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Monadnock, 다른 이름으로 Grand Monadnock은 내가 갓 대학을 졸업하고 미 북동부로 온 후 처음으로 오른 산이다. 첫 산행은 작년
4월 경이었는데, 이 지역의 기후를 잘 모르던 때라 무식한 용기만으로 상당한 바람을
무릅쓰고 행진한 끝에, '야호'를 외치기가 바쁘게 하산했었던 기억이
난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이 산은 뉴햄프셔
Cheshire County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전 세계적으로 일본의 후지산
다음으로 등산객이 많이 찾는 산이라는 것이다.
그로부터 1년하고도 몇 개월이 지나,
보스톤산악회의 일원으로서 Monadnock을 다시 밟게 되었다. 산행지가 결정되고부터 한주를 설레임에 빠져 있었던 터라, 날씨 문제로 2주나 연기되었을 땐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어제, 드디어
정상을 밟고 왔다.
이 후기에서는 내가 1년 남짓 보스톤산악회(이하 보산회)와 함께 산행을 하면서 변화한 산행에 대한 나의 생각, 그리고 느낀 점들에 대해 적고자 한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다소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음에 유의하며 읽어 주셨으면 한다. Monadnock에 대한 얘기는 끝에 조금 적고 싶다.
내 나이가 스물여섯이니 보산회에선 막 걸음걸이를 시작한 아기와도 같은 나이다.
내가 취미가 '등산'이라고 하면 나보다 연세가
많은 분의 경우 주로 '젊은 사람이 취미가 참 독특하다'는 반응을 보여
주시고, 나와 비슷한 나이일 경우 '어차피 내려올 것을 왜 올라가냐'란 말도 듣는다. 그러면 전자의 경우 '산이 좋아서요'라며 웃으며 대답하고 후자일 경우 기분에 따라 '같이 가보면 알아'라던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을 경우) '어차피 숨 내쉴
것 왜 들이쉬냐'라고도 대답한다.
나에게 있어 산행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때그때 다르다. 때로는 그것이 정상을 밟았다는 정복욕의 충족, 또는 때로는 옆사람보다 빨리 올랐다는 경쟁심일
때도 있다. 때로는 사계절 변하는 나무들을 보기 위해서라거나, 때로는
산림욕을 즐기기 위해서. 때로는 산우들과 나누는 잡담을 위해서, 때로는
그저 걷고 싶어서. 때로는, 땀을 뻘뻘 흘려보고 싶어서,
때로는 여유를 즐기기 위해서. 때로는 자연과 하나되고 싶어서, 때로는 자연과 나 사이의 경계를 느끼고 싶어서 산에 가기도 한다.이렇듯, 산행은 무엇을 갖다 붙이던 “산행은 ~이다”라는 근사한 경구를 만들고 상대방을 공감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나와 대화를 나눈 분들
중 농담삼아 문장을 만들고 납득시켰던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약간의 사과를 드립니다.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산행은 그저 좋은 겁니다"라고).
내 또래의 친구들을 보면 보통 산을 좋아하는 사람과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사실 산을 선호하는 나는 소수집단에 속한다. 날씨가 쾌청하고 바람이 선선하면
'바다로 가자'라고 외치며 우르르 몰려가는 경우는 있지만 나는 내 성격 탓인지
'산으로 가자'라고 외치지도 않고, 솔직히
외쳐도 그다지 따라오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내겐 바다도 좋지만, 산이
더 매력있는 것 같다.
굴곡진 능선과, 계절에 따른 초목의 변화와,
가끔은 발밑에 깔린 구름의 바다와 한없이 조용한 가운데 들리는 작게 울려퍼지는 새소리(캬아~). 바다에서 느끼지 못하는 여유와 아기자기함을 산에서는 찾을 수 있다.
흔히들 탁 트인 바다를, 파도가 모래사장에 부서지는 모습을 보며 해방감과 자유를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산 정상에 서서 탁 트인 세상을 본다면, 바다 못지않은 자연의 위대함를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땀과 먼지로 뒤범벅이 되어 정상을 밟았을
때 느끼는 해방감과 자유를 느껴 보라고 하고 싶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의 내가 가장 아름답다'는 그 뿌듯한 성취감을 말이다.
산행 자체는 힘든 과정이다. 당일의 날씨에 따라,
기분에 따라 더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산행 자체는 누가 뭐래도 소모적인
활동이다. 다시 내려오며 디딜 것을 알면서도 한걸음 한걸음 용을 쓰며 올라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삶과 같다. 목적지에 대한 비젼을 가지고 약간의 어려움도 웃으며 헤쳐나갈
자세를 갖춘 자에게는 기쁨이며, 시련으로만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에게는 운동일 뿐이다. 이것을 나는 매번 산행할 때마다 느낀다.
