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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축복(2024.4.2.상주교도소 설교) 시91:14-16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물고기 중 유일하게 둥지를 만드는 것이 가시고기입니다. 가시고기는 주둥이로 강바닥의 모래를 파내고 그곳에 둥지를 짓습니다. 집에 수초까지 덮어 완벽하게 산란을 위한 보금자리를 꾸밉니다. 가시고기 수컷은 이때부터 알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몸집이 큰 물고기들과 처절한 싸움도 불사합니다. 알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부지런히 알을 넣고 꺼내는 작업도 잊지 않습니다. 가시고기 수컷은 보통 15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알을 보호합니다. 그리고 알이 부화할 무렵 둥지 옆에서 장렬하게 죽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치어들은 무심하게 제 아비의 살을 뜯어 먹으며 성장합니다. 가시고기는 치어를 위해 생명을 바치고 최후에는 몸까지 내놓습니다. 그 부성애로 인해 가시고기의 부화율은 90%를 웃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의 신으로 이 땅 위에 오신 예수님은 육신을 입으시고 비참하게 말구유에 태어나시고 저와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서 살과 피를 다 주셨습니다. 요3:15절‘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고, 요3:16절‘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선포하셨고, 요1:12절‘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은 영혼입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료받는 우리의 영혼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배입니다. 이것은 돈하고, 그리고 사회적인 지위, 육체적인 건강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입니다. 우리의 가장 귀한 영혼은 어디에 맡기는 것이 안전할까요? 이 세상에는 우리의 영혼을 안전하게 맡아줄 곳이 단 한 곳 밖에 없습니다. 거기가 어디입니까?
오늘 시편91편 1절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신다고 하고 있습니다. 2절과 4절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요새가 되시고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 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져 주십니다. 8절에서는 악인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2중 3중으로 우리에 대한 안전보장을 약속하고 있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시91편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모습이 길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엄청난 재앙이 휩쓸고 가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을 안전하게 보호하신다는 장면이 생생하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죽음마저도 결코 재앙이 아닙니다. 죽음은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가장 아름다운 나라로 가는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천인이 곁에서 넘어지고 만인이 엎드러지는 상황에서도 성도는 안전하게, 평안하게 보호되는 것입니까?
산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산에 올라가다가 넘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사람은 큰 산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백두산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 없습니다. 한라산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산에 올라가다가 작은 돌에 걸려서 넘어집니다. 작은 걱정에 사로잡혀 있으면 넘어지게 마련입니다. 공상을 하게되면 마음이 무너지게 마련이고 마음이 무너지면 어딘가에 걸려서 넘어지고 마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시편 91편 전체는 삶의 역경이나 절망적인 위기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어미닭이 병아리를 품에 안는 모습으로 그려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성도된 자는 피난처이신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시입니다. 본문은 그 중에 일부이지만 모든 인생의 복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알려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영혼의 구원이나 육신의 구출이 모두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모든 복을 직접 관장하십니다. 특별히 성도의 복을 직접 챙기십니다.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인생의 가장 큰 복이거니와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세상의 복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마땅히 성도는 영육간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라도 세상으로부터 육신적인 구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영혼이 구원받았으니 육신이야 그냥 살아도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 사는 한 육신의 구원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자녀가 이 땅에서 거지처럼 얻어먹고 산다거나, 만날 얻어터지고 빌빌대며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힘들고 버거운 세상에서 건지심을 받아야 합니다. 침체되고 곤고한 세상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건강이 좋지 않으신 분은 건강의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물질적인 고통으로 하루하루 마음 졸이며 사시는 분은 경제적인 구원도 받아야 합니다. 인간관계에 원만함이 부족하여 힘들어 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당연히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하는 복을 받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 모든 복이 우리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이므로 받고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자기인생을 포기하고 비관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살아가는 인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일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우리를 받아주시고, 우리를 인정해 주십니다. 마음을 열고 예배하고 찬양하며 나오는 그들의 모습은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잡은 손을 결코 놓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런 확신이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순간에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고통뒤에 큰 상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겪는 시련은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는 기회 였으면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알고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이 누누구일까요. 내가 살아오면서 고생한 것 아주 세세하게 아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나한테 가장 잘해 줄 사람은 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잘해주지 않는다고 자식이 잘해주지 않는다고 아내가 잘해주지 않는다고 계속 원망만 하는 이런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이후부터 남편이 잘해줄때 까지 자식이 잘해줄 때 까지, 아내가 잘해줄 때 까지 기다리지 말고 누가 자신한테 잘해주면 됩니까? 남이 잘해줄 때 까지 기다리지 말고 자기가 자신에게 잘해줘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나한테 잘해주라는 것입니다. 나이들어가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남편을 판검사 만든다고, 남편 의사만든다고, 남편 출세시킨다고, 남편 뒷바라지를 다 했는데 자식 공부시킨다고 내 인생을 다 걸었는데 남편이 그런 공로를 모르고 자기가 출세하고 돈벌고 그러니까 정신 못 차리고 바람피우고 자식은 여우같은 마누라데리고 왔는데 자식은 엄마 고생한 것도 모르고 며느리한테 미쳐 가지고 그냥 엄마 쳐다도 안보면 이런분들이 이런 애기를 합니다.
