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문 ,칠성제화, 중앙공원 ...." 어린날 어머니의 손을 잡고 길을 나서며 누리는 즐거움 중의 하나로 간판이나 영화 포스터에 있는 한자를 맞추는 놀이가 있었다. 생활 속에서 시작된 한자와의 만남은 내 인생을 받쳐준 든든한 정신적 뿌리가 되었다.
성격이 결코 녹록치 않아 곧잘 화를 내고 내 뜻대로 하고자 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어머니랑 시작한 한자놀이로 성격마저 변하는 기회를 만났다. 신문을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낱말이 나오면,어머니는 항상 "나타날 현,있을 재"라고 한자의 훈 음을 풀어주셨다.그러면 나는 '나타나 있는것,아항 지금이구나..' 라는 식으로 추리를 해 나가곤 했다. 낱말이 주는 의미를 이런식으로 새기다 보니 무슨 일이든 급하게 생각지 않고 한번 더 생각하는 습관이 자연스레 들여졌다. 자연히 남의 말에도 귀 기울이게 되고 진중하게 행동하려 애쓰게 되어 성급한 성정을 많이 주저앉힐 수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떼 낸 천자문은 내 진로까지 결정해 주었다. 신변잡기에 능하다 보니 공부는 소홀했으되 한자 습득으로 이해력이나 개념파악이 잘 되어있어 그나마 버티고 입시까지 치를 수 있었다. 주저없이 중국어를 전공으로 선택 하고는, 한자를 제대로 몰라 고생하는 동기들과는 달리 쉽게 공부할 수 있게되자 새삼스레 학문하는 즐거움도 깨달았다.
그때부터 향교에서 하는 '사서삼경'을 새벽마다 복습은 못하더라도 빠지지 않고 들으러 다니면서 마음에 뿌리를 채웠다. 옛 성현들의 말씀을 새기다 보니 마음 수양에도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중국어는 또 다른 발음과 간체자가 있어도 결국 중급이상을 가면 한자를 많이 아는 사람이 쉽게 독해를 하고 발음 까지도 짐작이 가능해진다. 다른 이에 비해 얼마나 쉽게 습득 했는지는 명약관화해 진다. 일어 학습에도 중급이상이 되면 한자가 절대적이다.
현실적으로도,한자는 이제 입신양명,출세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대학입시의 특별 수시 전형에 적용 되는가 하면 서울대를 위시한 여러 대학이 한자능력검정시험 3급을 통과해야 졸업할 수 있도록 규정을 정한 바이다. 각 급 기업체에서도 토플,토익처럼 인사고가 평가 수단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세계에서 한자나 중국어의 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을 반영하는 증거이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는 차치하고 물질만능 시대에 정신적인 균형을 위해서라도 한자문화 습득은 의의가 있다. 한자를 잘 앎으로 해서 국어 사용에도 범위가 확대되어 글쓰기, 읽기에 비유와 상상력으로 재미가 가일층이다. 또한 철학과 종교로 까지의 접근이 용이해져 마음 깊은곳의 근원을 묻게 된다. 한시와 고문을 읽으며 예술적 풍류를 체득하니 문화 유적 답사를 다녀도 그 깊이가 다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음이다.
사대문화 주의가 어떠하냐를 따지려면 한자문화로 이루어진 우리전통 문화 근본 자체를 부정해야하는 꼴이 된다. 우리 고유의 전통을 살리지 않으면 세계적일수도 없다는 고부가가치의 문화 현실에 대한 인식도 제고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렸을 때부터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눈을 뜬 것만큼 한자를 알았다는 것으로 삶의 질이 달라졌음을 감히 얘기할 수있다. 학습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생활속에 젖어있는 형태로 한자를 만남으로써 정신적 풍요를 누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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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 전 쯤에 나름대로는 한자의 유용성에 관한 사명감에 불타서 어느 카페에 게시했던 글이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한자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이런 글이 참으로 참신한 사유가 되었었지요.
이젠 어딜 가도 한자의 중요성을 얘기하며 중요한 평가기준이 되니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이젠 역으로 자칫 문화는 없고, 지나치게 실용성만 강조된,혹은 상흔에 얼룩지는 부작용의 폐해를 생각하게 됩니다. 자연히 인문학의 위기를 실감하게 되면서 자격증이라는 결과물로서가 아니라 그 과정 중에 닦아 나가는 순수한 학문에의 즐거움과 성품들이 문화가 되어 근본 원리가 되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집니다.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