그렇기에 내게 있어 바다란 수동적인 장소이다.
그렇기에 내게 있어 산이란 능동적인 장소이다.
내겐, 바다와 파도를 보고 응어리를 풀어내는 것은
이기적인 것 같다. 자신의 노력을 다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해결되길 바라는 경향으로 생각된다.
산은 노력을 불어넣은 사람에겐 자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능동적으로 시련을 마주하며
이긴 사람에게 해방감을 선물해준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장기투구를 하는 사람이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은 여유는 있으되 게으르진 않다.
난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
바다를 (특정 경우에는)남을 보기 위해서 간다면 산은 자기내면과 과거를 돌아보기 위해서 간다. 자신의 모습은 신경쓰지
않으며 남을 보기보다는 자신의 힘겨워하는 모습을 그대로 수용하며 함께가는 여정, 그것이 내겐 산행이다.
그래서 나는 해수욕보다는 우거진 나무사이에서 자연의 싱그러움을 느끼는 산림욕이 더 선호한다.
*참고로 나는 바다에서도 아주 잘 논다. 지금까지의
글은 위에 적었듯이 어떻게보면 산행에는 무엇을 가져다 붙여도 진실성이 담긴 말이된다는 아주 참한 예제가 되겠다.
서두가 엄청나게 길었다. 이 후기를 수필이라고
하고 '붓가는 대로' 적었다 생각하며 이제 Monadnock에 대한 얘기를 다시 하고 싶다.
날씨는 쾌청. 지난 번 방문했을 때는 정상 부근에
눈이 남아 있었고 바람은 사진기를 날려버리려고 아우성을 쳤었지만, 이번에는 날씨가 선선하고 좋았다.
참가한 54명 모두 그 어떤 부상도 없이 봄날의 Monadnock을 맘껏 즐길 수 있었다.
보산회에서의 내 닉네임은 백토끼. 보산회는
20대부터 70대까지 대략 4세대를 아우르기
때문에 성함을 부르지 않고 친근하게 '기름챙이님, 개복치님'
등등 닉네임으로 부른다(여기서 '~님'은 필수이다). 백토끼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따온 이름으로 '인도자'이자 아주 성급한 성격을
가지고 언제나 종종 뛰어다니는 캐릭터이다. 평상시에 약간의 경쟁심과 정상에 대한 설레임에 불타며 선두조에
서서 무식한 젊음으로 정상을 성급히 밟는 나와는 은근히 어울리는 닉네임이다.
이번 산행은 회장님이 날 20대 조장으로 승급시켜
주시는 바람에, 그리고 내가 많은 친구들을 꼬셔서(!) 데려온 관계로
천천히 걸었다. 조용히, 차분히, 천천히 걸었다. 급히 올라 정상에서 졸고 있는 모습이 (마치 토끼와 거북이 우화에서처럼) 자주 목격되는 백토끼인데 이번 산행에서는 온갖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지난 산행 때 보지 못한 것들이 하나하나 보이고
느껴졌다. 느리게 여유를 즐기며 걷는 것도 정말 좋았다. 올라가며 그리고
내려오며, 전엔 그저 살짝 고개만 숙여 인사하고 지나갔던 산우들과도 이런저런 얘길 나눌 수 있어 좋았다.
Monadnock은 산 이름이자 영단어이기도 하다. 평원에 홀로 서 있는 언덕을 monadnock이라고 부른다. 이 이유를 정상에서 느낄 수 있었다. 주변엔 아무런 다른 봉우리가 없는 평평하기 그지없는 평지.
곳곳에 올망졸망 모여있는 호수들과 셀 수 없이 많은 청록의 나무들이 모두 보이는 시야를 느낄 수 있었다.
Monadnock이 일본의 후지산 다음으로 등산객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리라 생각했다. 저번엔 그렇게 모질게 바람으로 맞아주었단 Monadnock, 이번엔 정말 반갑게 맞아주었다.
탁 트인 푸른 하늘에 유쾌하게 유유히 비행하던 매 두 마리도 반갑게 맞아주었다.
산들, 아니 자연은 정말 경이롭다.
사계절 다른 모습을 가지며, 나날이 다른 기분을 보여준다. 정상에 서면 언제나, 처음엔 '나는 대단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환희가 가라앉을 때쯤 주변을 둘러보면 '나는 극히 미미한 존재일 뿐이다'라고 느낀다. 자신에
대한 성취감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 나는 이것을 느끼기 위해 산행을 한다.
