프스키를
투영시킨 듯한데, 마야코스키는 러시아 혁명의 가장 전위적인 시인으로 내전 뒤 소련의 사회체제를
격렬하게 비판하다, 뒤에 권총 자살하는 인물이다. 소설에서 마야코프스키를 반으로 쪼개가지고
시인 지바고와 혁명가 파샤를 만들어 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두 주인공 어디쯤에 작가가 설정한 이상이 있고 자살이 그 걸 이해하는 단서인 셈이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지바고" 영화가 알려지기 전에 이 작가를 국내에 소개한 이는 전혜린이다.
파스테르나크와 마야코프스키에 대한 전혜린의 열열한 사랑은 거짐 숭배에 가깝다.
“파스테르나크의 문장들은 아주 번역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난 그를 미치게 좋아한다.
마야코프스키의 작품은 전적으로 내 맘에 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도스토예프스키의 계속이거나 그 이상이다.
얼마나 멋지게 그는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단연코 확실히, 힘차게 직선적으로 말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지,
그는 어느 한 그룹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한쪽 기슭을 떠났으나 맞은편 기슭에 그는 상륙하지 않았다.
지옥과 파멸과 죽음은 그를 건드릴 수 있어서 기뻐한다. 그러나 봄과 생(生)도 그를 건드릴 것을 갈망한다.
온 세계는 깨어 일어나야 한다. 우리는 모두 부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혜린 사후에 그녀가 생전에 쓴 일기를 편집해 펴낸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에서 전혜린이 파스테르나크의
"여권"이란 작품을 번역을 하면서 토로하는 평가는 극찬이다. 단 한 번도 혁명과 사회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는
그녀가 파스테르나크와 마야코프스키에 대한 열열한 애정을 보인다.
전혜린이 서울 법대에 입학시험에서 수학시험을 빵점을 받았는데, 그래도 그이가 다른 과목에서 올백점을 받아
서울대 차석으로 합격했다고 한다. 이 천재의 아버지는 총독부 고위 관료로, 헌병사령관으로 김구 암살범을 수사해 놔 주고
뒤에 총리실 비서실장으로 군림했다. 세상에 부러울 것 없던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평범해지는 게 너무 싫어서
자살을 했다. 이렇다 할 작품 하나가 없던 그녀는 이후 한국 문학의 전설이 됐는데, 한국 문단의 여류작가들이
모두 공주 전혜린이거나, 무수리 전혜린으로 비스므리 해졌다. 모가지가 길어 늘 외로웠던 그녀의 죽음은
닥터지바고의 고급진 인테리겐차의 우울과 일치한다. 그이의 이상은 세상을 향한 방향성이 아니고 생의 열정이다.
가을만 되면 까닭 모르게 우울해지는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
십 중 팔구 전혜린에 감염된 거 로보면 맞다.
파스테르나크는 그의 인생이란 책에서 마야코프스키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적고 있다.
" 그를 처음 만난 그날, 완전히 압도되어 가로수 길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나 자신이 전혀 재능이 없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나는 나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면
마야코프스키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곤 했다. 정말 그렇게 해야 했다. 나는 그를 신처럼 숭배했던 것이다.
나는 그를 나의 정신적 지평의 체현으로 여겼다”
파스테르나크의 마야코프스키에 대한 숭배는, 마야코프스키가 레닌의 전위로 명성을 날릴 때 식어버린다.
그리고 둘은 서로를 격렬하게 비난하는 사이가 돼 갔는데, 보헤미안적 자유주의자가 혁명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때 이미 형성된 것이 아니었을까.
라라를 둘러싼 남편 파샤와 유리지바고의 사랑하는 방법의 차이는
이 소설에서 일종의 크럭스 구간이다.
이 크럭스 구간의 갈등은 전혜린의 안갯속 낭만과, 시베리아를 머슴으로 전전했던
대한 독립군의 조국에 대한 사랑을 이해하게 해 준다. 또한 영화에서 은폐된 나머지 반쪽을
복원해 가는 단서가 있다.
파스테르나크는 두 번 결혼하고 그 후에 올가 이빈스카야라는 여성과 오랫동안 내연관계를
유지했다. 이 올가 이빈스카야가 소설 속의 라라이다.
두 번째 부인 지나이다는 자기의 절친의 부인을 몰래 뺐어 결혼한 거고, 그 지나이다의 절친인
올가와 몰래 내연관계를 갖는다.
