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열매(사 53:4~9)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53: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사53: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오늘 본문은 메시아가 받으신 고난의 참된 의미에 대한 말씀으로 저자는 그리스도가 가시관을 쓰고(마 27:29, 막 15:17, 요 19:2) 십자가에 못 박힌(마 27:35, 막 15:24, 눅 23:33) 이유가 인간의 구원을 위함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사야는 메시아의 고난에 대해 질고(2회), 징벌, 고난, 찔림, 상함, 징계(1회)와 같은 용어들을 집중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메시아의 고난이 죄와 연관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고난의 열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령충만 받으면 넓은 길보다 좁은 길을 걸으며, 평탄한 길보다 고난의 길을 걸으면서도 주님과 한 걸음 한 걸음 동행하기에 즐겁고 기쁩니다.
고난은 한문 '쓸 고; 苦', '어려울 난; 難'으로 "괴로움과 어려움, 고초"로 여기서 말하는 고난의 열매는 내가 실수해서 받는 고난, 죄를 짓고 당하는 고난, 자기 잘못으로 인해서 오는 고난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하다가 애매한 어려움을 당하거나 그리스도를 위해 당하는 고난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이 고난을 피하거나 버리려 하지 말고 자청해서, 스스로 벌어서라도 받으면 좋습니다.
이 찬양처럼 믿는 자들에게 시련이 오고 또 더 큰 시련과 고난이 닥쳐오더라도 주님이 주신 넘쳐나는 기쁨, 까닭에 전혀 방해를 받거나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가 참된 성도입니다.
Ⅰ. 성경에 나타난 고난의 언어적 고찰
첫째, 고난은 히브리어 '메차르', 영어 '페인'으로 "고통"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행 2:24).
아브람이 하나님의 언약을 끝까지 기다리지 못한 도중에 사래의 종인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이 태어났습니다. 물론 그 당시 팔레스타인의 풍속에도 본처에게 자식이 없으면 종이나 다른 여자를 남편에게 제공하여 자식을 얻게 하는 일이 흔한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 "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을 주시겠다"라는 약속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사래가 여종 하갈을 남편에게 주면서 새로운 문제가 야기됩니다. 즉, 하갈이 아이를 잉태하자 여주인 사래를 업신여김으로 인해 결국 하갈은 사래에게 학대를 당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하갈은 술 광야로 도망을 치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창 16:10~11) 하면서 그가 장차 될 일까지 가르쳐 줍니다. 이처럼 고난당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응답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환난 가운데서 낙심하기 보다는 필경 사망의 줄이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미치므로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라도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시 116:3~4)라는 겸손하고도 진지한 기도를 드린 다윗의 모습을 보십시오.
다윗은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시 118:5)라고 사랑하는 백성들에게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살도록 늘 권면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둘째, 고난은 히브리어 '아니'로 "고초"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애 3:19)
셋째, 고난은 히브리어 '헤벨', 영어 '하드쉽; hardships'으로 "곤고"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성도를 의롭게 하기 위하여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해 성도들이 세상에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한다 하더라도 정죄할 자가 없으며,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라 할지라도(롬 8:35) 예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동방의 의인인 욥이 까닭 없이 당했던 말할 수 없는 재난 속에 있을 때였습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욥의 친구들이 찾아와 칠일 칠야를 그와 함께 땅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욥의 곤고함이 너무 심함을 보았기에 사랑하는 친구에게 말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욥 2:13).
그러나 곤고한 자를 그 곤고할 즈음에 구원하시며 학대당할 즈음에 그 귀를 여시는 하나님이(욥 36:15) 그를 구원하여 주셨고 슬픔과 곤고와 수고하는 고역에서 해방하여 참 안식을 주셨습니다(사 14:3).
고린도 교회에는 참 교사도 있었지만 거짓 교사들이 자신들의 지식과 웅변술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그들은 지적 오만에 빠져 바울의 권위를 무시하기에 이릅니다. 이에 바울은 담대하게 자신이 히브리인임과 이스라엘인임을 자랑하면서 단지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인해 당한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고후11: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11: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11: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11: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그는 이처럼 외적인 고난과 내적인 고난을 말할 수 없이 겪었지만 기가 죽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예수님으로 인해 오는 고난이든 세상에 살면서 당하는 고난이든지 간에 바울만큼 당하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조그만 일을 당하면 쉽게 낙담하고, 쉽게 포기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십니까?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습니까? 그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기 위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사실을 믿고 인정하십니까? 그러시다면 고난에 몸부림치지 말고 여러분들이 당하는 고난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로 믿고 의지한다면 고난을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은 모두 고난의 승리자들이 다 될 것입니다.
