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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활천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
약속
김수영
30여 년 전.
그 해는 날씨도 추웠지만 눈이 너무 많이 내렸다. 보통 눈이 올 땐 30센티 정도 내려 동네 이장님이 방송을 할 정도였다.
“여러분, 오늘은 하나님이 노하셨나 봅니다. 눈이 겁나게 왔으니 바깥출입을 좀 삼가 했으면 좋겠습니다요.”
눈이 올 때마다 행여 동네주민이 다칠세라 이른 아침부터 이장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온 동네를 울렸다.
그해 겨울, 나는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새벽기도를 나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새벽기도를 시작했는데, 그것은 하나님과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평상시엔 못하지만 방학 때는 꼭 새벽기도를 하겠다고...
초등학생이 웬 새벽기도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때는 여름 성경학교 때 새벽기도에 나오면 선물을 푸짐하게 줬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선물을 받기 위해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새벽기도를 나간 것인데, 그 때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은혜를 받을 줄이야. 어린 꼬마가 맨 앞자리에 앉아 울면서 기도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는지 교회 권사님, 집사님들이 도대체 저 꼬마가 누군지 꼬치꼬치 캐물으며 관심을 가질 정도였다.
이렇게 시작한 새벽기도에 재미를 붙여 그때 하나님과 또 하나 약속을 했다. ‘하나님, 방학 때마다 꼭 새벽기도에 나가겠습니다. 더울 때나 추울 때나 날씨에 상관없이 새벽기도를 하겠습니다.’ 어린나이지만 하나님과 약속한 건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여 날씨가 아무리 덥거나 추워도 새벽기도를 나갔다.
그런데 눈이 많이 오는 날엔 걱정이 정말 태산 같았다. 30센티나 되는 눈이 내릴 땐 거의 허벅지까지 닿는다. 자칫 잘못하다간 눈에 파묻힐 수도 있다. 이럴 땐 어머니께서
“수영아, 오늘은 가지 말고 쉬어라. 눈이 너무 많이 왔다.” 하셨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엄마, 하나님하고 약속한 건 꼭 지켜야 한대요.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면 복을 주신대요.”
믿음이라고는 전혀 없는 어머니는 내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 대견스러운지 항상 내 의견을 존중해 주셨다.
새벽 4시, 그날도 역시 함박눈이 밤새 내려 어제보다 더 높이 쌓여 있었다. 어김없이 어머니는 나를 깨우시고 어디론가 급히 나가셨다. 눈을 뜬 나는 걱정을 하면서 겹겹이 옷을 챙겨 입었다. 양말도 두 켤레나 신고 털모자에 털장갑까지... 그러나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날은 정말 가기가 싫었다. 방학을 맞이해 늦잠 자는 아이들이 왜 그리 부러운지, 그 아이들이 그날따라 부럽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억지로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우리대문에서부터 시작해서 큰길 입구까지 소복이 쌓인 눈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벌써 청소부가 나올 리는 없고, 그렇다고 이장 아저씨가 꼭두새벽부터 눈을 쓸리는 없고...
바로 어머니셨다. 어린 딸이 교회에 편히 갈 수 있도록 손수 쓸어 놓으셨던 것이다. 큰길부터는 차가 다니는 길이라 눈이 어느 정도 녹아 있어 그런대로 갈 만했다. 50미터나 되는 길을 쓸어 놓은 어머니는 힘들지도 않으신지 마을 어귀에서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조심히 다녀오라고 하셨다.
30분 남짓 걸어가면 교회가 나온다. 교회에 도착하면 발은 꽁꽁 얼어 있고 양말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신발은 다 젖어 있었다.
그 때 가장 반갑게 맞아주신 분은 교회학교 최 선생님이시다. 최 선생님은
“수영아, 오늘처럼 눈이 많이 오는 날은 교회 안 와도 돼. 아이고, 손 좀 봐 꽁꽁 얼었네.”
하시며 나를 난로 가까이로 앉히셨다. 우리 집이 멀다는 핑계로 나에게 특별히 잘해 주시는 최 선생님은 언제나 나에게 바른 신앙의 길로 인도해 주셨다. 특별히 새벽기도 때마다 학생들을 위해 울면서 기도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은혜를 받았고, 나도 최 선생님처럼 그런 기도를 하고 싶었다. 처음엔 무작정 선생님을 따라 기도를 해보기도 했다. 선생님이 손을 높이 들면 나도 손을 높이 들었고, 선생님이 고개를 숙이면 나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선생님이 울면 나도 덩달아 울었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나도 모르게 방언이 터지고 그때부터 간절한 기도가 나왔다. 구원받지 못한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저절로 나오고, 마음에 하나님을 품고 있어서인지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비전적인 기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최 선생님은 방학 때면 꼭 어린이 심방을 하셨다. 심방을 하면서 학생들의 가정환경을 파악하고 학생들과 더 가까운 사이로 만들기 위해 오뎅과 떡볶이를 사주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커서 어떤 사람 될 거니?” 아이들은 하나같이 대통령, 의사, 간호사, 변호사, 요리사 등, 다들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들 했다.
