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셋째주 북한산맥 종로산맥 종주기 (시티투어)
2010.2.21 시티투어 (평창동->홍제동)
14시45분 피노키오에서 산행 뒷풀이를 마치자 모두가 귀가할 버스로선을 검색한다.
대부분 구기터널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가는 중이다. 수성이 종로까지 얼마 안되니 걸어 가보자고 제안 한다. 어디가냐 고 묻던 패션은 종로까진 엄청 멀다며 구기 터널 방향으로 향한다.
노가다, 도옹, 수성, G.P.S 와 푸르른날은 함께 맞은편으로 길을 건넜다.
길을 건너자 푸르른날을 제외한 모두가 이에 동의한다.
푸르른날은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다고 한다.
나머지 4인은 무작정 종로를 향하여 걸어가는 중이다.
조금 걸어가니 푸르른날의 전화가 왔다 0212 버스를 탓으니 같이 타고 가자고 한다. 우리는 계속 GO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커브를 돌아 나가자 삼거리가 나온다. 이때 우리 앞으로 푸르른날이 탓다는 0212 버스가 지나간다. 시간을 보니 이때가 14시56분 쯤 이다.
4인은 맘을 단단히 먹고 가다가 아스팔트가 꺼지지 않는한 계속 진행키로 맹세한다.
우리가 지나는 길은 이정표에 "세검정로" 라 적혀 있다.
성수가 부근에 "세검정 정자가 어디 있을텐데" 라고 말하니 문득 김신조가 생각이 났다.
1968.1.21 생포된 김신조 등 무장공비 31명이 세검정고개의 자하문을 통과하려다 비상근무 중이던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고 총격전이 벌어져 많은 시민들이 살상되고 당시 비상근무를 지휘하던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총경이 무장공비의 총탄에 맞아 순직하였던 그 길로 연결되는 곳인가 보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 걸어가니 세검정초등학교가 있고 부근에 조지서터란 표식물 앞에 도착한다.
15:02 : 조지서터 도착
조지서는 국가에서 종이를 만드는 관아로서 태종때 조지소(造紙所) 란 이름으로 설치되었다가 세조 때 조지서터(造紙署址:조지서지)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한자음을 그대로 읽으면 (조지서지)는 발음상 곤란하여 초등학교 근처라 한글명을
"조지서터"로 고친 것이란다.
15:05 :소림사입구 도착
길을 계속 걸어가니 저멀리 막혀 있는 산 언덕에 상명대학교가 보인다.
일행은 소림사입구에 도착한다. 소림사 외벽을 따라 부근의 경관를 구경하다 출입구로 향하니 일주문을 겸한 2층 종각이 나오고 왼쪽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탑사와 대웅전이 보인다.
이절은 조선의 건국과 연관이 있다하니 역사공부 하는 셈치고 그 내력을 자세히 살펴 보기로하자.
소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1396년(조선 태조 5) 혜철(慧哲)이 태조의 명을 받아 창건하였다. 당시 태조는 창의문(彰義門) 밖에 절을 세우도록 하고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게 하였다. 처음에는 소림굴(少林窟)이라 했으며, 절 이름은 중국의 숭산(崇山) 소림사에서 따온 것으로 중국에 선종을 전한 달마가 9년 동안 벽을 보고 좌선한 곳이다.
이 중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석가모니불과 후불탱화가 있고, 불상 왼쪽에는 목각신중탱화도 놓여 있다.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성탱화를 가운데 두고 좌우에 산신탱화와 칠성탱화가 걸려 있다.
한편 종각은 일주문을 겸하며, 요사의 이름은 마하선원(摩訶禪院)이다.
본래 자연굴에 법당을 지은 것인데,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기 전에 이 굴에서 수도한 바 있다. 1817년(순조 17) 관해(觀海)가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소림사로 바꾸었다. 1913년 두삼(斗三)이 큰방을 지었으며, 1933년 주지 용호(聳湖)가 칠성각을 새로 짓고
1935년에 대웅전을 창건하여 절의 모습을 갖추었다. 조선시대에는 교종(敎宗)에 속했으나, 1960년대 불교정화운동 이후 선종 사찰로 바뀌었다. 현재는 비구니 수행 도량으로 유명하다. 건물로 대웅전과 삼성각·종각·요사채 등이 있다.