넷째, 고난은 헬라어 '스타우로스'로 "십자가"라는 의미가 있습니다(막 8:34, 눅 9:23, 14:27).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신 분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분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그분이 지신 십자가를 보고 사십시오. 그분이 지신 십자가 그늘아래 여러분들의 짐을 다 내려놓으십시오. 십자가는 저주를 상징한 나무지만 예수님 까닭에 행복의 길잡이요, 믿음의 길잡이요, 인생의 나침반이 되었습니다(히 12:2).
다섯째, 고난은 히브리어 '무사르'로 "징벌"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렘 31:18).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도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자부 룻하고 다시 돌아오는 고난을 겪게 되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가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룻 1:21)라고 말하였듯이 징벌이 바로 고난입니다.
시편에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시 94:12)라는 말씀이 있듯이 악인들의 강포와 핍박으로 인해 의인들이 환난과 징벌을 당하더라도 그것이 바로 복임을 자랑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여섯째, 고난은 헬라어 '에피스타시스'로 "눌리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시 12:5).
고난당하면 고난의 무게 때문에 눌림을 당하기도 합니다. 바울도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8)는 고백을 하였듯이 고난을 당할 때 낙심하지 말고 "나의 영혼이 눌림을 인하여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시 119:28)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
일곱째, 고난은 히브리어 '아말로 "곤난"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왕하 19:3).
고난은 곤난으로 한문 '곤할 곤; 困', '어려울 난; 難', 영어 '디피컬트; difficulty'로 "어려움"을 말합니다.
다윗은 기도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시 4:1)라고 기도하였고, 사울 왕의 핍박을 받아 광야를 전전하며 도망을 다니던 시기에도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고난을 보시고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으며"(시 31:7)라고 하면서 오히려 기뻐하였습니다.
고라 자손들도 "대저 나의 영혼에 곤란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음부에 가까왔사오니...곤란으로 인하여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께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시 88:3~9)는 고백을 한 것처럼 환난가운데서도 하나님을 향하여 두손들고 매일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궁핍한 자는 곤란에서 높이 드시고 그 가족을 양무리 같게 하시는 분(시 107:41)으로 그 하나님의 말씀이 곤란을 당한 자들에게 위로가 되어 곤란 당한 자들을 살리십니다(시 119:50).
여덟째, 고난은 헬라어 '도키메'로 "단련" "연단"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빌 2:22, 시 12:6).
고난당하면 연단을 받게 됩니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는 말씀이 있듯이(롬 5:4)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되 은을 단련함같이 우리를 단련하시는 분입니다(시 66:10).
우리는 고난을 받을 때 좌불안석하지 말고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시 26:2)라고 기도하는 큰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가는 길을 하나님은 아시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련하신 후에는 우리가 정금같이 나올것이기 때문입니다(욥 23:10).
아홉째, 고난은 헬라어 '포노스'로 "아픔", "병든"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계 16:10).
고난을 당하면 아픔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룻 1:13)라고 자기의 심정을 호소한 나오미처럼 다윗도 심히 아픈 경험을 많이 겪었습니다(삼하 18:33).
이처럼 인생에 아픔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우리 주위에 행복만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아픔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프다고 하여 좌절하지 말고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는 하나님을(욥 5:18) 의지하여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면 해결의 역사가, 고침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열 번째, 고난은 헬라어 '파이데이아'로 "징계"라는 의미가 있습니다(삼하 7:14).
징계가 고난입니다. 히브리서 12장 5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하면서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는 말씀이 있듯이 육신의 부모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자식을 징계하시나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의 유익을 위해서 징계하시기도 합니다.
잠언 기자도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잠 3:12)는 말을 하였나 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기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경책을 업신여겨서는 안됩니다(욥 5:17).