보스톤에 온지 어언 2년 남짓, 보산회와 만나게 된 것을 커다란 행운이자 은총이라 생각한다.
첫댓글백토끼님 글을 읽고 어제 올라가 본 산을 기억하여 보니 올라갈땐 정상에 가야한다는 생각에 앞만 보았고 정상에선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갖지 못한것 같읍니다. 두번째 산행이라 아직은 산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였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다음엔 주위도 돌아보고 정상에서 심호흡도 하며 여유롭게 산을 올라야겠읍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산과 바다가 함께 있는 곳에서 자라서 둘 다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저는 바다는 어머님처럼 언제나 쉽게 찾을 수 있고 넓은 세상을 품은 어머님 사랑으로 비유하고, 산은 근엄하면서도 언제나 인자한 인품을 지닌 아버님의 사랑으로 비유합니다. 그래서, 산과 바다는 부모님처럼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산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 곳에 있고 바다는 언제나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Very very well said, 백토끼님!! I like mountains too. I've been hiking over 40 years, often alone. I go hiking just because I like it, that's all. Onething for sure, at least in my case, I can think most clearly when I am in mountains. So I go to mountains alone when I have to make a difficult decision^.^
첫댓글 백토끼님 글을 읽고 어제 올라가 본 산을 기억하여 보니 올라갈땐 정상에 가야한다는 생각에 앞만 보았고
정상에선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갖지 못한것 같읍니다. 두번째 산행이라 아직은 산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였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다음엔 주위도 돌아보고 정상에서 심호흡도 하며 여유롭게 산을 올라야겠읍니다.
역시 독서를 많이 하시는 백토끼님~ 글도 잘 쓰시네요.
산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지신 토끼님은 아들 친구가 아닌
진정 내친구라고 확신합니다.
백토끼님이 요즘 유행하는 who 라인? audrey 라인이라는것 ...ㅎㅎㅎ
백토끼님..후기 정말 멋집니다..^^ 종주산행에서 나누고 느꼈던 님의 철학..뷰리플이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산과 바다가 함께 있는 곳에서 자라서 둘 다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저는 바다는 어머님처럼 언제나 쉽게 찾을 수 있고 넓은
세상을 품은 어머님 사랑으로 비유하고, 산은 근엄하면서도 언제나 인자한
인품을 지닌 아버님의 사랑으로 비유합니다.
그래서, 산과 바다는 부모님처럼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산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 곳에 있고
바다는 언제나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산이란 능동적인 장소이다' 아주 맘에 듭니다. 산악회에 젊은 리더가 되심을 축하 드립니다.
백토끼님은 산에 갔다 오자마자 느낌을 잘 정리할 수 있다는 축복 받은 능력을 가지고 있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백토끼님의 좋은 글을 자주 읽을 수 있는 행운을 기대할께요.
부지런한 활동으로 보스턴산악회에 많은 기여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끝.
보스톤코리아에 올려진단 생각하에 열심히 적었습니다. 맘에 들어하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 백토끼님!! 정말 많은 생각을 하나의 흐름으로 훌륭하게 정리해서 쓰셨네요.. 완전 부럽삼~ -ㅂ-)b
중간중간에 다이어리에다가 옮겨적고 싶을만큼 공감되는 글귀들이 많네요..ㅎㅎ
멋지십니다!
혹시 싸이하세요? +_+
정말 나이에 비해 성숙?한 백토끼님의 깊이가 느껴지는 글이네요. 잘읽었어요~ 감사합니다~^^
항상 무얼 물으면" 예" 혹은 " 아니요 " 란 단답만 듣다가 오늘 이런 훌륭한 문장력이 동반된 님의 글을 대하게 됩니다.
20대의 자라나는 청년의 글에 이 50대가 배워야할 인생의 철학까지...... 잘 읽었습니다.
Very very well said, 백토끼님!! I like mountains too. I've been hiking over 40 years, often alone. I go hiking just because I like it, that's all. Onething for sure, at least in my case, I can think most clearly when I am in mountains. So I go to mountains alone when I have to make a difficult decision^.^
산행후기 쓰라고 부탁하지 않아도 이렇게 자발적으로 공감을 나누시는 백토끼님이 너무너무 이쁩니다. 고마워요...
잘쓰셨네요,.,.
백토끼님 본인 본명과 김태희? 김태휘? e-mail을 쪽지나 답글로 남겨주세요. 급합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태휘이며 david.tawhee.kim@쥐멜.com으로 보내시면 됩니다.
너무 멋있는 글이네요.
이번에 간 "백토끼 친구들 1-4"때문에 천천히 등산 하셔야 했지만 여유롭게 느끼셨다니 다행입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