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1995년 평택시·평택군·송탄시가 하나로 통합되어 평택시가 되었다. 경기미의 본고장으로 넓고 비옥한 평야지대를 이루어 농업개발사업의 중심지역이 되었다. 또한 서울에서 1시간 거리인 교통의 요지로서 조선시대부터 뱃길이 뚫린 삼도의 요충지라고 불렸으며 6·25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서정동과 신장동을 중심으로 상업·위락 도시로 발전했다.
팽성읍·진위면·서탄면·고덕면·오성면·청북면·포승면·현덕면·안중면·군문동·동삭동·비전1동·비전2동·세교동·소사동·신대동·용이동·월곡동·유천동·죽백동·지제동·청룡동·통복동·평택동·합정동·가재동·도일동·독곡동·모곡동·서정동·신장1동·신장2동·이충동·장당동·장안동·중앙동·지산동·칠괴동·칠원동 등 1개읍 8개면 30개동이 있다. 시청소재지는 비전동이다. 면적 437.58㎢, 인구 354,270, 인구밀도 784명/㎢(1999).
평택시 지역 대부분은 옛 진위현·양성현의 남부였으며, 옛 평택현의 일부가 포함되어 이루어진 곳이다. 옛 진위현은 삼국시대에 백제(또는 고구려라고도 함)의 송촌활달(松村活達)·부산현(釜山縣 또는 古淵達部曲)이었다. 757년(경덕왕 16)에 진위현(振威縣)으로 개칭되었으며, 고려시대인 1018년(현종 9)에 수주(水州:수원)의 속현이 되었다가,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후에 현령을 파견함으로써 독립했다. 조선시대에 진위현은 경기도 소속이었다.
옛 평택현은 본래 백제의 하팔현(河八縣)으로, 757년에 평택현으로 개칭되었으며, 1018년(현종 9)에 천안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후에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조선초인 1413년(태종 13)에 충청도 평택현이 되었으나, 1505년 등 수차례 경기도로 이관되기도 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진위현과 평택현은 군이 되어 공주부에 소속되었다가 1896년에 진위현은 경기도에, 평택현은 충청남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진위군은 수원군의 15개면과 충청남도 평택군 전역을 병합하여 면적이 크게 확대되었다. 이때 진위군의 성남면·병파면이 통합된 병남면이 1926년에 평택면으로 개칭되었다. 1938년에 진위군을 평택군으로 개칭함으로써 평택군이 진위군의 이름을 대신하게 되었다.
1939년에 평택면, 1963년에 송탄면, 1977년에 팽성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에 옛 양성현지역이었던 안성군 원곡면의 용이·죽백·청룡·월곡의 4개리와 공도면의 소사리가 평택읍으로 편입되어 동부와 동북부가 확장되었다. 1981년에 송탄읍이, 1986년에 평택읍이 각각 시로 승격되어 평택군에서 분리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전통적인 농업지역이던 평택군과 시가지로 발전해왔던 평택시·송탄시가 다시 하나로 통합되어 새로운 도농통합 형태의 평택시를 이루었다(→
송탄시,
양성현,
진위현).
차령산맥의 말단부에 해당하여, 시의 전체적인 지세는 용인시와의 경계를 이루는 북동부산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50m 내외의 낮은 구릉지와 넓은 충적평야를 이루고 있다. 북동부에는 무봉산(209m), 북서부에는 덕지산(德智山 : 138m)·무성산(武城山 : 112m), 통합 이전 평택시와 송탄시였던 동부에는 불악산(151m)·덕암산(165m)·팔용산(132m), 남쪽에는 고등산이 솟아 있으며, 서쪽은 봉화재(112m)가 있을 뿐 서해에 면하고 있다.
주요하천으로 안성천·진위천·발안천·둔포천 등이 있다.
안성천은 시의 남서부를 서류하며, 덕암산에서 발원한 도일천과 안성군 백연봉(236m)에서 발원한 원곡천이 합쳐져서 아산만으로 흘러든다.
진위천은 평택시의 주천으로 용인시 부아산(404m)에서 발원하여 남류하다가 오산천·황구지천·관리천·좌교천 등 크고 작은 지류를 합하고 안성천과 합류한다. 시의 북서부를 흐르는 발안천은 화성시와 경계를 이루면서 남양호에 흘러들며, 둔포천은 아산시와 경계를 이루며 시의 남동부를 흐른다. 안성천과 진위천의 유역 일대에는 하천의 퇴적작용으로 이루어진 비옥하고 넓은 충적평야와 하류의 간척평야로 이루어진 안성평야(평택평야)가 펼쳐져 있다. 진위천·안성천 하류 서안과 아산만 북부연안은 평택지구 대단위 농업종합개발사업에 의해 아산만 방조제와 남양방조제를 쌓아 농경지 1만 6,000ha와 간척농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할 수 있는 대규모 인공 담수호를 조성했다.
