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긋 불긋 화려한 자연을 뽐내던 가을이 점차 지나고 모든 자연이 휴식을 취하는 겨울이 오는 시점입니다.
영남불교문화연구원 삼국유사유적답사회 제40회를 맞이하여 이번 장소는 "물레방아의 고장 함양"으로 갑니다.
답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쪼개야 하기에 전날밤에도 레포트다 논문이다 작성하다가
30분만 자야지 하는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엎드렸다가 알람시각을 못듣고 같이 가기로 한 친구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함양 답사 대신에 꿈나라 답사를 다녀올뻔했습니다.. (아마 땅을 치고 후회했을까요..)
부랴부랴 총무님에게 연락드리고 빨리 갈 마음으로 집 앞으로 나왔는데 신기하게도 택시 잡기 어려운 제 집 도로가에는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택시가 한대 딱 서 있는겁니다.. 아마 택시 못잡았으면 절대로 참석하긴 어려웠겠지요..
기사님께서 원래 이길은 택시가 다니는 길도 아니었는데 자신은 웬지 이 길로 오고 싶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어쩌면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이 이런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이번 답사를 꼭 참여하라고 하시는 神의 도움이실지도요..
이렇게 새벽부터 화려한(?) 저의 여행기는 시작됩니다.
1. 연암 물레방아 공원
모자란 잠을 버스에서 채우면서 머리를 이리 끄덕~ 저리 끄덕 친구랑 머리를 맞대면서 자다가 비몽사몽간에 도착한곳이
연암 물레방아 공원입니다. 원래는 용추계곡으로 유명한 곳인데 용추계곡이 여름, 가을에만 손님이 많이 찾다보니 이곳에
물레방아공원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 아침 정신없는 머리카락 를 날리고(?)... 기념사진 찰칵~~
▲ 이곳이 바로 연암 물레방아 공원이더래요~~~ (오른쪽)
▲ 물레방아 공원 왼쪽이더래요~ 옆에 아이들의 크기랑 비교하면 물레방아가 참 큽니다.
물레방아의 고장 함양이라고 들었을때, 동네 마다 있는 물레방아가 왜 함양에서 유명한지에 대해서 궁금했었습니다..
알고보니 함양은 연암 박지원이 안의현감(1792~1797)년으로 부임하면서 중국에서 본 물레방아를 처음 만들었다고 하네요.
제가 아주 어렷을때 저희 큰집에서도 물레방아를 사용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물레방아를 수입(?) 해왔던 연암의 공로를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제가 기억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앞으로는 꾸준히 기억할려고 합니다.
기억해야 할 곳임에는 분명하지만, 과연 모르는 사람이 볼때는 이곳이 과연 관광지로서, 그리고 기억해야할만 장소인지
확실하게 모를수도 있겠어요. 중요한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함양 군청 분들의 마케팅 부분이 좀 부족하구나 생각했습니다.
원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나네요.
연암이 중국에 다녀와서 안의현감을 하면서 물레방아만 수입한 것이 아니라 중국식 벽돌로 집도 지어보았다고요.
물레방아만 딱 둘것이 아니라, 연암이 만들었다는 집의 모양도 같이 복원했으면 좋겠다. 고 하셨어요.
제 생각도 같아요. 단순히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물레방아만으로는 연암이라는 인물을 대표하기엔 좀 모자라지 않나 생각합니다.
만약에 제가 연암과 물레방아를 만들었다 한다면... 연암과 물레방아를 하나의 캐릭터화 한다음에, 연암과 물레방아의 이야기를
하나의 전래동화식으로 재미있게 각색해서 사람들이 널리 알 수 있는 방법을 택한 다음에 물레방아 공원을 만들었을꺼같아요.
실제적으로 이솝이야기 하나만으로 그리스에 여행오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요.. 알고보면 우리나라 전래동화만도 못한데...
2. 안의현청 터 (안의초등학교)
다음으로 간 곳은 안의초등학교로 갔습니다. 이곳이 원래는 안의현청이 있었던 자리라고 합니다.
