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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올림픽대로가 한강과 공암 사이에 놓인다.
그래도 그때는 도로 한편으로 호수같이 분리된 강물 위에 떠있는 공암을 볼 수 있었다.
90년대 이후 이곳이 아파트단지가 되면서 공암 주위를 연못으로 남겨놓고 구암공원을 만들었다.
높은 자색의 절벽으로 유명했던 탑산과 공암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했다고 한다.
그 앞에 우뚝 솟은 광주바위로 인해 그 아름다움이 더했다고 한다.
가양동 아파트 단지 안에 자리한 구암공원.
공원내에는 전설이 깃든 광주바위와 허준 선생이 앉아서 병자를 진료하는 인자한 모습의 동상
그리고 호수 정자 어린이 놀이 시설이 있으며 인근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주변에 허준박물관과 한강시민공원이 있어 인근주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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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오르내리던 많은 이들을 감탄케 했던 광주바위이다.
옛날 한강에 큰 비가 내려 경기도 광주 고을에 있던 커다란 바위가 쓸려내려가 지금의 양천 고을 탑산 앞까지 떠내려
왔다고 한다. 떠내려간 바위가 어디로 갔는지 찾아다니던 광주 고을 원님은 양천 고을 원님에게 탑산 앞 바위가
원래 광주의 바위니, 양천 고을에서는 그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우겼다.
이에 양천 고을 원님은 그러겠다 하며 매년 싸리비를 만들어 사용료로 보냈다.
"우리는 이 바위가 더 이상 필요 없으니 도로 가져가시오"
양천마을 사람들의 부담이 커지자, 광주 고을 원님에게 통보했다.
그 바위를 가져갈 수 없었던 광주현감은 더 이상 세금을 내라는 요구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본래 순박하고 인정 넘치는 양천 고을 사람들의 착한 심성과 멋진 광주바위의 풍광을 잘 나타내는 전설이다.
광주바위는 광제(廣濟)바위라고도 부른다.
백제 때부터 이 바위를 부르던 이름이 아니었나 한다.
광제바위는 너른 나루에 있는 바위라는 뜻일 것이라고 전한다.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두고 한강의 물길을 장악하고 있을 때
이 공암나루는 너른 나루 중 하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광주바위라 하는 것은 광제바위가 잘못 전해져서 얻은 이름일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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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의 면적은 5,100㎡이며 수심은 약2m이고 바닥은 자연암반으로 위치별로 수심의 차이가 크다.
호안은 부분적으로 자연석 호안이고 일부는 암반이다. 연못내에는 음악분수가 설치되어 2004년도부터 운영되고 있다.
슈베르트의 빌헬름텔을 비롯해 총 11곡의 음악에 따라 분수가 춤춘다. 야간에는 282개의 조명이 조화를 이루며
환상적인 분수쇼를 연출한다.허준박물관과 함께 이 지역을 명물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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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허준이 환자를 돌보는 인자한 모습이다.
허준의 본관은 양천으로 자는 청원, 호 구암이다.
선조때 내의가 되어 왕실의 진료에 공을 세웠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때 어의로 왕을 끝까지 호종하고 돌아와
1604년 호성공신 3등에 책록되고, 1606년 양평군에 봉해졌다.
후에 대간의 반대로 직위가 취소되고, 1608년 선조가 죽자 치료를 소홀이 했다는 죄로 파직당했다.
1610년(광해군 2년) 16년의 연구 끝에 완성한 『동의보감』은 조선 한방의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18세기에는 일본과 청나라에서도 간행될 만큼 높이 평가되었으며 지금도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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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근린공원 뒷문으로 나오면 허준박물관이 나온다.
약재·약기·한의학에 관한 유물이 대부분이지만, 한평생 의학에 매진한 허준의 고집스러운 삶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