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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0월 18일 (토요일) ☆ 주왕산 차박(車泊) 출행(오후 11시 30분, 군자역)
▶ 2014년 10월 19일 (일요일) ☆ 주왕산 가메봉 산행
☆ [10월 산행] 청송 ♣ 주왕산(周王山) : 절골—가메봉— 주방천계곡 (3) ☆
* [산행코스] 청송 주산지→ 절골→ 대문다리→ 가메봉→ 사창골→ 후리메기 삼거리→ 용연폭포→ 절구폭포→ 용추폭포→ 휴게소[시루봉 전망]→ 대전사→ 주차장→ 안동찜닭→ 귀경
* [주방천(周房川) 계곡-용연폭포] — 주왕산의 꽃, 용연폭포의 장관
☆… 12시 정각, 주방천계곡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너른 탐방로에는 가을 단풍을 즐기기 위한 행락객들이 길을 메웠다. 그야말로 사람이 발길에 채여 제대로 걸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주차장에 도착해야 하는 시간이 오후 1시 30분, 시간을 조정하여 움직여야 한다. 용연폭포는, 후리메리 입구의 현 위치에서 계곡의 위쪽으로 0.4km를 올라가야 한다. 사람의 숲을 헤치고 부지런히 걸어서 용연폭포에 도착했다. 용연폭포는 2단으로 된 폭포이다. 제1폭포와 제2폭포 중간에 나무테크로 만든 전망대가 있어, 아래·위의 폭포를 관망하게 좋았다.
☆… 용연폭포는 주왕산 국립공원 폭포 가운데 가장 크고 웅장한 폭포로서, 물줄기가 2단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아주 절경이다. 폭 48m 총 길이 37m, 수심 약 4m에 이르는 폭호(瀑湖, 폭포 아래의 웅덩이)가 형성되어 있다. 용연폭포에는 제2폭포와 연결된 곳에 ‘구혈’이 있고, 제1폭포 웅덩이 옆 절벽에 네 개의 ‘하식동’이 있다. ‘구혈(溝穴)’은 폭포 아래쪽에 생긴 원통형의 깊은 구멍(일명 돌개구멍)을 말하고 ‘하식동(河蝕洞)’은 폭포나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생겨난 동굴을 말한다. 그리고 이곳에는 피아메(fiamme)를 관찰할 수 있는데, 크기가 4mm보다 작은 응회암질 화산재가 퇴적하는 과정에서 잠열과 압력으로 인해 검고 길쭉한 모양으로 굳은 것을 말한다.
☆… 소나무가 어우러진 전망대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 소리에 더운 가슴을 씻고, 나무계단을 내려오니 깔끔하게 나무통로를 시설해 놓았다. 제1폭포를 아래에서 관망할 수 있는 시설이면서 큰길로 나가는 일방통행의 계단으로 이어진다. 오늘은 사람이 많고, 계곡의 수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폭포는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시월의 햇살이 따사롭고,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가 통쾌하였다.
* [수만년 세월이 빚어낸 폭포와 폭호] — 웅덩이의 물, 넘쳐야 흐른다.[盈科而進]
☆… 용연폭포의 아래에서 계단을 타고, 다시 큰길로 올라왔다. 이제부터 주방천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길이다. 길에는 올라오는 사람, 내려가는 사람들이 길을 메웠다. 남녀노소, 시끌벅적 분주하게 오가며 끼리끼리 나누는 이야기가 시장을 방불케 한다. 넓은 구간 길에는 마사토를 깔아놓아 아주 쾌적했다. 계곡 아래에는 여기저기 선홍빛 단풍이 타오르고 있다.
☆… 이제 절구폭포와 용추폭포가 있는 협곡(峽谷)에 이르렀다. 협곡의 좌우에는 거대한 절벽에 솟아있고, 그 아래에는 바위를 치고 내려가는 폭포와 시퍼런 웅덩이[瀑湖]가 이어진다. 영과이진(盈科而進), 물은 웅덩이를 채우고 나서야 앞으로 나아간다. 폭호(웅덩이)에 물이 넘쳐서 다시 아래로 쏟아져서 다시 폭포가 된다. 무엇이든 한 단계 한 단계 충실히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그 아담한 웅덩이의 모양이 절구를 닮았다 하여 절구폭포라고 한다. 흐르는 물이 그렇게 단단한 바위를 침식하여 절묘한 형상의 웅덩이를 만들었으니 거기에 담긴 세월은 과연 얼마인가. 하아, 그 세월이 얼마인가?