종각 위쪽 입구에 오르면 법당 앞에 그다지 오래된것 같지는 않으나 신기한 자태를 한 와송 (누워 있는소나무) 한그루가 뿌리를 내려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며 사시사철 푸른 침엽을 가꾸며 자라고 있다.
15:20 : 세검정 부근
소림사를 두루 구경하고 일주문을 겸한 종각을 나와서 조금 내려오니 길건너 하천가에 2층으로된 누각인 세검정이 보인다.
세검정은 조선 숙종(재위 1674∼1720)때 북한산성을 축조하면서 군사들의 휴식처로 세웠다고도 하며, 연산군(재위1494∼1506)의 유흥을 위해 지은 정자라고도 전한다.세검정이란 이름은 광해군 15년(1623) 인조반정 때 이곳에서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갈아 날을 세웠다고 한데서 세검(洗劍)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정자는 평면상 T자형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영조 24년(1748)에 고쳐 지었으나 1941년에 불타 없어져서 1977년 옛 모습대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세검정은 평화를 상징하는 정자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었다는 점 등에서 한국적인 건축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15:24 : 홍지문 입구
세검정을 지나 조금 내려오니 도로 우측아래 하천길을 따라 "홍지문 및 탕춘대성" 표지판을 지나 홍지문 입구에 도착한다.
오른쪽엔 산에는 탕춘대성 성곽이 보인다. 일행은 지붕의 고드름이 녹아내리는 홍지문을 지나 현판이 보이는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길을 빠져나와 큰길로 합류하여 아래를 계속 내려오니 도로 옆 개울은 잘 정비되어 있다.
흐르는 물속이 훤히 투영되며 명경 처럼 맑아 보인다. 오염 없는 산골짝에서 흐르는 물과 견줄만큼 무척 깨끗해 보인다.
아마 시에서 이부근 하천의 정비를 잘하였나 보다.
15:35 : 옥천암 도착
일행은 주변에 보이는 산과 풍경을 즐기며 걸어가면서 일상에 얽혀 있는 이런저런 이야기와 살아온 족적을 되새기니 모두가 상념에 젖어 마음은 이미 그 옛날로 돌아가 있는 듯 하다. 이렇게 한없이 걸어도 몸과 마음이 무척 가볍다. 무엇 보다도 오늘 날씨가 우리가 이렇게 최상의 컨디션으로 피로를 잊은 채 트래킹을 맘껏 즐길 수 있도록 제대로 선택한 것 같다.
곧이어 옥천암에 도착한다.
옥천암 마애좌상 [玉泉庵 磨崖坐像] 은 1973년에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다. 관음보살좌상(觀音菩薩坐像)으로 석불의 높이는 5m 정도이다. 하얀 불상이 새겨져 있는 바위에는 정면 1칸, 측면 2칸의 보호각(保護閣)인 보도각(普渡閣)을 지어 보존하고 있다. 불상은 바위의 평평한 면에 새겨졌으며 호분(胡粉)과 금분(金粉) 등을 칠하였고 머리에는 꽃무늬가 장식된 삼면관을 썼다. 얼굴은 둥글고 눈이 가늘며 입이 작아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나타낸다.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서울에 도읍을 정할 때도 이 마애불에 기원을 했다고 한다. 또 조선 말기 고종의 어머니인 흥선대원군 부인 부대부인(府大夫人) 민씨(閔氏)도 이 석불 앞에서 아들의 복을 빌었다고 전해온다. 부처에 흰칠을 했으므로 고종 때부터 백불이라고 불렀다.
16:00 : 인왕시장 도착
일행은 좌측에 길게 뻣어 있는 인왕산과 상부 성곽을 바라보면서 계속 진행중이다.
성곽을 바라보며 수성이 감회에 젖는다. 십 수년 전 서울청사에 근무시 이곳 인왕산 성곽에 올라 구경한적이 있다고 한다.
지금은 성곽보호를 위하여 일일 출입인원이 제한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땐 그냥 출입이 가능했다고 한다.
