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영 베드로 신부
성령강림 대축일
사도행전 2,1-11 1코린토 12,3ㄷ-7.12-13 요한 20,19-23
우리 모두의 생일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 교회가 태어난 날입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나는 교회의 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교회의 아들들이며 딸들입니다.
생일을 맞으신 교회의 아들, 딸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인사드립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생일 선물 “희망”을 받으십시오.
교회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교회의 탄생은 인간의 머리로 다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입니다.
사람이 열심히 준비하거나 노력해서 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약속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렸을 뿐. 그럼 어떻게 태어났는가?
“성령으로” 탄생했습니다. 하느님의 정확한 때가 되자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 부활로 이루고자 하시는 새로운 창조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인간이 죄를 짓고 하느님과 관계에 문제가 생깁니다.
하느님과 단절된 인간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몸부림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지속적으로 더 크게 소리칩니다.
“더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청소년들에게도 “더 열심히 공부하면 잘 살 수 있다고”
정말 그럴까요? 열심히 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능력으로 열심히 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감이 무거운 짐이 됩니다.
지치고 힘들고 기쁨도 사라집니다. 열매도 없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그러나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점점 희망을 잃어갑니다.
인간의 힘으로 더 열심히 하면 된다는 논리는 마귀가 좋아하는 공식입니다.
더 이상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 우리의 희망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유일한 희망은 오직 성령 하느님뿐입니다.
하느님과 단절된 삶을 살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다시(위로부터) 태어나게 됩니다.
새로운 생명, 하느님의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살게 됩니다.
새로운 자유와 기쁨의 인생으로 부름 받아 모인 사람들의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교회가 얼마나 거룩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지 신랑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당신의 배필 신부로 삼으셨습니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신부 교회의 첫 모습을
사도행전 2장 42절 이하에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모든 것을 공동소유, 재산과 재물을 팔아 필요한 사람에게 분배, 기도에 전념하고
이적과 표징을 체험,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서 모이고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심”
초대교회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이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삶은 결코 이상적인 삶이 아닙니다. 물론 인간의 힘이나 노력만으로 이루려면
유토피아나 이루기 힘든 이상에 불과할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삶은 오늘 우리가 살아야 할 기본이고 원천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음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성령께 의탁하며 기도할 때 길이 열리고
그 삶이 시작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느님은 우리 자유의지를 존중하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분께서 자유롭고 활발하게 역사하시도록 힘을 빼고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그분의 활동에 방해되는 것을 치우는 것입니다.
성령을 슬프게 하거나 성령의 불을 끄거나 성령의 바람을 막지 말아야 합니다.
참으로 어렵고 암울한 이 시대에 유일한 희망이며 살길은 성령이십니다.
“나는 희망하는 인간입니다. 그것은 내가 교회의 역사가 장구한 역사이며 성령의 놀라운 일들로
가득 차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들과 무수히 많은 성인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암흑의 때에 맞추어 나서 은총의 위대한 도구로 쓰이고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빛을 던져 주었습니다.
나는 성령의 놀라운 일들을 믿습니다. 요한 23세는 그 같은 놀라운 일중의 하나입니다.
공의회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전자도 후자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느님의 풍부한 상상력과 무한한 사랑이 오늘에 와서는
메말라버렸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1974년 성령강림 대축일 레오 요제프 수에넨스 추기경)
전주교구 김대영 베드로 신부
2023년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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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민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성령강림 대축일
사도행전 2,1-11 1코린토 12,3ㄷ-7.12-13 요한 20,19-23
숨 쉬고 계시나요?
식당에서 식사하던 한 남성이 몸을 가누지 못합니다. 이내 뒤로 쓰러졌고
식당 안의 손님들은 큰 소리에 놀라 돌아봤죠. 그러나 모두 당황해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 순간 식사하던 어느 20대 남녀가 망설임 없이 뛰어옵니다.
여성이 호흡을 확인했고, 남성은 119에 신고했죠.
호흡이 없자 곧바로 심폐 소생술이 이어졌습니다. 가슴을 압박하고 숨을 불어넣었죠.
잠시 뒤 쓰러진 남성이 몸을 움찔거리더니 숨을 되찾습니다.
‘슈퍼맨 슈퍼걸 오는 줄’이란 제목의 뉴스로 접한 이야기입니다.
언론은 목격자의 이야기를 인용해 제목을 붙였는데요.
목격자는 모두가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남녀가 망설임 없이 뛰어와
슈퍼맨과 슈퍼걸로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20대 남녀가 숨이 멎은 남성을 구한 미담이었죠.
이 이야기를 접하자 문득 예수님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도 갑작스레 숨이 멈췄고 예수님께선 그런 우리를 구하러 오셨거든요.
