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힘 - 제139강 사도행전 8부, 로마서
사도행전 8부(사도행전19:21~20:3)
고린도 문제를 그런 식으로 해결하고,
사도바울이 아시아에, 다시 말하면 에베소에 와서 잠깐 더 있었는데, 사도행전 19장 21절 보세요.
[사도행전 19장]
21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이 일이 다 된 후’라는 것은 에베소 사역 전체를 마무리 하고,
.. 바울이 마게도니아와 아가야로 다녀서,
‘아가야’ 하는 것은 고린도 아테네 그쪽을 아카야 라고 하죠.
..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지도를 좀 봅시다.
바울이 에베소 사역을 3년 정도 끝내고, 아까 여기(데살로니가)에서 고린도후서를 쓰고 디도의 손에 들려서 고린도로 보내고,
자기는 다시 아시아로 와서 연보를 모아가지고 이렇게 다녀서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서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를 거쳐서 예루살렘에 갔다가 로마로 간다,
이것이 바울의 남은 스케줄이죠.
자기의 미래의 설계를 그런 식으로 하고 있어요.
22절,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간 더 있으니라
지금은 바울의 행보를 보면 상당이 체계가 딱 잡혀 있어요.
뭘 보면 알 수 있느냐 하면, 바울이 친히 가려하는 방향으로 앞서서 선발대가 디모데, 에라스도 이런 사람들이 가서, 가려던 방향 마케도니아 쭉 지나가면 비아이그나티아 가도, 왕의 도로라는 쪽으로 가면서 가다 보면,
여기서 출발하면서 조금 올라가면 서머나가 나오고 버가모 나오고, 아드라뭇데노, 앗소, 드로아, 사모트라케, 네아폴리, 빌립보, 암비볼리, 아볼로니아, 데살로니가, 베뢰아 이런 식으로 쭉 가는데, 전부다 비아이그나티아 큰 길 가에 있는 주요 거점도시인데,
이런데에 가면서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준비하게 하는 거야.
사도바울이 몇월 몇일에 여기 도착해서 하룻밤 주무시면서 그냥 지나가지 않고 은혜를 끼칠 수 있도록 모임을 주선해 놓는 거죠.
바울이 시간을 십분 아끼려고 하는 겁니다.
23절,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인하여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이 도’라는 것은 예수 믿는 도.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즉 데메트리오스라는 사람하고, 어떤 은장색. 은장색이란 것은 은을 가지고 무엇을 만드는 사람들이죠,
은장색이 아르테미스 신전의 은감실을 만들어가지고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했는데, 수입이 아주 짭짤했는데
25 그가 그 직공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유족한 생활이 이 업에 있는데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거기 줄을 그으세요.
사도바울의 선교 총 주제가, 적어도 에베소, 아시아 지역 사역할 때 그 표어를 아주 단순히 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다..
바울 선교의 표제어가 있는데, 딴 데 가서도 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에베소 지역은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기 때문에, 큰 우상이 있어요.
그 우상이 유방이 열여덟 개가 있는 여신인데, 그 신을 뒤흔들려면 이야기를 복잡하게 하면 안돼요.
이야기를 아주 단순하게 해야 돼. 그래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다, 이런 명제를 딱 걸은 거예요.
..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27 우리의 이 영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도 경홀히 여김이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하여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29 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들어 가는지라
아까 제가 극장을 보여드렸죠? 극장, 연극장을 한번 봐요.
지금까지도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쪽이 아고라, 시장 저자거리이고 끄트머리에 이런 큰 산비탈을 깎아가지고 초대형 극장을 만들었는데 한 2만 4천명이 들어가는 극장입니다.
이쪽으로 쭉 가면 해변, 항구인데 바다 쪽에서 항구로 미풍이 불어올 때, 여기에서 연극하거나 연설을 하면 저 뒤쪽은 앞에서 보면 까마득합니다만 동전 떨어지는 소리까지 다 들려요. 그러니까 마이크 이런 확성장치 없이도 얼마든지 연극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29절에,
29 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바울은 그것도 모르고 왜 이 사람들이 많이 모였나 하며,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31 또 아시아 관원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그 극장 들어가면 큰 일 납니다. 사도바울선생 당신을 잡으려고 하는 거요.’