나 인생 헛살았다고 합니다. 내 모든 걸 다 걸었는데 남편도 나를 몰라주고 자식도 나를 몰라주고 나 인생 헛살았다고 합니다. 오늘 이후에는 모두 걸지 마세요. 오늘부터 반만 거세요. 남편과 자식 형제들을 위해서 반만 거세요. 반은 나를 위해서 남겨두세요. 왜냐 내가 껍데기로 사는 한 아무리 남편이 출세하고 아내가 행복하고 자식이 잘되어도 다 소용없습니다.
저도 이렇게 인생을 뒤돌아보면 나 정말로 애를 많이 썼습니다. 24평 무허가 건물에서 1사람 데리고 시작해서 200평 땅을 사서 교회를 건축하고 했는데 누가 알아줍니가 아무도 안알아 줍니다. 그때 110만원 주고 샀는데 평당 300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성도들이 알아줍니까 안 알아줍니다. 안안알준다고 원망하면 누가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내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거울을 보고 내 자신에게 늘 이야기 합니다. 잘난놈, 멋진놈, 잘생긴놈, 오늘도 잘 될거야, 등등 그러면 아내가 옆에서 말합니다. 그러니 내가 너를 선택했지 합니다.
내가 나를 인정해주시면 속이 얼마나 평안해집니까? 나한테 잘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 나밖에 없습니다. 시집을 와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낳고 키우는 가사노동비를 계산하면 한달에 얼마치 일을 하냐면 350만원어치 일을 하는 거라고 합니다. 시집와서 30년동안 일을 했으면 남편이나 자식들한테 얼마를 청구할 수 있느냐면 10억5천만원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혼 30년 한 사람들은 적어도 10억원어치 일한 사람들입니다. 1억을 은행에 맡기면 10만4천원을 이자로 줍니다. 만약에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놀지 않았다면 인생을 헛사는 것입니다. 1억 모은다고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놀지도 않고 앞으로도 못쓰는 돈입니다. 인생에 언제 넘어지는 줄 알아야 합니다. 인생에 욕심 때문에 넘어지는 것입니다. 욕심이 내 인생을 망가트리는 것입니다. 나중에 쓰려고 지금 한푼도 안쓰는 사람이 있는데 나중에 쓰려고 잘 쓰려나 모르겠습니다.
자기에게 잘해주려면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냐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냐를 자기에게 질문해 보세요. 내가 누군인지 잘 모르고 살고 있다면 답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어요. 부처님은 뭐라고 했어요.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부처이고,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중생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사는 사람은 그냥 중생으로 사는 것입니다. 껍데기로 사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냐? 기독교대한 감리교 목사다. 하늘나라 기쁨을 전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예수님의 그 깊은 사랑을 느끼도록 해 주는 사람이다. 항상 저도 저에게 물어봐요. 내가 누구냐 나는 목사이니까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항상 물어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가운데 교회 건축을 하는데 마음이 엄청 설레였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내가 누구냐를 자꾸 물아봐야 합니다. 내가 누구냐 질문이 마치면 이제부터 나는 어떻게 살 것이냐 답도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죽을 때 어떻게 죽을 것이냐도 중요합니다.