예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원문에서 ‘성령’은 ‘숨’을 뜻하는 그리스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선 숨을 불어넣으며 그 숨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거죠.
왜, 숨을 불어넣으셨을까요? 숨이 멎었기 때문이죠.
창세기 2장 7절은 전합니다.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사람은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에 불어넣은 숨으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불신과 불순종으로 그 숨을 잃어버렸죠.
숨을 잃어버린 사람은 머지않아 흙의 먼지로 돌아갈 처지였습니다.
아버지께선 그런 사람을 가엾이 여겨 외아들을 보내주셨죠.
예수님께선 믿음과 순종에서 비롯한 수난과 죽음으로 사람이 잃어버린 숨을 되찾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숨을 불어넣어 주셨죠. 사람이 흙의 먼지로 돌아갈 위기에서 벗어나 살길이 열렸습니다.
잃어버린 숨을 받았고 그 숨이 함께 있거든요. 그저 받은 숨을 쉬기만 하면 되죠.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숨쉬기를 소홀히 할 때가 많았거든요.
우리에겐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에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뒷전으로 미루죠.
기도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사실 내 삶에 기도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기도는 내게 주어진 생명의 숨을 쉬는 일이거든요.
그러나 그 사실을 망각해 기도를 소홀할 때가 많습니다. 제대로 숨 쉬지 않는 거죠.
숨 쉬지 않으니 서서히 죽어갑니다. 주님께선 죽어가는 나를 보고만 있을 수가 없으셨죠.
그래서 내 영혼을 압박합니다. 주어진 숨을 지금 당장 쉴 수 있도록.
심폐 소생술은 인공호흡과 가슴 압박으로 이루어지는데, 우리 구원도 이와 같습니다.
주님께선 이미 내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린 자주 내가 받은 숨을 잊고
숨쉬기에 소홀하죠. 그때 주님께선 수난을 허락하십니다.
그 수난을 통해 내 영혼을 압박하시는 거죠. 내게 주어진 숨을 깨닫고 숨 쉬며 살 수 있도록.
그러니 내 삶이 너무 고통스럽다면 확인해 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숨 쉬고 있는가. 즉, 기도하고 있는가.
어쩌면 주님께서 숨 쉬지 않는 나를 살리기 위해 영혼을 압박하고 계실지도 모르거든요.
내가 받은 생명의 숨이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되찾아졌고 불어넣어졌기에,
때론 그 숨을 깨닫고 숨쉬기를 위해 같은 것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인천교구 채수민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2023년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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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마르코 신부
성령강림 대축일(청소년 주일)
사도행전 2,1-11 1코린토 12,3ㄷ-7.12-13 요한 20,19-23
좋은 추억
2023년 1월에 청소년국장으로 발령을 받고 이제 4개월 정도 청소년국장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초보 청소년국장입니다. 운전면허를 따고 처음 도로에 나가면 주변 상황을 못 보고
핸들만 잡고 앞만 바라보듯, 그런 모습으로 현재 국장의 역할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도로에서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고 운전하시는 분들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들면서도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되는 것처럼,
저를 향한 많은 분들의 너그러운 마음을 경험하는 요즘입니다.
청소년국장으로 발령받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청소년 사목 지침서]를 읽은 것이었습니다.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책의 힘을 빌려 보려 하였습니다. 160페이지로 간단하게 서술된 지침서입니다.
다양한 현장과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는 사목의 보편적 방향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지금 제가 처한 상황을 해결해 주는 비법이 담긴 책은 아니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피하기 힘들어 고민하던 가운데, 사제 서품을 받고 보좌 신부로 발령받을 당시
전임 교구장 루카 주교님께서 면담 때에 해 주셨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이 신부,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 줘야 해~ 교회 안에서 좋은 추억을 갖고 자란 아이들은
삶의 큰 위기가 닥쳤을 때 반드시 예수님을 찾게 될 거야....”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교우 여러분들도 같은 생각이시지요?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부들도 교회 공동체가 청소년들의 신앙 여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공동체 전체가 청소년의 복음화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
보편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청소년들에게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활동을 통한 “좋은 추억” 은
교회 공동체 모두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청소년 주일입니다. 청소년들의 복음화를 위한 영적, 물적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어른들의 실수로 일어난 팬데믹 때문에 소중한 청소년 시기를 힘겹게 견디어 낸 청소년들에게
“좋은 추억” 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제발...
“그리스도는 청소년과 언제나 함께 계십니다. 그들이 아무리 멀리 벗어난다 하여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곁에 항상 함께하십니다.”
2019년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2항]
춘천교구 이준 마르코 신부
2023년 5월 28일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