☆… 그 협곡의 좁은 공간, 나무테크의 통로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아 가끔 어깨를 부딪칠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그 와중에서도 사람마다 사진을 찍으려 하니 더 혼잡할 수밖에 없다. 물줄기가 세차게 이어지는 협곡, 절구폭포 아래쪽에 용추폭포가 있다. 폭포는 그리 높지 않으나 아래의 폭호가 아주 깊고 크다. 물이 깊어서일까. 승천(昇天)의 때를 기다리는 용(龍)이 살고 있다 하여 용담(龍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주방천(周房川) 계곡-시루봉 풍경] — 돌올하게 용립(聳立)한 거대한 입석
☆… 협곡의 통로를 빠져 나오면 시야가 확 열린다. 계곡의 주변은 넓어지고 석조의 아치형 다리를 건너면 너른 광장이 나타난다. 그러나 하늘을 쳐다보면 좌우에 용립(聳立)한 입석거암이 압도해 오고, 거대 절벽을 치고 올라가는 암봉이 가히 절경을 이룬다. 오른쪽에 돌올(突兀)하게 솟아있는 봉우리가 시루봉이다. 그 모양이 떡을 찌는 시루모양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에 한 도사가 추운 겨울에 이 바위 꼭대기에 앉아 수도를 하고 있는데, 신선에 내려와 불을 지펴주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지금도 바위 밑에서 불을 피우면 그 연기가 바위 전체를 감싸고 하늘로 오른다고 한다. 휴게소와 공중화장실이 있는 광장, 그 앞의 산록에 주왕암(周王庵)과 주왕굴(周王窟)로 들어가는 산길이 있다. 그 길은 저 아래쪽에서 다시 이 길과 만나게 된다. 오늘은 시간이 여의치 않아, 아쉽지만 그곳으로 발길을 옮길 수 없었다.
* [주왕산의 유래와 전설] — 주왕의 피신과 죽음
☆… 주왕산은 그 내력을 담은 전설이 많은 곳이다. 원래 이름은 석병산(石屛山)이었다. 기암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이다. 그런에 지금은 주왕산으로 불린다. 주왕산의 내력과 전설, 청송군청의 <청송문화관광> 사이트에서 소개한다.
☆… 주왕산은 매우 깊고 험준하다는 말을 듣고 옛날부터 난리가 났을 때마다 이곳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선유(先儒)와 선사(禪師)들이 산에 와서 살았다하여 대둔산(大屯山)이라도 했고, 신라 선덕여왕의 족자인 김주원(金周元)이 여기에 와 있었다 하여 주방산(周房山)이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왕산(周王山)은 신라 말부터, 중국의 주왕(周王)이 찾아와 은거하였던 산이라 하여 주왕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신라시대 중국의 동쪽에 있던 진(晉)나라에서 복야상서란 벼슬을 지낸 주(周)의 8대손 주도가 진나라를 회복하고자 장사 수백 명을 주축으로 수만 군사를 이끌고 남양에서 반기를 들고 일어서니, 때는 당(唐)나라 덕종황제 정원 15년(신라 소지왕, 서기 799)이었습니다. 주도는 자칭 ‘후주천왕[周王]’이라 칭하고 당시 당나라 서울인 장안을 쳐들어가다가 당나라 군사에게 패전을 당하고, 요동으로 쫓기어 압록강을 건넜다. 강원도 원주를 걸쳐 석병산이 매우 깊고 험하다는 소문을 듣고 이 산에 은거하였다. 신라왕이 당나라 왕의 청을 받아 마일성 장군을 시켜 주도를 잡게 하니 마 장군은 자기의 아우인 이성·삼성·사성·오성과 합세하여 대군을 거느리고 석병산을 포위하고 주왕을 잡았다. 그 후 고려말 나옹화상(懶翁和尙, 서기 1320~1376년)이 이곳에서 수도할 때, 그 이야기를 근거로 하여 이산을 주왕산(周王山)이라 불러 지금까지 그렇게 부르고 있다. 이곳은 주왕의 이야기에서 파생된 명소가 많다.
