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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자 인적 사항>
1) 논문제목: 소규모 초등학교 소외아동의 학교 일상성 연구
2) 저자명: 이정선(Lee, Jeong Seon)(제 1저자)
최영순(Choi, Young Soon)(공동저자)
3) 소속기관명: 광주교육대학교(Gwangju National University of Education)
태봉초등학교(Taebong Elementary School)
4) 직위: 이정선(교수), 최영순(교사)
5) 주요관심분야: 초등학교문화
6)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풍향동 1-1 광주교육대학교 교육학과
7) 전화번호: 062-232-1389(H); 062-520-4302(O); 010-4626-1389(Cp)
8)전자메일l: jslee@gnue.ac.kr
소규모 초등학교 소외아동의 학교 일상성 연구
---------------------<국문요약>-----------------------
최근 일상성 및 일상문화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일상이란 특정 사회의 구성원들이 매일매일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삶의 세계를 말한다. 본 연구는 상호작용론적 입장에서 소규모 초등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소외아동의 일상성을 분석하는데 있다. 이를 위하여 2004-6년까지 광주광역시 변두리 소재 1개의 초등학교에서 참여관찰과 면담을 통하여 자료를 수집하였고 기술과 분석 그리고 해석의 과정을 통하여 자료를 분석하였다. 연구결과 자연의 아름다움과 정서적 풍요로움이라는 ‘풍요문화’와 꿈과 모방 대상의 결핍, 교육관계의 빈곤, 성비 불균형 및 올바른 성 역할 경험의 부족, 학교시설로부터 소외, 교육과정으로부터 소외, 문화시설 및 지역사회 환경으로부터 소외 등 ‘빈곤문화’가 이중적으로 표출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연구결과에 기초하여 결핍을 다름으로, 무관심을 자기주도성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노력들이 제언되었다.
주제어: 일상성, 소외아동, 빈곤문화, 후면영역, 기성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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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최근 들어 일상적 삶의 미세한 결을 파고드는 생활세계와 일상성을 중심으로 하는 일상문화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일상문화연구회. 1988). 가령, 일상적 놀이의 문화적 의미에 대한 분석, 보통사람들이 일상생활을 살아가는데 사용되는 인내와 침묵의 전략에 대한 분석, 사회적 구별과 문화적 소비양식에 대한 분석, 그리고 사회적 정감과 정서에 대한 분석 등이 그러한 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상적인 현실과 구체적인 삶 자체를 문화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반복적이고 관성적인 일상의 현상들을 성찰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여 그 심층적 의미와 기능을 조감하려는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일상문화연구회, 1998). 이렇게 일상문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된 것은 일상문화가 마음의 습속뿐만 아니라 사회의 성격을 밝혀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일상문화의 단위 요소인 일상이란 매일 되풀이되는 삶을 말한다. 그리고 일상문화란 특정 사회의 구성원들이 매일매일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삶의 세계를 말한다(국제한국학회, 1998: 79). 이러한 일상성은 일상생활 어디에서든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유사한 사회나 집단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주변의 세계를 유사한 방식으로 경험한다. 그 결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경험 또한 유사하다. 이는 마치 문법이 사람들의 언어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같이 사람들의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일상문화는 무의식적인 것이므로 사람들은 이를 명확히 인식하거나 설명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내리거나 행동을 결정할 때 중요하게 작용한다.
초등학교 문화는 다른 기관에서 볼 수 있는 문화 현상과는 다른 초등학교 특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대체로 학교의 일상문화는 이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삶과 일상적 활동에 의해서 규정된다. 이러한 견지에서 초등학교의 일상성은 초등학교 구성원들이 매일 매일 살아가면서 공동으로 경험하는 삶의 세계이다. 그들의 구체적인 삶과 일상적인 일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즉, 학교 구성원들이 학교생활을 통하여 느끼고 소유하고 있는 일상적이고 실질적인 학교 경험이 학교의 일상성이다(이정선, 2002).
초등학교의 일상성이 학교사회 구성원들에 의해서 형성되고 집합적 관행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초등학교 사회의 실체를 보다 명확히 이해하고 구성원들의 관습적 삶의 방식이 갖는 복합적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이러한 일성성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이다. 즉 초등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반복적이고 관성적인 일상의 현상들을 성찰적으로 분석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일상성에 대한 연구는 기본적으로 거시적 접근보다는 미시적 접근을 취한다. 사회구조나 체제의 분석보다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행위 주체자들의 특정 상황에 대한 나름대로의 상황정의, 의미부여, 해석 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접근방법도 미시적 접근방법의 하나인 상징적 상호작용론이다. 상징적 상호작용론이 강조하는 맥락(context), 관점(perspective), 문화(culture), 전략(strategies), 협상(negotiation), 상황정의(definition of situation), 그리고 상징(symbol) 등이 초등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소외 아동의 삶과 일상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델라몽(Delamont, 1976, Woods 1983 손직수 역, 1998, pp 48-49 재인용)은 환경이 주는 분위기에 따라 그 안에 적응하는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느낌은 인식을 만들고 인식은 다시 행동을 만든다. 그 안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동자체가 그들 고유한 삶의 문화를 형성한다. 또한 우즈(Woods, 1983 손직수 역, 1998)도 학생의 성향과 환경간 관계 연구를 통하여 학교교육을 마칠 때까지 학급환경을 동일하게 조성하면, 그러한 학급 속에서 ‘학습경험’을 쌓은 학생들은 동일한 성향을 나타내게 된다고 하였다. 초등학생들도 학교를 포함한 지역사회, 마을, 건물, 사람 등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상호작용 속에서 그들만의 생활경험을 통하여 그들만의 적응양식을 만들고 그러한 적응으로 인한 독특한 일상성을 형성하게 된다.
본 연구의 대상학교는 도시 변두리에 위치한 소규모 초등학교이다. 연구자들이 이 학교에 주목하고자 한 것은 공동연구자가 그 학교에 부임하게 되면서 소외아동이 많은 특수한 특성을 가진 학교라는 점, 그래서 도시의 대규모 학교 아동과 다른 그들만의 독특한 일성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부터이다. 지금껏 소규모 학교에 대한 연구들은 주로 농촌 과소규모 학교교육의 문제점 및 통폐합에 관한 연구(우형식, 1999; 이상기1999; 조준래, 1994; 최준렬, 1994 등), 농촌 소규모학교 사례연구(나영성, 2003)와 같이 정책연구가 주가 되었고, 문화에 대한 연구는 농촌 소규모 학교 교사와 학생에 관한 연구(윤병용, 2000; 이연옥, 1996)를 제외하고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즉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교육받고 있는 학생들에 관한 연구임에도 선행연구가 없다는 점은 본 연구를 수행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소규모 초등학교에서 생활하고 있는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특히 결손아동을 포함한 소외 아동이 많은 초등학교만의 독특한 일상을 분석할 필요가 대두되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상호작용론적 입장에서 소규모 초등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소외아동의 일상성을 분석하는데 연구의 목적이 있다. 즉 그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하며, 그들만의 독특한 행동양식을 어떻게 습득하고, 일상생활의 출입을 어떻게 하는지에 연구의 중점을 두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도시 주변 농촌 소규모 초등학교 학생들은 학교상황 속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그러한 생활은 또 어떤 태도, 신념으로 그들을 행동하게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Ⅱ. 연구방법 및 절차
본 연구는 2004년에서 2006년에 걸쳐 연구를 위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였다. 본 연구는 참여관찰과 심층면담을 통하여 자료를 수집하고 해석적 과정을 통하여 자료를 분석하는 질적 연구 방법을 활용하였다. 특히 참여관찰과 면담을 병행하여 활용하였는데 이는 언어적 표현과 비언어적 표현(행동)간 불일치로 인하여 신념과 행동이 다르게 나타난 현상을 규명하고 사실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연구대상학교와 연구 참가자는 목적적 표본표출(purposeful sampling)을 하였다(Gleane, 1999). 공동연구자가 소속한 학교와 학급을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1. 연구대상 학교
연구대상학교는 광주광역시 경계지역에 위치한 농촌 소규모학교인 푸른숲초등학교이다. 학교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시내를 빠져나가 한참을 달려야 한다. 아침 출근길의 절반은 공단의 혼잡함에 정체되어 운전을 해야 하고, 나머지 절반의 출근길은 한가로운 시골길을 달려야 한다. 복잡함과 단조로움, 빠름과 느림, 좁음과 넓음, 개발과 보존, 부와 가난, 있음과 없음 등 양 극단을 경험하면서 가야 학교에 당도한다. 이러한 물리적 공간이 구성원들의 삶의 방식이나 생활습관을 다르게 할 것은 무론이다.