..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32 사람들이 외쳐 혹은 이 말을, 혹은 저 말을 하니,
사람들이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위대하시도다!’ 하고 외치는데 사람들이 물어봐요, ‘오늘 집회가 뭐하는 거냐?’ ‘나도 몰라 크다 그냥..’ 태반은 왜 모인 줄 몰라,
그만큼 아시아 사람들이 선동적이라는 거예요.
32절,
32 사람들이 외쳐 혹은 이 말을, 혹은 저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발명하려 하나
34 저희는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 동안이나 하더니
35 서기장이 무리를 안돈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성이 큰 아데미와 및 쓰스(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전각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37 전각의 물건을 도적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훼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잡아왔으니
38 만일 데메드리오와 및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송사할 것이 있거든 재판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거든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단할지라
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의 사건으로 책망받을 위험이 있고,
집시법 위반으로 잡혀갈 수도 있다..
.. 우리가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재료가 없다 하고
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사도행전 20장]
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내가 이곳을 떠날 때가 되었나보다’ 하고,
..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2 그 지경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헬라’라는 곳은 고린도 아테네, 아카야를 헬라라고 하는데, 아카야, 고린도, 아테네 같은 말입니다.
3 거기 석 달을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를 작정하니
‘거기 석 달 있다가’에 줄긋고, ‘로마서 기록’이라고 쓰세요.
이때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말기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고린도에 지금 누가 가 있죠? 디도가 가 있었죠.
디도가 뭐 준비하고 있었어요? 연보죠. 예루살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연보를 준비하고 있을 때 바울이 마케도니아, 아가야 전부 여러 교회에서 연보하는데,
연보한 돈만 가져온 게 아니고, 각 교회 대표 한 사람씩을 그 돈들이 어떻게 공정하게 집행 되는가 하는 것을 다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예루살렘까지 같이 가져 갈 겁니다. 이 사람들이.
그래서 여러 교회 대표들이 함께 헬라, 즉 고린도에 와서 3개월간 체류했어요.
지난번에는 바울이 왔어도 아까 디도가 해결했던 문제가 남아있을 때는 바울이 왔어도 안정되게 집회할 수 있는 보장이 안 됐었어요.
그 디도가 와서 다 해소했기 때문에 3개월 동안 별 근심 없이 바울이 사역을 잘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한 겁니다.
특히 거기서 중요한 사건은 로마서를 기록한 겁니다.
왜냐하면 연보한 돈을 모아가지고 예루살렘에 전달하고 평생에 마지막 예루살렘을 방문할 건데 상당히 큰 선물 준비했죠.
여러 교회가 아시아, 마케도니아, 아가야 전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연보한 거니까, 그리고 3년씩이나 사역을 한 지역에서 연보를 모았기 때문에 거금을 모았어요.
이걸 가지고 예루살렘에 갈 텐데 석 달 동안 로마서를 기록해서 먼저 겐그레아 교회 여자집사 뵈뵈라는 자매의 손에 들려 로마로 보냅니다.
그럼 여기 보세요.
이 로마서라는 편지가 로마에 도착하게 되면 ‘종교개혁 때까지 기다려서 주석이 올 때까지 읽지 마라’ 한 게 아니고, 그냥 편지만 간 거야.
그리고 여자집사 뵈뵈라는 자매가 가져갔는데,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들이 그 2천 년 전에 겐그레아 여자집사 만도 못하겠어요?
그 뵈뵈란 여집사가 읽어주는 건데 읽어주고 설명해주는 건데, 여기 여러분도 못할 사람 누가 있어요?
우리는 괜히 쉬운 걸 어렵게 만들어가지고 주석을 만들어서 쓸데없는 과잉해석을 해가지고 간단하게 쓴 것을 괜히 어렵게 만든 거예요.
