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我이면 윤회(流轉)하고, 無我이면 해탈(還滅)한다.
'내가 있다.[有我]'라는 (갈애에 의한 집착인) 邪見이 있었기 때문에 금생에 태어났다.
만약 금생에 태어난 '나'라는 개체가 존속하고 있는 동안에
'내가 있다.'라는 邪見이 제거된다면[無我] 더 이상 再有(punabbhava)는 없을 것이고
금생에서 살고 있는 동안은 舊業인 한 개체로서는 살아가겠지만 죽음 이후에 다시 태어남은 없다.
태어난 모든 유정들의 各自란 自我라고 붙잡은 결과로서의 個體를 말한다.
태어났다는 것은 이미 (무명) 갈애에 의한 邪見에 의해서 取하여 붙잡고(執) 있는 상황이다.
어떠한 유정도 이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다.
금생에서 해탈하게 될 아라한, 욕계에 태어날 때 이미 일래자일지라도
이미 그 분들도 自我라고 붙잡은 個體를 지닌 各自이다.
다만 이 분들은 수행을 통해서 현생에서 自我라고 취하지 않게 되면 아라한,
감각적 욕망은 모두 벗어낫지만 다른 세상에 대한 집착이 남아 있으면 불환자이시다.
이와 같이 무명 (갈애)에 의해서 유전하여 (각각의 근기와 수행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욕계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이 이른바 12연기(苦集)이다.
즉 [自我라고 붙잡으면] 輪廻하고, 만약 그렇게 各自로 태어났더라도
더 이상 [邪見에 의해서 取하는 어떠한 대상(法)도 없으면]
무명이 멸하여 행이 멸하고.... 등등 즉 苦滅이다.
즉 [有我]이면 윤회(流轉)하고, [無我]이면 해탈(還滅)한다.
自利利他
attatthaṃ vā ñassati paratthaṃ vā ñassati ubhayatthaṃ vā ñassati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것을 알고 둘 모두에게 이로운 것을 알고
“tayome, bhikkhave, dhammā nevattabyābādhāyapi saṃvattanti,
na parabyābādhāyapi saṃvattanti, na ubhayabyābādhāyapi saṃvattanti. katame tayo?
kāyasucaritaṃ, vacīsucaritaṃ, manosucaritaṃ.
ime kho, bhikkhave, tayo dhammā nevattabyābādhāyapi saṃvattanti,
na parabyābādhāyapi saṃvattanti, na ubhayabyābādhāyapi saṃvattantī”ti.
비구들이여, 세 가지는 자기도 해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고 둘 모두 해치지 않는다.
어떤 것이 셋인가?
몸으로 짓는 좋은 행위, 말로 짓는 좋은 행위, 마음으로 짓는 좋은 행위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는 자기도 해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고 둘 모두 해치지 않는다.
“mūḷho kho, brāhmaṇa, mohena abhibhūto pariyādinnacitto attabyābādhāyapi ceteti,
parabyābādhāyapi ceteti, ubhayabyābādhāyapi ceteti,
cetasikampi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mohe pahīne nevattabyābādhāyapi ceteti, na parabyābādhāyapi ceteti,
na ubhayabyābādhāyapi ceteti, na cetasikaṃ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
evaṃ kho, brāhmaṇa, sandiṭṭhiko dhammo hoti
akāliko ehipassiko opaneyyiko paccattaṃ veditabbo viññūhī”ti.
바라문이여, 어리석고 어리석음에 사로잡히고 어리석음에 압도된 자는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한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어리석음을 버렸을 때 그는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다.
바라문이여, 이렇게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
attanā ca kāmesumicchācārī hoti, parañca kāmesumicchācāre samādapeti,
kāmesumicchācāre ca samanuñño hoti....
“attanā ca kāmesumicchācārā paṭivirato hoti, parañca kāmesumicchācārā veramaṇiyā samādapeti,
kāmesumicchācārā veramaṇiyā ca samanuñño hoti....