연구대상학교는 2006년 현재 6학급, 전교생 120명, 교사 8명의 학교이다. 그동안 82회 졸업생 7,900여명을 배출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초등학교로써 한 때는 20학급에 학생수가 700여명이 넘을 정도로 대규모 학교였다. 이농현상과 주변 공단지대 형성으로 이주민이 늘어나 지금은 소규모 학교로 전락하였다. 그래서 지금은 빈 건물 공간이 많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인근 환경이 개발되어 조금이라도 생활이 나아지면 대부분 도시 중심부를 향해 진출하게 된다. 따라서 1학년에 입학하여 6학년 졸업까지 가는 아동은 한반에 겨우 15-17명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자녀 교육에 관심이 어느 정도 있는 학부모는 자녀의 중학교 진학을 위해 6학년 초에 도시로 아이들을 전학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연구자가 담임을 했던 6학년의 경우 학기 초 3월에 27명이었던 학생이 시내 중학교 진학을 위해 절반 이상 전학을 가서 학기말 12월에는 11명만 남았다.
학부모의 직업은 대부분 농업인데 자영농이 아니라 남의 일을 해주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아 사회적 지위가 매우 낮은 편이다. 인근 공단에서 근로자로 일하는 학부모도 있고,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동사무소 공공근로자도 있다. 학부모들의 학력 또한 대부분 국졸이며, 연령대가 50-60대의 조부모들로써 아이들과 대화를 한다든가, 가정에서 학습지도나 생활지도를 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거기에 고아원에서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 전교생 120명 중 29명(24%)이나 된다.
연구대상학교 재학생 전체 120명 중 70명(59%)이 무료급식 대상자이며, 가정 분포를 살펴보면, 시설보호아동(고아원) 24%, 기초생활보호 대상자 13.3%, 장애인 가정 출신 6.6%, 한 부모 가정 출신 20.8%, 조부모 가정 자녀(조손가정) 23.3%로, 전체 학생의 64.2%가 사회 통념적으로 분류하는 결손가정 자녀 혹은 불우한 가정환경 출신 자녀들이다. 이러 연유로 본 연구에서는 이들을 소외 아동으로 칭한다.
연구대상 학교는 광주시내 변두리에 위치한 농촌 초등학교이기 때문에 급지 점수가 부과된다. 따라서 승진을 앞둔 교사들은 선호하는 학교이다. 2006년 현재 재직 중인 8명의 교사는 교장, 교감, 그리고 여교사 1명, 남교사 7명이다.
2. 연구 참가자
연구 참가자는 년도에 따라 다르다. 2004년도에는 6학년 1반 15명 학생(남자 10명, 여자 5명), 2005년도에는 1학년 1반 18명 학생(남자 12명, 여자 6명)이 정보 제공자로 참여하였다. 이는 공동연구자가 담임을 맡은 반에 따라 연구를 계속해서 수행했기 때문이다. 1학년 18명의 인적사항을 살펴보면 고아원 거주 아동 2명, 한 부모 가정 3명, 조부모 가정 3명, 그리고 인근 도시에 부모가 살고 있고 할머니 집에 맡겨져 양육되고 있는 학생이 5명이었다. 양부모와 함께 사는 학생 3명도 생활정도가 빈곤한 편이다. 조손가정 자녀는 부모가 이혼한 가정의 학생들로서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맡겨져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이다.
그 외 2006년도에는 연구대상학교를 다니다가 도시학교로 전학 간 학생들 5명과 그 학부모 3명도 정보제공자로 참여하였다. 상호 비교를 통해 소규모 농촌 초등학교의 학교생활을 보다 명료화하게 확인하는 작업의 일환이었다. 교사 참가자는 3명(여교사 1명, 남교사 2명)으로 교사들이 인식하는 학생들의 생활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하여 정보 제공자로 활용하였다.
연구에 참가한 학생들의 특징은 대체로 학력수준이 낮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교사의 판단으로는 중하에 속한다. 학생들의 학습의지, 학습동기가 거의 없으며, 학습에 흥미가 없고, 가정학습 결손으로 겨우 학교에서 수업시간 공부하는 것이 전부인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학습준비물, 교과서, 공책 등 기본적인 학습도구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 공부시간에도 교사들이 애를 먹고 있다. 교내 수업협의회(2006. 5. 30일)를 통해서 공통적으로 교사들이 하는 말이 ‘아이들의 반응이 없어 수업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수업시간 반응이 없기 때문에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 교사의 질문에 답변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앉아 수업을 방관한다는 것이다. 이를 한 교사는 ‘잠수’한다고 표현하였다.
3. 자료수집 및 분석
자료수집은 면담과 참여관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공동연구자가 동시에 연구대상 학급을 담임하는 교사였기 때문에 연구자인 동시에 관찰자로서 참여한 것이다. 참여관찰은 공동연구자가 2004년 3월 처음 푸른숲초등학교에 발령을 받은 날부터 2006년 12월까지 3년 동안 지속되었다. 주로 학교에서 그 날 그날 일어난 일을 중심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교단일기를 썼다. 공동연구자가 2004년도에는 6학년, 2005년도에는 1학년, 2006년도에는 특수반과 교무부장을 각각 담당하였기 때문에 집중 관찰 대상은 당해연도 해당반이며 교단일기도 해당 반을 중심으로 기록하였다. 그러나 전체 학교가 소규모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은 모두 포함시킬 수 있었다.
2004년 6학년을 담임할 때는 특정한 주제 없이 학생들의 일이 일어날 때마다 기술하였고, 2005년 1학년을 담임할 때는 학생들의 생활을 보다 심층적으로 일아 보고자 일 년 동안 학생들의 놀이에 대해 집중적으로 관찰 하였다. 2006년 학습도움반(특수반) 2명을 담당하고, 학교 교무부장 일을 맡으면서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학교 행사 참여, 학교의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관찰하였다.
참여관찰은 수업시간에 가장 많이 이루어졌고, 중간놀이시간(20분), 점심시간, 방과 후 학생들의 활동과 생활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학생들의 가정, 고아원, 인근 기관 등을 방문하는 계기가 있을 때마다 그곳 생활도 관찰의 대상이 되었다. 3년 동안 참여관찰 하여 기술한 내용 중에서 학생과 관련되는 내용을 영역 분류하였다 영역분석 한 주제에 대해 다시 집중관찰을 실시하였다.
면담은 공동연구자가 관찰한 내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서술적 관찰을 통하여 수집된 자료를 영역분석하여 그 결과를 중심으로 구조적 면담을 실시하였다. 2004년도에는 특정 주제 없이 학생들의 일이 일어날 때마다 ‘왜 그랬니?’형식으로 면담이 이루어졌고, 2005년도에는 학생들의 놀이에 관해 ‘무슨 놀이를, 어떻게, 왜’ 형식으로 면담하였으며, 중간놀이시간 20분을 아예 ‘야외놀이 시간’으로 명칭을 바꾸어 학생들에게 의도적으로 놀게 했는데, 교실에 들어오면 ‘오늘은 야외놀이 시간에 어떤 놀이를 하였는가’ 라는 질문을 통해 전체 집단 면담을 하였다. 그리고 어떻게, 왜, 그런 놀이를 하였는지 학급학생 모두에게 차례대로 질문을 하였다. 특별히 놀이 중 싸움을 하거나 장난을 심하게 하는 학생의 경우는 왜 그랬는지를 집중 면담하였다. 개방형 글쓰기를 통하여 놀이를 할 때 있었던 일을 쓰게 하였는데 저학년의 경우 아직 문자해득이 되지 않아 자료수집이 수월치 않았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그림으로 놀이 장면을 그리게 하여 설명하게 하였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놀이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다.
2006년도에는 학습도움반(특수반) 2명(시설아이)에게 ‘집(주말에는)에 가면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생활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가?’를 중심으로 면담을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이 말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려움과 피해의식, 그리고 눈치를 보며 어떤 말에도 답변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큰 어려움이었다. 또한 학생을 전학시킨 3명의 학부모에게는 연구대상학교에 보낼 때와 시내 학교로 전학 한 이후 아이가 달라진 점, 도시학교와 소규모 농촌학교 교육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중심으로 면담을 실시하였다.
참관을 통하여 기록한 교단일지와 면담 내용은 전사하여 문자화된 자료로 재구성하였다. 그렇게 수집된 자료는 여러 차례에 걸쳐 분석과 재분석 그리고 해석을 반복하였다. 3년 동안 기술한 교단일지(푸른숲 일기) 및 면담일지를 검토하고 선행연구와 비교 분석을 통하여 자료를 재확인했으며, 분류된 자료는 코딩을 하고, 주제별로 더 구체적인 자료를 수집하였다.