죽는 것도 시나리오가 필요합니다. 한국사람들은 죽는 것 싫어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안죽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마을에 공동묘지 들어온다고 하면 그냥 있나요 아뇨 결사반대합니다. 깨물어 피로 글을 써서 반대합니다. 왜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부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어두움이라고 생각하고 절망이라고 생각하고 영원한 어두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필리핀에 가면 공동묘지가 마을에 있습니다. 집져놓고 살아요. 관리자도 있어요. 그 관리자가 거기서 밥해먹으면서 관리합니다. 한국사람들은 죽는 날은 다른데, 보고 싶은 날은 다 똑같습니다. 언제 한식날 4월5일 그냥 죽은 사람 보러 다닌다고 난리야 그냥 차가 막히고 해도 죽은 사람 보러 갑니다.
여러분 죽는 거 무서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죽기전까지는 절대 안죽습니다. 죽을때되면 그냥 행복하게 가면 됩니다.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래도 죽는게 싫어 왜 죽는게 싫으냐 하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사랑하는 남편 못보고 아내못보고 자식을 못보니까 부모 못보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뒤집어 보면 살아 있을때에는 소, 닭 쳐다보듯이 쳐다봐놓고는 꼭 죽고나면 영정사진 앞에서 통곡을 하고 웁니다. 왜 벌써 죽느냐고 조금만 더 살았으면 내가 잘해주었을텐데 우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권사 있는데 죽었어요. 통곡을 합니다. 왜 벌써 죽어서 조금만 기다려주면 효도하려고 했는데 내 마음도 모르고 벌써 가시냐고 울어요. 나는 어떻게 하라고 이렇게 빨리 돌아가시냐고 울며불며 통곡을 합니다. 저는 그렇게 우는 자식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너는 엄마가 10년후에 죽어도 똑같이 말할 자식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내가 돈 벌어서 효도할텐데라고 말할 자식입니다. 지금 나중에 효도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자식을 믿지 말아야 합니다.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기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효도하지 않는 자식은 나중에도 효도하지 않습니다. 잘해주려면 지금 잘해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잘해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은인이 있다면 정말 고맙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잘해주세요. 내가 마음을 표현할 때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살아서는 열심히 사랑하고 죽어서는 천국에 갈 것인데 뭐가 죽는게 무서워요. 안죽을려고 용을 쓰지마세요. 사는날 동안 즐겁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서 성경을 읽으면 옆에서 뭐라고 합니까? 와 성경읽네 달라졌네 하니까? 안 그런척 하느냐고 고생 많이 하고 있을 것입니다. 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면, 어이 달라졌네 하면 안그런척 하려고 하니 많이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변화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모든 인생의 생사화복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인생의 복이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인생에 이 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모든 자들에게 친히 말씀하십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복을 주시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14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로 시작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복덩어리입니다. 그럼 본문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복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십시다.
본문에는 크게 여섯 가지의 복이 나옵니다. ‘건지리라, 높이리라, 응답하리라, 영화롭게 하리라, 장수케 하리라, 구원을 보이리라’입니다. 한마디로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복은 이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이런 복이 어디서 나옵니까? 아니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까? 사람의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아무도 이런 복을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런 복을 준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우리 인간에게 이런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아무나 받을 수 있는 복이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면 이런 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까다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안하지만 특별한 자격이 없습니다. 아주 단순한 조건만 충족시키면 됩니다. 이런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자, 하나님을 믿는 자,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입니다. 물론 이 세 가지는 한 가지로 통일 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는 하나님을 알고 믿고 간구하는 자입니다.
아무리 성경에 능하고 교회생활을 열심히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입지 않으면 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았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입지 않으면 받을 수 없습니다. 마땅히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믿으며, 그분께 간구하는 자라야 이런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절대 받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큰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면 어떤 복을 받게 됩니까?
1.구원의 복을 받게 됩니다.
인생에 가장 큰 복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구원의 복입니다. 영혼 구원이 으뜸의 복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세상에서도 우리는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세상은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한시도 마음 놓고 살수 없는 곳입니다.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벌어지는 곳입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합니다. 그런 위험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시91:14절‘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고 하셨고, 15절‘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16절‘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을 사랑하면 구원의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위태한 상황에서 건져냄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모든 위태한 상황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고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여 주십니다. 이 같은 구원의 은총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누릴 수 있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존귀의 복을 얻게 됩니다.
우리 인생의 복중에 빼놓을 수 없는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는 욕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정받는 욕구는 생각 이상으로 강렬합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인정받지 못하면 고독해집니다. 고독으로 끝나지 않고 불행해집니다. 가정에서 가장이 인정받지 못하면 가정이 불행해지며, 교회에서 신행이 인정받지 못하면 믿음생활이 불행해집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속한 공동체나 단체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소속감도 없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피곤해집니다.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면 영적 공황상태가 옵니다.