원장님께서 가장 좋은 풍수에 속하는 곳이 바로 이곳 자리라고 하네요. (솔직히 저는 풍수에 대해 몰라서요.. 훌쩍)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화 한 다음에 각 지방의 관아를 부순다음에 학교를 지었다고 합니다.
속내는 확실하게 모르겠으나 가장 중요한 장소에 아이들이 마구마구 짓밟아라 라는 의미로 했다고 하네요.
실제적으로 일제강점기때 우리나라의 중요한 장소에 학교를 많이 세웠다고 하네요.. 상처입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상처입은 역사의 장소이긴 하지만.. 학교가 있는 곳은 풍수적으로 가장 좋은 장소이기에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아이들이 좋은 기운을 듬뿍 받아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희현청 터에는 연암을 기리는 사적비가 있습니다.
▲ 이것이 바로 연암 사적비 입니다.
3. 함양 허삼둘 가옥 (안의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습니다.)
다음으로 간 곳은 허삼둘 가옥입니다. 정확한 명칭은 안의 금천리 윤씨 고가 라고 하네요.
이 고택은 윤대홍이 허씨문중에 장가들어서 부인 허삼둘과 함께 70년전에 지은 집이라고 합니다.
▲ 이곳이 허삼둘 가옥의 정경입니다.
사람이 살지 않아서 그런지 제가 살고싶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집이었습니다. 겨울의 앙상함과 인적 없음이 함께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다보니 불이나서 집의 대부분이 까맣게 탄 채로 남아있었습니다. 이것을 볼때마다 사람들이 과거에 대해서 좀더 애뜻함과 소중함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나 미래는 만들어나갈 수 있지만, 과거는 다시 만들어낼 수 없는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이기 때문이니까요..
불을 일으킨 누군가는 장난에서 혹은 홧김에 일으킨것일수도 있지만, 그 사람의 사소한 하나의 행동 때문에 먼 미래의 후손들이 과거를 모르게 할 순 없지 않을까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 군데 군데 새까만 허삼둘 가옥의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처음에 이 집을 지었던 사람들의 기뻐했을듯한 마음이 느껴지기에 더더욱 아픕니다.
▲ 가옥의 오른쪽 끝을 지나 문으로 들어가면...
▲ 허삼둘 가옥의 안채 모습이 보입니다.
▲ 허삼둘 가옥의 특이한 부엌입구
여기에는 일반 전통가옥과는 다른 부분이 존재하는데요. 부엌으로 가는 문이 조금 특이한 모습을 보입니다.
원장님의 설명을 들으면 이 부엌의 구조로 보아서 양반이 살았다기 보다는 일반 졸부(?) 혹은 평민(?) 들이 살았던 집의 구조형태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양반가옥하고 허삼둘 가옥하고 비교하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네요.
곰곰히 살펴본 결과로 말하자면 허삼둘가옥이 실리적인 구조를 사용하려고 하였는데, 그러다보니 집의 구조가 어정쩡하고 무언가 모자람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 허삼둘 가옥 뒤편의 모습.. 많이 특이하죠?
허삼둘 가옥을 구경하고 돌아오는길에 원장님께서 설명해주신 부분이 생각나네요.
허삼둘 가옥은 풍수적으로 좋은 지형의 끝자락에 속한다고, 그렇기에 어지러운 기가 모이는 공간에 집을 지었다고 하네요.
풍수는 모르지만.. 아마도 좋은 명당은 돈이 있거나 재력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살았을 것이고..
사람들이 좋은곳을 차지하고 남은 곳중에서 그나마 좋은 지형을 찾은곳이 바로 이곳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무언가 많이 채우거나 혹은 좋은 것을 넣으려고 하였는데 결과가 원하는대로 나오지 않은..
이것이 제가 본 허삼둘 가옥의 느낌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은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 모르겠네요.
4. 일두 정여창 고택
다음으로 간 곳은 정여창 고택입니다. 앞에 방문한 허삼둘가옥과 비교하면 재미있을것이라는
원장님의 설명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간 곳이기도 합니다.