열한 번째, 고난은 헬라어 '바레오'로 "고생"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어떤 왕보다 더 악했던 왕이 바로 아합입니다. 이 왕의 악한 통치로 이스라엘은 온통 죄악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이 아합왕이 아람으로부터 길르앗 라못 땅을 빼앗으려고 할 때 그는 유다왕 여호사밧과 동맹하여 싸우려고 했습니다.
그때 흉한 일만 예언한 미가야 선지자가 있었는데 두 왕은 예언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진실한 말씀을 듣고자 하였습니다.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거짓예언을 하였는데 미가야는 전쟁에서 아합 왕이 죽고 이스라엘 군대가 흩어질 것이라는 진실된 예언을 합니다. 이에 아합왕은 "이 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로 먹이라 "(왕상 22:27, 대하 18:26)고 명령을 합니다. 결국 아합 왕은 변장하여 전쟁에 참여하다가 우연히 쏜 화살에 명중되어 죽게 됩니다.
이처럼 고난은 고생을 당하는 것으로 오로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힘있는 세상나라를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난당하는 것이 모두 불순종으로 인해 오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아시아에서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기도 했지만(고후 1:8) 낙심에 빠지거나 절망하지 않고 죽도록 복음 전파만 한 삶을 살았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들은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 3:33)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잡고 더욱더 굳건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쁨으로 고난을 이겨야 합니다.
열두 번째, 고난은 헬라어 '후스테레시스'로 "궁핍"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히 11:37).
궁핍을 당하는 것이 고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환난과 궁핍을 아시는 분입니다(계 2:9). 하나님의 일꾼들에게는 고난이 있습니다.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고후 6:4~5),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
아브라함도 흉년을 만났고(창 12:10) 이삭도 흉년을 만났습니다(창 26:1). 룻도 흉년을 당해 풍족하게 나갔다가 비어서 돌아왔습니다(룻 1:21).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여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고난속에 처하게 됩니다.
물론 미련한 자는 자기 죄악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기도 하나 어떤 연유에서든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낮추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답을 해주십니다(시 107편).
열세 번째, 고난은 헬라어 '디오그모스'로 "핍박과 환난"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핍박과 환난을 당하는 것이 고난입니다. 예수님의 씨뿌리는 비유에서 처럼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간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막 4:17)가 되지 말고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고 많은 눈물이 있다 할지라도(고후 2:4)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라는 말씀에 힘을 얻어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넘치는 기쁨을 가져어야 합니다(고후 8:2).
Ⅱ. 고난당하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욥이 고난당하는 것도, 요셉이 고난당하는 것도, 다니엘이 고난 당하는 것도, 야곱이 고난당하는 것도, 바울이 고난당하는 것도,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순교를 당하는 것도, 모세가 40년 동안 미디안 과정를 받고, 40년 동안 광야과정를 밟은 것도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섭리를 알아서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왕하 6:33), "여호와의 시키심이 아니고야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암 3:6)고 말을 하였던 것처럼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합니다(욥 5:17).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며 모든 일을 행하시고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사 45:7).
Ⅲ. 하나님은 고난의 양도 규정하십니다(대상 21:15, 시 80:5, 렘 46:28, 사 9:1, 40:2).
렘25:11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렘25:1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사23:15 그 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 같이 칠십 년 동안 잊어버린 바 되었다가 칠십 년이 찬 후에 두로는 기생의 노래 같이 될 것이라
Ⅳ. 하나님은 고난의 기간도 규정하십니다.
창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창15: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민14:33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렘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원래 하나님은 고난을 원치 아니하시는 분으로, 인생들이 고생하며 근심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닙니다(애 3:33).
그러나 사람은 고난을 통해 좋은 일꾼으로 길러지고,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자기 죄를 깨닫게도 되고, 영력도 얻고, 능력도 받고, 권능도 받고, 천국을 소망하기도 하고 자아가 깨어지고 부서지고 포기하고 순종하게 되며 진정한 감사의 사람이 되는 것을 생각할 때 고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만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Ⅴ. 성령 충만받은 성도는 주를 위해 어떤 고난의 삶을 살게 되는가?
성령충만 받은 성도라 하여 고난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성령충만한 성도라도 주님을 위해 고난의 삶을 살게 되기도 하는데 대체로 다음과 같은 고난을 받게 됩니다.