서해안의 영향으로 비교적 기온의 연교차가 작은 온화한 기후를 보인다. 연평균기온은 12.3℃ 내외, 1월평균기온은 -2.3℃ 내외, 8월평균기온은 26℃ 내외이다. 연평균강수량은 1,226.4㎜ 정도이지만 연간변동률이 커서 800~1400㎜의 변화를 보인다. 소나무·참나무·떡갈나무·오리나무·밤나무 등이 주로 자라고 있다.
통합 이전 송탄시 지역은 1950년대초까지만 해도 한적한 농촌이었으나, 6·25전쟁을 계기로 시작된 미군 주둔의 영향으로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러한 인구증가 추세는 1980년대에 들어와 수도권의 확산, 기지촌으로서의 역할 강화와 함께 계속되어, 1973년 5만 3,486명이었던 인구가 1980년에는 6만 3,753명으로, 1990년에는 7만 7,460명으로 늘어났다. 또한 통합되기 이전까지 전체적으로 인구가 감소했다. 1980년대 이후의 인구를 보면 1980년 23만 4,133명, 1985년 18만 523명, 1990년 11만 5,156명으로 1980~90년에 50.8%가 감소했다. 이는 이촌향도에 의한 농촌지역의 인구감소와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1981년에 송탄시, 1986년에 평택시가 분리되어 나간 때문이다. 가구수도 같은 기간에 4만 9,149가구에서 4만 2,148가구로 약 14.2%가 감소했고, 가구당 인구수도 4.8명에서 2.7명으로 줄었다.
한편 평택시는 전체적으로 인구유입지역이다. 1980년대 이후의 인구를 보면 1980년 6만 842명, 1985년 7만 1,628명에서 시로 승격된 1986년에는 7만 2,693명, 1990년 7만 9,238명으로 1980~90년에 30%의 증가율을 보였다. 통합 이후인 1996년에는 32만 1,383명으로, 1990~96년에는 인구가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가구수는 1980년 1만 2,260가구에서 1996년 10만 1,508가구로 10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가구당 인구수는 같은 기간에 5.0명에서 3.2명으로 줄어 인구증가와 함께 핵가족화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1999년 현재 평택시 인구는 35만 4,270명이다. 통합시의 행정동별 인구분포를 살펴보면 농촌지역인 면 지역에 전체 시인구의 25.2%가 분포하고 도시지역인 읍·동 지역에 74.8%가 분포하고 있다. 비전동(5만 5,434명)·서정동(3만 3,501명)·중앙동(3만 182명) 등에 인구가 많다. 시가지는 행정·교통상업의 중심지인 비전동·세교동·평택동·합정동 일대와 서정동·신장동·지산동 등에 형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합정동·비전동·서정동 일대에는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신주택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특히 서정동에는 각종 공공기관들이 들어서 있다. 농촌취락은 괴촌이 대부분이지만 팽성읍 안정리, 안중면 안중리는 도시화되어 시가지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팽성읍 안정리는 오산비행장 등 일대의 미군기지로 형성된 기지촌으로 이국적인 도시경관을 보인다. 그밖에 오성면 숙성리, 청북면 어소리, 팽성읍 원정리, 포승면 만호리·석정리, 현덕면 화양리, 고덕면 해창리 등은 500가구 이상이 거주하는 대취락으로 발전했다. 아산만방조제 북단의 현덕면 권관리 일대에는 관광지개발과 함께 호텔을 비롯한 각종 서비스 위락시설이 많이 들어서 있다.
평택화력발전소 /평택화력발전소, 경기 평택시 포승면 ...
평택평야 /평택시와 화성시, 안성시에 펼쳐져 ...
중심산업은 농업이나, 편리한 교통과 평택항의 개발 등으로 제조업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총경지면적은 230.65㎢이며, 이 중 논이 175.66㎢, 밭이 54.99㎢로 논이 밭의 3.1배나 된다. 경지율은 52.71%로 경기도 내에서 가장 높고, 경지면적은 화성시 다음으로 넓다. 가구당 경지면적은 1.64㏊이며, 농업가구는 전체가구의 12%를 차지한다. 주요농산물은 경기미로 알려진 평택쌀을 비롯하여 콩·감자·배추·오이·토마토·시금치 등의 채소류와 배·사과·복숭아·포도·참외 등이 많이 난다. 특히 평택 배는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진위면은 채소류, 팽성읍은 배와 사과의 주산지이다. 교통이 편리하고 대규모 소비지에 인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과수원·목장 등으로 이용하기 좋은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어 축산을 비롯한 근교농업이 발달했다. 팽성읍·고덕면·청북면·현덕면 등을 중심으로 젖소·닭·개·산양 등이 주로 사육되고 있다. 임야면적은 95.15㎢로 전체 면적의 22%를 차지하며, 밤·도토리·잣·대추·호두·표고버섯 등이 생산되고 있는데 특히 도토리와 잣은 한강 이남에 있는 경기도 내 시·군 지역 가운데 최대 생산량을 보인다. 수산업은 주로 포승면과 접해 있는 아산만 일대에서 숭어·새우·꽃게 등을 어획했으나, 이 일대에 항만이 조성되면서 모든 수산업활동이 중지되었다.
