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재구성』(원제 Japan: a Reinterpretation), Patrick smith(노시내 역), 2008, 마티, 550pp., Paperback(ISBN 978-89-92053-18-1)
김일림(ilrim Kim)
최근 일본의 독도 도발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공감 없이 한일 관계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지정학적 인과 관계가 깊은 이웃나라 일본과의 문제가 터질 때마다 우리는 투철하게 역사를 인식하고 일본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일본은 부정의 대상이거나 극복의 대상, 혹은 소비의 대상으로 막연하게 보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우리의 고정관념에 갇힌 일본이 아닌 제3자의 눈으로 파악한 일본을 객관적으로 제시함으로서 일본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일본의 정치․경제․역사 그리고 문화는 물론 교육과 직장, 도시와 농촌, 민족정체성, 페미니즘 등이 종합적으로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20년 이상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뉴요커’,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특파원으로 아시아에서 활동했으며, 일본에서는 1987년부터 1991년까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도쿄 지국장으로 일한 언론인이다. 저자는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을 적절하게 혼융하여 일본의 근현대사의 핵심을 들어낸다. 이는 저자의 직접적인 인터뷰와 관찰, 역사·정치·경제·문화·사회학 등을 아우르는 문헌연구가 뒷받침 된 덕분인 것 같다.『일본의 재구성』은 출간과 동시에 미국에서 탁월한 일본개론서로 추천받았으며,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과 해외언론 클럽이 수여하는 국제문제 분야 최우수 도서상을 수상했고, ‘뉴욕타임지’에 의해 ‘올해의 주목할 만한 책’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 책은 1부 -자기들끼리, 2부 -타자와 함께로 양분 하였으며, 총 11장으로 이루어졌다.
1부 자기들끼리, 1장 재팬이 된 닛폰에서는, 2차 대전 종전 직후, 인류 역사상 최악의 무기로 자신들의 도시를 파괴한 미군을 열렬히 환영한 일본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항복 직후 일본인들은 미국에게 무엇을 기대했을까? 등에 관한 질문을 가지고 시작한다. 1946년 미국총선을 기점으로 미국의 일본 정책은 급선회하며 우리의 해방 전후사와 다르지 않게 이른바 역코스(reverse course) 정책을 시작한다. 미국은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전전(戰前) 일본의 국가주의자, 재벌, 정치엘리트 세력을 복귀시킨다(35쪽). 역코스에 이어 1947년 제정된 일본의 헌법(평화헌법)과 1951년 미일 상호안보조약은 모두 미국의 주도 아래 만들어진 문서로 “둘을 합치면 정치적․외교적 정신분열증의 걸작이자 일본이 지금까지도 겪고 있는 질병의 원인”이다(37쪽). 메이지 유신 이래 제국주의적 야망을 불태우며 아시아의 이웃국가를 끊임없이 침략한 일본의 과거와 역사는 미국이 꾀하는 이익에 적합하도록 ‘재구성’되었다.
2장 숨겨진 역사에서는, 일본인이 집단에 의존하는 경향을 일본의 사회문화적 요인에서 찾고 있다. 어떤 시각으로 보아도 일본인은 개인의 가치관보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비추어진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집단’은 일본에게 일종의 허상이다. 집단 속에서 일본인은 가면을 쓴다. 가면을 쓴다는 것은 어떤 역할을 맡았음을 의미한다. 이 가면을 씀으로서 집단 구성원 간에 차이가 없어지고, 차이가 없다는 것은 곧 ‘일본인 되기’의 한부분이다(79쪽). 저자는 외국인의 단편적인 관찰과 겉으로 드러나는 속성이면에 은밀히 깔려 있는 복잡함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4장 마음의 벽에서는, 일본은 자국민을 사지로 내 몬 덴노(천황)는 전통으로 상징화 하고, 이전의 전범들이 중심이 되어 동아시아 최초로 의회민주주의를 실현한 부분에 관해서 자부심을 갖는 역사왜곡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이런 역사왜곡과 조작된 일본상을 뒷받침한 학자들이 바로 에드윈 라이샤워가 주도한 ‘국화회’이다. 미국이 만들어냈고 일본이 거기에 자신을 맞춘 이 일본상의 갈라진 틈바구니 사이에 있는 일본인의 맨 얼굴을 보여주고자 한다. 저자는 종신고용과 무파업의 신화 속에 가려진 일본 노동운동의 역사와 서류가방을 든 사무라이라는 표상 아래 신음하는 일본 소시민들의 삶이야말로 우리가 알아야 할 일본의 오늘이라고 역설한다(182쪽).