자료수집과 분석은 순환적으로 이루어졌다. 2005년도에는 아침시간부터 수업시간, 쉬는 시간, 야외놀이시간, 점심시간 등 학생의 놀이와 활동을 관찰일지와 연구노트에 메모하였으며 비디오로 촬영하였다. 관찰일지는 주로 아이들의 놀이를 그대로 기술하였으며, 연구일지는 연구자의 연구장면에 대한 느낌을 간략하게 덧붙였다. 이를 그 때 그때의 상황과 연구의 방향을 잡는데 활용하였다. 3월부터 7월까지는 서술적 관찰을 하였으며, 8월에는 이를 바탕으로 자료를 분류하였다. 놀이가 개인의 특성에 의해 강하게 나타나는 현상을 발견하여 우선 연구대상 학생들 개개인의 놀이로 범주화 하였다. 4개 범주화된 영역을 중심으로 9월에 다시 집중관찰을 실시하였다. 9월의 집중관찰은 분류된 놀이현상 4개 항목에 대한 재확인 작업이었고, 이를 3학년 담임교사와 토의하며 연구의 주관성을 배제하려고 노력하였다. 놀이현상에 대한 분석은 9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2006년에는 주로 학교일지(교무일지)를 기록하면서 학교 전반적인 행사와 그 속에서 학생들의 전체적인 생활에 대해 연구자 스스로 자기 성찰적 질문을 해보고, 그것을 학생과 학부모에게 다시 질문하는 형식으로 자료를 수집하였다. 푸른숲초등학교라는 큰 테두리에서 학생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적응하는지 계속적으로 질문하고 탐색하며 순환적(되돌아오기, 다시 항목 비교해보기 등)으로 자료수집과 분석을 반복하였다.
Ⅲ. 소외 아동의 학교 일상으로서 놀이
전술한 것처럼 일상문화의 단위 요소인 일상이란 매일 되풀이되는 삶을 말한다. 그리고 일상성이란 특정 사회의 구성원들이 매일매일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삶의 세계를 말한다. 연구대상학교 학생들은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무엇을 하며 지내는가? 이들의 일차적인 관심사는 무엇이며 왜 그런 것에 일차적 관심사를 두는가? 일반적으로 학생들이 학교에서 하는 일상적인 활동은 공부와 놀이이다. 전자는 외부에서 그들의 본분으로 그렇게 규정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전면영역으로서 하는 것이고, 후자는 자발적으로 행동을 영위하는 후면영역의 세계이다.
연구대상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공부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따라서 이들의 학교에서의 일상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상황은 놀이이다. 공부보다는 놀이가 이들의 일상을 지배한다. 그렇다면 연구대상 학생들은 무엇을 하고 놀며, 놀면서 사용하는 놀잇감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들은 왜 그렇게 노는가?
1. 일상으로서 놀이
공부에서 이미 관심이 멀어진 소규모 농촌 학생들에게 놀이는 공부보다 더 중요한 일과이다. 노는 것이 그들의 학교생활에서 대부분을 차지한다. 우선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독특한 놀이라는 일상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학교라는 공간이 사람을 모이게 하고 사람이 모이면 놀이가 가능해진다. 연구대상 학생들은 이농현상으로 이들이 사는 마을은 각기 멀리 흩어져 있어 방과 후 집에 가면 친구들과 단절된 생활을 해야 한다. 따라서 그나마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이 학교이고, 학교에서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들이 교류할 수 있는 전부이기에 학교에서 그들은 기를 쓰고 떠들고 잡으러 다니기를 하며 사람냄새를 맡으려 한다. 학교는 그나마 그들이 이야기 할 수 있고(그게 싸움이든, 억지를 부리든, 골려먹든), 웃고 울 수 있는 가장 신나는 장소이다.
연구대상 학생들은 도시학교 학생들보다 노는 시간이 많고 놀이종류도 훨씬 다양하다. 그들은 아침 학교통학 버스 속에서도 시끄럽게 떠들다가 혼나서 내리기도 하고, 아침시간 복도를 뛰어다니다가 교감선생님께 들키고, 공부시간 담임선생님께 야단맞기 일쑤이다. 점심시간 급식소에서도 장난을 치고, 청소시간, 방과 후 운동장에서, 다시 오후 통학버스 속에서도 온통 놀려고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학교는 학습의 공간이 아니라 놀이의 공간이다. 학교는 그들에게 전면영역이 아니라 후면영역에 속한다. 또한 이들에게는 일의 공간이 아니라 노는 공간이라는 상황정의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학교에서 노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노는 것을 간섭하는 사람도 없다. 그들은 강요받지 않는다. ‘공부를 잘해라, 무엇이 되라, 학원가라(아예 학원이 없다), 책을 읽어라’ 등 부모님의 강요가 거의 없다. 이는 부모의 부재로 인한 것이기도 하고, 조손가정 출신이 많기 때문이다. 전술한 것처럼 1학년 18명 중 고아원 거주 아동 2명, 한 부모 가정 3명, 조부모 가정 3명, 그리고 인근 도시에 부모가 살고 있고 할머니 집에 맡겨져 양육되고 있는 학생이 5명이다. ‘부모도 없이 저렇게 큰 것만도 감사할일이제. 한없이 짠해. 한참 어리광부릴 때 핏덩이인 채로 버리고 가버렸으니.....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어(학교방문 할아버지와 면담).’
가정이 결손 된 뒤끝의 부모의 무관심과 방치로 인하여 이들은 시간이 자유롭다. 그 시간을 주로 놀이로 채운다. ‘누가 공부하라는 사람도 없어요. 무엇을 하라고 간섭하는 사람도 없어요.’학부모의 간섭과 통제가 없는 그들에게는 노는 것이 전부이고 놀이만이 그들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도시학교 또래 아이들이 공부하는 시간을 이들은 노는 것으로 대신 채우는 것이다.
가. 놀이내용과 놀잇감의 다양성
시간도 많고 간섭하는 사람도 적으니 자연 노는 내용도 다양해진다. 어느 날은 딱지를 가지고 놀고, 어느 날은 막대기를 가지고 논다. 그런가하면 씨름장의 모래가 아이들의 놀잇감이 되고, 개구리 잡기가 그들의 놀이가 된다. 손바닥에 개구리를 올려놓고 누구의 개구리가 멀리 뛰는지 시합을 한다. 또 비가 와서 운동장에 나가서 놀지 못하면 아이들은 교실과 복도에서 뛰고 달리고 뒹굴며, 여자 아이들은 화장실 안에 들어가서 과자를 먹으며 이야기 한다. TV 모방 놀이는 그 당시의 인기 있는 오락프로그램의 놀이를 그대로 따라서 하는 것이다. ‘당연하지’와 ‘말뚝박기’ 놀이가 그것이다. ‘우가우가’ 놀이는 춤을 추고 악을 쓰며 서로 우기는 놀이인데 인디언들의 놀이를 TV에서 보고 따라하는 경우이다.
도시학교 또래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놀이는 컴퓨터 게임이다. 그런데 이곳은 도시학교의 아이들에 비해 저학년에서는 컴퓨터 게임놀이가 그렇게 성행하지 않는다. 컴퓨터가 가정에 많지 않기 때문이며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는 가정은 더 더욱 많지 않기 때문이다(2005년 1학년 학생 18명 중 컴퓨터가 있는 가정은 7명이며 거기에 인터넷이 연결된 집은 고작 5명이다).
농촌 소규모 초등학교 학생들의 놀이는 놀이도구에서 차이가 난다. 장난감이 흔치 않는 이곳 농촌 학생들은 주로 자연에서 놀잇감을 얻는다. 자연이 주는 놀이 도구는 계절마다 그들에게 다른 놀잇감을 제공한다. 봄에는 만발한 꽃들과 나물, 특히 쑥, 보리, 올챙이, 가재, 두꺼비, 메뚜기, 사마귀 등이 그들의 놀잇감이 되고, 여름이면 개구리가 이들의 놀잇감이다. 그리고 학교 뜰의 연못에서 막대기로 무엇인가 건져 올리는 시합도 자주 목격된다. 7월에서 9월까지 아이들은 잠자리를 잡으며 논다. 다음은 자연에서 놀잇감을 골라 놀이하는 장면을 모은 관찰일지이다.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학교 근처 마을을 돌고 있는데, 학교 후문 언덕에서 아이들이 쑥을 뜯고 있었다. 칼도 없이 손으로 쑥을 뜯으며 킬킬 거린다. 드온이, 금희, 영재, 성원이가 쑥을 캐서 드온이 가방에 넣는 것이다. 집에 가져가서 해 먹을 것도 아닌데 그렇게 장난을 치는 것이다(2005년 4월 15일, 연구일지).
개구리를 잡아 손에 올려놓고 누구의 개구리가 더 멀리 가는지 시합을 한다. 운동장 풀 섶에서 야외놀이 시간 개구리 잡는 것이 아이들의 요즈음 놀이이다. 현수는 2마리를 잡았고 수빈이는 개구리를 잡아 여자들을 놀래 키는 행동을 했다(2005년 5월 28일 연구일지).
사마귀 놀이를 하였는데, 수빈이가 사마귀처럼 막대기로 아이들을 쫒아 다니면 잡히지 않으려고 아이들은 도망간다. 만약에 사마귀인 수빈이에게 잡히면 그 사람은 수빈이 팀이 된다는 것이다(2005년 7월 7일 연구일지).
