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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다녀온곳들 *** 스크랩 10_0505 어느 봄날 순천 낙안읍성 표정 살펴보기...
允 谷 추천 0 조회 14 10.08.08 19:16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어느 봄날 순천 낙안읍성 표정 살펴보기....


여행 일자: 2010년 05월 05일



오늘로 벌써 목포로 내려와 남원으로 달려 온지도 3일째 되는 날이다. 오늘은 아침 일찍 곡성에서 선암사 입구로 넘어와 선암사 경내를 오래만에 한 바퀴 돌아보고 내려와 주차장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민속 관광농원 고개를 넘어 낙안읍성 주차장으로 진입을 한다. 연휴이기도 하고 또 어린이날이기도 하여서 그런지 생각보다 주차장이 붐비고 또 읍성으로 들어서는 길목엔 인파로 복잡함을 느낄 정도이다. 여행때 항상 친구와 곡성에서 시작을 하는 바람에 이곳 낙안읍성쪽은 많이 지나다녔지만 실로 안쪽을 들어가 보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주위에 주암호가 있고 또 상사호도 있어 근처를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관광이 되는 그런 좋은곳이다. 또 요즘엔 보성까지 고속화 도로가 완성되 교통도 아주 편해졌다.


[민속 관광농원엔 각가지 꽃이 만발하여 있고...]


[주차장 앞 매표소를 지나면 바로 낙안읍성 동문(낙풍루)문앞에 서고...]


[복원된 성이 아니고 아주 오래된 성곽임을 알 수 있는 세월감...]


[안으로 들어서면 우측으로 첫 번째 보이는 관리소 가옥...]


[놀고 있는 텃밭에는 예쁜 꽃들이 피어나고 옆엔 연자방아도...]


[좌측 동네로 들어서면 밭을 갈아놓아 시원해 보이는 토지가...]


[낙안읍성엔 현지 주민들이 생활을하고 있으니 이땅 주인은 아주 부지런한...]


[전형적인 초가와는 달리 벽을 돌로 쌓은점이 보이고 앞마당엔 마늘밭...]


[넝쿨잎 뒤로 마을이 아름답게 보이고...]


[이곳 텃밭엔 여러 가지 식물을 심어놓아...]


[남측벽쪽 중간쯤에 전형적 우리나라 연못인 네모연못에 연꽃이 심어져 있어 여름엔 보기 좋을듯...]


[연못엔 잉어들이 많은걸 보니 수질은 조금...]


[인기 좋은 물레방앗간엔 항상 사람들이 보이고...]


[남문쪽으로 올라서 서문을 향해...]


[멋진 깃발엔 令 자가 선명히...]


[도예방엔 가마가 독특하게 만들어 놓여져 있고...]


[남문 마루에 앉아 밖을 보니 비율이 혹시 16:9 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시네마스코프...]


[한 가옥의 장독대를 보았는데 이건 예술에 가까운 멋진 정성이 보이고...]


[오동나무엔 꽃이 막 피기 시작하고...]


[언덕에 올라 남문쪽을 내려다 보는데 이장면이 제일 멋진듯...]


[겨울에 보는 이곳이 아주 운치가 잇고 깨끗한 그림을 만날 수 있는데...]


[서문 옆 옹성벽이 아름다워...]


[서문에서 안쪽으로 조금 들어서면 밭엔 온통 유채가 심어져 있어...]


[유채밭 안쪽에 초가는 아주 멋진 그림을 만들어 주고...]


[거시기 옆 양쪽에 정자 발전소가 보이고 ....웃는 얼굴이 정말 통쾌한 것 같아...]


[붓꽃이 아름답게 보여서...]


[낙민루(樂民樓)라 쓰인 현판이 걸린 멋진 루...]


[사또가 근무하고 계신 동헌의 입구엔 초병이 양쪽에서 지키고 있고...]


[잔디밭에서 아이들이 만들고 있는 비누방울을 동심으로 돌아가 찍어 보았는데...]


[이곳 낙안엔 잔 돌이 많아 이렇게 멋지게 담을 쌓아놓았는데 경상도 함양쪽의 담 보다는 한수 아래...]


[최불암꽃에 벌이 날아들고...]


[멋진 담장 밑에는 배수로가 파여 있고 배수로엔 꽃가루가 가득...]


[다시 동문을 나와 음식점이 있는 곳으로 걸어들어서...]


[시원한 곡주한잔하고 밭에 핀 자운영을...]



