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묘한 상업성, 그러나 우리대중 가요의 NEXT뮤지션 신해철이 국내 가요계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비중은 남다르다. 그는 국내 가요계의 생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한 '프로그레시브 록'(70년대 영국 밴드 핑크 플로이드와 에머슨, 레이크 & 팔머가 대중화에 성공시킨 장르로 이름 그대로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록)을 시도해 대중적으로 성공했으며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일관된 길을 걸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록의 가사중 가장 중요한 '저항 정신'과 '사회, 문화적 비판'의 기능을 충실히 따르는 몇 안되는 뮤지션이기에 그 희소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신해철이 서강대 재학시절이던 88년, 4명의 멤버를 이끌고 무한궤도라는 팀으로 MBC 대학 가요제에 출전, '그대에게'라는 말랑말랑한 곡으로 대상을 수상하며 "앞으로 크로그레시브 록을 추구하겠다"라는 포부를 펼쳤을 때만 해도 전문가들은 코웃음을 쳤다.멤버 중 정석원과 조형곤은 나중에 장호일을 끌어들여 015B를 결성한다. 이듬해 7인조로 재편한 무한궤도를 이끌고 그는 정식 데뷔앨범을 발표한다. '그대에게'에서 크게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오빠부대용 밴드'로서의 성공만 인정한다. 경희대 토목공학과 3학년에 재학중이던 이동규가 넥스트에 새로 가세했는데 후에 그는 넥스트-지니를 거쳐 현재 솔로 활동을 하고 있다. 곧바로 신해철은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의 O.S.T에 손을 대 앨범으로 내놓는다. 그의 의욕도 앨범의 내용도 그런대로 괜찮았으나 영화사의 부도로 이 앨범은 빛을 보지 못한다.
90년에 신해철은 본격적으로 '아이돌 스타'로서 자리매김하려는 듯 솔로로 변신, 첫 앨범을 내놓는다. '슬픈표정하지 말아요'와 '안녕'이 빅히트를 기록한다. 다양한 시도를 해보지만 작, 편곡자와 연주자로서 가능성을 보였다는데서 만족하는데 그친다. 91년 2집을 통해 신해철은 재즈라는 장르에 도전한다. 그러나 의욕만 앞설 뿐 가요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대신 '재즈 카페'-제목과는 다른 댄스뮤직-에서 랩까지 시도하는 '만용'을 부린다. 그해 말 신해철은 콘서트 실황 음반을 내며 솔로 가수로서의 활동에 종지부를 찍는다. 이듬해 발표한 변진섭과의 조인트 앨범은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앨범 제작자의 상업적인 계산에 의한 상품이므로 그에 대한 평가는 보류한다.
92년 봄, 신해철은 드디어 뮤지션으로 새 출발을 한다. 당시 발표한 N.EX.T1집은 가사, 곡, 재킷 디자인 등에서 파격을 이뤄 충격을 주었다. 컨셉트 앨범-한가지 주제로 앨범 전체를 꾸미는-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이 작품은 이후 신해철이 어떠한 길을 걸어가리란 것을 암시한다. 그 암시대로 그후 신해철은 '스타'가 아닌 '뮤지션'의 길을 걷는다. 당시 멤버는 무한궤도 1집에 참여했던 이동규와 숨은 실력자 정기송.무지개가 뜬 동산의 평화로운 작은 집과 톱니바퀴에 둘러싸인 고층 건물을 대비시킨 재킷 그림처럼 앨범 내용은 어린시절의 아름다운 추억과 성장기의 방황, 그리고 가족간의 갈등과 화해 등을 담고 있다. 여기서 신해철은 한 가지 오류를 범한다. 음악적 욕심이 지나친 나머지 다른 힘을 빌어 음악적 영감을 배가시키려 한 것.
군 복무와 수감생활등 2년의 공백을 거쳐 신해철은 4인조로 재편한 넥스트를 이끌고 2집 을 발표한다. 정기송이 빠진 대신 임창수와 이수용이 가담한다.1집이 프로그레시브 록을 펴방했듯이 2집도 그 연장선 상에 있긴 하지만 사운드 자체는 헤비메탈 쪽으로 흘렀다. '생명'을 주제로 사회의 밝고 어두운 양면성을 건드린 내용은 더욱 냉소적이고 독선적으로 치닫고 있다.라이브 앨범을 거쳐 가 이듬해 가을에 발표된다. 이 앨범의 특징은 재미 교포출신 기타리스트 김세황을 끌어들여 록의 기본기를 충실해 했다는 것. 앨범 내용은 더욱 진일보해 낙태, 동성동본의 결합 등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환부에 과감하게 메스를 댔다. 라이브 앨범을 한 장 더 낸 신해철은 영화 <정글스토리>의 음악을 맡아 앨범으로 발표한다. 항간에는 이 음반을 두고 신해철의 3집이라고도 하는데 필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고 싶다.
이 음반은 영화음악도 솔로 음반도 아니다. 뮤지션신해철이 그저 잠시 쉬어가는 음반이다. 이 음반속에서 그가 '황무지'-78산울림-를 리메이크한 것은 트로트가 창궐하던 70년대 우리 가요계에 록이란 백신을 들고 혜성처럼 등장한 '명의' 김창완에 대한 경의의 표시다.넥스트의 활동이 부담이 됐는지 신해철은 96년 가을 또 한 번의 장난기를 발동, 윤상과 조인트 앨범을 발표한다. 앨범 제목은 고 여기서 신해철이 홍보한 곡은 '질주'. 신나는 댄스 리듬에 마이너의 멜로디가 친근감을 줘 대중적으로 크게 히트한 이 곡은 특히 나이트 클럽에서 인기가 높았다. 와 나이트 클럽에서의 인기라는 넌센스는 이미 제작단계에서 계산된 상업 전략이었다.최근 발표한 넥스트 싱글은 신해철이 '조용필+김수철'이 되고 싶어하는 -아니면 자연스럽게 되는 듯한-인상이 짙다. '아리랑'을 헤비메탈로 재해석한 점이나 'Here, I stand for you'에서 보여주는 자신감이 그런 느낌을 준다. 이 앨범이 주는 가장 큰 의의는 넥스트가 돌아왔다는 것이다.
신해철-김세황-김영석-이수용으로 이어지는 황 라인업은 앞으로 국내 록계를 주도할 것이 확실시 된다.신해철은 이미 자신의 정규 앨범에 필적하는 앨범의 프로듀서-혹은 작곡가-로서 괄목할 만한 평가를 받고 있다. 공일오비의 1집을 비롯해 영화 <하얀 비요일>의 O.S.T, <내일은 늦으리>, EOS, Mr.2 등의 앨범에 작,편곡자로서 남기고 있다.신해철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은 이동규의 솔로 앨범, 비록 이동규는 솔로 데뷔에 목적한 바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전람회는 신해철의 도움으로 우뚝 서 오늘날 그들만의 음악성을 정립하고 있다.필자의 사견으로 볼 때 신해철은 프로듀서보다는 뮤지션이 어울린다. 그 이유는 그의 개성이 너무 강해서다. 그는 다른 가수의 특성을 잘 살려주는 역할보다는 자신의 장점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작업에 비전을 보인다. 그리고 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넥스트다. 한국의 프로그레시브 록은 바로 N.EX.T고 그것은 우리 대중가요의 Next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