드온이가 메뚜기 흉내를 내며 아이들을 잡으러 다니면 아이들은 달리지 못하면서 답답하게 뛰는 드온이에게 ‘나 잡아봐라’ 골리면서 도망친다. 그러다 드온이에게 잡히면 그 사람이 메뚜기가 되어 메뚜기처럼 흉내 내기를 하며 다시 아이들을 잡으러 다닌다. 아이들은 이것을 메뚜기 흉내 내기 놀이라고 한다(2005년 7월 10일 연구일지).
이처럼 아이들은 계절에 따라 다양하게 주어지는 주변의 동식물을 놀이도구로 활용한다. 자기들 세계로 끌어들여 자기들 수준에서 살피고, 말하고, 규칙을 만들어 놀잇감으로 재구성한다. 쉽게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계절별 자연 놀잇감은 아이들의 놀이를 재구성하여 그들 나름의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다양한 놀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나. 후면영역으로서 놀이공간
심한 장난이나 농담 그리고 몸싸움이 가능한 곳이 후면영역이다. 놀이가 일어나는 곳이면 어디든 아이들에게는 후면영역이 된다. 몇 되지 않는 놀이기구가 있는 학교운동장은 물론이고 비좁은 교실복도도 실외놀이를 할 수 없을 때는 놀이공간으로 활용된다. 담임교사가 없는 동안의 교실도 이들에게는 후면영역이다. 그들만의 절제되지 않는 자유로움을 발산하는 놀이터이다. 놀이터가 아이들에게는 어떤 놀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놀이 내용과 놀이 형식을 결정하게 한다. 대체로 도시학교에서의 놀이터는 운동장(실외놀이)과 교실 및 복도(실내놀이)이다. 그러나 대상 소규모 농촌 초등학교 학생들에게는 학교 운동장뿐만 아니라 연못이나 학교 주변의 넓은 들판, 뒤뜰의 실습지(텃밭), 나무숲이나 화단, 그리고 학교를 두르고 있는 동네와 산, 골짜기, 도랑이 실외 놀이터가 된다.
운동장에서 주로 하는 실외놀이는 운동장에 설치된 빙빙이(지구), 미끄럼틀, 그네, 구름사다리, 정글짐, 철봉을 타는 것이다. 때로 나무를 타고 올라가 노는 아이도 있다. 20분 중간놀이 시간에 아이들은 예외없이 놀이기구를 탄다. 가장 많이 활용하는 놀이기구는 빙빙이이며, 미끄럼틀 타기가 그 다음이다. 그네는 타는 수가 정해져 있어(2명 또는 4명) 싸움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놀이기구이다. 서로 자기가 먼저 맞혔다(예약했다)는 것이다. 타고 있는 사람이 탈 수 있는가, 아니면 먼저 맞혀 놓은 사람이 탈 수 있는가에 대해 시비가 자주 일어나는 분쟁의 소지가 많은 놀이기구가 그네이다.
은철이가 울고 있었다. 사정을 물으니 그네를 맞혀 놓고 화장실에 갔다 온 사이 세정이가 탔다는 것이다. 비키라고 하니까 타고 있는 사람이 주인이라고 비켜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은철이가 세정이에게 모래를 뿌렸다. 그래서 세정이가 은철이를 때렸다는 것이다(2005년 5월 3일 연구일지).
날씨가 흐리고 비가 와도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하는 야외놀이를 선호한다. 비가 많이 오면 포기하지만 이슬비에는 기어이 운동장에 나가려고 한다. 아이들은 어떻게든 20분 중간놀이 시간에는 운동장에 나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운동장에 나가면 우선 달리고, 뛰고, 놀이기구를 타고, 아이들과 시비하며 소리를 지를 수 있기 때문에 날마다 나가도 동일한 것들뿐인데도 그들에겐 날마다 새로운 것이다. 그래서 연구대상 학교에서 놀이공간으로서 운동장은 자신의 인상을 관리하고 또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결정적 요구사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주는 후면영역이다. 서로 격의 없이 이름 부르기, 상스러운 말하기, 성(sex)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 은어와 속어의 사용, 수군거리거나 고함지르기, 심한 장난이나 농담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장소이다.
아이들에게 놀이 공간이 넓다는 것은 아이들의 놀이를 그만큼 더 확장시킨다는 의미이다. 뛰고 달리고 더 크게 움직이며, 더 큰소리를 지를 수 있고, 더 신나고 자유롭게 활동한다는 의미이다. 연구대상 학생들처럼 자연에서 얻는 놀잇감과 넓은 놀이터는 아이들의 놀이의 범위를 확대시키고 자기 주도적으로 활동을 하게하며,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게 한다.
연구대상 학교에서 실내놀이는 주로 교실과 복도에서 하는 놀이이다. 쉬는 시간 10분과 날씨 관계로 운동장에 나가지 못한 날 교실과 복도에서 하는 놀이이다. 운동장보다 비좁지만 아이들은 뛰고 달리고 엉키어 뒹군다. 그러나 실외놀이와 다른 점은 교사가 지켜보고 있기에 조심스럽게 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순간순간 놀이에 몰입하다보면 그러한 교사의 교실 생활 규칙을 잊어버리고 뛰기, 잡으러 다니기, 큰소리 지르기, 우기기 등의 놀이를 한다. 교사의 제재를 받을 때는 주춤하다가도 계속해서 놀이를 하다가 교사에게 들켜 벌을 서기도 한다.
그래서 실내놀이는 놀이의 움직임이 작은 도구 놀이이거나 구성놀이가 많다. 즉 딱지치기, 고무딱지 넘기기, 카드놀이, 공기놀이, 색종이 접기 등 도구를 활용한 놀이가 대부분이다. 말 타기는 이들이 비좁은 공간에서 하는 활동놀이이다. 가끔 교사의 눈을 피해 복도 계단에서 가위바위보를 하여 계단 오르내리기 놀이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들의 이러한 실내놀이도 유행을 타는데, 어느 한 주는 계속 카드놀이를 하고, 그 다음 주는 고무딱지 넘기기를 하다가 또 언제부턴가는 색종이 접기에 모두 여념이 없다. 장마가 계속되어 며칠을 운동장에 나가지 못할 때 실내놀이로 ‘여우야 여우야’와 ‘무궁화 꽃이 피었다’는 역동적인 집단 놀이가 등장한다.
놀이장소가 확보되기 때문에 연구대상 학생들은 나름대로의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다. 운동장과 교사가 부재중인 실내(복도나 교실)는 아이들에게 후면영역에 속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이 그들만의 독특한 삶의 공간을 구성한다. 특히 도시학교 또래 아동들과 달리 이들은 학교와 집 사이에 물리적 거리가 비교적 길기 때문에 그리고 방과 후 집에 가도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다는 상황이 이들을 학교에 남아서 놀게 한다. 연구대상 학교는 학교 통학버스를 운행하는데 이를 이용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오히려 학교 앞까지 오는 일반시내버스를 이용하는 학생이 더 많다. 남는 시간에 모여서 놀려고 하기 때문이다. 학교 통학버스 운행 시간은 오전 8시 20분 등교, 오후 1시 30분 저학년 하교, 오후 3시 30분 고학년 하교 등 하루 3회 운행된다. 학교 버스를 이용하는 학생들도 운행시간을 기다리면서 운동장에서 놀거나 주변의 마을길, 들판에서 놀면서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이들은 왜 노는가? 놀이가 그들 삶의 일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땅히 노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 일과 외에도 각종 학원 과외 등으로 공부가 일상이 되어 버린 도시학교 또래아이들과 달리 연구대상 학교 아이들은 학생들의 방과 후 시간이 거의 방치된다. 집에 가도 혼자 있기 일쑤이다. 학부모들(대부분 조부모)은 거의 농사일을 하기 때문에 저녁 식사 때가 되어야 돌아오고 그렇다고 마을에 친구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학교주변에 학원도 없다. 대부분 학원을 가지 않지만 학원을 가려면 적어도 30분 이상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 한다. 성당에서 5시까지 운영하는 공부방이 있는데 공부에 일차적인 관심을 두지 않는 이들에게 그곳은 의미 있는 곳이 못된다.
놀이는 어린이들의 세계를 특징짓는 그들 삶의 중요한 한 영역으로, 놀이를 통하여 어린이들은 자아를 발견하고 사회를 경험하며 현실을 재구성하여 어린이들 나름대로의 세계를 창조한다(조용환, 2005). 어린이들에게 놀이는 사회적 경험인 동시에 문화적 경험이며 또한 예술적 경험이기도 하다. 어른들이 일에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기 위해 노는 것과는 달리 어린이들에게 있어서는 놀이 그 자체가 일이고 삶이다.