▲ 정여창 고택의 가옥 구조를 설명한 안내판입니다.
허삼둘가옥에 대한 설명이나 안내판이 없는것과는 다르게 정여창고택은 설명부터 깔끔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위의 구성도를 참고하자면, 허삼둘가옥은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가장 크게 드는 반면에
정여창고택은 짜임새 있는, 필요한 곳에 제 자리에 있는 그런 느낌이 드는 집의 구조였습니다.
▲ 정여창고택으로 가는 길입니다.
▲ 골목길을 지나서 걸어갑니다..
참고로 오른쪽 담 옆에도 집이 있는데 사람이 살고있었습니다.
▲ 가는길에 정여창 고택에 대한 설명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 정여창고택의 정문입니다.
앞에서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허삼둘가옥의 경우 집의 구조와는 다르게 입구는 큼지막하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정여창고택은 허삼둘가옥의 입구와 비교한다면 작은 형태입니다.
하지만 입구에 가게 되면 보이는 것이 바로 충신, 효자, 정려비 등을 기록한 현판이 눈에 보인다는 점입니다.
훌륭한 집안을 유지하고, 대대로 뜻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을 느꼈습니다.
이 문이 언제나 열려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잠자리와 먹을것을 제공하는 "접빈객"의 역할을 하였겠지요..
그만큼 조선시대 양반가문들은 자신의 청렴함과 함께, 남들에게 베풀 수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역할도 함께 하였다고 하네요.
대문을 지나서 들어가면...
▲ 사랑채의 모습입니다.
앞에서 설명하지 못하였지만 허삼둘가옥과는 다르게 정여창 고택은 현재까지도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관람할때는 조용, 조용히..)
사람이 살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집 전체 분위기가 따뜻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허삼둘 가옥은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추운 느낌과 황량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할까요..
▲ 사랑채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정원입니다.
▲ 사랑채의 오른쪽에 있는 작은 문을 지나갑니다.
▲ 정여창 고택의 안채 모습입니다.
사람이 많아서 제대로 된 사진이 안나와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였는데요 (다음에 개인답사를 통해서 자료수집을 해야겠습니다.)
사랑채의 화려함이 있다고 한다면, 안채는 소박함이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꺼 같네요.
걸어다니면서 느꼈던 것은 "공간에 낭비가 없구나" 라는 느김이 강했습니다.
▲ 정여창 고택 바깥에서 찍은 사진..
원래는 사진이 좀 더 많아야 하는데, 배터리 문제로 사진을 원하는대로 찍지 못했어요.. 나중에 다시 배터리를 충전할 시간은 있었지만..
마지막 딱 간당간당할때 찍은 극적인 사진 한장(?)이 바로 이 사진입니다.
허삼둘가옥의 사진과 비교하면 가장 큰 차이가 보이는 부분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허삼둘 가옥이 차가운 분위기가 많다고 한다면, 정여창 고택은 따뜻한 분위기가 있다. 라고 정의가 가능할 꺼 같습니다.
정여창 고택은 한번쯤 제가 살아보고 싶었던, 꿈꾸던 집의 이상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돈 많이 벌게되면 혹은 나이를 먹고 은퇴를 하게 되면 이러한 집을 짓고 살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으니까요.
다만 여행에 있어서 단점이 있다면..
아무리 찾아도 화장실을 보기가 참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실은 정여창고택에 도착할 쯔음에 화장실에 가고 싶었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조금 힘들어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부분에 신경을 좀 써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 학사루
정여창 고택을 보고 난 뒤에 간 곳은 함양군청 앞에 있는 학사루 입니다.
당시의 뛰어난 학자들이 이곳에 와서 4계절을 느끼고, 자연의 경치를 보고, 한편의 시와 학문을 나누던 공간입니다 즉 학문의 공간이지요.
▲ 학사루의 모습입니다.
학사루 기둥에 보이는 한자는 학사루에서 보여지는 4계절(봄, 여름, 가을, 겨울)을 시로 읊은 거라고 합니다.