이 연인 올가는 파스테르나크의 작품과 관련돼 파스테르나크의 아이를 임신한 채 시베리아로
5년간 유배되고 아이는 사산한다. 1957년에 소련이 출판을 불허한 닥터지바고의 원고를
이태리로 빼돌린 혐의로 또 8년간 유배형을 받았다. 이태리의 이사야 벌린에게 준 이 원고는 미국
CIA가 공항에서 비행기를 억류한 채 원고를 촬영해 수백만 부를 영어로 번역해 배포했다.
그리고 노벨상이 주어진다.
그러니까 소설 속의 라라는 매력적이고 섹시한 여성이 아니고 구체제와 혁명세력에 박해받은
상처 많은 여성이다. 영화 속에서 지바고( 오마샤리프)가 라라를 바라보는 시선은 내내 애처롭다.
어찌 보면 사회에서 희생당한 민중으로 한 여성이 사회에 던지는 고발장이 라라이다.
영화에서 라라는 엄마의 애인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그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남편 파샤는 라라에게
상처를 준 구 체제를 혁파하기 위해 내전에 뛰어들었다. 그를 지켜주는 운명적 사랑을
하는 건 지바고이다. 그는 사람은 현재를 즐겁게 살려고 태어난 존재이지 미래를 준비하는
존재로 태어난 것은 아니라고 표현한다.
파샤는 진정으로 라라를 사랑기 때문에 그녀에게 상처와 고통을 안긴 구체제를 부셔야 되고
그러기 위해 라라를 떠난다. 혁명이 성공하기까지 사랑은 유보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리지바고는 인간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에 어떤 목적을 위해서도, 설령 새 세상을 준비하기
위해서도 유보해서는 안된다.
미학은 감성을 다루는 영역이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 감정은 너무도 단순하다. 모든 걸 흰 눈처럼
클리어시키고 자기에게 닥친 감정과 느낌의 영역을 사수하면 된다. 문학에서는 윤리적 잣대가 없고
이 감성을 유보하면 윤리와 이데올로기만 남는다.
문학에서는 감성을 지키는 게 진정한 용기이고 이 열정을 유보하는 건 비겁한 짓이다.
감정은 단순하고 직진적 성향을 가지고, 비겁한 넘들은 복잡하고 말이 많다.
따라서 작품에서 말 많은 넘들은 빨갱이 거나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뜨거운 감성은 기억을 변조하거나 눈처럼 클리어하거나, 가을만되면 안갯속에서 끊임없이 소환되는
힘을 가졌다.
지바고는 천만명이 죽어나가는 동족상잔의 내전에서 눈 쌓인 겨울궁전에 고립되어 소련과 윤리를 향해
뜨거운 공성전을 벌이고 있다. 그는 이 걸 보헤미안, 자유주의적 낭만을 사수하는 항전으로 생각한다.
이 소설은 1957년 11월에 이태리어로 첨 출판 됐는데,
몇 달 후인 1958년 봄에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천 돼 가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정작 러시아에는 책도 나오지 않은 때
겁나 빠른 속도로 상을 받게 되는데, 노벨 문학상은 비평가가 주는 상이 아니고, 작가의 모국에 끼친 영향력을 평가해 작가에게
수여하는 기여도 평가 상인점을 감안하면, 참 별난 이력이다.
소련에서 출판 금지된 이 원고를 이태리의 이사야 벌린에게 빼돌린 사람은 작가의 연인 올가 이빈스카야다.
미국 CIA는 이태리 공항에서 비행기를 억류하고 원고를 촬영해 독일어판과 러시아어로 번역해 수백만 권을
유럽에 배포했는데, 전혜린이 1960년대 읽은 닥터지바고는 이 CIA 버전이다. 올가는 이 죄목으로
8년형을 받고 시베리아로 유배되고 파스테르나크는 이 건으로 제명되고 화병으로 2년 후 사망한다.
페레스트로이카란 거? - 개혁. 리빌딩 재건축의 의미이다.
스탈린과 레닌이 건축한 순살 아파트를 모조리 부수고 다시 짓는 일을 소련이 시행했다. 브레즈네프 때.
닥터지바고는 러시아에서 순살아파트가 무너져 고통받는 인텔리겐차 (러시아 지식인) 들의 고통을 그린
것이라 볼 수 있다. 스탈린 사후, 후루시쵸프는 소련은 자본주의를 파괴하고 사회주의 전단계에 도달했고
사회주의는 1980대에 완성될 거로 예측했는데, 소련은 사회주의를 완성하지 못하고 90년 초 망한다.
