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은 어찌 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승려생활 이십 년이 다 되어 가는데 삼천배를 한 것은 두 번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혼자서 신심이 우러나 자발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대중에 얹혀서 어찌 보면 반쯤은 타의에 의한 것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첫 번째는 해인사로 출가하여 속복 차림의 긴 머리로 보경당에서 삼천배를 마쳐야 했다. 그러고 나니 머리카락을 잘라주고 옷은 감색 행자복으로 바꾸어 주었다.
그 때는 마루바닥에 좌복도 깔지 않고 그대로 절을 했다. 행자실은 당연히 그렇게 해 왔고 또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로 알았다. 무릎이 까지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절을 했다.
두 번째는 강원에 입방하여 처음 용맹정진 들어갈 때였다. 성철 큰스님이 당시에 방장이셨다.
화두를 타기 위하여 그 유명한 당신의 가풍대로 삼천배를 해야만 했다. 삼십여 명의 학인들이 단체로 밤새도록 가사장삼이 다 젖도록 절을 하면서 법당에서 그대로 새벽예불을 맞았다. 아침공양을 마치고서 백련암에 올라가 어른을 뵙고 화두를 받았다.
그러나 이 두 번보다도 나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삼천배는 대학생 시절의 삼천배이다.
불교동아리에서 해인사 홍제암으로 수련법회를 갔을 때 마지막날 큰절 대웅전에서 함께 올린 삼천배이다. 그 땐 불광법회의 중등부 학생 몇 백 명이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서 수련법회 마지막날 삼천배를 올리는데 우리 팀이 그들에게 합류한 것이다. 꼬마들이 얼마나 절을 열심히 하는지 내 스스로 부끄러워 게으름 없이 절을 했다.
중간 휴식시간에 해우소를 다녀온 후 마당을 돌았다. 밤하늘의 별빛을 보고서 심호흡을 하다가 명부전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 중에서 꼬마 몇 놈은 중도에 낙오하여 명부전 사자상과 동자상 사이에 끼어 정신없이 잠을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은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여 명부전 앞을 지날 때마다 그 때 기억이 나서 혼자 빙그레 웃곤 한다.
어쨌거나 그 때 삼천배를 마치고 수백 명의 꼬마들과 함께 처음으로 먼발치에서나마 백련암 큰스님을 뵈올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의 삼천배 역사는 통틀어 세 번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 십여 년 동안 백팔배는 부지런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마다 해왔다.
그 덕택에 업장이 소멸한 탓인지 크게 아픈 곳 없이 병원 신세 지지 않고 별다른 장애 없이 오늘까지 수행자 노릇을 하고 있으니 이 모든 것이 백팔배의 참회공덕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강원 학인시절 은사스님 시봉을 하면서 함께 포행을 다녔다. 장경각 뒤를 돌아서 운동장 쪽으로 돌아오는 길이 호젓하여 산책을 다니기에는 그만이다. 그 때 마침 운동장에는 학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공을 차고 있었다. 노장님이 지나가며 그걸 보시고는 한마디 하셨다.
“저럴 기운 있으면 법당에 가서 절이나 하지.”
좀 속된 표현일지 모르지만 절을 하면 온몸 운동이 된다. 그래서 건강해질 수밖에 없다. 몸과 마음이 피곤한 날 새벽에는 백팔배를 하면서 운동한다고 생각하면 그런 대로 게으른 마음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냥 숫자만 헤아리면서 백팔배를 할 경우 일종의 수식관이 된다. 예불대참회문을 읽으면서 백팔배를 하면 108부처님을 찬탄하는 공덕을 짓게 된다.
그리고 참회문 앞뒤로 붙어있는 글들은 정말 감동적이다. 눈물이 나며 저절로 참회가 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백팔참회문을 읽으면서 백팔배를 하도록 권하고 싶다. 절의 생명은 참회이다. 불완전한 중생의 몸으로 살면서 허물은 없을 수가 없다.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짓는다.
그러나 허물을 짓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허물을 짓고도 참회할 줄 모르는 것이 더 큰일이다. 승속을 막론하고 자기합리화의 방편술만 늘어가는 이즈음의 세태를 보면서 자기반성이란 참으로 아름다운 삶의 모습인 동시에 수행의 한 방편임을 알아야 한다.
세 치 혀의 화려한 수식어로 남이야 수백 명도 속일 수야 있지만 자기 자신까지도 속일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불기자심(不欺自心), 자기를 속이지 말라고 했다. 자기는 속이지 못한다는 말이 더 옳을 것 같다. 이즈음 도시 한복판으로 나와 살고 있다. 아침에 조금 일찍 나가 법당에 들러 삼배를 하고서 하루를 시작한다.
삼천배와 백팔배 그리고 삼배, 세월이 가고 시간이 흐를수록 절의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같은 사람인데….
첫댓글 감사합니다. _()_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