“기도 대장 수영이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궁금한데?”
선생님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이
“수영이는 보나마나 교회 목사님 될 걸요.”
“저는 교회 선생님이 될래요.” 내 대답에 아이들이 모두 까르르 웃었다. 마치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듯이.
나는 최 선생님을 보고 교회학교 선생님이 되고픈 마음이 생겼다. 나를 위해 새벽마다 기도해 주시는 분. 아니 나뿐만 아니라, 우리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 내가 아파서 교회 못 나갈 때는 약을 사서 심방 오시는 분. 내 생일 땐 예쁜 카드로 축하한다고 하시며 맛있는 제과점으로 나를 데리고 가신 분. 물론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반 전체를 위해 그렇게 하셨다.
처음에는 교회에서 월급이 나오는 줄 착각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돈을 너무 많이 쓰셔서. 그런데 알고 보니 선생님 자비로 그렇게 쓰셨던 것이다.
선생님은 전도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셨다. 전도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이고, 전도를 하려면 먼저 모범생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일단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해야 아이들이 교회를 따라 온다고 하셨다. 무작정 전도해라가 아니고, 전도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셨고, 무작정 사랑해라 아니라, 선생님이 먼저 사랑하는 방법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 주셨다.
나는 최 선생님의 말씀 따라 열심히 공부하여 1등을 하였고, 그 해 반장이 되었다. 공부도 잘하고 노래를 잘한다고 아이들이 나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점심때만 되면 나는 앞에 나가서 애들에게 전도를 하기 시작했다. 칠판에 ‘예수 믿으면 천국! 애들아 우리 천국 가자’ 란 글씨를 크게 써놓고 본격적인 전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요청대로 노래를 불러주며 동화도 들려줬다. 아이들을 교회에 데리고 가기 위해선 무엇이든 했다. 그 해 30여 명을 전도하고, 크리스마스 때 전도왕으로 뽑혀 성경책을 받았다. 대예배시간에 전도상을 받자 가장 기뻐해 주시는 분은 바로 최 선생님이셨다. 그리고 목사님께서도 광고시간에 공개적으로 칭찬을 해주셨다.
“수영아, 장하다 드디어 네가 해냈구나. 그래, 우리 수영이 장하다”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아니에요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랍니다.” 쑥스러워 선생님 얼굴도 쳐다보지 못하고 이렇게 작은 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 다음해 1월. 최 선생님은 신학교를 가신다고 서울로 떠나셨다. 떠나시는 날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선생님, 선생님처럼 훌륭한 선생님이 될게요. 지켜봐 주세요.”
선생님과 헤어지고 몇 십 년이 흘렀는가? 나는 최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교회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한 교회학교 선생님.
올해로 28년째를 맞는다.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직업인 글쓰기, 논술 전문교사로 일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예전 같지 않게 전도하기가 힘들다. 교회에서 특별한 이벤트를 하지 않는 한 아이들을 불러 모으기도 힘들다. 대형교회가 부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예인 초청잔치, 놀이동산 가기, 선물 공세 등 작은 교회에서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일들이다. 하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은 작은 교회도 사랑하시고 그곳에도 일꾼을 보내셔 하나님의 역사를 창조하신 분이라는 걸 나는 확실히 믿고 있다.
내가 그토록 존경하던 최 선생님 같은 교사가 되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간식을 사줘도 햄버거나 피자같은 고급음식을 사줘야 잘 먹었다는 인사를 듣게 되고, 놀이동산도 시시한 곳은 아예 갈려고 하지 않고, 이름 있는 유명한 곳에 데리고 가야 따라 나서는 현실이다.
그리고 아이들 자체를 만나기가 힘들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학원 가기가 바쁘다. 특히 요즘엔 맞벌이 부부가 많아서 학교를 마치면 아예 학원에서 저녁까지 해결하고 오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아이들 만나기가 더 힘들어졌다.
현대사회에 맞는 전도를 하려면 어떤 아이템이 필요할까?
이 문제를 두고 본격적인 기도에 들어갔다.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 중 TV에서 우연히 어떤 선생님을 만났다. 이 선생님은 교회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위해서 마술을 배웠는데, 지금은 마술 때문에 아이들을 많이 전도했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 바로 이거야’
타교회에서 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해야 한다. 학부모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해야 부흥할 수 있다는 확신이 왔다. 내 머릿속에는 늘 최 선생님 같은 교사상이 있었기 때문에 교회학교 부흥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해낼 각오가 되어 있었다.
