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이 줄기차게 읽어온 고전 중의 하나인 『맹자』의 첫 페이지를 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양나라 혜왕이 말하기를 노인(맹자)께서는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오셨으니 장차 우리나라를 위해 이롭게 할만 것이 있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왕께서는 하필 이롭게 할만 것을 말씀하십니까? 역시 인의(仁義)가 있을 따름입니다.” 맹자의 가장 중요한 사상인 인의는 여기서 비롯되고, 이 인의의 사상은 그동안 우리 선조들의 삶과 사유를 결정해온 가장 의미 있는 가치가 되어온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다. 아직도 인의를 얘기하고 있으면 비웃음의 대상만 될 따름이다. 팍스 아메리카로 대변되는 미국식 삶과 사유가 보편화된 오늘날에는 일찍이 맹자가 타매해 마지않은 ‘이롭게 할만한 것’이 오히려 가치의 중심이 되고 있다. 따라서 오늘의 사회적 현실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런저런 혼란을 경험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저런 혼란은 무엇보다 정작의 대의가 무엇인지를 가늠하기 어렵게 한다. 당장에 제기된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줄기세포 연구를 위해 비도덕적 난자 채취를 고백한 황우석 교수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누리꾼들의 쟁론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국부라는 애국적 가치와 생명이라는 인류적 가치 사이에 일고 있는 누리꾼 사이의 쟁론은 MBC의 <피디수첩>을 계기로 과도하게 일방화되고 있어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황 교수팀의 비도덕적 난자 채취를 보도한 MBC의 <피디수첩> 측에 대해 가하는 누리꾼들의 사이버 폭력이야말로 가치관의 혼란을 단적으로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애국이라고 해서 무조건 보편적인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니다. 일그러진 애국주의는 오히려 무수한 고통을 낳는 억압기제로 존재할 수도 있다. 식민주의로 변질된 서구 열강의 지나친 국가의식이 그동안 제3세계의 수많은 국가들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었는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 국가니 민족이니 하는 공동체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도 없는 지나친 이기주의만큼 정념과 광기에 사로잡힌 감정적 애국주의도 문제가 있다. 과도한 애국주의가 횡행하는 것은 우리 국민들의 가치관이 오직 자신을 ‘이롭게 할만한 것’에만 쏠려 있다는 것을 증명해줄 따름이다.
지난 10월 26일에 있었던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싹쓸이를 한 것도 진보와 보수에 대한 일관된 시각과 가치가 사라진 현실을 대변해준다. 미래에 도달하게 될 국가의 안위와 발전이 정작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깊은 숙고 없이 당장의 이익에 따라 몰려다니는 국민들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상대적으로 미래의 편에 서 있다고 주장하는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이 그동안 보여주었던 수많은 정책적 실패를 덮어주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국민들의 이런저런 혼란된 가치관과 관련하여 단지 참다운 진실이 무엇인가를 되묻고 싶을 따름이다.
이처럼 혼돈과 무질서가 횡행하는 시대일수록 인류사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인류사의 초심은 한 사람의 삶으로 국한할 경우 유년의 마음, 곧 동심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동심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동심과 관련하여 흔히 떠올리는 것은 순수하고 무구한 마음, 깨끗하고 투명한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은 곧바로 사무사(思無邪)의 마음, 지공무사(至公無私)의 마음으로 연결되어 시의 마음을 이루거니와, 지금이야말로 시에서 뿐만이 아니라 삶 일반에서도 이러한 마음은 필요하지 않겠는가.({시와사람} 05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