지구에는 꿈의 매뉴얼 사회주의를 실현한 정치체제는 한 번도 없었던 셈이다.
다만 이데올로기의 공격용 무기로서만 작동됐다.
2009년에 우리나라에 " 제독의 연인"이란 영화가 상영됐는데, 이 영화는 닥터지바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콜차크 군의 사령관이며 백군의 수반인 알렉산드르 콜차크 제독을 다룬 영화다. 최근 러시아에서
콜챠크와 그의 연인 안나 티비레바와 나눈 50여 통의 연애편지가 발견됐는데,
그걸 근거로 영화를 찍었다.
콜차크는 같은 백군인 체코군단의 배신으로 이르크추크 볼셰비키에 넘겨져 바이칼에 수장 됐다.
체코군단은 이 배신의 대가로, 본국으로의 송환을 요구했는데 그들이 귀환 전 무기를 홍범도 부대에
땡처리하고 간다. 이무기는 청산리 대첩의 대승을 가져온 체코 기관총이다.
이 영화는 전쟁과 평화의 영화감독 본다르추크의 아들인 크라프추크에 의해 러시아에서 200억을 들여
제작됐다. 푸틴은 이 영화를 통해 소련의 주적이며 내전의 원흉이었던 콜차크를 러시아민족의
자긍심을 지킨 영웅으로 복원하고, 전국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 이미 종주국에서 종말을 맞은
이데올로기가 아직도 배회하는 걸 읽으면 참 서글프다.
시간은 어제에서 와서 내일로 흘러가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는 소멸하지 않는 시간이 있는 것일까?
기억은 안개처럼 떠돈다.
시간이 갈 수록 새로운 정보와 국면이 닥쳐 이데올로기가 부서져 내리는 이 시기에 ,
몇백만명 몇 천만명을 죽이고 사라져 간 그들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
첫댓글 으헉!
시베리아 종신벌목유배형에 처해진 사람(아까님)이
수형소에서 찬바람 맞으며 몇 년에 걸쳐 쓴 듯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또 '사람은 무엇으로 남는가?' 에 대하여
감히 댓글을 달기가 저어됩니다.
올 여름에요 알라딘의 전자책 70만권을 해킹한 분이 있었어요.
그분이 만권정도책을 인터넷에 뿌렸어,
그래가지구 제가 삼박사일동안 러시아 장편만 다운 받았어요
빵에 가 있을 그친구에게 너무도 감사드림
시간은 어제에서 와서 내일로 흘러가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는 소멸하지 않는 시간이 있는 것일까?
있어요.
가슴속에 남아서 끝도없이 자신을 괴롭히며 몇번이든 되돌리고 싶어지는 그런 시간.
그건 소멸되지 않더군요.
가엽게도.....
제가 이십대 때 추천받은 책이었는데 읽다가 그만 접은 책이기도 해요. 그후로 라라의 테마는 많이 들었지만 영화도 못 봤어요.
무튼 올리신 영상 설국속에 빠지는 순간 올 겨울 꼭 저런 눈 쌓인곳에 가봐야지 싶었네요.
또 닥터지바고에서 시작해 우리나라의 역사속 인물과 전혜린까지 한줄에 나란히 엮어 써 내려가신 글재에 놀라다 못해 질렸어요.
강원국처럼 쓰기 연습을 하셨나요?
저는 끝까지 두번을 읽었어요. 그래도 이해는 역부족입니다.
이 영화는 수십년 동안 주말의 영화 단골이라
줄거리는 생략을 했는데 영화를 못보셨네요?
바쁘게 살다가
가끔 한번씩 정색을하고 글을 써보는 거도 정신 건강에 좋은 거 같아요
@아까 정색을 하고
술 한잔은 안되것지요?
저는 선배님 글 보면서 옆으로, 깊이로 얼만큼 되면 저렇게 표현이 되나 궁금해 집니다.
저는 늘 1차원적인 생각에 머무는...아니다 2차원 정도로..
1차원은 왠지 자신을 비하한 느낌이 들어 취소 합니다.
겨울 깊어지기 전에 막걸리 한잔해요.
선배님이 사시고...
저는 비싼 안주시키고 싼 막걸리나 마셨으면 싶으네요.
@눈솔 겨울되기 전에 번개 한번 더?
다른분들 어떨지 모르겠어요
@아까 좋아요.
좋아요.