시내에는 총 1,642개의 제조업체가 있으며, 종사자수는 3만 4,931명이다(1999). 진위면·서탄면·포승면·안중면·세교동·모곡동·칠괴동에 주로 분포한다. 자동차공업·기계공업·전자공업·섬유공업·식품공업이 주종을 이룬다. 규모가 큰 업체로는 LG전자 평택공장·영진약품·매일유업·한국야쿠르트 등이다. 포승면 원정리에는 1986년 연간 200만t의 액화천연가스(LNG) 입출항으로 평택항이 개항했고, 1991년 화성군(지금의 화성시) 우정면 매향리에서 당진군 송산면 성구미리를 잇는 선상으로 항만이 확대되어 이 지역의 전해안이 포함되었다. 또한 원정리에 총시설용량 140만kW인 중유 및 액화 천연 가스 겸용의
평택화력발전소가 건설되어 연간 약 49억kWh의 전력을 수도권 및 평택지구에 공급하고 있다. 1999년 현재 상설시장 8개소, 정기시장 5개소, 백화점 1개소, 금융기관 30개소, 식품접객업소 5,364개소, 숙박업소 232개소로 각종 서비스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
경부선이 동부지역을 남북으로 통과하여 서울과 대전 방면으로 연결된다. 북동부에는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며 안성시와의 경계에 있는 안성 인터체인지를 통해 차량출입이 가능하다. 서울-목포를 잇는 국도가 경부선과 나란히 남북으로 통과하고 있어 도로 교통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그밖에 제천으로 이어지는 국도가 동서축을 이루며, 용인-아산을 잇는 국도가 지나는데 이들 국도는 경기도 남부의 평야지대와 내륙지방을 연결하는 핵심 교통로이며, 평택역 부근에서 서로 교차된다. 서울과는 1시간 30분 이내의 거리이며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과 서초구 서초동 남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고속버스와 시외버스가 수시로 운행되고 있다. 특히 서울과 안성·천안·서산·당진 사이를 운행하는 시외버스는 대부분 평택 시외버스 정류장을 경유한다. 그리고 인접한 오산시와는 하나의 시내교통권으로 연결하는 시내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서부를 지나는 서해안고속도로가 2001년에 완공되면, 충청남북도·호남지방과 수도권을 잇는 지역으로 새로운 발전이 기대된다. 도로총길이 602.1km, 도로포장률 89%이다(1999).
심복사석조비로자나불좌상 /심복사석조비로자나불좌상(통일신라), 보물 제565호, 상높이 ...
시내에는 국가지정문화재(보물 3, 중요무형문화재 1),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3, 기념물 4), 문화재자료 3점 등이 있다. 신석기시대의 주거지와 돌칼, 무늬없는토기 등이 팽성읍 두정리에서 발굴되어 신석기시대부터 이 지역에 인간이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불교문화재로 현덕면 덕목리에 고려시대 말기인 1375년에 만든 심복사석조비로자나불좌상(深福寺石造毘盧舍那佛坐像:보물 제565호)과 진위면 동천리에 만기사철조여래좌상(萬奇寺鐵造如來坐像:보물 제567호)이 있다. 그밖에 사찰로는 심복사·망한사(望漢寺)·약사사(藥師寺)·지장사(地藏寺)·관음사(觀音寺)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 조선시대 초기의 목조건물인 팽성읍 객사리의 평택향교(平澤鄕校:경기도 문화재자료 제4호), 진위면 봉남리의 진위향교대성전(경기도 문화재자료 제40호)이 있다. 정도전선생사당(鄭道傳先生祠堂)이 진위면 은산리에 있으며, 이 사당에는 1791년에 인간(印刊)된 삼봉집목판본(三峯集木版本: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2호)이 보관되어 있다. 병자호란 때 활약한 3학사(三學士) 가운데 한 사람인 홍익한(洪翌漢)의 행적비가 있는 홍학사비각(洪學士碑閣: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호)이 팽성읍 본정리에 있다. 그밖에 월곡동의 효부전의이씨정려(孝婦全義李氏旌閭), 죽백동의 허국효행정려(許國孝行旌閭), 독곡동의 이성부충절정문(李聖俯忠節旌門) 및 오달제(吳達濟)·조광조(趙光祖) 등을 모신 충의각(忠義閣)이 이충동에 남아 있고, 소사동에는 대동법시행기념비(大同法施行紀念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0호)가 있다. 이 기념비는 1659년(효종 10) 김육(金堉)이 충청감사로 있을 때 삼남지방에 대동법을 시행하면서 그 지방으로 통하는 길목에 세운 것이다. 그밖에 비전동에는 충혼탑·현충탑·덕동루(德東樓)가 있으며, 용이동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참전기념비가 있고, 포승면 희곡리의 이대원장군묘(李大源將軍墓:경기도 기념물 제56호)와 삼국시대 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농성(農城:경기도 기념물 제74호)을 비롯한 많은 성터가 있다.