핍박(마 5:10, 13:21, 막 10:30, 딤후 3:12), 모욕과 비방(마 10:25, 행 13:45), 주님 때문에 맞는 일(마 10:17), 시험(눅 8:13), 사탄의 세력(엡 4:27, 6:12), 순교(마 10:28), 시련(벧전 1:7, 4:12), 능욕(히 13:13), 위험과 자지못함(고후 11:26~28), 복음을 위해 돌에 맞음(행 14:22, 살후 1:4), 주님으로 인해 세상에서 미움(마 10:21~36)등등......
Ⅵ. 고난으로 인한 상급과 축복은?
첫째, 정금같이 됩니다(시 66:10, 잠 17:3).
욥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둘째, 영광이 있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8)
셋째, 왕노릇을 하게 됩니다.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딤후 2:12)
넷째, 열매가 있습니다.
히12: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히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다섯째, 축복이 있습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 8:17)
여섯째, 위로가 넘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고후 1:5~7)
일곱째, 상급이 있습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벧전 4:13~14)
여덟째, 유익이 있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71)
아홉째, 인내를 배웁니다(사 40:1, 약 1: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롬 5:3)
열 번째, 복음을 가속화시킵니다(행 8:3~4, 빌 1:12~14, 딤후 2:9~10).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행 11:19~21)
열한 번째, 죄를 깨닫게 됩니다(욥 36:8~9).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 119:67)
열두 번째, 더 강한 믿음을 넣어줍니다(창 22: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신 8:2)
열세 번째,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체험시킵니다(고후 4:8~11).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 하나도 꺽이지 아니하도다" (시 34:19~20)
열네 번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합니다(요 11:3~4).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요 9:1~3)
열다섯 번째, 겸손하게 됩니다(고후 12:7).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 8:3)
Ⅶ. 성경에 나타난 고난의 승리자들
어떤 신문기자가 축전지의 제조과정을 연구 중인 에디슨을 찾아와 "축전지의 제조과정에서 납 대신 다른 물질을 이용하면 안 될까요?"라는 질문을 하자 "나는 그 대체 물질을 찾느라고 약 2만 번이나 실험했습니다"는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2만 번이나 실험하시면서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셨으니 굉장히 실망하셨겠습니다. 모든 노력이 헛되었으니." 에디슨은 "헛되다고요? 천만에요. 나는 2만 번의 실험이 성공하지 못한 것을 통해서 그 2만 번의 방법이 축전지의 제조과정에는 모두 부적합함을 발견했죠. 그것만으로도 나는 성공한 셈입니다. 언젠가는 그 방법이 발견될 테니까요"라고 대답을 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발명왕 에디슨도 수만 번의 실패를 통해 위대한 발명을 하였듯이 고난 없는 성공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요셉(창 15:5~8), 히스기야(대하 32:24~26), 에스더(에 4:16), 욥(욥 2:9), 바울(고후 12:10)등이 고난의 승리자로 나옵니다. 그러나 그들에 견줄 수 없는 고난의 승리자는 우리 예수님(벧전 2:21~24)이십니다.
Ⅷ. 고난의 대처 방법
고난은 우리 주위에 늘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떤 이들은 절망하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낙심하거나 불안해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 보며 끝없이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염려하기 보다는 오히려 찬송을 하고(시 42:5) 고난은 자신에게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할 수 있는 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욥 5:6~7, 14:1). 그러다보면 내곁에 있던 고난이 멀리 도망가고 없을 것입니다.
Ⅸ. 결론
실제로 인생은 고난의 연속으로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이 바로 고난입니다. 다만 닥쳐온 고난을 '어떻게 받아드리느냐?'가 문제입니다. 고난은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권력가나 어린이에게 이르기까지 인생이라면 예외없이 찾아옵니다(욥 5:6~7, 14:1).
고난에는 살다보니 오는 고난이 있고, 실수해서 오는 고난이 있고, 잘못해서 오는 고난이 있고, 성격이 못되어서 오는 고난이 있으나 주를 위해, 교회를 위해, 사명을 위해 오는 진짜 고난은 축복의 지름길이니 여러분들은 고난을 피하지 말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