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마을을 찾아서 30-영광군 불갑면 쌍운리 운제마을 진주강씨(晋州姜氏) |
[무등일보 2005.01.31 10:01:24] |
‘조선의 얼’ 일본에 심은 대학자 강항의 고향 광주에서 영광 삼학 검문소를 지나 불갑산 쪽으로 방향을 잡고 달리길 7∼10여분. 방마산 아래에 있는 ‘내산서원’ 맞은편에 위치한 쌍운리 운제마을 찾았다. 이곳 운제마을은 진주강씨(晋州姜氏)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대표적 동족마을 가운데 하나다. 배산(背山)형 분지에 위치한 이 마을에는 현재 20여호 가구 6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진주강씨가 대부분이다. 영광 진주강씨 집성촌에는 조선 중기 문신인 강항(姜沆, 1567∼1618) 선생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강항 선생이 일곱 살 되던 해 서당에 가는 도중 맹자(孟子)를 다외웠다 해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 ‘맹자리’며, 여덟살에 강목(綱目)을 외우니 ‘강목촌’ 등등. 마을 앞에는 강항 선생을 모신 사당인 ‘내산서원’이 있으며, 강항의 직계 후손들이 모여사는 ‘운제(雲堤)’라는 마을명도 강항과 연관이 깊다. 강대익 내산서원 보존회장은 “내산서원을 중심으로 쌍운리 운제, 방마리 봉동 마을 등을 중심으로 강항 선생의 후손들이 모여산다”면서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지만 최근에는 상당수 외부로 이주한 상태”라고 말했다. 진주강씨의 시조(始祖)는 고구려의 무장인 강이식(姜以式) 장군이다. 문헌에 따르면 고구려 영양왕 8년 수(隋) 나라 문제(文帝)가 중국을 평정하고 고구려에 야욕이 있어 ‘협박(脅迫)’하는 무례한 내용을 담은 국서(國書)를 보내니 강이식 장군이 싸울 것을 주장, 왕이 장군을 병마도원수로 삼아 임유관 대전에서 수나라 군사 30만명을 대파했다. 이후 603년 양제의 대군과 요동성 등지에서 싸워 크게 이겨 고구려를 강성하게 했다. 그의 후손 진(縉)이 진양후(晉陽侯, 진주의 옛 이름)에 봉해지고 후손들이 진주(晋州) 지방에 많아 살아 진주를 본관으로 하게 됐다. 이에 후손들은 장군 강이식을 시조로 삼고 본관(本貫)을 진주(晋州)로 해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박사공파(博士公派, 파조 계용), 소감공파(少監公派, 파조 위용), 관서공파(關西公派, 파조 시중 원용의 손자 원로), 은열공파(殷烈公派, 파조 민첨), 인헌공파(仁憲公派, 파조 해동의 명장 강감찬) 등 크게 다섯 파로 분파(分派) 되었다. 현재 영광의 강씨 대부분은 박사공파로 알려지고 있다. 계용을 1세로 해 영광의 입향조(入鄕組)는 10세손 학손(鶴孫)이다. 학손은 1455년 지금의 서울시 중구에서 文良公의 세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백부 인재공에게 공부하고 커서는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배웠다. 1480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여러 벼슬을 거쳐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통훈대부(通訓大夫), 장예원사평(掌隸院司評) 등에 올랐다. 1493년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이 되고 5년후 무오사화가 일어나 영광에 유배됐으며, 후에 여흥사(驪興祠)에 배향(配享)됐다. 또 7세 통정공의 장남 종덕(宗德)으로 이어지는 14세인 이재(利載)공은 때마침 정묘호란(丁卯胡亂)을 당해 그의 아버지 식(植)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아버지는 전사했고 자신은 영광군 백수면 홍곡리 벽동부락에 내려와 살았으며, 그 후손들이 번창했다. 통정공의 삼남 진덕(進德)공의 후손인 14세 삼용(三容)공은 난리중에 여러곳을 헤매다 영광군 백수면 하사리 일명 장강리 중촌에 정착, 그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현재 쌍운리 운제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학손의 4대손인 조선 중기 문신 강항의 후손이 대부분이다. 강항은 공조좌랑과 형조좌랑에 있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활동하다가 왜적의 포로가 돼 일본으로 압송됐다. 이후 선조 33년(1600) 귀국한 후 벼슬을 사양하고 독서와 후진양성에만 전념했다. 저서로 운제록(雲堤錄), 강감회요(綱鑑會要), 좌씨정화(左氏精華), 간양록(看羊錄), 문선찬주(文選纂註), 수은집(睡隱集) 등이 있다. 또 운제마을과 인접해 있는 방마리 봉동마을도 강항의 칠대손인 문회(文會) 등이 처음 정착,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 이처럼 영광지역 진주강씨 후손들은 나라에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의병을 조직, 구국의 대열에 앞장서 왔다. /특별취재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