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철이라 망월평야에는 부지런히 오가는 트랙터와 농부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다. 망월평야는 고려 후기부터 20세기까지의 간척 사업의 결과물로 얻어진 오늘날 강화에서 단일 간척 평야로는 가장 넓은 평야이다. 이곳은 간척 평야에 설립된 마을 중에 망월리는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깊은 마을로 마을이 벌판 가운데 있어 달을 먼저 바라본다고 하여 망월동이라 하였다.
망월리에는 망월돈대부터 무태돈대까지 이어진 만리장성이 있었으나 1998년 대규모 해일로 인해 한국 간척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망월평야의 만리장성 둑이 일부 소실되었다고 한다.
고려산 줄기며 지난번 올랐던 덕산 그리고 오늘 오를 국수산도 반갑다. 좌측으로 망월평야가 펼쳐진다.
망월돈대다. 조선시대의 해안군사시설로 외적의 침입이 많았던 강화는 예로부터 개성, 한양 등 중부 내륙지방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래서 시대마다 해안방어에 각별히 함써 왔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숙종은 이곳에 5진, 7보, 9포대, 53돈대를 축조하였다.
망월돈대는 1679년(숙종 5)에 병조판서였던 김석주에게 강화도의 지형을 돌아보게 한 뒤 어영군 4,000명과 함경도·강원도·황해도에서 뽑은 승병 8,000명을 동원해 49개의 돈대를 축조하였다. 망월돈대도 이때 축조되었다고 한다.
망월돈대로 들어서기 전 서해랑길을 걷는 도보꾼을 만난다. 서해랑길은 전남 해남 땅끝탑에서 인천 강화를 연결하는 109개 코스, 1,800km의 걷기여행길이다.
서해랑이란 서쪽(西)의 바다(파도)와 함께(랑) 걷는 길을 의미한다. 서해랑길 을 따라 걷다보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드넓은 갯벌과 황홀한 일몰, 종교와 문물교류의 역사를 만나게 되는 길이다. 오늘 서해랑길 완주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예전 우리나라의 산줄기 백두대간과 9정맥을 완주하던 날을 뒤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망월돈대에서 서해 황금들녘길 아니 서해 신록의 향연이 찬란하게 펼쳐지는 제방길은 계룡돈대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