1. “ … 자기 스스로도 삿된 음행을 하고, 남에게도 삿된 음행을 하도록 교사하고,
삿된 음행하는 것에 동의한다. … ”
2. “ … 자기 스스로도 삿된 음행을 멀리 여의고, 남에게도 삿된 음행을 멀리 여의도록 격려하고,
삿된 음행을 멀리 여의는 것에 동의한다. … ”
iti attahetu vā parahetu vā āmisakiñcikkhahetu vā sampajānamusā bhāsitā hoti.
이와 같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혹은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혹은 이득을 얻기 위해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
“taṃ kiṃ maññatha, kālāmā, moho purisassa ajjhattaṃ uppajjamāno uppajjati
hitāya vā ahitāya vā”ti?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의 내면에서 어리석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그에게 이익이 되겠는가, 손해가 되겠는가?
“'안의(ajjhattikaṃ)'라는 것은 자신의 안을 말한다.”(AA.i.84)
“bāhiraṃ, bhikkhave, aṅganti karitvā nāññaṃ ekaṅgampi samanupassāmi
yaṃ evaṃ mahato atthāya saṃvattati yathayidaṃ, bhikkhave, kalyāṇamittatā.
kalyāṇamittatā, bhikkhave, mahato atthāya saṃvattatī”ti.
“비구들이여, 밖의 조건에 관해서는 이것과 다른 어떤 단 하나의 조건도 이렇듯
큰 이로움을 가져오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하나니, 그것은 바로 선우(善友)를 가지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선우를 가짐은 큰 이로움을 가져온다.”
manoduccaritaṃ pahāya manosucaritaṃ bhāveti, suddhaṃ attānaṃ pariharati.
마음으로도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고 좋은 행위를 닦아서 자신을 청정하게 만든다.
tasmā attano uttariṃ bhajethā”ti. 그러므로 자기보다 수승한 사람을 섬겨야 하리.”
upasaṅkamitvā — “bhagavato purato ṭhassāmī”ti osīdatimeva saṃsīdatimeva ,
na sakkoti saṇṭhātuṃ.
seyyathāpi nāma sappi vā telaṃ vā vālukāya āsittaṃ osīdatimeva saṃsīdatimeva, na saṇṭhāti;
evamevaṃ hatthako devaputto —
“bhagavato purato ṭhassāmī”ti osīdatimeva saṃsīdatimeva, na sakkoti saṇṭhātuṃ.
가서는 '나는 세존의 앞에 서리라.'고 하였지만 땅으로 가라앉고 스며들어서 바로 설 수가 없었다.
마치 정제된 버터와 참기름을 모래에 부으면 모래 속으로 스며들고 배어들어서 설 수 없는 것처럼
신의 아들 핫타까는 '나는 세존의 앞에 서리라.'고 하였지만
가라앉고 스며들어서 바로 설 수가 없었다.
atha kho bhagavā hatthakaṃ devaputtaṃ etadavoca —
“oḷārikaṃ, hatthaka, attabhāvaṃ abhinimmināhī”ti .
그러자 세존께서는 신의 아들 핫타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핫타까여, 그대의 거친 몸을 만들어라.”
“mā kho tvaṃ, bhikkhu, attānaṃ kaṭuviyamakāsi.
taṃ vata bhikkhu kaṭuviyakataṃ attānaṃ āmagandhena avassutaṃ makkhikā nānupatissanti
nānvāssavissantīti , netaṃ ṭhānaṃ vijjatī”ti.
비구여, 비구여. 그대는 자신을 더럽게 하지마라.
비구여, 자신을 더럽게 하여 비린내를 풍기면 파리들이
그대에게 몰려들지 않을 것이고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없다.
uppādā vā, bhikkhave, tathāgatānaṃ anuppādā vā tathāgatānaṃ
ṭhitāva sā dhātu dhammaṭṭhitatā dhammaniyāmatā.
sabbe dhammā anattā.
taṃ tathāgato abhisambujjhati abhisameti. abhisambujjhitvā abhisametvā ācikkhati deseti paññāpeti
paṭṭhapeti vivarati vibhajati uttānīkaroti — ‘sabbe dhammā anattā’”ti.
비구들이여, '모든 형성된 것은 무아다.'라는 것은
여래들께서 출현하신 후거나 출현하시기 이전에도
존재하는 요소(界)이며, 법으로 확립된 것이고, 법으로 결정된 것이다.