하여튼 하나님께서 쉽게 하신 것을 신학자들이 한없이 어렵게 만든 것이 오늘날 신학문서들인데, 그래서 교회가 그 어려운 신학에 질식해서 교회가 다 죽어버렸어. 지금.
그것도 모르고 계속 지금도 점점 더 어렵게 하는 것은 백해무익하다는 겁니다.
여러분 여기 와서 성경 배우는 그 정도 가지고 조금 더 세밀히 하면 충분합니다.
굉장한 신학이 필요한 게 아녜요.
그래서 단순화해야 돼요. 단순화..
아까 에베소 지역에서 바울이 사역할 때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다’
그거 딱 걸어놓고 하는데 그 한마디에 3년을 하니까 에베소의 아데미 신전이 흔들흔들해요. 우리도 스티커 만들까요?
저 합천 해인사, 경주 불국사 앞에다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다’
참 명언 중에 명언이죠. 그래서 진리라는 것은 단순한 거예요.
자 이제 우리 로마서를 좀 읽어봐야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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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로마서는 다른 책에 비해 교회마다 많이 설교하고 강의하는 편이죠.
또 길지 않기 때문에 강해도 하고 하는데, 제가 볼 때 강해설교도 너무너무 지루하게 해요. 짜증나게 해..
이 로마서는 사실 그리 복잡한 책이 아니고 간단한 책입니다.
어렵지 않은 책인데 사람들이 괜히 로마서를 과잉해석 한 것 때문에 어려워하는데,
여기 같이 봅시다.
바울이 로마서를 쓰게 된 동기, 목적은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 앞으로 지금 자신이 로마에 방문할 것이기 때문에 방문하기 전에 로마서를 보내 놓으면 바울이 갔을 때 좀 능률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예습을 해놨으니까, 그렇죠?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제일 핵심이 되는 이야기가 ‘믿음으로써 의롭다함을 받는다’ 하는 것을 주장할 텐데, 미리 예습을 해 놓는 건 좋은 일이죠.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보낸 겁니다.
두 번째는 바울이 로마에 가려고 여러차례 부단히 애를 썼는데 어떻게 이상하게 안 돼요.
번번이 길이 막혔다는 거야. 이번에도 로마로 가게 될지 확신이 안 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자기가 가게 되면 예습으로 준비하는 것이 될 것이고, 못 가게 되면 자신은 못 가도 자기 복음은 가야 되는 거죠.
그런 목적으로 썼을 것이다 학자들의 견해가 그런데 저도 뭐 반대할 마음이 없어요.
그런 뜻이 있겠죠.
그 다음에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내용도 그리 어려운 게 아닙니다.
로마서 1장을 보면 거기에 ‘하나님께서 버려둔 사람들의 죄악’을 다루고 있어요.
내버려두는 사람들..
앞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어떤 백성들이 잘못할 때 때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때리고 책망하는 것은 사랑하는 자를 때리고 책망하는 것이고, 진짜 미워하는 사람들은 내버려둬요. 내버려 두는거야.
그러니까 여러분 사람은 내버려두면 그냥 지옥 갑니다.
지옥으로 밀어 넣을 필요도 없습니다. 내버려두면 다 지옥 가는 거야.
그래서 1장 1절에서 1장 17절 까지는 로마서를 쓰게 된 동기, 방문계획, 문안인사, 주제설명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고,
1장 18절에서 1장 32절까지는 ‘하나님께서 내버려두는 사람들의 죄악’을 쓰는데 한번 봅시다.
24절 보세요.
[로마서 1장]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거기 줄 그으세요, ‘내버려두사’
26절,
26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28절,
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내버려두시고 내버려두시고 내버려두니까 어떻게 되느냐, 합당치 못한 일을 하는데,
29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내버려두시면 다 이렇게 돼 버려요.
그래서 1장 전체가 이런 내버려둔 사람들, 어떤 사람은 이것을 갖다가 이방인의 죄라 이렇게 말하는데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할 것 없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내버려두면 이 모양이 됩니다.