평범한 자보다는 준비된 자를 쓰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늘 깨어 준비하고 있었다. 교사대학을 다니며 수시로 정보를 입수해 예배시간에 적용시켰다. 딱딱한 찬송가에서 재미난 찬양율동, 주입식 설교에서 동화 구연 설교, 아이들의 특기적성을 살려 축구부, 연극부, 율동부, 악기부 등을 편성해 부별로 모임을 가지게 했다. 그리고 1년에 두 번씩 학부모와 함께 견학을 갔다. 대형버스 두 대를 대여해 학부모와 함께 박물관이나 전시회 등 평소에 부모님들이 데리고 갈 수 없는 곳을 갔다.
이런 특별한 이벤트를 하자 아이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벌써 재밌는 교회라고 소문이 나 학부모들로부터 문의전화도 오기 시작했다. 어떤 가정에서는 아빠, 엄마가 같이 다녀와서 교회가 이렇게 재미있고 좋은 일을 하는 곳인 줄 몰랐다며 그 다음 주부터 교회에 등록하신 분도 계셨다. 그리고 그 때부터 학부모들이 내 아이가 다니는 교회가 이런 곳이구나 하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당시엔 교회에 가정환경이 어려운 아이들과 결손가정 아이들이 많이 다녔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선 어떤 일을 해야 할까? 하나님께 또 부르짖었다.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은 나에게 많은 달란트를 주셨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글쓰기이다.
가정이 어려워 학원을 못 다니는 아이들을 위해 교회에서 무료로 논술, NIE를 지도했다. 반응이 좋았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 아이들이 와 글쓰기 수업을 받았다. 그 중에는 그냥 지나가다 글쓰기 수업을 하고 싶어서 오는 애들도 있었다. 그냥 지나가다 수업을 한 아이는 그 다음 주에 교회에 나오는 역사도 일어났다. 그리고 학부모에게 편지가 왔다.
“선생님, 저희 집은 아빠가 안 계셔 제가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느라 학원은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무료로 논술을 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 아이가 선생님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다음에 형편이 나아지면 꼭 교회에 나가겠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편지를 읽는 순간 눈물이 나왔다. 이 아이는 엄마가 일을 하셔서 항상 식사도 제대로 못 챙겨 먹고 늘 놀이터나 문구사 주변에서 서성거리던 아이였기 때문에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실은 그 아이에게 따뜻하게 못해 주었기 때문에 더 가슴이 아프며 눈물이 나왔다.
최 선생님 같았으면 이 아이에게 엄마처럼 잘해줬을 텐데... 최 선생님처럼 따뜻하고 인자한 선생님이 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렇지 못한 내가 하나님께 한없이 부끄러운 날이었다.
그러나 보람을 느낄 때도 있지만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거나 한계에 부딪히게 될 땐 교회학교 교사를 그만 두고 싶을 때 가 종종 있다. 중도에 그만 두는 건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은 아니지만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보수도 없고, 그렇다고 누가 인정해 특별대우 해주는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과 약속이기 때문에 끝까지 참고 감당해야 하는 것이 바로 교회학교 교사이다.
그렇지만 이 직분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큰 축복으로 보상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어느 날 큰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소문을 들었다며 학교 일일교사로 봉사 좀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서슴지 않고 “예, 알겠습니다.” 하고 승낙을 했다.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늘 해왔던 율동, 레크리에이션, 동화구연, 노래, 연극 등을 고스란히 학교아이들에게 적용을 시켜 일일교사로 봉사를 했다.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다. 늘 딱딱한 수업을 하다가 모처럼 재밌는 수업을 하니까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해맑은 웃음이 계속 터져 나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교장선생님께서는
“한별이 어머니, 너무 잘하십니다. 이참에 아예 교직생활을 하시죠. 어쩜 그렇게 예쁘게 잘하시는지 천사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율동을 너무 예쁘게 잘하십니다.” 하시며 칭찬해 주셨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전문가보다 더 잘한다는 핑계를 대시며 1년에 두세 번씩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 나를 중점으로 학교 ‘독서동아리’ 라는 써클을 만들어 활동의 길을 열어 주셨다.
교회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겪었던 상상력과 창의력을 총 발휘하여 학교 아침방송과 오페레타등 학교선생님과 접해 보지 못했던 신나고 재밌는 수업을 보여줬다.
아이들과 교사들의 반응이 좋았다. 조선일보를 비롯해 신문에 기사가 나가면서 이 행사가 타 학교까지 소문이 났다.
이렇게 학부모참여수업이 재밌게 진행되고 있는데 어느 날 시교육청에서 “학교참여 사례발표대회”가 있었다. 학교의 권유로 내가 나가 발표를 했는데 내가 최고상인 교육감상을 받았다. 까다롭게 심사를 해 1, 2, 3차까지 심사를 했는데 내가 시 교육감상을 받은 것이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한 일인가?
