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5장 참된 가정이 참된 인간을 완성한다
2. 참 착하고 귀한 당신
결혼하고 나서 나는 아내와 약조를 했습니다.
"아무리 분하고 원통한 일이 있더라도 교회 식구들이 '우리 선생님 부부가 싸웠군' 하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자. 앞으로 아이를 몇 명 낳더라도 어머니 아버지가 싸운 표시를 내지는 말자. 왜냐하면 아이들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아주 작은 사랑의 하나님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엄마! 하고 부를 때는 무조건 웃으며 '그래'하고 답해야 한다."
7년 동안 그렇게 혹독한 훈련을 받은 후 아내는 비로소 어머니 다워졌습니다. 교회 안에서 아내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하던 말들도 자취를 감추고 가정에는 편안한 행복이 찾아왔습니다. 아내는 14남매를 낳았습니다. 세계 곳곳으로 순회강연을 다니는 나와 함께 집을 떠나 있을 때면 날마다 아이들에게 편지며 엽서를 써서 보내는 일을 거르지 않을 정도로 아내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감싸 키웠습니다.
20년 동안 14명의 아이를 낳아 기르려니 무척이나 힘들었을 텐데 내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해산을 앞둔 아내를 두고 해외에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교회 식구들이 보내오는 편지글 속에 아내의 생활이 어려워 영양상태가 염려된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힘들다는 불평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안쓰럽게 생각하는 것은 하루에 두세 시간밖에 자지 않는 남편에게 맞추느라 아내도 평생 두세 시간밖에 자지 못한 것입니다.
아내는 자기 결혼반지도 남한테 빼줄 정도로 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헐벗은 사람을 보면 옷을 사주고 배고픈 사람을 만나면 밥을 사주었습니다. 집에 선물이 들어오면 풀어보지도 않고 남한테 주어버리는 일도 다반사였습니다. 한번은 네덜란드를 순방하는 중에 다이아몬드 가공공장에 들를 기회가 있어 그동안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고자 아내에게 다이아몬드를 사준 적이 있습니다. 돈이 적으니 알이 큰 것을 사 줄 수는 없었지만 내 눈에 좋아보이는 것으로 큰맘 먹고 사준 것이었는데 그 반지조차 남에게 주어버렸습니다. 내가 아내의 빈 손가락을 보고, "반지 어디 갔나?" 하니 "가기는 어디 가요? 흘러갔지요" 하더군요.
어느 날인가는 말도 없이 커다란 보자기를 꺼내 옷을 싸고 있는 아내를 발견하고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건 뭘 하려고 그래?"
"쓸 데가 있어서 그래요."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보자기를 몇 개씩 쌌습니다. 알고 보니 외국에 나가있는 우리 선교사들에게 보내려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몽골 보따리, 이건 아프리카 보따리, 이건 파라과이 보따리..."라며 배시시 웃는 아내의 마음이 참 어여뻐 보였습니다. 지금도 외국에 나가있는 선교사들을 살뜰하게 살피는 것은 아내의 몫입니다.
