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여행하고 예술계 전반에서 활동하며 자유로운 삶을 추구해온 유태희 작가가 세 번째 시집 '카메라 옵스큐라'를 출간했다.
인간의 삶,
그것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 ‘자유’라고 단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유’를 좇아 세계를 떠돌고
시, 희곡,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예술경영까지
예술의 거의 전 장르에 걸쳐 활동해온
유태희 행복도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대표입니다.
유목민 디엔에이(DNA)를 가진 그가
최근 세 번째 시집 ‘카메라 옵스큐라’를 세상에 내놨는데요,
고향 세종시에 정착해 노모를 모시고 사는 그를 만나
삶과 예술, 시를 주제로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카메라 옵스큐라' 유태희 지음, 심지 펴냄, 2021.11.22
먼저 본인 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현재 세종시 고향 집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동안 소설과 산문을 주로 쓰다가 희곡에 손대어 몇 편의 2인극을 썼고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각색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제가 대표로 있는 예술 전문법인 ‘행복도시오케스트라’가 침체의 늪에 빠져 제대로 된 연주회 한 번 못한 것이 안타까워 새로운 활력을 모색하고 있는 예술경영인이기도 합니다.”
‘시인 유태희’라는 이름이 다소 낯섭니다. 이번이 첫 시집인가요? 이번 시집이 선생님께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이번이 세 번째 시집입니다. 의미에 대해선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의 생산행위는 상업적인 행위나 출세를 넘어선 어떤 것이라고요. 이를테면 예술가의 배설행위라고 하면 너무 직설적일까요? 아무튼, 예술 행위자는 일정한 성격과 사상을 갖기 마련 아니겠어요? 예술 행위의 성질도 성격과 사상에 의해 규정되고, 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한다고 해야겠지요.”
달라이라마를 취재하는 젊은 시절의 유태희 작가(가운데)
이번 시집에서 자신의 삶이 가장 짙게 반영된 작품이 있다면요?
“그것도 어려운 질문이네요. 제 경우입니다만, 시는 시상(詩想)이 가지는 특정 상황을 시작부터 끝까지 묘사하는 영상과 같은 시퀀스(Sequence)와 프레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어떤 장면을 떠올리고 그 상황에 맞는 단어를 선택하는 거죠. 그 단어를 시어로 만드는 것인데요, 남미를 여행하면서 젊은 시절 좋아했던 쿠바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가 사망한 볼리비아에 가고 싶었습니다. 매일 밤 체 게바라가 시상으로, 영상으로 떠올랐죠. 그 시가 바로 ‘모터사이클 옆 작은 텐트에서’라는 작품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저를 닮아 오토바이를 취미로 타는 아들 재천과 함께 왔었으면 하는 상상의 변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낯선 볼리비아의 어느 산간 마을
모터사이클은 39년형 노턴norton 500,
포테로사의 바로 옆 작은 텐트
새벽의 붉은 태양을 기다리며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는
이방인 하나가 옥수수빵을 찢는다.
하늘을 맴돌던 늙은 콘돌 한 마리
비비 꼬인 뿔을 들이밀던 염소가
내 심장소리 같은 엔진 소리를,
먼 곳에서 들리는 종소리를
빨간 불의 브레이크 등을 바라본다.
아직 차가운 엔진의 감촉,
썩은 치즈 한 조각 베어 물고
이방인은 또 다시 외로움의 코트 하나를 걸치자
재천이가 웃었다.
그가 아르헨티나를 떠날 때부터
낡은 오토바이에 친구 하나.
떨어질지 모르는 두려움을 떨치고
마른 입을 연다,
하지만 친구여 신념을 갖게.
단지 시간이 문제이거든.
그러니 친구, 먼저 신념을 가지게. 오케이!
젊은 날의 내 영웅, 아스따 씨엠쁘레Hasta siempre
체게바라여, 영원하라.
- '모터사이클 옆 작은 텐트에서' 전문
캐나다를 여행 중인 젊은 시절의 유태희 작가
체육 전공자이신데요, 어떤 분야죠? 치료와 연관된 일이라고 들었는데요.
