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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현 독일 지역의 바이에른 선제후국1) 에서 설립된 비밀결사의 명칭이다.
1776년 5월 1일 바이에른 잉골슈타트 대학에서 실천철학을 가르치던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aupt, 1748-1830)가 만들었다.
일루미나티(Illuminati)란 ‘빛나는, 찬란한, 비추는’ 혹은 ‘계몽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일루미나투스(illuminátus)의 복수형으로 ‘계몽하는(깨달은) 자들’이란 뜻이다.
한국어로는 바이에른 광명회(光明會)라고도 한다.
현대에 일루미나티는 각종 음모론과 연계되어 정치적 권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은밀히 활동하는 단체로 언급.
음모론이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배후에 거대 권력이나 조직 등이 있다고 여기는 소문.
대개 혼란스러운 시기나 사건의 원인을 명확히 설명하기 힘들 때 주로 유포된다.
일루미나티 역시 큰 사건이나 인물과 관련하여 다양한 음모론의 주체로 언급된다.
전 세계에 어두운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 단체 혹은 그림자 정부로서의 일루미나티의 이미지는
소설과 영화, 만화, 게임 등 각종 대중문화에서 활용되고 있다.
미국 돈 달러의 한면, 섭리의 눈(Eye of Providence)
세상을 내려다보는 신의 눈을 상징한다.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의 상징으로도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일루미나티와 관련이 없다. 본래 기독교 상징으로 삼각형은 삼위일체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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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일루미나티를 창설한 아담 바이스하우프트는
잉골슈타트 대학교에서 실천철학과 교회법을 가르치던 교수.
당시 유럽은 17세기부터 확산된 계몽주의가 강력히 대두한 시기다.
1776년 5월 1일 아담 바이스하우프트는 계몽주의 사상에 따라 바이에른 일루미나티를 창설했다.
기독교 중심의 절대 왕정 체제를 전복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계몽주의는 인간의 이성과 무한한 진보를 믿고 사회를 개혁하는데 목적을 두었던 반봉건적 합리주의 사상.
프랑스어로 계몽주의는 ‘빛난다’는 뜻의 ‘Lumière’로 계몽주의 시대는 ‘Siècle des Lumières(빛의 세기)
빛이 비추어 어둠을 밝히듯 무지(無知)에서 벗어나 앎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의미다.
설립 배경 --------------------------------------------------------------------------
잉골슈타트 대학교는 예수회가 1550년대 세운 대학이다.
1540년 정식 수도회로 승인받은 후
전 세계적으로 선교 분야에 뛰어난 활약을 보인 가톨릭 사제 수도회.
설립 10년 만에 30여 개 대학을 설립하는 등 빠르게 성장했으며
18세기 중반에는 600여 개의 대학과 170여 개의 신학교를 운영할 정도로 발전했다.
그러나 교황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종교개혁을 비판하는 예수회의 활동은
반가톨릭파와 교황 반대자들의 반발을 받았다.
결국 1773년 8월 예수회 탄압을 요구하는 부르봉(Bourbon) 왕가와 강대국들의
압력을 받은 교황 클레멘스 14세가 예수회 폐지 교서를 반포하면서 해체되었다.
이후 1814년 교황 비오 7세가 예수회를 복원하면서 20세기 들어 다시 크게 발전하게 된다.
아담 바이스하우프트는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예수회 교육을 받고 자랐다.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면서 대부이자 잉골슈타트 법대 교수였던
이크슈타트 남작(Johann Adam von Ickstatt)이 그를 양육했기 때문이다.
이크슈타트 남작은 합리주의자이자 계몽주의의 대변인으로 알려진 크리스티안 볼프의
철학을 지지했으며 이는 바이스하우프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일루미나티 설립자인 아담 바이스하우프트 (1748–1830)
ⓒ Christoph Wilhelm Bock (1755–1835) | Public Domain
바이스하우프트는 잉골슈타트 대학교에서 흔치 않은 비(非)사제 교수였다.
잉골슈타트 대학교는 예수회 소속으로 예수회가 해산되기 전까지
예수회 사제들이 교수직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사제가 아니었던 바이스하우프트는 1773년 예수회가 해체되면서
잉골슈타트 대학의 교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회는 해산 이후로도 학교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이런 상황은 합리주의적 성향을 가진 바이스하우프트에게 계몽주의 이상을
퍼트리기 위한 단체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스하우프트는 일루미나티 설립 전인 1775년 뮌헨 프리메이슨 지부에 들어갔다.
프리메이슨은 중세 석공 길드에서 시작한 비밀결사 단체다.
본래 노동자 단체로 시작되었으나 16~17세기 명예회원이 늘면서
도덕성과 준법, 박애주의를 지향하는 단체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바이스하우프트가 입회할 당시 독일 프리메이슨은 이상을
추구하기보다는 친목 단체에 가까웠으며 실망한 그는 얼마 되지 않아 단체를 탈퇴했다.
창립 ------------------------------------------
1776년 5월 1일 바이스하우프트는 몇 명의 학생들과 공화주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직인 ‘완벽추구자 종단(Bund der Perfektibilisten)’, 즉 바이에른 일루미나티를 설립했다.
단체의 상징은 지혜를 뜻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2) 로 정했다.
일루미나티 관련 문서에서는 열린 책 위에 앉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찾을 수 있다.
흔히 일루미나티의 상징으로 알려진 ‘섭리의 눈(Eye of Providence)’3) 은
기독교 상징으로 일루미나티와는 관계가 없다.
바이에른 일루미나티 초기 팜플렛(1788)
아래쪽에 그려진 열린 책 위에 앉은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일루미나티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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