연구대상 학생들 역시 학교를 놀이장소로 상황을 정의하여, 놀이 장소 확보(운동장) 및 외부인(특히 부모나 교사)의 불간섭, 그리고 자연의 놀잇감과 상호작용하여, 즉 소규모 학교라는 상황과 자연적 특성이 상호작용하여 놀이라는 그들만의 독특한 일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제 놀이는 이들에게 하나의 익숙한 습성(habits)이 되었고, 신생반응이 아니라 기성반응으로서 기능을 수행한다. 일상이 되어 버린 이러한 상황은 새롭고 낯선 상황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동안 반복되어 익숙해 있는 관계로 자동적인 반응 즉 습관처럼 처리된다. 놀이는 이들에게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처리되는 과정이 아니라 거의 무의식적으로,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행위가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놀이는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이들 삶의 대부분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2. 풍요로운 정서
다양한 상황이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 대한 주관적 상황정의가 연구대상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에서의 놀이가 일상이 되도록 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들이 자라고 있는 자연환경과 상황(주로 가정의 결손환경)으로 인하여 일차적 관심이 공부로부터 멀어진 이들에게 부수적으로 가져다주는 것이 있다면 정서적 풍요로움이다. 가정환경의 결핍과는 대조적으로 이들에게는 놀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대자연의 무한한 변화와 자유로움이 있다. 자유로움으로 인해 이들은 도시학교 또래아이들에 비해 정서가 풍부하다. 산, 들, 도랑, 연못, 구름, 하늘, 사계절의 변화, 꽃, 개구리, 잠자리, 겨울언덕배기, 황룡강의 물고기들, 갈대, 샛노란 은행잎 등은 그들에게 풍성한 어린 시절의 자유로움과 풍부한 정서를 길러 주기에 충분하다. 친구 집에 책가방을 던져놓고 도랑에서 가재와 다슬기를 잡는 날은 이들에게 하루해가 짧다. 그 누구도 통제하지 않는 자유로움과 대자연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선물이다. 다음은 연구대상 학생들의 순진무구함에 대해서 쓴 교단일지의 일부이다.
이들의 순진무구함은 도시 아이들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이 살고 있는 자연 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들은 눈 뜨면 하늘부터 보이는 집에 산다. 한발자국 움직이면 앞산이 보이고 누가 심었는지 논길, 밭길은 항상 곡식들이 자란다. 비닐하우스에는 온갖 과일과 채소가 자리고 있고, 황룡강 다리 밑으로 물고기들이 튀어 오른다.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계절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추우면 추운 날씨 그대로 손을 호호 불며, 더울 때는 또 땀을 뻘뻘 흘리며 학교에 온다. 날마다 보는 대자연의 변화를 선명하게 눈으로 보며 가슴에 담는다. 그러나 아무도 아름다운 자연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고, 또 그것을 마음속에 간직하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그들 가슴속에는 경이로운 대자연의 변화가 차곡차곡 쌓인다. 생활의 강제나 억지스러움이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길 벚꽃나무 숲길을 따라 3월을 시작하고, 학교 화단의 갖가지 꽃들을 보며 4월, 5월을 보낸다. 대자연이 주는 자유로움을 아이들은 가슴에 품고, 눈으로 확인한다.
이러한 정서적 풍요로움은 한 학부모와의 면담을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었다. 즉 대자연의 품에서 어린 시절 자녀를 자라게 하여 정서를 풍요롭게 길러주는 것이 자녀교육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음은 학부모와의 면담 내용이다.
지금 15년째 여기서 살고 있는데 너무 좋아요. 아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곳인 것 같아요. 특히 아들 효식이는 꿈이 더 구체화 되어가는 것 같아요. 동․식물에 대해 유난히 관심이 많았는데 계절마다 볼 수 있는 많은 동․식물을 직접 관찰하고 잡아서 기르고, 찾아 헤매고 그러는 사이 아예 박사가 다 되었어요. 자기의 호기심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을 보면 대단할 때가 많아요. 학원대신 직접 도랑이나 산, 들을 헤집고 다니며 찾아 관찰하고 만져보며 늘 재미있어 하고 신기해해요. 3학년이 되니까 누나처럼 도시학교로 전학을 가면 어쩌겠냐고 물어보니까 전학은 절대 안 되고, 정 엄마 아빠가 가라고 하면 6학년 때 봐서 가겠다고 해요(2006.12. 면담일지).
도시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면 이들의 감수성은 방치된, 계획되지 않는, 그래서 당장의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잠재되어 있다가 무엇인가 적절한 자극이 제공되면 외부로 표출된다. 생활자체가 풍성한 정서로 쌓이는 일상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다. 연구자의 주관적 체험과 연구대상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의 일반적인 인식이 그렇다는 것이다. 연구대상 학교에서 4년째 근무하고 있는 여교사 역시 아이들의 순수함과 정서적 풍요로움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반 아이들은 그야말로 순진해요. 그리고 정서적으로 다정다감한 면이 많아요. 봄이었는데 꽃을 가져와 내 머리에 꽂아주면서 꽃핀이래요. 토끼풀 시계도 만들어 와요. 재희는 학교에서 간식을 주면 아버지와 동생들 준다고 가방에 넣어 놓아요. 자기 집 비닐하우스 딸기를 가져와 아이들과 나누어 먹고, 상추를 뜯어다 주었어요. 고구마 순을 가져와서 반 아이들과 텃밭에 함께 심기도 했어요(2004. 6. 면담일지).
연구대상 학생들의 정서적 풍요로움은 학습면 보다는 예체능 활동에서 자연스럽게 표출된다. 실제로 연구대상학교 학생들은 열악한 교육환경에도 불구하고 특기적성 교육활동으로 지도받은 사물놀이 부분에서 광주시 학생종합예술제의 금상을 수상하였고, 2004년도에는 시, 시조 암송대회와 모자독후감 발표대회, 독후화 그리기에서 각각 금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종합예술제의 합창, 디자인, 사물놀이, 밝고 맑은 노래 부르기 등의 분야에서 각각 금상을 수상하였다.
전체적인 사회 및 문화적 환경의 결핍과 평균 학력이 저하라는 점을 고려할 때 지적 영역보다는 정의적 영역에서 이들의 감수성이 더 많이 발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서적 영역의 한 분야라고 말할 수 있는 예술성과 감성이 더 잘 발달한 것이다. 대자연의 변화, 다양한 자연 체험과 그 속에서의 생활 자체가 아이들에게 내면으로 깊숙이 스며들어 정서가 풍요롭게 형성된 결과이다. 단지 지금껏 계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적절한 자극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연환경의 풍요로움이 사회적 환경의 결핍으로 인하여 자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IV. 소외 아동의 학교 일상으로서 빈곤경험
연구대상 아동들의 일상성을 구성하는 또 다른 상황은 그들이 하는 경험의 대부분이 결핍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결핍이란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대상 학생들의 학교에서의 삶은 ‘없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학교의 물리적 환경도, 지역사회의 사회 및 문화적 환경도 결핍되어 있고, 개인적인 경험도 제한적이다.
1. 경험의 결핍
이들에게 그 동안 반복적 경험으로 인하여 자동화된 습관으로 일상화 된 것은 첫째, 꿈이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극과 희망을 심어 줄 모델(모방의 대상)이 없다는 점이다. 공동연구자가 1학년 담임을 맡았던 2005년도 3월, 국어과 말하기 시간에 ‘나는 자라서 무엇이 될까요?’라는 단원 학습시간이 있었다. 아이들은 부끄러워하며 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이전 도시 학교 1학년 담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서로 먼저 말하겠다고 다투는 그들과는 전혀 달랐다. 무슨 죄라도 지어 차마 하지 않아야 될 말을 하듯 아주 부끄럽게 입을 열었다. 그것도 18명 중 겨우 6명만이. 나머지 아이들은 ‘몰라요’가 답이었다. 병진이는 ‘아빠처럼 하남공단에서 일하고 화물트럭운전수가 되어 대전에 갈거야..’라고 말하였다. 엄마가 없는 근숙이와 고아원에 사는 다연이는 ‘엄마’라고 말하였다.