하나님께 약속한 그 약속을 지키며 충성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축복해 주셨다.
교육감상을 받은 이후, 타 학교에 까지 내 이름이 알려졌다.
타 학교 교장선생님이 그런 지혜가 어디에서 나오냐고 물으셨다.
“저는 교회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사랍니다. 이 모든 걸 하나님이 주셨답니다.” 하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나에게 이런 도전과 열정을 주셨던 최 선생님 생각이 간절하다.
그 옛날 최 선생님을 닮아 가려면 아직도 멀었지만, 지금도 그 분을 생각하면 감사가 저절로 나온다. 나에게 도전과 꿈을 주셨던 분, 새벽기도를 처음 가르쳐 주셨던 분, 참다운 교사의 본을 보여 주셨던 분, 우리 가족을 구원시키신 분. 그 분을 닮아가기 위해 나에게 맡겨준 소중한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사업실패로 집나간 아빠가 빨리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는 민지의 기도, 방학 땐 혼자 있어 방학이 싫다는 영심이의 기도, 엄마, 아빠랑 손잡고 백화점 한번 가봤으면 좋겠다는 지혜의 기도, 소갈비를 실컷 먹고 싶다는 아람이의 기도….
이 아이들이 소원하는 모든 기도가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아이들도 나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 이런 약속을 했으면 좋겠다.
“하나님, 저도 저 선생님처럼 나중에 교회학교 선생님이 될래요. 따뜻한 선생님이 되어서 불쌍한 아이들을 전도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그 옛날 내가 최 선생님을 보고 약속했던 것처럼 저 아이들도 하나님께 소중한 약속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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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주님께 충성하시는 모습에 감동하였습니다.
교회학교선생님을한지 올해로 30년째입니다. 학생때부터 시작해서 만삭때도, 백일지난 아이를 업고 다니면서 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했지요. 이렇게 헌신했더니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 시작하는데 헤아릴수없이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교회학교연합회장을 비롯해, 모범교사상을 여러번 받았고 시교육감상을 받으면서 시교육청까지 인정을 받게 되었지요. 이 모든게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 거져 드렸더니 하나님이 보상해 주셨습니다. 오늘에서야 이러한 고백을 하게 되었네요. 눈물나오도록 감사합니다. 샬롬~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주향기님의 신실함이 큰 복이 되었군요.
제가 훌륭한게 아니라 우리주님의 파워가 대단한거죠 ㅋㅋ 감사해요~
야, 어쩜 어리디 어린게 그렇게 했을까? 그러잖아도 인형처럼 깜직하고 예뻣을 터인데."이참에 아예 교직생활을 하시죠." 일개 교장선생님 눈에도 그렇게 보였는데 우리하나님은 더욱 이뻐보시고 앞으로도 마음껏 축복해 주시리라.......
너무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힘이 나네요 샬롬~~
다시 읽어도 감동의 물결이 물씬 묻어납니다. 선생님의 제자인 선생님 또 그 제자의 제자인 선생님.... 좋습니다.
우린 같은 동기생이죠? 활천문학상1기, ㅋㅋ 항상 격려해주셔서 감사해요. 샬롬
부지런하고 섬세하게 아이들 하나 하나를 잘 보듬어 주실 듯합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부족함을 느끼고 가슴아파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보고 감동받습니다.
차세대 꿈나무들을 잘 양육하기 위해 늘 갈망하고 있는데 잘 안되더군요.늘 연구하고 노력하고, 무엇보다 기도줄을 놓지 않아야 함을 느낍니다. 사라님 땡큐~~
저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새벽기도를 다녔습니다. 방학 때가 아니라 1년 내내 다녔습니다. 허리까지 찬 눈길을 걸어 다녔습니다. 일찍 교회에 가서 땡그랑 거리는을 치기 위해서였고요. 힘차게 잡아 땡기면 땡그렁 땡그렁 거리며 이 막 울었습니다. 그 울음소리 듣고 동네사람들이 다 깨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믿음이 약한것 같습니다. 진실한 고백입니다.
저도 고백합니다. 그때보다 못한것 같아요 그땐 새벽기도, 유달산산상기도, 압해도 송공리기도원등 엄청 열정적으로 했지요. 그래서 다들 신학교 갈거라고 했는디, ㅋㅋㅋㅋ 사모님감이라고 하면서 ㅋㅋㅋ
샬롬! 한별이 엄마! 잘읽어 봤어요 주일학교 때 열심히 한 신앙 넘 부러워요 송공산 기도원이나 유달산 산상 기도는 우리 후배 구만요 ㅎㅎㅎ 목포 어느교회 출신인지요. 주향기 선생님 목포댁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