5장 구석에서 찾는 행복에서는, 새로운 일본 페미니즘 탄생을 위해서는, 일본여성은 남자들의 감수성 결핍에 대해 쇳소리를 내며 불만을 표시한다. 이들에게 남자는 감정이 없는 얼간이이거나 인간적 동정심 없는 따분한 인간들이다. 젊은 여성들이 결혼을 늦추거나 아예 독신을 결심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일본여성들이 이러한 불만과 주저 그리고 몇 년씩 반짝 누리는 가짜 자유에서 우리는 일본의 미래를 본다. 절대 가면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바보 얼간이라고 남성을 흉보며 여성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비판의 핵심은 무엇일까? 이는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전통적 관행에 얽매이는 남성에 대한 비판이다. 이 어려운 문제를 푸는 열쇠는 여성이 쥐고 있다. 저자는 자기가 먼저 변하기 전에는 남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깨달음을 통해서만 비로소 일본여성들은 진정한 그들만의 페미니즘, ‘일본 페미니즘’에 구체적인 형상을 부여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장의 일본인 되기와 6장 콘크리트와 민주주의에서는, 이것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에 그쳐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그림자를 너무나 생생하게 발견하게 만든다. 식민지 지배가 어떤 시점에서 물리적으로 단절되었다 하더라도 식민지 사람의 정신에 오래 동안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일본이 10여 년 전에 겪은 부동산 거품 붕괴에 따른 경제 침체가 머지않은 미래의 우리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차치하더라도, 개발지상주의와 대외 과시를 위해 수도권과 지방을 철저히 분리한 토건국가, 정부보조금에 의해서만 지탱될 수 있으면서도 영원한 고향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농촌(253쪽), 신병훈련소 같은 신입사원 연수시설 등을 묘사하는 구절에서 우리의 얼굴을 찾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2부 타자와 함께, 7장 역사를 일관하는 정신에서는, 일본이 두 종류의 달력을 사용하는 것은 역사란 끝없이 ‘순환’한다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을 지적한다. 연호는 새 덴노(천왕)가 즉위에 오를 때마다 명칭이 바뀐다. 히로히토는 쇼와(昭和) 63년에 사망했고, 아키히토가 뒤를 이으면서 헤이세이(平成) 시대가 열렸다. 일본에서 신문, 주차위반딱지, 식당 영수증 등은 모두 연호로 표기되어 있다. 그레고리우스력은 연례보고서, 보도자료, 일정한 정부사업 관련 문서 등 주로 외국인들이 볼만한 문서에 사용한다. 그래서 일본은 ‘시대’나 세대의 변화에 민감하다. 덴노가 바뀌는 것은 마치 농작물의 수확과도 같다. 모든 것이, 심지어 달력까지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8장 비어있는 중심에서는, 생각의 다양성이나 국가 정체성에 대한 열린 사고가 일본인에게 생소한 이유에 관해서 논한다. 덴노제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덴노제 자체를 폐지하는 조처는 이제 불가능하다. 전후 헌법상 히로히토의 임무는 국가의 상징이 되는 일이었고, 이는 덴노의 역할을 극히 제한되었다. 그러나 궁내청과 정부 엘리트들이 그런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계속 나라에 담장을 두르고 외부인을 배격했다. 저자는 신성한 덴노가 전혀 신성하지 않은 존재로 변한 이 시대에 아키히토 덴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광적인 신성숭배를 등지고 소시민적 군주가 되려는 의지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9장 아직 끝나지 않은 꿈에서는, 일본이 스스로를 직시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현대 일본이 처한 문제의 핵심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만들어진 과거, 의도적으로 잊힌 역사 속에서 개개인이 자신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정립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과거사가 과거가 아닌 현재의 문제요, 타국과의 관계가 아닌 자신들의 문제인 까닭도 이 때문이라고 본다. 메이지유신 시대부터 지금까지의 일본 소설에 비친 일본인의 자화상을 탐구한 뒤, 일본 문화예술이 처한 한계를 지적한다. “…무엇보다 국민총생산주의의 잔해로 보인다. 오카모토 타로가 말한 ‘인간이 자신의 과거와 맺는 살아있는 연관’을 국민총생산주의가 말소해버렸다. 단절된 관계를 다시 엮어나가기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 그러나 젊은 예술가들은 이런 현실을 직시하는 대신 이 단절을 무시하기로 결심했다. 역사 없이도 삶을 영위하고 창조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척했다(396·397쪽).” 저자는 침묵하는 과거와 불협화음 가득한 현재에다 뒤섞인 일본을 그저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일이 일본 작가들에게 주어진 과제이자 일본인이 자신들을 찾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10장 그들 안의 타자에서, 저자는 일본의 문제는 일본에 사는 모든 구성원의 문제라는 것을 놓치지 않고 일본 내의 타자들인 피차별 부락민, 아이누족, 오키나와인, 재일 한국인,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에 주목한다. 저자는 일본 내의 타자들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차별 받는 삶을 생생하게 전하는 동시에 역사적인 배경을 파헤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일본의 외국인 기피증과 차별이 보여주는 위선과 부당함을 비판하지만 이를 결코 변치 않는 일본의 국민성 등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저자는 오히려 변화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노력에서 일본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모습을 발견한다.
11장 빛바랜 미덕에서는, 저자는 평화헌법을 둘러싼 논쟁을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전후 일본인에겐 단지 두 가지의 선택이 있었다. 에드윈 라이샤워 같은 사람이 독려한 대로 ‘국제주의자’가 되든지 아니면 국가주의자로 남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국가주의는 지극히 위험한 이데올로기로 낙인찍혔으니 말이다. 국제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미국이 일본에게 준 헌법, ‘평화헌법’ 지지를 뜻했다. 그러나 저자는 평화헌법의 골자인 9조, 즉 법률로 명기된 사항만 자위대의 활동을 허락하는 조항이 매번 국내외에서 보여준 일본의 정신분열증적인 행동의 원천이라고 지적한다.
우리에게 일본은 무엇인가?『일본의 재구성』은 오늘의 일본과 일본인들을 색안경 없이 만날 수 있는 기회이자 동시에 우리와 공유하는 많은 문제들을 우리보다 먼저 겪고 있는 일본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를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러한 점에서 지리학을 공부하는 전공자뿐만 아니라, 역사학, 문화인류학, 그리고 지역학자들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개론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