32절,
32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이런 사람들은 전혀 구원의 희망이 없습니다. 내버려두고 구원할 계획도 없고 내버려두는 건데, 이런 사람들은 그야말로 악에서 악으로, 악을 훈장처럼 달고 있는 사람들이예요.
그 다음 2장에는,
그러면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 다냐?
종교를 가지고 있어도, 기독교나 유대교나 종교를 가지고 있어도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어요. 가톨릭도 타락할 수 있고 기독교도 타락할 수 있고 유대교도 타락할 수 있고,
종교 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정통? 정통은 정통으로 잘못될 수 있어요 또.
그래서 종교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다는 얘기를 여기 쓰는데,
[로마서 2장]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라,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하면서 유대인이라 칭하면서도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런 사람들이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 있다.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래서 3장에는,
따라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다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내버려둔 사람들이나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아무도 죄 없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4장에 가면,
그러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회복할 수 있느냐,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 회복이라고 하는 칭의(稱義)라고 하죠.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느냐 할 때 그 예를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서,
4장 3절에,
[로마서 4장]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그 다음에 5장에는,
겨우 죄사함 받고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끝나는 게 아니고, 다시 하나님과의 화목까지 가야 된다.
그래서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6장, 7장에는,
‘원죄의 성질과 심각성’을 이야기합니다.
사람 속에 있는 오리지날씬(original sin)이라는 게 있어요.
근본적으로 날 때부터 오염되어있는 원죄성, 죄의 성질이 우리 속에 있어서 사람에게 죄를 짓게 만들어요. 그 죄의 성질이, 타락한 본성이..
그래서 이를테면 이런 거죠.
만약에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나무를 보면 당연히 보나마나 사과나무죠. 물어봅시다.
사과가 달렸기 때문에 사과나무입니까? 사과나무이기 때문에 사과가 달리는 겁니까?
여기도 할 게 없네. 알아버려서.
여러분이 다 알면 난 뭐 합니까?
사과가 달리기 전에는 사과나무가 아니다가 사과가 달리고 사과나무가 된 게 아니라, 사과가 달리기 전부터 사과나무이기 때문에 때가 차니까 사과가 열린 겁니다.
마찬가지로 죄를 짓는다는 것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 된 게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는 거예요.
우리가 세상 법에서는 이런 걸 갖다가 훔치기 전에는 죄인이 아닌데 훔치다가 딱 걸리면 현장범으로 죄인으로 되는 거예요 절도범으로.
성경은 그렇지가 않고요, 이걸 훔쳤기 때문에 죄인이 된 게 아니고 죄인이기 때문에 훔쳐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죄성은 원죄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걸 안 훔쳐도 죄인입니다. 세상은 이걸 안 훔치면 죄인이 아닌데 하나님 나라에서는 죄인이기 때문에 때가 되면 필연적으로 죄의 열매를 맺는다는 거예요.
이런 죄성이라는 것은 절대로 자기 힘으로 벗어나지를 못해요.
이런 죄성을, 바울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니까 선을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어 항상, 자기 내면 속에 자기가 이중인격자인 것이 드러나는 거예요.
7장 14절 펴보세요.
[로마서 7장]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15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하고 자기 내면에 ‘나’라는 존재가 있고 ‘죄’라는 존재가 있어요.
‘나’라는 사람이 있고 ‘죄’라는 존재가 있어서 이것이 합해져서 죄인이 돼요. 죄인..
죄의 사람. 죄의 사람이 됐어요. 죄와 사람이 한 데 붙어 있어요.
그래서 이 사망의 몸에서 아무리 죄로부터 벗어나려고 해도 놔주지 않습니다.
떨친다고 떨쳐지지도 않고, 그리고 죄하고 결합된 상태는 스스로 헤어나지 못해요.
본인이 아무리 노력하고, 수도하고, 기도하고, 아무리 몸부림 쳐도 사람 노력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도를 닦아도 안 되고, 수도원에 가서 수도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연구를 해도 안 되고 어떤 것을 해도 안 됩니다. 세상 모든 종교를 다 가져와도 안 돼요.