“솔직히 말해서 체육이 지금까지 저를 생존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약 10년을 넘게 세계여행을 했는데요, 아프리카나 남미의 오지들을 구식 윌리스 지프나 할리 데이비드슨 39년형 노턴 500을 타고 다녔죠. 체육을 했기 때문에 더위와 쏟아지는 비, 진흙 구덩이와 지긋한 모기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국내 최초로 <스포츠 마사지>와 <카이로프락틱>이란 책을 출간했는데요, 우리나라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의사와 생리학자, 스포츠과학자가 필요한 서울대팀에 제기 저자의 자격으로 합류하게 됐습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서울대에서 저자 강의도 하게 됐던 거고요. 점차 인도의 아유르베다와 자연치료에 관심이 갔고, 간디 자연치료대학에서 카이로프락틱을 강의하면서 자연치료도 배우게 됐습니다. 그 후로 간디 자연치료병원에서 의사로 일했고 멕시코의 티후아나에 자연치료병원에서도 공부했습니다.”
젊어서 유목민처럼 세계를 많이 다니셨는데요, 이유가 있었나요? 사진작가로 활동한 이력도 있고요.
“질문 모두가 저를 곤란의 골짜기로 몰고 가네요. 일단 저를 세계여행에 내몬 이유는 ‘자유’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있었기에 책임을 유기한 책임도 뒤따랐죠. 아이들에게 지금도 그 부분이 제일 미안합니다. 그래도 저에게 여행의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여행’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여행을 통해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시야를 넓힌다던가, 그런 것 또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스스로 여행의 그럴듯한 이유나 목적을 쥐어짜 봐도 떠오른 것은 자유, 바로 인간의 존재 이유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인도 간디 자연치료대학에서 강사로 있을 때 동료, 학생들과 기념촬영하는 모습.
연극계에도 한동안 몸담았었죠? 대학로에서 꽤 오래 활동하셨는데요, 그때 얘기 좀 해주세요.
“1980년대에 서울 여의도에 살았습니다. 당시에 제가 체육관을 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연극배우 박웅 선생을 만났습니다. 당시 박 선생이 대학로발전위원회 회장직을 맡고 있었어요. 그때 선생을 도와 거리축제와 연극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연극도 하게 됐던 겁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희곡도, 시나리오도 쓰게 됐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세종시에 정착한 게 언제죠?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가 있었나요?
“제가 인도에서 공부한 관계로 명상을 접하게 됐는데요, 덕분에 뉴욕의 명상센터에서 리더로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제주도 명상센터의 초청을 받고 이주했습니다. 그런데 세종에 있는 고향 집에서 어머니가 쓰러지셨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고향에 왔더니 담낭염 수술을 받으신 걸 비롯해 해마다 직장암이며 간농양 등이 발병했죠. 치매까지 찾아와 결국 고향 땅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아마도 이게 부모님에 대한 제 업보가 아닌가 싶어요. 젊은 날, 아들 때문에 고생하신 대가인 게지요. 하지만 지금은 참 고맙다, 내가 이렇게라도 효도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모와 함께한 유태희 작가. 고향 집에 정착한 이유는 노모를 보살피기 위해서다.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서 정기연주회는 물론 기획음악회도 열곤 했는데요, 갑자기 교향악단을 꾸리고 음악계에 입문한 계기가 있었어요?
“고향에 내려와서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다니며 하루하루를 보내기가 심심하고 지루했죠. 그러다가 예전에 잠시 일했던 언론사에서 세종시본부장으로 발령을 내주었습니다. 하루는 취재를 끝내고 돌아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여기가 행정중심복합도시, 이른바 ‘행복도시’라고 하는데 음악이 없다면 과연 행복할까? 그래서 사재로 전문연주단체인 행복도시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가친의 영향이 컸다고 봅니다. 아버지께서는 시간만 나시면 노래를 부르라 하시고 성악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카메라도 중학교 때 사주셨죠.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어디서든 노래 부를 자리만 되면 한가락씩 뽑아댑니다.
이보다 더 직접적인 이유는 젊은 시절에 음악다방에서 디스크자키를 했던 경험이 작용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에는 클래식 음악감상실에도 엘피판이 많지 않았습니다. 미군 부대나 일본에서 주로 흘러들어 온 것이었죠. 약 백 여장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기 있는 곡들은 매일 틀게 되고 결국은 그것을 외우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랬던 지식이나 경험들이 고향에서 마지막 봉사로서 오케스트라를 해보자 이렇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세종호수공원에서 원로 연극배우 박웅과 함께한 유태희 작가. 유 작가는 박웅 선생과 대학로발전위원회를 창립해 함께 활동했다.
다시 이번 시집에 관해 얘기해 볼까요? 이번 시집에서 사람들과 가장 공감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요? 그리고 그 이유는요?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쓰레기 생산자’라고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우리 아이들에게 건강한 지구를 물려주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SNS에 이런 화두가 등장했습니다. ‘우리도 늙어서 죽고 싶어요!’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입니까? 지금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기후변화 현상은 결국 우리가 망쳐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환경비상계엄선포문’이라는 작품을 쓰게 된 겁니다.”