아내는 1979년에 국제구호재단을 만들어 지금까지도 아프리카의 자이레와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같은 나라를 돌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아픈 사람에게 의약품을 전달하며 헐벗은 이웃에게는 옷가지를 구해줍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4년에 애원은행을 만들어 소년소녀가장 돕기와 무료 식당 운영, 북한동포 돕기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 아내는 오래전부터 여성단체 일도 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책임을 맡은 세계평화여성연합은 세계 80여 개 나라에 지국을 두고 있는 단체로 유엔에도 등록된 NGO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여성은 언제나 핍박받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앞으로 다가올 세상은 여성의 모성과 사랑, 친화력이 바탕이 된 화해와 평화의 세계입니다. 여성의 힘이 세상을 구할 시기가 도래한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여성단체들은 이상하게도 남성을 반대하는 것이 여성의 파워를 나타내기라도 하는 듯 남성들과 척을 지고 대립하려고만 합니다. 아내가 맡아 운영하는 여성단체에서는 종교에 기반을 두고 사랑으로 평화세계를 열어가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가정을 깨고 뛰쳐나오는 여성해방이 아니라 참된 가정을 지키며 사랑을 실천하는 여성운동입니다. 효심을 가진 참된 딸로 자라 정절과 헌신으로 내조하는 아내가 되며, 자녀를 올바르게 키워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지도자가 되도록 이끄는 것이 아내의 꿈입니다. 아내가 벌이는 여성운동은 곧 참다운 가정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내가 공적인 일로 바쁜 시기에 우리 아이들은 일 년의 절반 가까이를 부모 없이 생활해야 했습니다. 부모가 없는 집에서 아이들은 교회 식구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습니다. 집 안에는 늘 교회 식구들이 가득했습니다. 우리 집 식탁은 항상 손님의 차지였고 아이들은 뒷전이었습니다. 이런 환경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여느 가정집 아이라면 느끼지 않았을 외로움을 많이 느끼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어려움은 아버지로 인해 겪어야 하는 고통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든 이단교주 문선명의 아들딸로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나름대로 방황의 시간을 거쳤지만 아이들은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와주었습니다. 부모로서 세심하게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하버드대학교 졸업생이 다섯 명이나 되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제 아이들은 내가 하는 일을 도울 만큼 모두 장성했지만 나는 여전히 엄격한 아버지입니다. 지금도 아버지인 나보다 더 하늘을 잘 섬기고 인류를 위해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웬만한 일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아내였지만, 둘째 아들 흥진이의 죽음 앞에서는 힘들어했습니다. 1983년 12월의 일이었습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전남 광주에서 열린 승공궐기대회에 참석 중이었습니다. 흥진이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국제전화를 받고 이튿날 바로 뉴욕으로 갔지만 병실에 누워있는 흥진이는 이미 의식이 없었습니다. 언덕길을 과속으로 내려오던 트럭이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다가 옆으로 밀리면서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흥진이 차에는 절친한 친구 두 명이 같이 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흥진은 핸들을 급히 오른쪽으로 꺾어 자신이 앉은 운전석을 트럭과 맞부딪히게 하고 옆자리에 앉았던 친구들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사고가 난 집 근처의 언덕길을 가보았더니 도로에는 오른쪽으로 급하게 꺾인 타이어의 검은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결국 흥진이는 1월 2일 새벽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바로 한 달 전에 열일곱 살 생일을 지낸 후였습니다. 다 키운 자식을 먼저 보내는 아내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소리내어 울기는커녕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영혼의 세계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목숨을 잃는다고 해서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자식을 이 세상에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것은 부모로서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마음대로 울지도 못하던 아내는 흥진이를 태운 영구차만 자꾸 어루만졌습니다.
사고를 당하기 전에 흥진이는 발레를 전공하는 훈숙이와 정혼을 한 상태였습니다. 나는 훈숙이를 불러 말했습니다.
"여자가 평생 혼자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건 네 부모에게도 할 짓이 아니야. 정혼은 없었던 일로 하자"고 훈숙이를 달랬지만 훈숙이의 결심은 단호했습니다.
"저는 영계의 존재를 잘 알고 있으니, 흥진님과 제 일생을 함께 하게 해주십시오."
결국 흥진이 떠난 지 50일 후에 훈숙이는 우리의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신랑의 사진을 들고 영혼 결혼식을 올리는 동안 내내 밝게 미소 짓던 그 아이의 모습을 우리 부부는 잊지 못합니다.
이렇게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내릴 법도 한데 아내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아내는 잔잔한 미소를 잃지 않고 삶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교회 식구들이 자녀 문제로 아내에게 상담을 해오면 아내는 웃으며 말합니다.
"기다려주세요. 아이들의 방황은 한때이기 때문에 결국 지나갑니다. 아이들이 어떤 일을 하든 끝없이 포용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주면서 기다리십시오.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 속으로 반드시 돌아옵니다."
나는 평생 아내에게 큰 소리를 내본 적이 없습니다. 내 성품이 본래 그래서가 아니라 아내가 큰 소리 내도록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 머리도 평생 아내가 만져주었습니다. 아내의 이발 솜씨는 세계 최고입니다. 요즘은 내가 너무 나이가 많아 아내한테 해달라는 것이 많습니다. "발톱 좀 깎아주소" 하면 아내는 선뜻 발톱을 깎아줍니다. 발톱은 분명 내 발톱인데 내 눈에는 잘 안 보이고 아내 눈에 더 잘 보이니 이상한 일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아내가 점점 더 귀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