장군봉 가는 산록에 있는 백련암(白蓮庵)은 주왕의 딸 백련공주가 머물던 곳이었고, 주왕과 신라의 마일성 장군이 격전을 치렀다는 기암(旗巖), 주왕의 아들과 딸이 달구경을 했다는 망월대(望月臺), 동해가 바라보이는 곳에 있던 자리하고 있는 왕거암, 주왕이 숨어 살다가 마 장군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비운의 주왕굴(周王窟), 주왕이 무기를 감추었다고 하는 무장굴(武藏窟), 주왕이 군사를 조련시켰다는 연화굴(蓮花窟)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자하성(紫霞城,. 일명 주왕산성)의 성터도 남아있다. 당과의 전쟁에 패한 주왕이 이 산속에 숨어들어온 후, 당의 요청을 받아 자기를 잡으러 온 신라 군사를 막기 위해 쌓은 산성이 있었다. 대전사(大典寺) 동편 주왕암(周王庵) 입구에서 나한봉에 걸쳐 쌓은 돌담으로 그 길이가 무려 12km에 달하였다고 한다. 자하성은 주왕굴 중심으로 사방을 방어할 수 있는 요새로 돌문과 창고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성(城)의 형체는 거의 사라지고 그 자취만 남아있다.
* [전설의 고장] — 풍부한 이야기를 낳게 하는 명승지
☆… 그야말로 전설의 고장이다. 설화(說話) 중에서 민담(民譚)은 사실과 관계없이 지어낸 옛날 이야기이지만, 전설(傳說)은 어떤 근거를 바탕으로 꾸며진 이야기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원래의 이야기에 극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윤색되기도 하고 신비화된 이야기로 발전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지명(地名)과 관련된 전설이 많다. 무궁무진하다. 옛날 MBC 인기 라디오 프로였던 ‘전설 따라 삼천리’는 바로 옛 이야기의 맛을 잘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지금은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이지만, 옛날에는 ‘경상도 청송(靑松)’하면 오지(奧地) 중에 오지(奧地)요, 함부로 갈 수 없는 궁벽한 산골이었다. 거기에서도 동쪽의 거대한 첩첩산군 속에 기암괴석과 신비한 형상으로 솟아있는 거대한 암봉과 절벽, 그리고 한 번 들어가면 도저히 그 종적을 알 수 없는 깊은 협곡과 동굴 등이 산재해 있어, 수많은 이야기가 생겨났으리라 생각된다.
* [급수대-하늘을 받들고 솟은 거암절벽] — 주상절리(柱狀節理)를 아는가?
☆… 시루봉을 바라보며 잘 닦인 길을 따라 내려오면 계곡 건너 동쪽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암봉과 절벽바위가 시야를 채운다. 주왕산 급수대(汲水臺)이다. 지질명소로 잘 알려진 급수대 암봉의 절벽에 있는 주상절리가 지질학자들의 이목을 끈다. 주왕산을 이루고 있는 대표적인 암석은 응회암(凝灰巖)이다. 응회암은 화산 폭발 때 솟아나온 화산재와 용암이 급격하게 냉각되면서 만들어진 암석이다. 이처럼 고온에서 급랭하는 암석에서 주로 주상절리(柱狀節理)가 형성되는데, 절리(節理)는 암석에 금이 생긴 것을 말하며, 주상절리는 그 현상이 기둥 모양을 있는 절리를 말한다. 급수대는 이러한 주상절리가 있는 절벽 산이다. 제주도 서귀포 올레길 7구간에서 바라보이는, 바다 가운데 우뚝 솟은 ‘외돌개’가 바로 주상절리를 잘 보여준다.