저학년에서 꿈의 결핍은 고학년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 6학년 11명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가?’에 대하여 집단 면담을 실시하였다. 한두 명이 큰소리로, ‘그냥 살래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들리는 답이 ‘몰라요, 모르겠어요.’였다. 개별면담을 통해서도 달라진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냥요,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꿈, 없어요. 그냥 놀고 싶어요.’ 한 학생만이 컴퓨터 게임머가 되고 싶다고 구체적으로 답하였다. 특히 고아원에서 다니는 아이들은 ‘꿈이요, 그런 것 생각 안 해요.’라고 말했다. 6년 동안 그들에게 진지하게 어떤 꿈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하는 특별한 자극이나 동기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연구대상 학교의 상황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꿈이 없기에 학급 전체적으로는 무력감이 이들의 삶을 지배한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려하지 않는다는 점, 물어보아도 대답을 하지 않으려는 점, 매사에 의욕이 없다는 점 등이 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교사들의 공통적인 반응이었다. 연구대상 학교에서 교사들과 고아원 사회복지사(아이들은 이들을 이모라고 부른다)들과 공동으로 학부모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우연하게도 교사들과 사회복지사들의 고민이 일치하였다. 아이들이(시설아동)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매사에 의욕이 없으며, 무슨 일이든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모른다. 저학년 시기에는 부모의 역할이 모델이 된다는 점에서 이들에게는 모방의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결손가정 아동이 많기 때문이다. 전술한 것처럼 1학년 18명 중 양부모 가정 자녀가 5명이다. 그것도 어머니가 중국인인 경우를 합해서이다. 조손가정 자녀가 5명이고, 모부자(아버지와 이혼) 가정이 3가정, 병진이와 같이 어머니가 사망한 경우가 2명, 고아원 아이들이 3명이다. 부모의 존재는 학교생활뿐만 아니라 미래의 꿈을 갖게 해주는 중요한 자원이라는 점에서 이들에게는 그러한 동기를 부여해 줄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변화에 대한 자극은 또래집단으로부터 온다는 점에서 연구대상 학생들은 또래 집단으로부터 자극도 없다. 이들은 소인수 한 학급으로 인하여 초등학교 6년 내내 함께 진급을 하기 때문이다. 매일, 그리고 6년 내내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어쩌다 전학을 오는 학생들도 일정한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전학을 간다. 따라서 학급친구들은 그들에게 새로운 자극이나 관계 형성 및 변화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 새로운 정보원이자 유일한 자극원이 교사들이지만 후술할 아이들이 바라는 기대와 교사가 바라는 기대간 차이로 인하여 이들에게 희망으로 다가가질 못한다. 결국 모방의 대상이 없고 장래에 대해 자극을 줄 수 있는 원천이 없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상황에 봉착 할 경우 사람들은 모방이나 시행착오 그리고 지적 과정을 거쳐 새로운 행위를 한다. 이 중 직접 관찰에 의해서건, 소문에 의해서건, 아니면 독서를 통해서건 타인의 행위를 복사하는 모방이라는 테크닉이 가장 먼저 작동한다(Linton, 1954 전경수 역. p. 101). 연구대상 학생들의 장래 삶은 무언가 현재 상황 속에 모방의 대상이 없다는 점에서 매우 결핍된 경험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교우관계의 폭이 좁고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연구대상 학교는 단급학급이므로 입학에서 졸업까지 같은 학생이 같은 관계 속에서 생활을 한다. 소인수 학교의 특성이 그렇듯 교우관계의 단조로움은 사회성 발달이나 관계능력 신장에 제한적 상황으로 작동한다. 소규모 학교에서의 제한된 교우관계는 연구대상 학교를 다니다 도시의 큰 학교로 전학 간 학생과의 면담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연구자 : 전학 가서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임진실 : 친구가 많아졌어요. 엄청 많아요. 그리고 다른 친구들을 골고루 많이 사귈 수 있어요. 5학년이 11반까지 있는데요. 우리 반 뿐만 아니라 다른 반 친구들도 사귈 수 있어요. 우리 반 친구의 친구이기 때문에 함께 말하고 어울려요. 그리고 학원에 가면 또 만날 수 있어서 친구가 엄청 많아요.
연구자 : 그러면 푸른숲초등학교 다닐 때는 어땠는데?
임진실 : 학년을 올라가도 그 친구가 같은 친구잖아요. 한번 친하면 계속 친할 수 있는데 그런데 한번 싸우면 계속 친하기 어려워요. 그리고요. 제가 4학년 끝나고 전학 갔잖아요. 좀 더 일찍 전학 갔으면 더 좋았을 거여요. 5학년 때 가니까 이미 자기들끼리 친한 그룹친구들이 있어서 끼어주지 않았어요.
연구자 : 그러면 어떻게 친구를 사귀었는데?
임진실 : 처음에는 애들이 시골 촌에서 왔다고 촌년이라고 자기들끼리 흉보고 그랬대요. 그리고 못사는지 알고 무시했대요. 그런데요. 엄마가 그냥 다르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계속 이야기를 먼저 하라고 했어요. 자기들끼리 하는 연예인 이야기도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다음 날 가서 끼어들어 말하고, 좋아하는 취미생활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주고, 우리 집에 초대했는데 그 다음부터 아이들이 다르게 대해 주었어요(2006. 12. 면담일지).
소규모 초등학교에서 한번 고착된 교우관계는, 특히 악화된 교우관계는 학년이 변해도 바꾸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회성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즉 한번 관계가 악화되면 6년 동안을 계속해서 불편한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 교류의 폭이 넓지 못하고 다양한 교류관계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은 어떻게 불편한 관계를 풀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점은 자녀를 연구대상 학교에서 도시학교로 전학 보낸 한 학부모와의 면담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 보낼 때는 그 애들이 그 애들이고, 우리 진실이가 생일이 늦어 다른 애들보다 늦은데, 특히 현숙이 하고는 일 년 차이인데. 정말 여러 가지로 힘들었어요. 한번 어색한 것이 학년이 바뀌어도 계속 올라가는 거예요. 진실이가 노력해도 애들이 바꾸어지지 않아요. 암만 학년이 바뀌어도 외톨이로 그대로 계속 올라가는 거예요. 1학년 때 인식된 그대로, 만회할 기회도 없이 계속 못 어울리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학교를 보낼 때는 속상할 때가 많았어요(2006. 12. 면담일지).
소규모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제한된 교우관계는 사회성 발달에 있어서도 경험의 폭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초등학생들은 친구와 놀이를 통하여 함께 어울려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래집단이 성인의 도덕적 표준이나 성 역할, 그리고 일상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 즉 문화를 가르쳐 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사회화의 대행기관이자 준거집단으로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Levine & Havighurst, 1992)에서 제한적인 교류관계를 가지고 있는 연구대상학생들은 사회의 보편적인 규범뿐 아니라 생활의 기초적인 규칙과 대인관계의 원리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셋째, 성비 불균형으로 인한 성 역할 경험의 결핍을 들 수 있다. 남녀성비의 불균형은 이성관, 성교육, 남녀 성역할 등에서 기형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농촌에는 여자 어린이가 많지 않다. 연구대상학교 학생들의 남여 구성 비율은 2006년 기준 남학생 78명, 여자 43명(36%)이다. 고학년으로 가면 성비의 불균형은 더욱 심각해진다. 5학년의 경우 남학생 23명, 여학생 5명(18%)이고, 6학년은 남학생 10명, 여학생 1명이다.
성비 불균형은 폐쇄적인 지역의 사회적 특성과 맞물려 일부 연구대상 여학생에 대한 성추행이나 성적 학대 등의 사회문제로 비화되는 경우도 있다. 농촌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하여 혼자 사는 남자 어른이나 남학생들이 여자들에 비해 절반 이상 많다. 그러다 보니 어린 초등학교 여자어린이들이 어른들에게 성적대상으로 노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2005년도에 초등학교 1학년 여자어린이가 하교 길에 학교 앞 고가다리 밑에서 일하는 노무자에게 성추행을 당한 경우도 발생했고, 동네 유지라는 사람(53살, 식당운영)이 초등학교 1학년 여자어린이를 자신의 차에 태워 과자를 사주며 성추행을 하는 사건이 일어나 수사가 진행된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학교가 위치한 지역사화 환경은 사람이 없고, 이혼, 가출로 혼자 사는 남자어른들이 많아 여학생이 생활하기에는 좋은 상황이 못 된다.
거기에 연구대상 학교 인근에는 사립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다. 재학생들의 생활이 문란하여 주민들의 불평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학교와 동네, 인근 야산 주변 등을 배회하며 무리지어 담배를 피우거나 인근 폐허된 집들을 중심으로 이성 교제를 한다. 특히 철도역 주변에 화물을 싣기 위한 콘테이너 박스가 있고, 그 앞으로 폐업된 식당 건물이 방치되고 있는데 이곳이 대낮에도 남녀학생 간 문란한 이성교제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초등학교 여학생들에게도 손을 뻗치는 중․고등학생이 있어서 연구대상 학교 지역은 대도시의 안전지대에 비해 건전한 생활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못 된다. 따라서 이들은 성 역할에 대한 균형 잡힌 경험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건전한 이성관을 정립시키기에도 부적합한 삶의 공간 속에 처해 있는 것이다.
2. 소외된 경험
연구대상 학생들이 학교에서 하는 경험은 대부분 소외되었다는 점이다. 결핍과 유사한 개념이 소외이다. 소외된 경험 역시 본질로부터 이탈이 아니라 그들이 하고 있는 경험이 무언가 부족하고 낯설다는 것, 바라는 기대 역할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시 학교에 비해 올바른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인식과 느낌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러한 경험은 주로 학교의 물리적 환경이나 교육과정 상 학생들이 느끼는 거리감에서 비롯된다.