모든 철학을 다 가져와도 안 되고, 이 세상에 있는 약을 다 써도 안 돼.
그러니까 바울이 이거 때문에 절규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21절,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여기 그림 보세요. 선을 행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어요.
그러면서,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죄성이라는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싸우기만 하면 항상 내가 져버려요.
여러분 우리가 좋은 일을 작심을 해도 왜 사흘도 못 가느냐? 이 죄성 때문에 그래요.
이 죄성은 대개 게으르고 욕심 많고 악해..
게으르고 욕심많고 악한 이것 때문에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거예요.
결심하는 것은 선한 마음이 하는데, 이 악이 그냥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24절,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래서 예수님 아니고는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는데, 앞을 보세요.
이 죄를 떨어도 안 되고, 세상에 있는 비누를 다 써도 안 씻어져.
그래서 이 죄가 마치 뭐 같으냐 하면, 우리 집사람은 성이 ‘박씨’인데 저랑 결혼하니까 ‘노서방네’가 되는 거야.
그래서 친정에 가면 처갓집 사람들이 ‘노서방네야’ 라고 불러요.
죄의 사람이 된 것도 마찬가지죠.
그러니까 사람이 죄의 아내가 돼버리니까 ‘죄서방네’가 되는 거예요. 죄서방하고는 이혼이 안 돼..
아무리 이혼하려고 해도 이혼이 안 돼. 유일하게 이혼되는 길이 있는데 죽으면 이혼 됩니다.
그런데 죄는 죽지도 않아요. 내가 죽으면 지옥 가야 되고 죄는 안 죽고 그러니까 그것도 안되고..
그래서 딱 유일하게 죽는 길인데 그게 세례예요 세례.
세례에서 물에 잠긴다는 것은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겁니다. 죄하고 결혼된 나는 죽었다 하고 죽어버리니까 이혼이 되는 거죠.
그리고 물에서 올라올 때는 새로운 신랑하고 올라오는 거야.
어떤 신랑이냐? 그리스도라는 신랑이야.
그래서 죄에게서 해방되어가지고 그리스도에게 가서 재혼하는, 죄와 이혼하고 그리스도와 재혼한다 그런 의미가 세례라는 겁니다.
이것을 바울이 설명하는 내용인데 로마서 7장, 8장이 그런 이야기죠.
그 다음에 8장에 보면,
[로마서 8장]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아까는 죄 안에 있었는데 죄에게서 해방돼가지고,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렇다고 해서 죄성이라는게 우리 몸에서 우리 육체 안에서 완전히 없어졌느냐?
이게 없어지지 않고 있어요. 세례받아도 아직도 남아있어요. 흔적이..
그래서 계속해서 애를 먹여.
그 때는 우리 속에 성령으로,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해서 말씀으로 이기지 않으면 언제든지 죄는 살아나고 또 살아나서 애를 먹이는 겁니다.
해방됐다 해도 법적을 해방된 것이지, 실제로는 늘 죽을 때까지..
그래서 루터도 ‘나는 죽을 때까지 또 실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죽을 때까지 예수가 필요하다.’ 그런 말을 하는데, 죄성이라는 것이 완전히 사라져버리면 참 좋겠는데 사라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죽을 때까지 애를 먹이는 겁니다. 죄에 익숙해있기 때문에..
그래서 끊임없이 죄를 대적하고 그리스도를 가까이 하고 이렇게 해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그래서 죄를 안 지으려고 하면 죄 안 지을 길이 없습니다.
죄를 안 짓는 유일한 길은 선을 행하는 거예요. 창세기부터..
그래서 가인에게 ‘네가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네 문 앞에 엎드린다.’ 사람이 선을 행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선과 사랑을 하지 않으면 바로 죄를 짓습니다.
선을 행할 줄 알고도 선을 행치 않으면 바로 죄가 되어버리니까..
끊임없이 선한 일, 좋은 일을 해야 악한 일을 안 하는 거예요.
나는 선한 일도 안 하고, 악한 일도 안 하겠다, 이게 바로 악이야.
끊임없이 선을 행하지 않으면 악을 행하는 겁니다.