여래는 이것을 투철하게 깨달았고 관통하였다. 투철하게 깨닫고 관통한 뒤
'모든 형성된 것은 무아다.'라고
알게 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한다.
anicce dukkhasaññaṃ bhāveti...
dukkhe anattasaññaṃ bhāveti...
idha, bhikkhave, bhikkhu yaṃ kiñci rūpaṃ atītānāgatapaccuppannaṃ ajjhattaṃ vā bahiddhā vā
oḷārikaṃ vā sukhumaṃ vā hīnaṃ vā paṇītaṃ vā yaṃ dūre santike vā, sabbaṃ rūpaṃ —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passati.
yā kāci vedanā atītānāgatapaccuppannā ajjhattā vā bahiddhā vā oḷārikā vā sukhumā vā hīnā vā
paṇītā vā yā dūre santike vā, sabbaṃ vedanaṃ —
‘netaṃ mama, nesohamasmsm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passati.
yā kāci saññā atītānāgatapaccuppannā ajjhattā vā bahiddhā vā oḷārikā vā sukhumā vā hīnā vā
paṇītā vā yā dūre santike vā, sabbaṃ saññaṃ —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passati.
ye keci saṅkhārā atītānāgatapaccuppannā ajjhattā vā bahiddhā vā oḷārikā vā sukhumā vā hīnā vā
paṇītā vā ye dūre santike vā, sabbe saṅkhāre —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passati.
yaṃ kiñci viññāṇaṃ atītānāgatapaccuppannaṃ ajjhattaṃ vā bahiddhā vā oḷārikaṃ vā sukhumaṃ vā
hīnaṃ vā paṇītaṃ vā yaṃ dūre santike vā, sabbaṃ viññāṇaṃ —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passa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본다.
그것이 어떠한 느낌이건 … 그것이 어떠한 인식이건 … 그것이 어떠한 심리현상들이건 …
그것이 어떠한 알음알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본다.
“yāvajīvaṃ arahanto adinnādānaṃ pahāya adinnādānā paṭiviratā
dinnādāyī dinnapāṭikaṅkhī, athenena sucibhūtena attanā viharanti;
ahampajja imañca rattiṃ imañca divasaṃ adinnādānaṃ pahāya adinnādānā paṭivirato
dinnādāyī dinnapāṭikaṅkhī, athenena sucibhūtena attanā viharāmi.
imināpi aṅgena arahataṃ anukaromi, uposatho ca me upavuttho bhavissati.
'아라한들은 살아있는 동안 내내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버리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그분들은 준 것만을 받고 준 것만을 받으려고 하며 스스로 훔치지 않아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머문다.
나 역시 오늘 이 밤과 이 낮이 다가도록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버리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여의리라.
나도 준 것만을 받고 준 것만을 받으려고 하고 스스로 훔치지 않아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머물리라.
이러한 공덕으로 나는 아라한을 본받으리라. 그러면 나의 포살은 바르게 준수될 것이다.'라고.
iti mameva tattha accayo accagamā suṅkadāyakaṃva bhaṇḍasminti.
evaṃ kho, bhikkhave, āpanno bhikkhu sādhukaṃ attanāva attānaṃ paccavekkhati.
그러므로 마치 세금을 내어야 하는 사람이 죄를 범한 것처럼 내가 잘못을 범했다.'라고.
비구들이여, 계를 범한 비구는 이와 같이 자신을 잘 반조한다.
“tassa mayhaṃ, bhikkhave, evarūpāya iddhiyā samannāgatassa
evarūpena ca sukhumālena etadahosi —
‘assutavā kho puthujjano attanā jarādhammo samāno jaraṃ anatīto paraṃ jiṇṇaṃ disvā
aṭṭīyati harāyati jigucchati attānaṃyeva atisitvā,
ahampi khomhi jarādhammo jaraṃ anatīto.
ahañceva kho pana jarādhammo samāno jaraṃ anatīto paraṃ jiṇṇaṃ disvā
aṭṭīyeyyaṃ harāyeyyaṃ jiguccheyyaṃ na metaṃ assa patirūpan’ti.
tassa mayhaṃ, bhikkhave, iti paṭisañcikkhato yo yobbane yobbanamado so sabbaso pahīyi.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영화을 누렸고 이와 같이 지극히 편안했던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배우지 못한 범부는 자기 스스로도 늙기 마련이고 늙음을 극복하지 못한 채
다른 늙은 사람을 보고는 자신도 늙기 마련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atisitvā < atisarati : (ati + sar + a) goes beyond the limits; transgresses.)
