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면서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 동안 몰랐는데 영화 기생충을 보면서 깨달았다. 영화 앞부분에 송강호가 아들을 보며 ‘아들아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에 왜 감탄사가 붙는지의 의미를 영화 처음에는 그렇게 와 닿지 않았다.
이선균이 아내에게 지하 생활자 송강호의 냄새를 표현하면서 ‘있어, 그 지하철 타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나는 냄새.’라고 말할 때 갑자기
‘어 나도 지하철 타고 다니지. 그리고 이선균 같은 저런
집에 사는 사람은 아닌데. 그럼 이선균이 볼 때 나도 그냥 지하철 타고 다니는 사람인가. 나한테서도 혹시 냄새 나나?’ 하고 고개를 숙이고 나도 모르게 내
냄새를 슬쩍 맡아 봤다.
나중에 집주인들이 캠핑에서 돌아오던 날 쏟아지는 기록적 폭우에 반지하 집이 침수되고 대피소로 마련된 체육관 마루바닥에
송강호와 아들이 누워 ‘어차피 계획을 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계획이
없는 게 속 편하다. 계획이 없으니 잘 못될 것도 없고, 사람을
죽이던 나라를 팔던 다 의미 없는 거다.’ 라고 말할 때 아 정말 잃을게 없는, 가진게 없는 사람을 확정 지어주는 것은 지하철의 이용유무가 아닌 계획 없음임을 알게 되고, 다시 한번 ‘아
나는 그래도 계획이 있는 편이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래도 나는 이선균과 송강호의 중간 어디쯤 그나마 이선균
쪽에 가깝게 내가 자리하고 있다는 걸 느끼며 안도했었다.
비행기표가 싸다는 중요한 이유로 갑자기 일주일 만에 기획 된 이번 호치민 여행에서, 미국
직장생활에 지쳐 잠시 한국에 머물고 있던 와이프 대학동기인 미영이가 “나 베트남 아무것도 몰라. 나도 그냥 가면 되는거지?’라는 말과 함께 뜬금없이 우리 일정에 합류하게 되었다.
아무 '계획 없이' 놀러오는 미영이를 가이드 하기 위해서 호치민에서 칠년간 살아온 것만 같은 미영이의 초등학교 때 친구는 베트남 생활 이십년째인
남편이 있는데, 뭔 일인지 계획에도 없던 그 미영이 친구의 남편과 내가 우리의 11박 12일 일정 중에 4일을
만나고 만나서 밥을 여섯끼, 카페에 세번을 함께 갔다.
그리고 아무 기대없던 우리의 평범한 연중행사였던 여행이 이제는 우리에게 갑자기 커다란 계획을 세울 것을 종용하고 있다
- 이 짧은 감상문?을 써서 제 개인 SNS에 올렸던게 지난해 11월이었습니다. 이때 만 해도 저희는 15년간의 호주 생활을 정리하고 베트남 호치민에서 제 2의 이민생활을 준비하고자 했습니다. 호주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살고 싶으나 아직은 외국생활에 한발 걸쳐 놓고자 하는 마음으로 한국사람들도 많고 지리적으로 심리적으로도 가까운 베트남을 선택했었고 3년간 5차례 이상의 방문으로 항상 호감이 있던 베트남에 이번 여행을 통해 만난 귀인을 계기로 아주 이주 하기로 마음을 굳히게 된 상황이였습니다.
- 하지만 이번 코로나 이후로 베트남 이주 계획은 무산되었습니다. 물리적 상황과 함께 저희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 제가 아직 많이 어리석지만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무조건 좋은일도 무조건 나쁜일도 없다는 것을 몸소 경험한 적도 몇번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를 계기로 가끔은 계획을 세우는게 아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치앞을 모르는 인생사 걸어가면서 좋은일, 나쁜일 , 거스를 수 없는 일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힘든일이 닥쳤을 때 저에게 계획과 믿음이 없다면 길을 꾸준히 걷기가 너무 힘들더군요.
- 사실 나중에 돌아 보고 다 부질없었다 할지 모르지만, 막상 한국 가서 직접 부딪혀야 하는 일도 많겠지만 이 카페에서 회원분들 글 많이 잘 읽고 많이 배우고 잘 준비해서 즐거운 역이민이 되어보겠습니다.
첫댓글 "계획은 내가(사람이) 세울지라도 실행에 옮기시는 분은 위에 계신분"이라는 바이블의 말씀이 실감나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실상입니다. 저도 금년에 벌써 몇개월전부터 세워두었던 여행계획들이(4월의 호치민과 한국방문 & 9월에 있는 유럽과 아이슬랜드) 모두 무산 되었습니다. 자유여행 계획이라 저렴할때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해 놓아서 벌금없이 취소시키느라고 전화통과 한참 씨름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제는 참다못해(?) 9월에 다시 2주간의 자가격리를 무릅쓰고 한국방문을 예약해 놓았습니다. 이것도 위엣분이 허락하셔야 갈수있지만..^^
저희는 이젠 동남아가 그렇게 편하더라구요. 특히 베트남은 음식이 잘 맞아서 더 좋구요.