부근에는 왼쪽에는 산맥자락 아랫쪽을 따라 홍은동 일대 아파트촌이 줄지어 서있고,
저멀리 진행방향 앞쪽으로는 조선시대에 봉화를 밝히던 봉수대와 통신용 철탑이 저멀리 우뚝 솟아 있는 안산이 보인다.
우리는 인왕산 중턱으로 관통하는 내부순환로 교각 아래길을 통과한다.
그리고 개울을 건너는 교량을 지나니 수성이 이부근에 시장이 있어 다양한 먹거리의 맛집을 찾아보자고 한다.
시장에 골목 안으로 들어가니 노는 일요일인지 대부분의 가게는 셔터를 내리고 주변은 컴컴하다.
문을 연 가게는 대부분 식료품을 취급하는 탓에 정월대보름이 가까워 오니 버섯,나물,부럼,약재료 등 온갖 식재료 들이 가득하다. 주위를 둘러보다 곧장 앞으로 나가니 저쪽에 24시해장국 간판이보인다.
우리는 여기에 들러 녹두전과 선지술국을 시키고 막걸리로 목을 축인다. 캬 끝내주는 이 맛...
선지국 우거지와 국물은 깊고 부드러워 감칠맛 나는 사골국을 머금은 우거지가 입안에서 살살녹는 듯 맛이 일품이다.
이러쿵 저러쿵 한참을 이야기 하다보니 어느 듯 선지국에 있는 우거지가 떨어져 간다. 수성은 별도로 주인장에게 요청하여 우거지를 리필한다. 이때 주인장이 구하기 힘든 귀한 우거지라서 아끼고 있으나 다 떨어져 간다고 한다.
술을 몇잔 더 들이키니 또 양이 안찬다. 수성이 우리가 소자를 시켰는데 대자로 고쳐 보충해주면 안되냐고 협상을 시작하니
이윽고 또 한 냄비 가득 선지우거지가 가득히 채워진채로 재탄생 한다.
이렇게 배부른지 모르게 맛있게 먹다보니, 모두가 가득 채워진 배를 부둥켜 안고 겨우 일어선다.
이 계산은 수성이 처리한다. 수성이 실컷 먹고도 3만원을 주니 3천은 줄이 받았다고 마치 어린애 처럼 즐거워 한다.
이렇게 오늘 북한산맥과 종로산맥을 관통하는 시티투어를 성공적으로 완수 했다.
참석한 4인의 강철같은 투지와 불굴의 탐험정신으로 새로운 코스를 개발해 낸 것이다.
17:30 : 귀가
일행은 귀가를 위해 가게를 나와 전철역으로 향한다. 부근엔 역사와 규모가 큰 천주교서울대교구 홍제동성당이 자리잡고 있으며 선종1주기를 맞는 김수환추기경을 추모하는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다.
일단 큰길을 따라 홍제역으로 방향으로 향한다.
수성과 도옹은 3호선 홍제역으로 지하도로 가고, 노가다는 1호선을 타기위해 G.P.S와 버스를 타고 서을역으로 향했다
(투어시간:1시간20분, 피노키오출발:14:45, 인왕시장도착:16:05, 해산:17:30)
첫댓글 씨티투어 덕분에 홍제천 자락의 역사적 명소도 보고 걷기 운동 좀 더했소이다
구수한 선지 우거지 해장국의 깊은 맛을 잊을 수 없네요. 종로산맥 후기 올리느라
고생했소
그래 마이 걸었는데 어디에 있는 해장국인들 맛이 없었겠소! 하며 왠같 차량하며 인간들이 내뿜는 공해물질 사이로 종주하며 오만가지의 감동을 받으며 뜻깊은 오후를 보냈다니 그대들은 철인을 넘어 외계인 인게 틀림 없는 것 같소.!!!!!
종로산맥 시티투어 잘 읽었슴. 세검정, 자하문, 소림사등등 사적과 재래시장의 구수한 우거지 해장국 ...
하루를 살아도 요렇게 살면 10년 살아도 30년 산거나 진배없겠소. 시간은 량이 문제가 아니라 질!, 질인기라!
수리남 아재 소프트코어 말고 이젠 하드코어로 하자. 그래야 맛간 부속품도 기름쳐져서 제역활 할거 아이가! 이상적 사랑(이데아)보다는 현실적사랑(플라토닉러브)이 났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