영적 공황상태가 오면 영적인 기쁨과 만족감이 사라집니다. 예배의 기쁨은 물론이거니와 기도의 기쁨도 사라지고, 말씀의 기쁨이나 헌신의 즐거움도 사라져 버립니다. 나중에는 극도의 침체상태로 말미암아 영적 무력증에 빠지고 맙니다. 사단이 방해하여 귀신들림 현상도 나타납니다. 심지어는 자기 목숨을 포기합니다. 반드시 치유 받아야 합니다. 때문에 내가 있는 곳에서 인정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14절‘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고 했고, 15절‘영화롭게 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을 받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존귀는 사람이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주셔야 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높이시면 낮출 자가 없고, 우리 하나님이 낮추시면 높일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친히 높여 주시기 때문에 아무도 이 존귀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열심히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누가 우리를 높여주어야 할까요? 내 스스로 높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높여주어야 합니다. 물론 사람이 높여주는 것도 삼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높여주셔야 합니다. 삼상2:7절‘여호와께서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시기도 하시고 높이시기도 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높여주는 것도 위험합니다. 반드시 떨어질 때가 있거든요. 세상은 자기들의 유익을 위해서 누군가를 높여주는 척 합니다. 돈이나 명예나 권세를 얻기 위해서 높여주는 척 합니다. 때문에 세상이 나를 높여주면 메스껍고 구토가 납니다. 갑자기 떨어질 때가 오기 때문입니다.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높여주셔야 안전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게 높여주십니다. 명예와 위신과 권위를 세워주시고 결코 이용하지 아니하십니다. 다만 높여주시는 데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자를 높여주십니다. ‘안즉’이라는 말속에 ‘안다’라는 의미는 추상적으로 아는 것이나, 간접적인 경험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경험과 체험을 통해 똑똑히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가 하나님을 어느 정도로 아는 것일까요? 그분의 성품을 어느 정도 아실까요?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많이 아는 것은 아닙니다. 직분이 있다고 하나님을 아는 것도 아닙니다. 혹은 성경공부를 많이 했다고 아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레마가 되어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나, 선포되는 말씀일지라도 그 말씀이 내안에서 적용되고 나를 변화시키는 말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아는 자가 아닙니다. 사실 교회를 오래 다녀도 하나님을 모르는 자가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고,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며, 하나님의 목적을 모릅니다. 하나님의 축복도 모르고, 연단도 모르며, 심판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때와 시기도 모릅니다. 모른 것 밖에 없습니다.
3.응답을 받게 됩니다.
15절‘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고 하셨고, 16절‘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우리 성도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할 때 쉬지 말고 계속 부르짖어야 합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가정의 일이나 사업이 안 풀릴 때 하나님의 전에 나와 기도해 보세요. 세상에서 해결 받으려고 하지 말고 교회에 나와 부르짖으세요. 그러면 막힌 것과 답답함이 뻥 뚫리고 해결되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믿으시고 부르짖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복은 구원과 장수의 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간구하는 자에게 건지심이라는 구원의 복과 장수하는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고 오직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간구하는 자의 소원을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그분께 간구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없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집니다. 그러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내안에서 당신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십니다. 그 일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에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이 되어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입니다. 하나님과 친교하는 복입니다. 하나님과 친교하는 복은 너무나 소중한 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교 할 수 있는 방법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후 내가 주님의 성전이 되어 그분이 주시는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예수님은 친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 주님의 성전이 된 나는 날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교제하며 살아야 합니다. 온전히 주님의 마음되어 사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에 주신 최고의 복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안에 주님이 나를 성전 삼고 계심을 믿습니까? 그러면 주님의 마음으로만 사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것이 여러분이 최고의 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복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구원의 복을 받은 자요, 인정의 복을 받은 자이며, 교제의 복을 받은 자입니다.
모든 삶에서 주님의 도우심을 받고 산다는 말입니다. 오직 우리의 도움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시121:1-2절‘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고백합니다. 내 인생의 도움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습니다. 때문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응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환난에서 건지심은 물론이거니와 최고의 수준으로 올려주실 것이며, 장수의 복까지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사랑하고 주님의 충성된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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