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8일 KBS 2TV 주말드라마 ‘오케이 광자매’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3월 13일 시작한 50부작 ‘오케이 광자매’가 예정보다 늦게 끝난 것은 다섯 차례에 걸친 결방 때문이다. 4월 17, 18일은 코로나19로 인한 촬영 중단, 나머지 세 차례는 도쿄올림픽 중계방송으로 결방했다. 모두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결방이라 할 수 있다.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 끝난 것도 그래서다. 이럴 경우 한 회 늘려 종영하기도 하는데, ‘오케이 광자매’는 연장 없이 50회로 끝냈다. 대신 그 시간에 ‘2021 한가위 대기획-피어나라 대한민국 심수봉’을 내보냈다. 따라서 ‘오케이 광자매’ 후속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는 토요일인 9월 25일 정상적으로 시작한다.
여하튼 ‘오케이 광자매’는 시청률 20.3%(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같음.)로 출발해 28.9%로 종영했다. 최고 32.6%를 찍었지만, 평균 시청률은 26.88%다. 직전 드라마 ‘오! 삼광빌라!’의 평균 시청률 27.84%보다 낮은 수치다. 전반적으로 이전 KBS 2TV 주말드라마들에 비해 큰 관심을 끌지 못한 ‘오케이 광자매’라 할 수 있다.
더구나 김순옥ㆍ임성한 작가에 이어 ‘막장 대모’라 불리며 높은 인기를 끌어온 문영남 극본을 KBS ‘왜그래 풍상씨’(2019) 이후 2년 만에 같은 채널에서 선보인 것이라 그런 지적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14차례 30%대로 오르기도 했지만, 첫 주 기록한 26% 시청률에서 크게 올라서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오케이 광자매’는 이철수(윤주상)의 세 딸 광남(홍은희)ㆍ광식(전혜빈)ㆍ광태(고원희), 그녀들 이모인 오봉자(이보희)ㆍ오탱자(김혜선), 그리고 한돌세(이병준)와 그의 아들 한예슬(김경남)이 얽히고 설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건물주가 나오긴 하지만, 일단 번듯한 재벌이 오랜만에 자취를 감춘 KBS 2TV 주말드라마라는 점이 먼저 눈에 띈다.
그런데 이야기 전개가 사뭇 특이하다. 한 번도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세 자매 어머니가 죽은 데서부터 시작하고 있어서다. 전혀 나타나지도 않고 전화 목소리조차 없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펼쳐지는 아주 이례적인, 내 기억으로는 거의 처음인 드라마 전개가 아닐까 싶다.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의 예고편이라 할까.
이런 특이점은 모성애를 부각한 많은 드라마들과 차별화된 내용 전개로 이어진다. 세 딸로부터 어머니 죽인 범인 아니냐는 공격을 당한 아버지가 나중에 알고보니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자식들을 키워낸 계부로 드러나서다. 마누라가 바람 피워 얻은 사생아들을 하나도 아니고 셋씩이나 키워낸 그런 아버지라니, ‘펜트하우스’ 저리가라 할 역대급 반전이라 할만하다.
‘오케이 광자매’는 발생 1년 2개월 만에 코로나19라는 일상현실을 처음으로 담아낸 드라마로도 관심을 끌었다. “코로나 사태가 불거진 뒤 국내 드라마에서 배우들이 마스크를 쓴 채 TV에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한국일보, 2021.4.1.)인 ‘오케이 광자매’다. 그뿐이 아니다. 마스크를 사려고 약국에서 길을 길게 선 사람들과 자가격리까지도 묘사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들이 혼자 사는 아버지에게 그 구하기 어렵다는 마스크를 선물하는 게 효도의 표상처럼 그려지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회가 거듭될수록 배우들 마스크 쓰기는 시들해졌지만, ‘오케이 광자매’는 최종회에서 코로나19 완전 종식으로 묘사해 국민적 희망사항을 담아낸 드라마란 타이틀도 얻었다.
나름 재미있게 지켜본 드라마지만, ‘오케이 광자매’는 너무 과장되거나 말 안 되는 것 천지여서 거역스럽기까지 한 ‘서민 막장극’이기도 하다. 가령 12회에서 예슬이 안 온다고 바쁜 식당일 놔두고 앞치마 두른 채 빌라로 달려가 301호 노크하고 옥상 가서 옛날 일 생각하는 광식이가 그렇다. 3회에서 돌세가 경찰 보자마자 도망부터 치는 것도 너무 과장되어 보기 거역스럽다.
허기진(설정환)의 패륜도 과장되어 보인다. 임신한 광태가 출생의 비밀을 알게되면 충격받는다며 생부인 나치범(정승호)을 패대기쳐대고 있어서다. 돈만 뜯어내려는 노름꾼이고, 전혀 아버지답지 못한 치범일지라도 기진이 그렇게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천륜(天倫)을 어긴 것이라 지적했을 뿐 추호도 기진을 두둔하거나 변호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니 오해는 없기 바란다.
나중에 깊은 후회와 처절한 반성으로 흐느끼긴 하지만, 아버지 철수에게 대드는 패륜적 딸들은 말이 안 되는 경우다. “밥차려 달라는 남자가 어딨어요”라 반문하는 광남에게 혼외 아들 들켰다고 무릎까지 꿇은 채 비는 남편 배변호(최대철)도 마찬가지다. 우리 같은 베이비부머 세대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면들이다.