첫째, 학교 접근의 불편함뿐만 아니라 학교 시설의 노후화와 자료의 부족이 학생들로 하여금 그들이 학교에서 하고 있는 경험이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한다. 연구대상 학생들은 도시학교에 비해 물리적으로 원거리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그럼에도 통학버스 외에는 학교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시내버스는 1시간 간격으로 2대가 운행되기 때문에 물리적 접근의 불편함은 이들에게 여러 측면에서 소외감을 가져다준다.
또한 연구대상학교는 도시학교들에 비해 시설이 낙후되었고, 도시학교들이 가지고 있는 강당, 시청각실, 어학실, 컴퓨터실, 학생들의 취미, 오락을 겸할 수 있는 운동장 시설, 놀이기구 등이 없다. 그래서 이들은 학교시설로부터 소외당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특히 도시로 전학 간 학생으로부터 도시 학교에 대한 정보를 들은 학생들은 시설의 열악함과 낙후성으로부터 더 심한 소외감을 경험하게 된다.
연구대상 학교의 화장실은 본관 1층에 한 칸, 2층에 한 칸이 있는데, 교직원(행정실 직원포함) 26명, 학생 120여명이 함께 이용하고 있다. 특히 별관에 있는 6학년 학생들에게 화장실 사용은 연결 복도를 따라 다시 본관으로 와야 하기 때문에 매우 불편한 실정이다.
또한, 컴퓨터실도 항상 학생들의 불만이 많은 곳이다. 30여대의 컴퓨터가 아주 낡아서 인터넷 접속도 자주 끈기고 학생들이 좋아하는 게임이나 인터넷 접속의 정보 찾기 등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실제 컴퓨터 특기적성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외부강사는 ‘프로그램을 다시 깔아야 하는데 용량이 적어 업데이트도 해야 하구요, 마우스를 갈아야 하는데, 안돼요. 날씨가 추워 컴퓨터실에서 아이들이 좌판을 누를 수가 없어요’라고 불만을 토로하지만 만 학교예산이 넉넉지 않는 소규모 학교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거기에 거리가 멀고 배울 학생들이 많지 않아 이윤을 남길 수 없기 때문에 도시 일반학교에 경쟁적으로 참가하려는 민간업체도 없다. 그래서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흥미 있고 인기 있는 재량시간 컴퓨터 수업시간도 연구대상 소규모 학교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신나는 시간이 아니다. 자연경관은 아름답고 공간은 넓으나 그것을 채우고 있는 부대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연구대상 학생들이 학교에서 하는 경험은 제한적이며 시설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둘째, 교육과정으로부터 소외이다. 연구대상 학교도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공통된 교과서를 사용한다. 그러나 실제로 지역사회에 맞게, 학교실정에 맞게, 학급실태에 맞게 재구성하여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재구성하여 운영하는 데는 사실상 한계가 있다. 전국적으로 함께 살아야 할 공통된 사회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그들이 단지 오지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 지역사회에서만 계속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디까지 교육과정의 내용과 예화, 자료를 가감하여 재구성해야 할지 막연할 수밖에 없다. 농로 길과 들길이 전부인 그들에게 횡단보도, 육교, 지하도, 교차로, 신호등 등 도시의 복잡한 길을 가르쳐야 한다.
또한, 교과서에 나오는 예화나 예시문은 우리나라 중류사회, 중류가정의 규범이나 가치, 예절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연구대상 학생들에게는 그러한 교과서 내용이 그들의 생활경험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게 살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확연히 깨닫게 하는 장이 되고, 그래서 열등의식이나 소외감의 원천이 된다.
그리고 대규모 학교를 기준으로 개발된 프로그램 역시 소규모 학교 학생들에게는 소외 경험을 갖게 한다. 특히 학교행사에서 소풍, 운동회, 수업 공개회, 학예회, 그리고 다양한 특기적성교육활동 등은 소규모이기 때문에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소인수 학교 특성상 방과 후 교육활동이라든지, 특기적성교육활동 등은 적극적으로 운영되지 못한다. 지원하는 강사도 없을 뿐 더러 배우려는 학생들도 많지 않기 때문에 탄력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 따라서 연구대상 학생들은 교육과정 및 이러한 다양한 활동으로부터도 소외당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문화시설과 지역의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오는 경험의 제한성이다. 연구대상 학교가 위치한 지역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컴퓨터 오락실이나 체육관, 영화관, 전시장, 문화공연장, 서점, 도서관, 공공시설물 등이 없다. 지역사회나 학교 또한 그러한 문화적인 공간을 마련하는데 한계가 있다. 아이들에게 영화감상이나, 전시실 견학, 박물관, 문화재 탐방 등은 요원하다. 이러한 문화시설의 결핍은 학생들의 여가시간과 취미생활 등 정신적 삶을 빈곤하게 한다. 2004년 연구자가 6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아이들이 가장 하고 싶은 것을 조사해 보니 여학생들은 영화관에 가보는 것, 남학생들은 오락실에 가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별활동을 시켜 그 달에 제일 우수한 모둠은 그들의 소원대로 해주었다. 다음은 4월에 우수조로 뽑혀 영화 관람을 한 어느 학생의 일기장 내용을 학생의 허락을 받아 인용한 것이다.
선생님과 약속을 잘 지켜 영화를 보았다. 그렇게 보고 싶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강훈이가 언니랑 보았다고 자랑한 영화. 그렇게 큰 화면으로 영화를 볼 때는 정말 놀랐다. 영화관도 그렇게 크고 사람이 많은지 미처 몰랐다. 백화점 맨 꼭대기에 있었는데 영화관이 1관, 2관, 3관....이렇게 있었다. 같은 영화관에서 다른 영화도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동생 희진이도 선생님이 함께 데려가 주셨는데 놀라는 것 같았다. 영화를 보면서 눈물이 나왔다.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2004. 4. 최연지 일기장).
이상에서 보는 것처럼 연구대상 학생들은 꿈과 모방 대상의 결핍, 폭이 좁고 제한적인 교우관계, 성비 불균형 및 올바른 성 역할 경험의 부족, 그리고 학교시설로부터 소외, 교육과정으로부터 소외, 문화시설 및 지역사회 환경으로부터 소외 등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가 처한 아름다운 자연경관이나 학생들의 풍부한 감수성과는 대조적으로 소위 ‘빈곤의 문화’가 이들의 일상적인 삶의 상황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Ⅳ. 소외 아동의 학교 일상의 특징: 이중성
농촌 소규모 학생들의 학교 상황속의 일상은 ‘결핍과 다름’과 ‘무관심과 주도적 삶’이라는 주제로 표현할 수 있다. 전자는 현실 속의 일상이고 후자는 연구자가 설정한 바람직한 방향으로서 일상이다. 연구대상 학생들은 도시학교의 또래 아동에 비해 많은 점에서 부족하고, 이로 인해 갈등이 일어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관심으로 일관해야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결핍은 오랜 갈등을 통해 결국 다름으로 발전해야 되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아이들의 태도는 자신만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으로 자기주도적 삶‘으로 발전해야 한다.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결핍이고 무관심이지만 잠재되어 표현되지 않는 내면의 실제적인 의지는 다름과 주도적인 삶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1. 결핍과 다름
연구대상 학생들은 도시학생들에 비해 무엇이든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학교도 시골에 있고, 작고, 오래되어 낡으며, 엄마 아빠도 없고, 공부도 못하고, 가난하고, 일단 무엇이든 없다. 이들의 부족함은 끝이 없다. 이연옥(1996)은 우리나라 소규모 농촌 초등학교는 소규모화에 따른 장점이 나타나기보다는 학생들의 의기소침, 표현력 부족, 자발성 및 창의력 미흡, 자신감과 도전의식 부족 등 정의적 측면에서의 결핍과 지적 영역에서 학력 저하 등 단점이 더 많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소규모 초등학교의 소외 아동들의 대부분은 부정적인 사회적 편견과 가정결손의 상황인식으로 인해 빈곤과 결핍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인다. 사회에서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세계가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각종 현상들인데, 신념과 태도형성에 가장 영향력 있는 1차적인 집단인 가정에부터 빈곤과 결핍을 경험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학교 교육내용과 유리된 학생들의 일상생활은 더욱 이들을 더욱 심한 갈등상황에 처하게 한다. 교육과정이 주는 기본 기초 교육조차 이들에게는 탁상공론이고 사치로 여겨질 때가 있다. 도시학교 아이들처럼 이들에게는 ‘어머니, 아버지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면 ‘그래 잘 다녀와라.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조심해서 다녀오렴’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감싸줄 사람이 없다.
이들에게 결핍은 교사의 이상과 학생들의 바람에서의 차이에서도 나타난다. 교사들은 대부분 그동안 다른 학교에서 했던 대로(비슷하거나 같게), 또한 자신의 자녀에게 요구한대로 이곳 학생들에게도 똑같은 내용과 수준을 요구한다. 연구자가 2004학년 6학년을 담임하면서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것은 학생들의 학력이었다. 최소한 공부라도 잘해야 상급학교에 진학을 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대학을 가서 안정된 직업을 얻을 수 있다는 실용적인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학습지를 하고, 영어단어를 암기시켰으며, 매일 수학문제를 풀게 하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동안 노는 데 익숙해져 있었고, 왜 공부가 중요하고 필요한지에 대해 주변의 누구에게도 그 이유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공부를 강조하는 담임교사의 이야기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이들에게는 어울려 시내에 나가 돌아다니거나, 부모님 일을 도와드리는 것이 더 중요한 생활이었고 바램이었다. 이들의 기대와 완전 유리된 기대를 교사가 강요한 것이다.