당시에 학자들이 이곳에서 느껴지는 4계절을 표현할때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는거 같네요.
아쉽게도 올라가 볼수는 없었지만 멀리서 보아도 좋았던 학사루의 모습이었습니다.
6. 점심식사
학사루 구경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이동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여행의 꽃은 바로 "식사" and "별미"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지방에서든 어느 지역에서든 좋은 문화를 체험하고 유적을 본 다음에는 먹는것도 중요하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먹는것만 좋아하는것은 절~~~~ 대로 아닙니다.
저희가 식사를 한 곳은 함양군청 앞에 있는 조센집 이라는 작은 식당입니다
이 작은 식당을 어떻게 찾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고민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군청에 직접 전화하셔서 맛있는 맛집을 물어보셨다고 하시네요.
앞으로 제가 여행할때도 이 방법을 이용하면 손해보지 않는 식사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제가 공익생활을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각 지역에 가장 맛있는것은 공무원 분들이 제일 잘 아시더라고요.^^
▲ 함양군청 앞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 기다리는 동안 나온 밑반찬
작은 식당이어서 그런지 단체로 식사를 하려고 들어갔더니 시간이 좀 오래걸리는거 같더라고요
기다리는동안 미리 밑반찬을 주셨는데 맛을 보니까, 직접 집에서 만드신 반찬 같더라고요.
그중에서 겉절이가 제일 맛있었는데...
나중에는 배가 너무너무 고파서 공기밥 먼저 받아서 밑반찬으로 한공기 뚝딱 해치웠습니다
▲ 맛있게 생긴 어탕국수입니다 (추르릅...)
처음 먹어보는 어탕국수입니다. 다시 생각해도 침이 무척이나 고이는 메뉴입니다.
사진에 나온건 답사에 함께 간 제 친구입니다.
예전에 다른 지역에서 어탕국수에 도전했다가 엄청 비린맛에 포기했었던 눈물어린 사연이 저에게 있어서 많이 걱정했는데요
이집에서 파는 어탕국수는 시원한 맛이 가장 일품입니다.
말로는 못해요 직접 와서 드셔봐야하는데 ~~~~
저희 팀이 이곳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 몇분이 계속 식사하려고 들여오셨다가 나가셨더라고요.
그만큼 이집은 근처에서 가장 맛있는 집중에 하나가 아닐까 저는 나름 생각해봅니다.
다음에 개인적으로 함양답사를 올 기회가 있다면 꼭 이집에서 드셔보세요~
7. 상림
점심식사를 마치고 두둑한 배를 안고 이제는 좀 걸어서 배를 줄였으면 좋겠다 생각했더니 상림에 도착했습니다.
상림은 고운 최치원이 이곳 지방관으로 있을때 조성한 곳이라고 하네요.
▲ 함양 상림의 입구입니다.
이곳이 출발이면서 도착지입니다. 문화유적지이기도 하지만, 함양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민 쉼터와 같은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걸어다니면서 함양상림에 대해서 지역 사람들에게 여쭈어보니 문화유적지보다는 휴식처로서 많이 알고 계시더라고요
함양 상림은 신라 진성여왕때 고운 최치원 선생에 의해서 강둑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했던 인공 숲 이라고 전해집니다.
그만큼 이 지역에는 홍수로 인하여 많이 피해를 보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학자로서 생각해보면 당시 신라시대때 치수법의 하나로 둑을 만들고 숲을 조성해서 물길을 조정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는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원래는 상림과 하림으로 두개의 숲을 만들었었으나 지금은 상림만 그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 상림의 길과 물길
상림 안으로 들어가면 걸을 수 있는 길 옆에 물길을 조성해서 물을 흐르게 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의 모~ 물길과는 다르게 상림의 경우 인공적으로 조성한 건 사실이지만, 물의 흐름이 기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아울러 자세히 보니 작은 물고기들이 보이더라고요
물고기들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생태공원의 형태를 취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상림은 물고기도 보이고... 야생동물보호구역이기도 하더라고요
그만큼 상림의 자연과 사람들 그리고 동물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한 흔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연리지 나무
상림에는 연리지 나무가 두개나 있더라고요.. (연리지 하나를 한그루로 보아야 할지.. 햇갈려서..)