앞에서 ‘말 안 되는 것 천지’라 말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게 신분해방이다. 중졸 예슬과 대졸 광식의 사랑 및 결혼이 우선 그렇다. 이는 머슴 자식으로 태어난 돌세와 쥐뿔도 가진 게 없으면서 양반집 종손입네 하는 철수와 사돈되기로 이어진다. 28년 차이가 나는 탱자와 변공채(김만호), 초졸 사채업자로 건물주가 된 허풍진(주석태)과 의사 민들레(한지완)의 결혼도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밥맛 없는 왕재수 캐릭터도 여러 있다. 일례로 사채 얻어 옷 사입는 또라이 광태나 먹는 걸 보면 노상 입맛부터 다시는 기진이 그렇다. 둘의 천생연분을 위한 장치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서민 막장극이 재벌 나오는 드라마보다 더 구질구질한 것임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압권은 예슬로부터 5천만 원을 받아먹고 사라진 나편승(손우현)과 그 가족들이다.
예슬의 5천만 원 갚아주기도 말이 안된다. 광식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한, 그래서 지고지순(至高至純)사랑을 강조한 듯 보이지만, 그럴 처지가 아닌 예슬이어서다. 투잡 등 닥치는 대로 돈벌이에 나선 예슬이가 광식과 그렇듯 연애할 틈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문이 생겨서다. 7급 공무원 광식의 창구 근무도 의문이 들긴 마찬가지다.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있다. 가령 22회에서 예슬이 화물차를 타고 가는 광식을 다짜고짜 끌어내리는 봉자가 그렇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중졸에 알바나 하는 청년이라 그렇게 한 것인가? 제30회에서 철수가 집안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도 안하고 땅속에 둗어둔 돈을 훔치러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계획적인 범행이 아니란 걸 은근히 강조하기 위해서 그런 것일까.
돈 벌러간 공장에서 야식 준비를 하던 광식이 TV에서 예슬의 노래 장면을 보고 마침 거기 와있던 예슬과 함께 냅다 돌세에게 달려간 장면도 이해가 안 되긴 마찬가지다. 그걸 보고 가수 안한다며 유난을 떨어대던 예슬이 180도 변하는 것도 좀 그렇다. 갈등이 고조되긴 하는데, 해소 과정이 다소 뜬금 없어 보이는 경우라 할까.
풍진으로부터 명품시계를 선물받고 “긴 건 긴 거여”라며 좋아 죽는 철수도 비슷하다. “살다보니께 이런 날도 온다”며 돌세에게 시계 자랑질을 해대는 철수는 파열음을 내는 캐릭터다. 시청자들에게 구축되어온, 가진 것 없는 서민의 표상일망정 “아닌 건 아닌 기여”라며 올곧은 삶을 성실하게 살아온 양반집 종손 이미지에서 이탈해버려서다.
제31회에서 만나는 “보자보자하니까 보자기로 보이나”라든가 “염치를 단체로 구워 삶아 먹었나”같이 특기할만한 대사나 부자(부담없이 자는 관계)처럼 준말 은어와 달리 발음상 오류도 짚고 넘어갈 문제다. “비세(빚에→비제) 넘어갔대”(18회), “비시(빚이→비지) 얼마냐?”(26회), “나를 바라보는 눈비시(눈빛이→눈비치) 그래”(41회), “나 끄시(끝이→끄치)야”(42회) 등이 그렇다.
그 외 “요트 운전 가르켜(쳐)줄게”(21회), “공부 좀 가르켜(쳐) 주면”(41회), “빨랑 가르켜(쳐)줘”(50회), “영어 좀 가르킨(친)다고”(50회)에서 보듯 ‘가르치다’ 사용이 전혀 안되어 있다. 아예 ‘가르키다’는 ‘가르치다’와 ‘가리키다’의 잘못된 표기다. 배우보다는 극본상의 문제로 보인다. 37회 ‘구닥다리’도 ‘구년묵이’가 맞는 표기다. 이런 정서법으로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드라마 극본을 써내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자, 이쯤해서 글을 마무리해보자. 살아있는 게 지옥인 철수가 가출에서 안 죽고 다시 돌아온 건 잘한 일이다. 그 덕에 의붓딸들로부터 효도를 받고, 늦장가까지 들어 마냥 행복해져 축하할 일이다. 다만, 뜬금없이 딸들의 고향에 세운 어린이도서관이며 그로 인한 자랑스러운 도민상인지 시민상을 받는 따위 결말은 좀 억지스럽다.
양반집 종손이라지만, 단돈 천만 원도 없을 뿐더러 처제 건물 지하에 빌붙어 사는 철수의 조상 산소가 호화롭다 못해 가히 왕릉급인 것도 너무 생각없는 결말이 아닌가 싶어 씁쓰름하다. 8개월에 이어 다시 1년 후 세 자매가 모두 딸들을 낳고, 맞사위 변호가 변호사 등 직원 80명의 로펌 대표까지 된 해피엔딩도 좀 아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