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언침은 박혁거세의 29세 손인 경명왕(신라54대)의 맏아들로 밀성대군에 봉해져 후손들이 밀양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밀양박씨는 언침의 8세손인 언부를 중시조로 하는 문하시중공파를 비롯하여 도평의사공파, 좌복야공파, 밀직부사공파, 판도공파, 조윤공파 등으로 대별되고, 각 파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다시 여러 파로 분파되었다.
가장 규모가 큰 문하시중공파는 종파인 은산군파, 행산군파를 비롯하여, 좌상공파, 규정공파, 사문진사공파, 밀성군파 등으로 나뉘어지는데, 이들은 다시 여러파로 분파된다.
이중에서 규정공파가 밀양 박씨 분파가운데 가장 후손이 번창하여, 여기서 나누어진 낙촌공파, 강수문도공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외에 사문진사공파와 밀성군파, 좌복야공파등에서도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다.
문하시중공파의 중시조인 언부는 고려 문종때 문과에 급제하여 최충과 함께 태사를 지낸후 , 문하시중 도평의사를 지내고 밀성부원군에 봉해 졌다.
고려 말에 두각을 나타냈던 인물로 강생이 문과에 급제하여 참찬의정부사에 이르렀으며 조선이 개국되어 호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다가, 훗날 수원부사를 지냈고, 문장이 뛰어나 당대에 명성이 높았다.
그의 아들 심문은 학행으로 천거되어 사온서 직장이 되고, 김종서의 종사관으로 야인을 토벌하였는데, 계유정난으로 김종서가 살해되자 성삼문 등과 함께 단종복위를 꾀하다 사전에 탄로가나자 음독 자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