연리지는 두 종의 나무가 하나의 나무로 합쳐지면서 같이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하네요
전혀 다른 두 종류의 나무가 하나가 되어가는 모습을 통해서 옛날 사람들은 사랑의 상징으로 해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하늘에는 비익조, 지상에는 연리지" 라고 한다지요 아마..
비익조는 날개가 한쪽밖에 없어서 둘이 붙어야 하늘을 날 수 있는 전설의 새라고 합니다.
친구가 아니라 연인을 데리고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답니다.
▲ 함화루의 모습입니다.
함화루는 함양읍성의 남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제시대때 총독부에서 철거하려고 하자
함양 사람들에 의해서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일본의 침략에 의해 희생된 우리 역사의 산 증거라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안타까웠습니다.
아직까지도 제 자리에 돌아가지 못하는 모습도요..
언젠가 자기 자리에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함화루 옆에 있는 거북이 돌 입니다.
이 거북이는 어떠한 사연으로 이 자리 있게 되었을까요..
오랜 세월동안 이 거북이는 함화루와 함께 세월을 흘러 가고 있나봅니다.
▲ 이녀석도 연리지 입니다.
▲ 문창후 최선생 신도비 입니다.
문창후는 고운 최치원의 시호라고 합니다.
진성여왕때 이 곳에 고운 최치원 선생이 상림을 만든 공적을 기려서 그의 후손들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최치원의 경우 당대보다는 후대에 많은 평가를 받는 인물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럴때마다 생각하는것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부정적인 것이 후대에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그것이 바로 역사의 신비로움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상림에 있는 석조 여래 입상 입니다.
곡선미를 강조하고 세련미를 강조한 형태로 보아서는 신라시대때의 불상 같습니다만.
확실하게 자료가 남지 않은거 같아서 추측만 해볼 뿐입니다.
부처님의 수인이 보이지 않는것은 이 석불이 하나의 돌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손마디 부분만 다른 돌에서 깍아서 붙인 형태라고 원장님께서 설명해 주시더라고요..
설명을 듣고 자세히 보면서 만져보니 여래의 광배에 글자 비슷한게 새겨진 것을 만져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학식이 모자라서 확답은 할 수 없지만 "범자" 같았습니다.
혹시 아시는분 없으신가요오~~
▲ 상림에서 나오면서..
석조 여래 입상을 보고 상림에서 나오는 길에 풍경이 좋아서 한컷 찍었습니다.
▲ 벽송사로 가는길에 꼬불꼬불한 길이 재미있어서 한장 찍었습니다.
보이는 분은 재미있으셨겠지만 사실은 이 길을 버스타고 올라갈때마다 얼마나 식겁했는지 모르겠네요
맞은편 차가 내려올때마다 속으로 어어어어~~ 하면서 손잡이를 꼭 붙잡고 올라왔습니다.
8. 벽송사와 서암정사
다음으로 간 곳은 선불교의 본산지로 불리는 벽송사로 가 보았습니다.
이 절은 후대 즉 조선 중종때 벽송선사에 의해 창건된 절이라고 합니다. 후에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수행한 곳이라고 하네요
그러나 벽송사가 제일 유명한 것은 바로 "변강쇠 타령" 때문입니다.
변강쇠가 옥녀와 결혼하여서 벽송사에서 살림을 차렸는데, 변강쇠가 무척 게을렀다고 합니다.
옥녀가 변강쇠에게 땔감을 베어 오라고 하였더니 변강쇠는 산에 올라가서 게으름을 피다가 시간이 되자
장승을 꺽어와서 불태웠다고 합니다.
그러자 장승즐이 사발통문을 돌려서 변강쇠를 혼내준 곳이 바로 "벽송사" 라고 원장님께서 재미있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 왼쪽 서암정사 부터 올라가봅니다.
