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로즈아일랜드 프로비던스 [2]
내가 고등학고 3학년 때 올케가 처음으로 엄마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오빠와 올케가 우리 집을 방문해 식탁에서 별일 아니라는 듯 "저희 결혼했어요."라고 말해서, 아버지는 입이 쩍 벌어지고 엄마는 눈이 휘둥그레졌던 그때였는지도 모른다.
어쩐 일인지 올케가 지직거리는 우리 집 형광등 조명 아래서 하얀 식탁에 앉아 있는 장면은 다른 기억으로 이어진다.
같은 장소지만, 양친은 안 계시고 오빠와 우리끼리 있을 때였다. 어머님한테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올케는 자기네 가족 중에도, 고모인가 누군가에게 문제가 있다고 했다. 내 가슴속 매듭은 꽉 조여졌다가, 올케의 말에 아주 조금은 느슨해졌다. 올케의 말은 오빠보다는 나를 위한 것이었을까? 내가 겪은 일을 올케도 알고 있고, 오빠도 곧 그 사실을 보게끔 할 요량으로? 그랬다. 엄마에게는 문제가 있었다.
우리 가족 안에서 결코 말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만큼, 집안에서 탄탄한 지위가 있었던 올케가 완곡어법으로 에둘러서 언급한 말이었다. 상황을 바꾸려면 이렇게 외부인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 오빠와 올케는 더 이상 에둘러 말하지 않고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엄마한테 조현병이 있다고.
엄마는 벌써 몇 년 동안이나 집 안에만 갇혀 지내며,그나마도 점점 한 방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친숙한 집을 떠나 나라 반대편에 있는 낯선 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 상황은 전쟁 통에 보낸 어린 시절과 피란길에 올라야 했던 과거의 트라우마가 얽히고 설킨 상처를 헤집는 듯한 일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새로 이사한 집은 울창한 나무로 둘러싸인 침실 한 칸짜리 지그마한 목조 주택이었다.
나무가 창을 가려주어 그때는 사생활이 어느 정도 보장됐지만, 벌써 단풍이 들기 시작해서 무성한 나뭇잎도 하루하루 낙엽이 되어 떨어져갈 참이었다. 엄마를 두 번째인가 세 번째 방문했을 때,다가오던 겨울의 찬기가 처음 피부로 느껴졌다. 하늘은 잿빛에 눈구름으로 무거웠고, 밥을 채 하기도 전에 밤이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앉아 있는데, 낮은 사이렌이 계속 들려오며 우리 주위를 감돌던 평화로운 침묵을 깨뜨렸다.
"저 소리 들리니, 그레이스? 엄마가 물었다, "저게 무슨 소리일까?"
"잘 모르겠어요, 구급차인가?" 그런 것 같진 않았지만. 무슨 답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 소리는 꼭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공습 사이렌 같은데," 엄마가 속삭였다.
"전에도 들은 적 있어요?"
"매일 같은 시간에." 엄마는 손을 비틀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가 들은 소리를 같이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공습 사이렌을 들었다는 엄마의 말이 환청이나, 아니면 엄마가 하는 미친 짓이나 미친 소리로 여겨지지 않아서.
10년 후 박사 논문을 쓰면서, 나는 한국전쟁 기간 엄청난 민간인 사망자 수가 나온 게 네이팜탄을 사용한 공중 폭격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미국의 화염과 분노는 학교와 아동보호시설까지 초토화시켰고 비명을 지르는 아이들의 살을 불태웠다.
그다음에 엄마를 방문하러 도착했을 때, 오빠가 현관 앞에서 깨진 유리 조각을 줍고 있었다. 엄마는 정신과 진료를 받으러 가려던 참이었는데, 현관문을 어떻게 여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 열쇠가 현관문에 끼었고, 엄마는 마늘을 다지고 불고기를 써는데 쓰던 식칼로 유라창을 깨고 집에서 탈출했다.
나는 이 일이 일어났을 때 엄마가 사이렌을 들었을지 생각해 봤다. 엄마는 귀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소리 때문에 긴급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지금 당장 집을 떠나야 한다고?
"집주인한테 대체 뭐라고 얘기하지?" 오빠가 깨진 유리를 살피며 물었다. 나는 거짓말을 오빠에게 맡길 것이었다. 진실은 너무도 복잡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엄마는 특정 단어를 반복해서 읊어댔다. 올케는 엄마의 행동을 "타이밍 맞추기"라 불렀다. 오후 1시 7분이 되면 엄마는 내 생일인 '1월 7일'을 마치 경매인이 그러듯 빠른 속도로, 1분이 넘도록 계속 반복해 읊조렸다.
일월칠일일월칠일일월칠일 일월칠일일월칠이일월칠일일월칠일일월칠일일월칠일 일월칠이일월칠일일월칠일일월칠일......
첫댓글 아 ~ 가족중에 조현병이란
정신병동에나 있을 병을 앓고 있다는 것
참으로 불행한 일이지요 ㅜ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을테고
갇혀지내다 시피 하는 상황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포기하며 살아가야 하는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오늘도 그레이스 님의 글 수고하셨습니다
오후 시간도 해피하세요
조현병의 진단을 받는 순간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생각 자체가 뇌에서 삭제되어버리니까 이 보다 더한 비극은 없요, 치료 방법도 없구요,
손주들이 방학이라 점심까지 챙겨 줘야 하니까 많이 힘드네요,ㅎ
건강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