싫어하고 부끄러워하고 혐오스러워한다.
나도 또한 늙기 마련이고 늙음을 극복하지 못했다.
만약 내가 늙기 마련이고 늙음을 극복하지 못한 채 다른 늙은 사람을 보고는
싫어하고 부끄러워하고 혐오스러워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적절치 않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숙고했을 때 젊음에 대한 나의 자부심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yadā tumhe, kālāmā, attanāva jāneyyātha —
‘ime dhammā akusalā, ime dhammā sāvajjā, ime dhammā viññugarahitā,
ime dhammā samattā samādinnā ahitāya dukkhāya saṃvattantī’”ti,
atha tumhe, kālāmā, pajaheyyātha.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참으로 스스로가
'이러한 법들은 해로운 것이고, 이러한 법들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이런 법들은 지자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고,
이러한 법들을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손해와 괴로움이 있게 된다.'라고 알게 되면
그때 그것들을 버리도록 하라.
so attānaṃyeva adhipatiṃ karitvā akusalaṃ pajahati, kusalaṃ bhāveti,
sāvajjaṃ pajahati, anavajjaṃ bhāveti, suddhaṃ attānaṃ pariharati.
idaṃ vuccati, bhikkhave, attādhipateyyaṃ.
그는 자신을 우선시 하고 해로운 법[不善法]을 버리고 유익한 법[善法]을 개발하고,
비난받을 만한 일을 버리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일을 개발하고 자신을 청정하게 유지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두고 자기를 우선한 것이라 한다.
“yo ca kho so, bhikkhave, bhikkhu arahaṃ khīṇāsavo vusitavā brahmacariyo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ṃyojano sammadaññā vimutto,
tassa kho etaṃ, bhikkhave, bhikkhuno kallaṃ vacanāya —
비구들이여, 한 비구가 있어 그는 아라한이고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삶의 족쇄를 부수었으며,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했다. 그 비구에게 이 게송은 적절하다.
“cātuddasiṃ pañcadasiṃ, yā ca pakkhassa aṭṭhamī.
pāṭihāriyapakkhañca, aṭṭhaṅgasusamāgataṃ.
uposathaṃ upavaseyya, yopissa mādiso naro”ti.
'나처럼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14일, 15일, 상현과 하현의 8일에
여덟 가지를 갖춘 포살을 준수해야 하고
연속적으로 행하는 [포살]을 해야 하리.'
“taṃ kissa hetu? so hi, bhikkhave, bhikkhu vītarāgo vītadoso vītamoho”ti.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 비구는 탐욕을 제거했고 성냄을 제거했고 어리석음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執 ☞ 取 ☞ [自我 : atta] ☜ ātta ☜ ātman
atta [ā + d + ta; that is,pp.of ādadāti Sk.ātta]
atta [Sk.ātta / ātman] / ahaṃ:[nom. sing. of amha] I. [Sk. aśman]
atta:[m.] soul; oneself.
mādisa < mādṛśa < maṃdṛś < maṃ + dṛś : 私の如き,我に等しき.one like me.
maṃ + ādi: 等(諸如此類,等等,以此類推)
sayaṃ:adv.[Sk.svayaṃ] self; by oneself.
첫댓글
yo panāyaṃ, bho gotama, yassa vā tassa vā kul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ekamattānaṃ dameti, ekamattānaṃ sameti, ekamattānaṃ parinibbāpeti,
evamassāyaṃ ekasārīrikaṃ puññappaṭipadaṃ paṭipanno hoti, yadidaṃ pabbajjādhikaraṇan”ti.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나 어떤 가족이든지 그 가족을 떠나 집 없이 출가한 자는
오직 자기 한 사람만 길들이고 자기 한 사람만 고요하고
자기 한 사람만 완전한 열반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공덕을 닦나니
그것은 바로 출가로 인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