그 외에도 아이들은 학교환경과 가정환경의 급격한 차이에서 결핍을 경험한다. 일례로, 학교 급식실에서 제공하는 밥과 집에서 먹는 밥이 다르다는 것이다. 도시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나오면 아이들은 비위가 상한다며 대부분 먹지 않고 버린다. 토속적인 된장국이나 시금치국을 끓이는 날은 잔반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다른 일례는, 가정의 화장실과 학교의 화장실이 다르다는 점이다. 학교 화장실을 청소하는 용역 담당자는 교사들에게 학생들의 화장실 사용을 지도해 달라고 자주 부탁한다. 물을 내리지 않고 화장지를 변기통에 넣어버리니 자주 막힌다는 것이다.
문화적 차이로 인식하기보다는 무엇이든 다른 사람에 비해 결핍되었다는 생각은 의기소침, 자신감 부족으로 전환되고 그들의 행동의 반경을 좁히는 결과를 낳는다. 때로는 그들의 일상과 다른 상황이 주어지면 갈등으로 비화된다. 놀이를 제외한 대부분 학교가 요구하는 상황이 이들에게는 갈등상황이다. 그래서 현실과 다른 신생방응이 오면 견디기 힘들어 한다. 요구하는 사람과 제도, 상황에 대해 때로는 원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숙명적으로 체념하기도 한다.
이들의 생활경험은 분명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경험과 다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다름의 실체를 올바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결핍으로 인식하는데서 발생한다. 다름을 다름으로 알지 못하고 열등하다거나 부족하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따라서 그들의 생활경험은 결핍이 아니라 다름으로 인식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고, 소질을 계발하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주도하려는 노력을 긍정하게 해야 한다. 즉 결핍의 부정적인 인식을 성숙시켜 다양성이라는 폭넓고 긍정적인 관점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2. 무관심과 자기주도적 삶
빈곤과 결핍은 또 다른 삶의 한계를 설정한다. 전술한 대로 연구대상 학생들은 부모로부터 버려지거나(고아원) 방치된(이혼가정, 조부모가정)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삶의 방식은 학교생활 중 침묵과 무관심, 방관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교사가 질문을 해도 일체 입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체념처럼 습관화된 숙명적 삶의 방식이 매사를 무관심으로 대하게 한다. 어느 면에서 무관심은 이들에게 적응전략의 하나이다. 이는 어떤 도전이나 모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대답을 안 하면 그대로 통과한다. 틀리지도 맞지도 않기 때문이다. 색으로 표현하면 회색이다.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최소한 이쪽 저쪽의 절반이기 때문에 그런대로 버티고 살 수 있다. 이러한 아이들을 전술한 것처럼 교사들은 ‘잠수’한다고 표현한다. 발표도 안하고 묻는 말에 대답도 없이 학습준비물도 가져오지 않고 심지어는 교과서와 공책이 없다고 큰소리로 나무래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이들의 무관심은 그들 삶의 적응과정에서 생성된 것이며 자생적으로 터득한 삶의 방식이다. 따라서 다른 면에서 보면 무관심한 겉으로의 현상은 안으로 끈질긴 자생력을 키워온 결과이다. 도시학교 또래 아동이 부모라는 후원에 힘입어 겉으로는 독립적인 삶의 방식을 취하지만 내적인 자생력이 결여된 것과 반대로 이들은 겉으로의 무관심을 통해 내적으로는 자생력을 확보한 결과이다.
소규모 농촌 초등학교 학생들은 없어서는 안 될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가정자원이 절대적으로 빈약하다. 처음에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없음에 분노하고 좌절하다가 마침내는 현실을 무관심으로 대응한다. 그러다가 무관심으로 되풀이 되는 학교생활의 사회화 과정 속에서 놀이에 충만 된 삶, 간섭 없는 자유, 예측불가능성 등 그들에 대한 타인의 무관심이 그들을 한편으로는 일찍부터 자기 주도적 생활을 영위하게 만든다. 무엇이든 혼자 결정해야 하고, 누가 이끌어 주지 않아도 무엇이든 혼자 해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무엇이든 결정하고 행동한다. 일종의 자기 주도적 삶이다.
이들은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기본적인 일은 모두 혼자서 처리한다. 갑자기 용돈이 필요해도 혼자서 해결(없음을 견디어 내는 것, 감수하는 것)해야 한다. 나름대로 상황에 대처하는 자기 주도적인 삶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여기서 관건은 그러한 자기 주도적으로 터득한 삶을 친 사회적으로 그리고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Ⅴ. 결론
지금까지 도시 주변 소규모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소외 아동들의 학교생활의 일상성을 상호작용론적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상호작용론자들은 상황의 객관적인 특성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이 상황을 구성하는 주관적 의미에 보다 더 관심을 갖는다. 상황은 객관적인 특성의 이면에 숨어있는 목적이나 함의에 따라 구성되기도 하고, 상황의 객관적인 특성들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구성되기도 한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상황 및 그에 따른 반응이 되풀이되면서 상황정의에 따라 적응하도록 반응을 새롭게 조절 변경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행위도 조절 변경된다. 결과적으로 습관처럼 자동화된 행위가 나타나게 된다. 개인에게는 반응과 조절과정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문화의 변화 과정이다. 자동적인 반응인 습관이 개인에게 형성되는 것처럼 사회에는 독특한 문화가 형성된다.
지금껏 연구대상학교 학생들의 학교에서의 개인적 일상성도 집단으로 보면 일상문화가 된다. 물론 일상과 문화는 부단히 변화되는 것이지만 일단 특정 시점에서 보면 이들은 일정한 특징을 가지게 마련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상황과 상황정의에 따라 소규모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소외 아동의 학교에서의 일상은 풍요와 빈곤이라는 이중성으로 해석된다. 놀이와 정서의 풍부함과 대조적으로 이들의 경험은 빈곤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소규모 초등학생들의 관심은 학교 상황 속에서 재구성하게 되는데, 방치된 그들의 생활은 놀이가 전부이고 가정적 결핍과 지역적 소외상황은 빈곤문화를 낳게 한다. 놀이로 충만된 아이들과 대자연의 품속에서 잠재되는 순진무구한 정서의 풍요로움과 대조적으로 소외와 빈곤문화가 나타난 것이다. 꿈과 모방 대상의 결핍, 폭이 좁고 제한적인 교우관계, 성비 불균형 및 올바른 성 역할 경험의 부족, 그리고 학교시설로부터 소외, 교육과정으로부터 소외, 문화시설 및 지역사회 환경으로부터 소외가 그것이다.
이들의 일상은 결핍(빈곤)과 다름, 무관심과 주도적인 생활이라는 이중성으로 해석된다. 빈곤은 가정결손에서 오는 결핍들, 학교 교육내용과 유리된 학생들의 생활, 학교 교사의 이상과 학생들의 바람간 격차, 학교환경과 가정환경간 이질감 등으로 이러한 요소가 학생들로 하여금 의기소침과 자신감 부족, 무관심한 삶의 태도를 낳게 하였다. 그러나 숙명적 체념감에 빠져있게 할 것이 아니라 상황의 변화를 통해서 이들로 하여금 빈곤을 다름으로 인식하게 하고, 무관심을 자기 주도력을 낳게 하는 원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일한 상황이라도 결핍이 아니라 다름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풍요로운 감수성을 진작 시킬 수 있는 특기적성교육활동을 강화해야 함은 물론 꿈과 모방 대상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폭이 좁고 제한적인 교우관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도시학교 또래 아동들과 다양한 교류 프로그램을 강구해야 한다. 성비 불균형 및 올바른 성 역할 경험의 부족을 보충하기 위하여 성교육을 활성화 하여야 하며, 학교시설로부터 소외, 교육과정으로부터 소외, 문화시설 및 지역사회 환경으로부터 소외 등을 극복하기 위하여 다양한 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강구해야 한다.
환경을 어떻게 극복하게 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정’하며 그 상황 속에서 현재 상황을 더 정직하고 분명하게 이해하고 수용하도록 도와주고, 거기에 기초하여 정체성을 갖게 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어떤 물질적 보상이나 물리적 생활환경을 변화시켜 주는 것보다 그들 가까이에서 따뜻하게 이야기 해주고 들어주는 그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이들을 위해서는 지식의 주입보다는 그들의 마음을 먼저 어루만져 주고 차분하게 기다려주는 교사의 역할이 절실히 요구된다. 전면영역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후면영역을 확대해주는 것도 필요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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