결국은 무엇을 쫓아가느냐?
8장 3절,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여기 ‘육신에 속한 사람들’이 푸스키코스라는 사람들인데,
이 육신이라는 것은 자기 목숨, 단순한 육체적 목숨이 있는, 자연 본성 속에 있는 것들을 따라하는 육욕(肉慾)..
제가 얘기했죠, ‘뭐가 되겠다’, ‘뭐를 하겠다’, ‘뭐를 가지겠다’ 이런 욕심인데 3대 욕망을 자꾸 따라가다 보면 성령하고는 멀어지게 됩니다.
반대로 다 내려놓고, 우리가 죄인 되었다가 죄에서 해방되면, 우리가 뭐가 되겠다 뭐를 하겠다 뭐를 가지겠다 이런 욕심 내려놔야 돼요.
그 욕심 때문에 항상 사람이 변질됩니다.
‘뭐가 되겠다, 뭐를 하겠다, 뭐를 가지겠다’를 내려놓지 못하면 평생을 끌려다니다가 성령대로 살지 못합니다.
지나왔습니다만 한 군데 찾아보고 가죠.
고린도 후서 5장 14절 한번 펴봐요.
거기서 바울이 이런 말을 해요.
[고린도후서 5장]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런데 보통 앞에 14절부터 16장까지가 더 중요한데 다 제쳐두고,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런즉 어떤즉?’ 물으면 몰라요.
‘그런즉 어떤즉?’..
‘그런즉’이라는 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으면 모든 사람은 죽은 것이라.
여러분 대신 갚았으면 갚은 거죠? 대신 먹었으면 먹은 것이고, 대신 죽었으면 죽은 거야.
그렇죠?
예수님이 우리 모두를 위해 대신 죽으셨으니까 우리는 죽은 겁니다.
죽은 사람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안 돼. 가지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안 죽은 거예요.
그래서 예수 안에서 정말 죽은 사람은 자기 욕망, 자기 욕심, 자기 성취동기 이런 것들이 다 없어져야 되는데, 여전히 ‘내가 뭘 내가 내가..’ 계속해서 ‘내가’가 살아있어서..
주님이 뭘 원하시는지, 내가 예수님 안에서 사는 것이다. 예수님 뜻을 내 소원으로 만들고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여전히 예수님을 이용해서 내가 잘 되겠다고, 내가 성공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여전히 육신에 있는 사람입니다.절대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해요.
그저 하나님까지 이용해가지고 자기 육신적 소망을 이루겠다는 것은 이건 목표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그렇게 된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이 됐다는 거예요.
그렇게 된 사람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라 하는 겁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가 그렇지 못해요. 세례도 너무 간지럽게 해가지고 몇장 몇절 달달 외워가지고, 문답지 달달 외워가지고..
의미도 모르고 달달 암기해가지고 세례를 받았는데, 여전히 세상 근심하고 세상 욕심하고 이런 것에 끌려 다닌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이 절대 쉬운 말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는 말이 예배당 안에 있다는 말이 아니고요,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내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너희도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말은 ‘예배당 안에 있다’는 말이 아니고 ‘계명을 지킨다’는 거예요.
내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그 계명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내 욕심 아니면 세상 욕심 따라서 육신의 소욕을 따라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전히 축복, 축복 하고 전부다 돈 좀 갖다 바치고 복 받아가지고 내 소원 이루겠다. 이건 기독교가 아닙니다. 이건 탐심이요, 탐심은 우상숭배예요.
그래서 다시 로마서로 돌아갑니다. 8장을 보세요.
8장 12절에,
[로마서 8장]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여러분 예수님과 영광에 참여하려면 예수님과 함께고난을 함께 받아야지, 계속 예수님을 이용해서 복이나 받겠다, 성공이나 하겠다 이건 정말 현기증 나는 얘기예요.
이건 기독교가 아닙니다. 원래.