작금의 코로나 사태는 우리의 탐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환경오염으로 머잖아 태양은 어두워지고 바다가 크게 변해 땅을 덮을 것이다. 하늘의 별도 빛을 잃고 스러지고 지상의 모든 동식물도 생명을 다할 것이다. 우주에 또 다른 지구가 없다. 더는 환경파괴를 지켜볼 수 없어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환경비상계엄령을 선포한다. 이에 홍익인간과 이화세계의 구현을 위한 계엄 행동강령 포고 제1호를 발표한다.
이제 우리 모두는 이 지구의 일원으로서 다음의 포고문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앞으로는 환경계엄군을 시도군구동리市道郡區洞里에 주둔시켜 다음 포고문을 위반하는 자의 경우 강제 연행해 계엄법에 의거, 강력하게 처벌할 것이다. 또한 우리 모두는 자연의 섭리에 맞춰 수면하고 섭생하는 등 면역력을 키워 생태백신이 몸 안에서 자라도록 해 앞으로 있을 전염병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환경비상계엄 행동강령 제1호
하나, 모든 육식을 제한한다. 단 의사의 처방에 의해 필요한 경우는 제외한다.
둘, 모든 플라스틱제품의 사용을 금한다. 단 계엄위원회의 승인에 한해 예외규정을 둔다.
셋, 비누를 제외한 모든 세제(주방세제, 샴푸, 린스 등)의 사용을 금한다.
넷, 모든 화력발전소의 전력생산을 금한다.
다섯, 모든 의류와 생활용품은 사용 기간을 가지며 재활용을 기본으로 한다.
여섯, 자동차, 자전거를 비롯한 모든 이동수단은 사용 기간을 가지며 친환경 자동차의 활용을 기본으로 한다.
일곱, 국민은 쓰레기 생산을 줄이기 위해 식자재 종량제와 분리수거를 위한 지침을 준수하며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운동을 전개한다.
여덟, 고층빌딩의 건축을 제한하며 환경을 해치는 모든 산업행위를 줄여 종국에는 자연을 보호하는데 이익이 되게 하고 동물사육을 대폭 제한해 지구 자연환경을 100년 전 수준으로 만든다.
아홉, 종교지도자들과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앞장서 내 집 앞 내가 쓸기, 자연보호운동, 기초질서 지키기 운동, 허례허식추방 운동 등을 전개해 나가도록 한다.
열, 모든 가족은 가능한 한 가족끼리 정한 시간에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시낭송의 시간을 갖는다.
이상 끝
환경비상계엄사령부 사령관
시인 유태희
- '환경비상계엄선포문' 전문
행복도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2018년 기획연주회 '윤동주음악회'를 마치고. 왼쪽이 상임지휘자 백정현이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요?
“이제 행복도시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더 많은 발전을 이루려면 젊은 피로 수혈해야 합니다. 그래서 대표직에서 물러나기 위해 후보를 물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한국인의 역사를 써보고 싶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역사를 지니고 있는가에서 출발해 오늘의 우리까지를 써보려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료수집과 취재, 집필까지 한 10년은 우리 역사 이야기에만 집중하려고 합니다. 많이 응원해주십시오.”
유태희는
시인, 소설가, 극작가, 사진작가다.
1951년 세종에서 태어났다. 2002년 <문학과 문화>로 등단해 시집으로 <스테이크 스테이크 스테이크>, 명상시집 <붓다의 레시피>를 냈으며 인터넷 장편소설 <이하응: 리멤버 1863>이 있다. 희곡으로 <사랑하다 죽을래>, <두 사람의 눈물>. 셰익스피어 <리어왕>을 각색했다. 음악극 <윤동주음악회> 시나리오와 예술감독을 맡았다.
사진 전시로는 서울 인사동 관훈 갤러리 ‘꼴의 값’, NEWYORK GREENWICH VILLAGE MEDITATION CENTER ‘인상 사진 초대전’, 안양 블루몬테 공공전시장 사진 초대전 ‘꽃, 꽃을 노래하다’, 세종시 강변아트페어 사진전 ‘그대에게 말을 걸다(TRY SOMEONE)’ 등이 있다.
서울 대학로문화발전위원회 기획단장, 서울 대학로 페스티벌 음악 예술감독, 제1회 제주 설문대할망축제 기획 예술감독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한국문화경영연구원 기획 이사, 예술전문법인 세종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예술감독 및 대표, 예술인협동조합 ‘이도의 날개’ 창작공동체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