오래전에 영국에서 반년쯤 살면서 주변국 여행도 부지런히 했었지만 이제는 양놈들이 하도 지겨워 ㅎㅎ 예전만큼 가고 싶지는 않더러구요 ^^
뜻하신 대로 가을에 한국 잘 다녀오셨으면 좋겠습니다.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것이지요. 이 역이민 카페의 많은 분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것이지요. 일단 역이민을 해서 자고 먹을 일이 해결이 되면 선택의 여지는 생깁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거나, 자신의 경제력을 너무 과소평가하여 한국으로 사는 곳을 옮기는데 자신이 없는 분들을 의외로 많이 만납니다. 게다가, 경제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더라도, 가족의 반대, 코비드와 같은 그 밖의 다른 것들이 발목을 잡기도 하지요. 일단 광복절님은, 남들에게는 어려울 것 같은 선택을 과단성있게 할 마음의 여유는 있으신 분으로 보입니다.^^ 연이어 올리시는 글에 계속 눈이 갑니다!
저희는 아이도 없고 비교적 이른 나이에 벌써 반퇴, 은퇴 오년차여서 그런지 제한적인 돈으로 생활하는데 적응이 되어 있습니다.
호주에서의 은퇴는 생각보다는 그리 많은 돈이 필요치 않은데 -물론 개인 편차가 큰 부분이라 뭐라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한국에서는 어떨지 아직 격어보지 않았지만 살다보면 또 방법을 찾겠죠? 거기에 적응해 가겠죠? ^^
잃을 게 없는 사람들, 가진 게 없는 사람들에게 계획은 의미가 없고 닥치는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도 맞고요.
고단하고 힘든 삶일지라도 꿈과 희망이 있기에 살아갈 힘이 생기고, 꿈이 있다면 계획하게 되는 것도 맞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고 우리 나이 쯤 되면 계획이 부질 없음도 알고, 써프라이즈가 없다면 재미도 없다는 것을 알게되는 것 같습니다.
확실한 것은 계획이란 수정하기 위해 세우는 것.
포기하지 않고 계속 수정하다 보면 원하시는 곳에 잘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선균보다 송강호에 가까운 것 같네요 ㅎㅎ
https://www.youtube.com/watch?v=kC0HpB7Qtsg
PLAY
좋은 말씀과 격려 감사합니다. 말씀대로 완벽한 계획보다도 유연하게 수정하며 잘 대응하겠습니다.
계획하지 않은 여행이 가장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도...
어쩌면 우리의 삶과 만남과 죽음이 그런 여행일 수도...
"나 인생 아무것도 몰라. 나도 그냥 가면 되는거지?"...
맞습니다. 굉장히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여행했던 예전에는 참 변수가 많아서 더 큰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해서 오히려 더 아쉽네요.
모든건 하늘의 뜻대로이지 우리의 원함대로 가는게 아닌 인생임을 알게 되면 ...
나머지 삶이 순조롭다고 생각합니다...
뜻하시는 바 건강하고 안전하게 이루어지기를 기원드립니다.
영화를 안 보았으면 글과의 교류가 적었을텐데... 십분 이해 합니다..... 우연히 보았읍니다.... ^*^
피난소 간이 침대에 누워 아들에게 계획 없는 것이 계획....
남의 집에서 파티하다...부자들은 왜 순진하지?.. 두 대사가 기억에... ^*^
글 감사합니다.
인생이 원하는데로 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인정하기가 쉽진 않습니다 ^^
저도 영화 참 재밌게 봤습니다. 이야기도 재밌고 곱씹게 되는 메시지와 화면적으로 아름다운 장면도 많았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일희일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아직은 마음처럼 잘 되지 않습니다. 걱정말아요 노래 참 좋네요. 고맙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고민하며 찾고 검토하며 계획을 세울 때가 제일 즐거웠고 가슴 두근 거릴 때 였든듯 합니다. 대부분은 계획대로 실행은 안 되었지만... 지난뒤의 삶도 그러하네요. 허기사 계획한대로 착착 진행되면 재미가 반감 될듯도 하네요.
여행은 방구석에서 계획 세우면서 그 즐거움, 설레임을 반이상 즐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외 다른 계획들은 아직 걱정과 긴장이 더 많습니다. 항상 모든일을 즐겁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아직은 힘드네요 ㅎㅎ
좋은 댓글들 감사합니다.
그때 제 sns 포스팅에 학교 선배가 달아준 짧은 댓글도 옮겨와 봅니다.
‘치밀한 사람에겐 계획이 필요하겠지만, 나는 무계획이 더 좋더라. ㅋㅋ 조금만 손해보다고 생각하면 생각하지 못했던 뜻밖의 행운에 즐거움과 감사함을 과하게 느끼지. 그게 더 나은거 같어.’
조바심 많은 저를 잘 아는 선배님의 걱정이었습니다 ㅎㅎ
미국 이민병이
모국 역이민병으로 도진 신참입니다 ^^
선배님의 선배 그 어록이 제게도 해당됩니다.
무계획.. 그런데 제가 세우지 않은 계획이 점점 뚜렷히 드러나 솔찬히 당황스럽습니다.
마음의 소원 멋지게 이루시길 늦게 나마 응원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