▲ 가파른 산길을 걸어올라가면 서암정사의 입구가 눈에 보입니다.
▲ 서암정사 입구에 있는 사천왕상 입니다.
형식이나 모양이 많이 보던것과는 다르다고 느껴지실겁니다.
이 사천왕상은 만들어진지 얼마 안된 현대의 사천왕상이라고 합니다.
조각의 모습이나 조각의 깊게 패임은 요즘 절에서 만들때 유행하는 모습이라고 하네요
이것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하나의 문화유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겠죠?
500년후에 혹은 천년 후에 이 사천왕상이 이 자리에 계속 자리를 잡고 있고 역사학자가 보았을때 어떠한 생각을 할지 궁금해집니다.
▲ 올라가는길에 작은 부처님도 계셨습니다.
신경쓰지 않으면 쉽게 지나치는 작은 길에 계시던 부처님..
크고 웅장한 부처님도 물론 멋있지만, 이렇게 소박하게 한 곳에서 소원을 들어주시는 부처님도 참 정겨웠습니다.
▲ 본격적으로 서암정사로 들어갑니다.
서암정사로 가는 길은 바위를 깍아서 길을 내었는지, 길이 좁은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찰의 정문과는 다른 형태여서 많이 낯설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중국 무협 영화에 보면 이런 문이 많던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서암정사 석굴법당의 입구 입니다.
▲ 석굴법당 안으로 들어가봅니다..
▲ 석굴법당 안의 내부 모습 입니다.
▲ 석가여래 부처님의 모습입니다.
부처님의 좌, 우에는 협시보살이라고 불리는 부처님들이 계십니다.
오른쪽에는 손에 정병을 쥐고 계신 모습으로 보아서는 관세음보살(관자재보살) 이신거 같고요. 왼쪽에 계신 부처님은 대세지보살님이신거 같네요.
대세지보살님은 지혜의 빛으로 모든 중생의 미혹함을 없애주는 보살님이시고요.
관세음보살님은 미륵이 오실때까지 중생들을 고통으로 부터 지켜주시는 모든 것을 들어주시는 보살님이십니다.
저도 이곳에서 부처님에게 오늘 답사에 참여하게 해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드릴 수 있는 시간을 가져 보았습니다.
▲ 지장보살 님의 모습입니다.
특이하게도 이곳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함께 지장보살님이 같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지장보살님은 지옥에 있는 모든 영혼을 구제할때 까지는 자신의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목적을 가지신 부처님입니다.
손에 석장과 여의보주를 가지시고, 저승을 다스리시는 부처님이시기도 하고요.
영가들을 보호해주시는 부처님이시기도 한데요.
아이들이 죽으면 삼도천에서 돌을 쌓으면서 기도를 한답니다.
하나에 아버지를 하나에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쌓으면서 돌탑을 만들어나가면 도깨비가 와서 돌탑을 부순다고 하네요.
슬퍼하는 영가들을 달래주시고 저승으로 인도해 주시는 아이들의 부처님이시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장보살님을 가장 좋아합니다.^^
▲ 나오는 길에 빛에 감도는 부처님의 모습이 너무나 멋있어서 한컷 촬영합니다.
▲ 밖으로 나와서 대나무 오솔길을 지나가면요..
▲ 오솔길을 지나 계단으로 올라가면..
▲ 위에 살짝 잘리긴 하였지만 비로자나부처님이십니다.
비로자나 부처님 즉 일본식으로 말하면 대일여래 라고 불리는 부처님은 손에 지권인을 하고 계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지권인은 지인과 권인으로 상징되는데요 여기서 보이는 비로자나 부처님은 권인을 하고 계신답니다.
밑에 보이는 부처님들은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계시는 부처님으로서 바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님이시고요.
가운데 계시는 동자승은 선재동자로 추정됩니다.
아마 화엄경의 내용을 새긴것으로 추정 됩니다.. (불경 배운지가 가물가물해서요..)
▲ 다시 내려와서 벽송사로 향하는 산길을 올라가봅니다.