@눈솔 생각이 복잡하지 않은 1차원이 좋은 거 같습니다.ㅎ
제가 이 긴글을 읽기 위해 지옥철이라는 김포 골드라인안에서 앞 옆 뒤 출입하는 사람들과 전쟁을 하면서도 읽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읽으면서 출구를 나오는데 처음 타보신 여성분과 엘리베이터에서 뭐 이런 지하철이 있느냐며 차량을 늘리던지 해야지 답답해 힘들다며 리딩하는 나의 눈을 옆으로 돌리게 만듭니다
but 읽기는 다 읽었습니다
아침부터 지나온 시간동안 나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생각해 봤습니다
내가 지옥철에서 전쟁을 하며 고난을 당할 때 김포 서울 편입 인천과의 5호선 연장 합의 시간연장을 하고 누구는 편안 자차타고 사랑의 드라이브에 힐링 트래킹 해외 여행길을 걷고 있을까
누구는 집회하고 누구는 일년 연봉 몇백어 십억 주식부자 감세에 닐리리~ 웃고 노동자 가만히 앉아 일당 월급 깎이고 있지를 않나
그 틈에 전쟁 혁명 사랑의 경계선 금단의 지역설정속 노벨 문학상을 받고 있고
시간은 가만~있는데 이 놈의 인간들의 변덕의 마음속에 포장 기술이 시간을 지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누가 빤스 입고 누구를 위해 죽었다구요?
아!~
빤스
올 겨울에는 엄마 속옷을 사드려야 겠습니다
무슨 글을 읽었는지 헷갈림 ㅎ
기경님 댓글 읽고
기경하겠음.
ㅋㅋ
좋은 하루 되세요.^*^
빤스 얘기는,
살해 후 속 옷만 입혀서 물속에 집어넣었다는, 표현을 제가 그렇게 한건데.
붉은군대와 싸운 백군의 사령관 콜차크를 사살해 버린 사건입니다.
1950년대까지 소련사람들은 빤스를 대부분 안입었어요.
핵은 만들려고 했지만 빤스공장은 턱없이 부족해서 보급품에 제대로 없었어요
아~~~ 감탄사를 절로 쓰게 되는 엄청난 글입니다.
영화만 봤었는데, 설원의 아름다움 속에서 사랑하는 연인.. 뭐 그 정도로 기억하고 있는데,,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제대로 읽어봐야겠어요.
전혜린이 다시 소환되어 잠시 옛 시절을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네, 가을이라고 40년전에 전혜린까지 불러왔네요.
세상여자는 데미안을 읽은여자와
안읽은 여자 둘로나뉜다
어쩌고 빵집에서 여학생 꼬실때 주접을 떨었었는데
슈바빙에 가스등이 어쩌구..
그 여학생은 어디서 늙어가는지 ㅎㅎ
장발장은 잘 나가고 있으셔요?
닥터지바고 우크라이나 코사크 버전인 숄로호프의
고요한돈강 이 있어요.
백석이 40년대 번역했는데
증말 명작 번역예요ㆍ
레미제라블 담에 추천
@아까 레미제라블은 다 읽었어요
가브로슈가 탄환 줍는 장면에서 아까님의 댓글이 생각났었지요~
닥터지바고의 ... 책제목이 '고요한 돈강'이라는 뜻인가요?
길상사와 얽힌 그 백석 시인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분이 번역도 했다는 건지요?
@단사리 아, 책 제목은 고요한 돈강이고 작가가 숄로호프.
닥터지바고와 같은 시기의 같은 사랑 얘기란 말씀예요 .
65년에 진짜로 노벨 상을 받았어요 .
백석은 시인이기도 하지만 5개국어에 능통한 천재적 번역자였어요.
좀전까지 우리나라엔 러시아 원전을 번역한 책은 없었고 다 일어 . 영어 중역본입니다.
6~7개 출판사중 서정시학의 백석본이 유일한 직역본인데 천재적인 번역이라고평가됩니다.
뒤집어 말하면 러시아 원문의 빛과 색깔, 운문과 산문의 취지를 살린 작품이라
읽기가 지옥같아요. 이걸 백석이 번역 중 조만식선생 비서를 하다 김일성이한테 숙청당해서
8권 중 마지막 3권이 누락 됐어요. 마지막 3권은 동서문화사 2권으로 읽으심 돼요.
맹은빈이란 역자는 유령인 해적판인데 젤 다림질 잘돼서 읽기는 편해요.
그리구 길상사 자야, 김영한이 얘기는 다 거짓말 같아요.
그 여자는 허언증 환자라 백석이랑 술한잔먹고 잔걸 다 부풀린 겁니다.
@아까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가슴 뭉클 합니다.
심장의 뻠뿌질.!!
최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