주요관광지로 1977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아산호관광지를 비롯하여 남양호 등이 있다.
아산호관광지는 현덕면 권관리와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를 잇는 아산만방조제(길이 2,564m)를 쌓아 조성된 곳으로 횟집과 낚시터가 많다. 남양호는 포승면 원정리와 화성시 우정면 이화리 사이에 놓인 남양방조제(길이 2,064m)로 조성된 호수이다.
주말에는 동북부 구릉지와 용인 방면으로 통하는 국도변에 들어선 배·복숭아·포도 과수원을 찾는 가족단위 관광객이 점차 늘고 있어, 일부에서는 관광농원의 개발을 서두르고 있으며, 신장동 일대를 비롯하여 미군부대 주변에 형성되어 있는 이국적인 상가가 관광자원으로 한몫을 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전통 교육기관으로 평택향교·진위향교가 있다.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은 1900년 진위면 봉남리에 개교한 진위초등학교이고, 1913년 비전동에 성동초등학교가, 1922년 서정동에 서정리초등학교가 문을 열었다. 1920년대에는 안중·청북·부용·내기 초등학교, 1930년대에는 서탄·고덕·현덕 초등학교, 1940년대에는 송탄초등학교·죽백초등학교·평택중학교, 1950년대에는 송북초등학교·효명중학교·평택여자중학교·한광중학교·평택고등학교·평택여자종합고등학교·효명종합고등학교, 1960년대에는 송신초등학교·복창초등학교·태광중학교가 문을 열었다. 1999년 현재 유치원 86개소, 초등학교 48개교(분교 7개교 포함), 중학교 18개교, 고등학교 17개교와 평택대학교가 있으며, 진위면에 특수학교인 에바다농아원이 있다. 문화시설로는 평택시립도서관, 평택시문화원, 평택시공설운동장과 평택·송탄·안중문화예술회관 등이 있다.
시 승격으로 1986년 평택문화원이 평택시문화원과 평택군문화원으로 분리되었다가 1995년 다시
평택시문화원으로 통합되었다. 매년 5월에 열리는 시민의 날 행사로 소사벌한마당축제 등 각종 향토문화예술행사를 주관·후원하여 애향심 고취에 공헌하고 있다. 그밖에 문화행사로는 정월 보름 전날 행하는 자란동신제, 단오날 행하는 병남단오행사 등이 있다.
이 지방에 전래되는 민속놀이로는 경기농악을 대표하는 평택농악놀이와 백중놀이·씨름 등이 있다. 남사당패에 이 지역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진위패가 있을 만큼 유명하다. 평택농악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는 농악의 장단인 쇠가락이 여성적이고 섬세하다. 설화·전설로는 조선시대 성종·중종대의 효자로 이름이 높았던 〈최자반(崔子泮) 이야기〉·〈풀무골 이야기〉·〈아홉무덤 이야기〉·〈빈터고개 이야기〉 및 다수의 지명설화와 함께 〈효부 전의이씨 전설〉·〈복소혈 전설〉·〈돌부처 전설〉·〈용우물 전설〉·〈맹정승〉·〈인심담전설 印沈潭傳說〉·〈임경업장군과 누이전설〉·〈망한사유래설화〉 등이 전해진다. 농사일에 관련된 노동요로는 〈상사디야〉·〈방개타령〉·〈에헤요〉·〈올라가세〉·〈논매기소리〉·〈모내기소리〉 등이 불렸으며, 의식요인 〈상여소리〉, 집터를 다질 때 부르는 〈지경소리〉, 묘터를 다지면서 부르는 〈회방아소리〉 등도 전승되고 있다. 1999년 현재 종교기관으로는 개신교 교회 552개소, 천주교 교회 18개소, 불교 사찰 61개소가 있다. 의료기관으로는 종합병원 1개소, 병원 8개소, 의원 138개소, 치과의원 59개소, 한의원 40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22개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로는 소사동에 지체부자유아보호시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