▲ 벽송사 입구의 장승입니다.
앞에서도 말하였듯이 벽송사가 유명한 것은 바로 변강쇠타령때문이기도 한데요.
그 내용을 알아서 그런지 여기에 있는 장승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벽송사에서는 장승에 대한 안내판이 없는것으로 보아서는 여기 계시는 스님들은 변강쇠 전설을 중요하게 생각하시지는 않는듯 하네요
앞으로 장승에 대한 부분도 같이 하나의 문화로 간직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벽송사의 모습입니다.
힘들게 올라간 벽송사의 모습이 참 보기에 좋았습니다 (물~~ 무울 주세요... 헥헥)
다음에는 절대로 걸어서 올라오지 않으리~ 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올라왔습니다..
▲ 벽송사의 애교덩어리 강아지.
힘들게 도착하였던 저를 제일 먼저 반겨준 착한 강아지입니다. 멍멍아 너 나랑 우리집에 갈래?
▲ 벽송사 뒤편에서 찍은 벽송사 내의 정경입니다.
▲ 벽송사 삼층석탑의 모습입니다.
벽송사 삼층석탑의 안내문에서는 조선시대에 세워졌다고 하지만 원장님께서는 탑의모습이나 형태로 보아서는 그 이전에 세워진 것이 아닌가 추정하셨습니다.
설명에는 원래 절 내부에 있던 석탑을 뒤로 옮긴것이라고 하셨지만, 원장님께서는 앞에 규봉으로 인하여 기운을 다스리기 위하여 이 탑을 이곳에 세운것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 탑 정면에서 보이는 규봉의 모습입니다.
목을 졸리는 모습의 규봉이라고 하여서 풍수적으로 좋지 않은 부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산 사이에 희미하게 보이는 뒤의 산의 모습이 바로 "규봉" 이라고 하시네요.
9. 함양 덕진리 마애여래입상
원래는 벽송사로서 답사가 종료되어야 하나 원장님과 버스 기사분의 센스로 인하여 마지막으로 들린 곳이 덕진리 마애여래입상입니다.
사실은 많이 피곤하여서 절대로 가고싶지 않았지만 힘을 더 내보자는 의미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 덕진리 마애여래 입상입니다.
현재 이 여래입상 앞에는 절이 세워지고 있었습니다. 약간 어수선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힘들게 올라왔더니 부처님께서 어서오너라 하는 인자한 미소를 저에게 보여주셨습니다.
▲ 부처님께서 보시고 계신 경치입니다.
부처님은 오랜 시간동안 이 자리에 계셔서 이곳을 쭉~ 바라보고 계셨네요.
정면에 보이는 먹음직스러운 감나무가 제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 (꿀꺽)
▲ 마지막 친구와의 기념사진~ 찰칵~
초반부터 요절복통 우당탕 사건 사고가 많았던 저의 함양 답사기였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동네도 있었구나 라는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하여서 돌아갈때는 많은 것을 담고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여행이라는 것이 처음에 기대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담아 갈 수 있기에
그리고 눈으로 보고 발로 걸으면서 당시의 숨결을 가슴속 깊이 담을 수 있기에
어쩌면 인생에서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바로 "여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혼자서는 짧은 시간동안 이렇게 좋은 곳을 많이 갈 수는 없었을겁니다.
아마 2박 3일은 잡고 많은 준비를 했어야만 다녀올 수 있는 코스였지만.
원장님과 운영하시는 총무님 기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기억할 수 있는 작은 추억을..
그리고 이 곳에서 느꼈던 과거와 현재의 숨결을
언제나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못 가신 분들은 사진을 보시면서 조금 샘내주시고요.^^
내년에도 함께 많은 곳을 삼국유사유적답사회 가족분들과 다녀오고 싶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길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영남대학교 국사학과 4학년 안영균 드림
첫댓글 정말 좋은 사진 좋은 설명 잘 보았습니다 ^^ 다음에도 가지 못한 분들을 위해서 올려 주시면 .. 너무 감사 할것 같습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