* [대전사(大典寺)-가을 풍경] — 고요한 도량(道場)에 행락객들이 득실거리는…
☆… 단풍이 곱게 물든 길을 따라내려 와서 대전사에 들어갔다. 오후 1시 20분이었다. 대전사(大典寺)는 최치원·나옹화상·도선국사·보조국사·무학대사·서거정·김종직 등이 수도했고, 임진왜란 때에는 사명대사가 승군(僧軍)을 훈련시키기도 했던 곳이다. 주차장 승차시간까지 10분 정도 남았으므로, 경내의 너른 마당을 가로 질러오면서 보광전을 비롯한 몇 캇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관음전 뒤쪽으로 보이는 주왕산 암봉이나 요사체 건물 뒤쪽으로 보이는 장군봉이 장엄했다. 파란 하늘에서 화사한 햇살이 쏟아지는 대전사 경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있었다. 보광전(普光殿) 맞은 편 마당 가장자리에 황금빛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대전사를 지키고 있다. 경내를 빠져나오니, 기념품, 토산품 상점과 식당이 즐비하고 길에도 수많은 인파가 넘실거린다. 유연한 발걸음으로 속보하여 약속 시간을 넘기지 않고 버스에 올랐다.
* [안동 <구시장> 서문 안의 식당, <본가>] — 별미 안동찜닭!
☆… 주왕산 주차장을 출발, 청송-진보를 경유하여 34번 국도로 이어지는 임하댐의 강변도로를 따라 안동 시내에 들어왔다. 늦은 시간이지만 안동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예약이 되어 있었다. 안동역 앞을 지나 <구시장> 서문에 도착했다. 안동역은 요사이 진성이 부른 <안동역에서>라는 토롯트 가요로 유명해진 곳이다. 안동에는 <안동찜닭>이 유명하다. 구시장 <본가> 식당에서 다함게 먹은 ‘찜닭’은 별미였다. 대원들의 환한 얼굴이 보기에 좋았다. 주왕산의 청정한 가을을 가슴에 담고, 일로 귀경 길에 올랐다.
* [에필로그] — 주왕산 가을 산행, 최상의 힐링 트레킹…
☆… 주왕산(周王山)은 1976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명승지이다. 비록 이른 새벽, 미명의 시간에 다녀왔지만 주산지의 왕버들 고목의 풍치가 유별나고, 주왕산의 거대한 암봉과 추색(秋色)으로 물들어 가는 장엄한 산세, 그리고 주방천(周房川) 계곡의 기암괴석과 수만 년의 세월이 빚어낸 폭포와 계곡이 절묘했다. 그리고 주왕산 곳곳에 어린 비운의 전설이 마음에 감기고, 주왕산은 지질학적으로 연구할 대상이 많은 명소이다. 하늘은 청명하고 햇살은 화사했다. 선선한 바람결이 가슴을 씻어준 이 가을의 추억 산행, 마음의 앨범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절골계곡의 순결한 자연(自然), 수정처럼 맑은 물… 때 묻지 않은 가을 풍경이 가슴에 깊은 여운(餘韻)으로 남아있다.
☆… 이른 아침 절골계곡에는 일반 행락객이 거의 없어, 우리들만의 호젓하고 그윽한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신선한 아침, 계곡의 공기는 청정하고 산천은 아름다웠다. 세사(世事)의 얼룩진 마음의 때[垢]를 말끔히 씻어버린 산뜻한 ‘힐링트레킹(Healing Trekking)’이었다. 지평대장의 참신한 기획과 승조대장의 헌신적인 가이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별미 안동찜닭! 장병국 회장님과 김의락 총무님의 배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 모든 대원은 행복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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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긴여정에장문의기행문으로
산행을정리해주셔서너무감
사드립니다
일과성산행이아닌긴여운이
되는산행이될수있어너무좋
습니다 .이번주왕산도 행복한
추억으로남을것같습니다
잘 보고읽고갑니다
함께 못한 아쉬움이 대단히 큽니다 다음산행부터는 참석할수있도록 노력해야지요 ~기행문 잘 봤습니다
기행문은 새재 만의 독특한 정서로 자리 잡았고, 이것은 새재의 문화이기도 합니다, 새재 문화 창달의 주역이신 고문님 고맙습니다.
고문님의 기행문은 다시 읽어도 여운이 남습니다. 우리가 본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기억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고문님의 감성까지 같이 느낄 수 있으니 너무 아름다운 글입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