참고로 낙안읍성에 대해 알아보면 : 낙안(樂安)은 백제(百濟)때부터 읍치(邑治)가 있었다고 하며, 고려말(高麗末)에는 왜구(倭寇)의 피해로부터 주민(住民)을 입보(入保)시키기 위하여 토축(土築)의 읍성(邑城)이 축조(築造)되었다. 1397년(태조(太祖) 6)에 김빈길(金빈吉)이 백성을 동원하여 토성(土城)을 쌓은 것이 현재 낙안읍성(樂安邑城)의 전신(前身)이 되며, 세종대(世宗代)에는 둘레 592보(步)의 석축(石築)으로 읍성(邑城)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토축성(土築城)의 석축화(石築化)는 조선초기(朝鮮初期)의 전반적(全般的)인 추세였으며, 왜구(倭寇)가 예상되는 남해안지역의 읍성(邑城)이 맨 먼저 석축화(石築化)되었다. 이어서 세종(世宗)·문종대(文宗代)에 이르러 읍성(邑城)의 방어력(防禦力)을 높이는 국가적(國家的) 규모(規模)의 계획이 실천에 옮겨지게 되었는데, 문종원년(文宗元年) 8월(八月)의 기록에 낙안읍성(樂安邑城)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둘레가 2,865척(尺)이고 성벽의 높이는 평지(平地)에서는 9척(尺)5촌(寸)이었고, 지형이 높은 곳에서는 8척(尺)5촌(寸)이었다. 그 위에 여장(女墻)의 높이가 2척(尺)5촌(寸)이 더하였고, 적대(敵臺)(치성(雉城))는 12개가 계획되어 4개만 완성되었다고 하였다. 성문은 3군데인데 옹성(擁城)이 없었으며 성안에는 우물 두 곳과 작은 못 2개가 있고, 성벽 둘레의 해자(垓字)는 아직 시설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 고을의 진산(鎭山)인 금전산(金錢山)의 남쪽으로 낮아진 구릉에 동(東)·서(西)로 길다란 말각장방형(抹角長方形)을 이루고 있는 성벽은 성돌의 축조방법이 전형적(典型的)인 조선초기의 읍성형식(邑城形式)을 취하고 있다. 성밖에는 동천(東川)과 서천(西川)이 자연해자(自然垓字)를 형성하고 있으며, 성벽은 높이 4m 쯤이고 두께 3∼4m인데 아랫부분의 폭은 7∼8m이다. 성벽은 아래에서부터 위로 오르면서 석재(石材)가 차츰 작아지고 기울기를 주어 쌓았고, 안쪽에서 성벽 위로 오르는 계단 모양의 좁은 통로도 만들어져 있어 세종대(世宗代)에 새로 규정한 「축성신도(築城新圖)」의 규식과 매우 흡사한 것이다. 이 성에는 조선후기에 이르러 임경업장군(林慶業將軍)이 쌓았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오고 있다. 당초 성문은 남문에 쌍청루(雙淸樓)가 있고, 동(東)·서문(西門)에도 문루(門樓)가 있었으나 19세기(世紀)에 이르러 남문(南門)은 진남루(鎭南樓)라 하고 동문루(東門樓)는 낙풍루(樂豊樓), 서문루(西門樓)는 낙추문(樂秋門)이라 하였는데, 남(南)·동문루(東門樓)는 이층(二層)이었다. 이밖에 적대(敵臺)(치성(雉城))는 6개가 있었다고 하며 주로 동문방향(東門方向)에 배치되고, 문(門)에는 옹성(擁城)이 있었다. 남문 서쪽에 수구(水口)가 남아있고 치성(雉城)은 7m 크기의 방형(方形)이어서 조선시대 읍성연구(邑城硏究)의 귀중한 자료(資料)가 된다. 성내(城內)에는 객사(客舍)·임경업장군비각(林慶業將軍碑閣)과 중요민속자료(重要民俗資料)로 지정된 민가(民家) 9동(棟)이 있고, 또한 전통적(傳統的)인 가옥과 옛 건물터가 남아있어 고풍(古風)을 간직한 가장 전형적인 고장으로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순천시청에서 알려준다.



- 글 / 그림 - [김영윤의 여행보따리]  도시애들 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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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0.08.14 18:52

    첫댓글 왜 엑박이 있지....분명 스크랩하면 없는데...
    내가 못본것들이 좀 많아 아쉬운마음에 퍼왔는데.
    다음에 다시 한번 더 가고픈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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