그리고 18절,
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이런 이야기가 로마서 8장인데,
사나 죽으나,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목적이 나를 위해 죽었다가 사신 그 분만을 위한 것이 돼야 하는데, 그게 안 되고, 예수님을 이용하고, 하나님을 이용하고, 교회를 이용해가지고 내 소원을 이루겠다 그건 기독교가 아닙니다.
잘못된 거예요.
그러니까 계속 성도들의 성공주의 바람을 불어넣는 것은 아첨입니다. 아첨..
그 다음에 로마서 끄트머리에 가서 보세요.
16장 봐요. 16장 17절.
[로마서 16장]
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아첨하는 말, 성도들의 욕심에 아첨하는 말, 아부하는 말을 살살 해가지고, ‘잘 된다, 복 준다.’ 계속 그런 말만 하는 거예요.
제가 볼 때 그런 설교 굉장히 많아요. 계속 ‘축복, 축복’ 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 같은 것은 아예 언급도 안해요. 십자가도 없고, 고난도 없고..
위험한 발상이죠.
자 여기까지 이야기한 바울이 9장입니다.
[로마서 9장]
1-2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4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이런 사람들이 버림을 받아서 하나님의 복음에서 소외되었다는 거예요. 스스로..
하나님의 손이 시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복음에서 멀어져버리고 이걸 생각할 때 바울이 기가 막히는 거죠.
그래서 자기 자신이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께 끊어질지라도 내 동족이 구원받는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 그 정도로 바울이 자기 골육의 친척을 위해 애를 태우는 겁니다.
9장 3절,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그리고 10장에 넘어가면 무슨얘기가 나오느냐 하면,
[로마서 10장]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거기 줄을 그으세요.
열심은 있는데 참 지식을 쫓지 않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허다해.
바른 진리를 쫓은 것도 아니고, 지식을 쫓은 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열심은 있는데..
그 열심이 사람잡는 열심이예요. 그 열심이 사람잡고 하나님 잡는 열심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유대교인들 열심 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열심 있죠.
..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여기 번역이 좀 애매한데, 신명기 30장에 있는 말인데
..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이건 번역이 이상해요. 잘못된 것 같은데요.
이 말은 누가 하늘에 올라가서 그 진리를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행하게 할꼬 하지 말라는 거예요.
누가 또 바다 밑에까지 가서 그 진리를 해외에까지 가서 가져와서 우리에게 행하게 할꼬 하는게 아니라,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말씀이 심히 가까워서 네 입술에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행할 수가 있다. 그런 얘기죠.
그래서 11절에,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래서 복음, 복된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파하고 선포한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 자들의 발이 아름답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11장은 무슨 얘기냐 하면,
바울이 쭉 정리해보니까, 처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유대인들에게 임했는데 이들이 받지 않겠다고 하니까, ‘그래? 그럼 넌 저리 비켜!’ 하고 그 은혜의 떡을 빼앗아서 이방인에게 줬어요.
이방인들이 받아서 너무 맛있게 먹고 살이 통통하게 찌고 하니까, 나중에 삐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돌아와서 시기가 나서 ‘나도 먹을래’ 한다는 거야.
그래서 신명기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신명기 32장에 보면,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 아닌 것으로 나를 질투나게 하면, 나도 내 백성 아닌 백성을 끌어안아서 하나님이 맞바람을 피운다. 맞바람을..
그래서 시기 나가지고 돌아오게 한다.
그래서 바울이 그걸 알고는 하나님의 지혜는 측량할 길이 없다,
알고 보니까 자기 골육 친척이 하나님께 돌아와야 하는데, 그건 다른 길이 없고 자기가 이방인들에게 실컷 퍼다 먹어야 돼. 바울이 기분 나쁘지만..
그렇게 퍼다 먹여서 이방인들이 실컷 맛있게 잘 먹고 하는 걸 보면, 그때 늦게가서 유대인들이 시기가 나서 ‘나도 먹을래’ 하고 온다는 거야.
그렇게 하려면 별 수 없이 내키지 않지만 자기가 이방인들에게 열심히 퍼다 먹여야 돼.
그래야 그것을 보고라야 유대인들이 시기나서 먹으러 올 거 아니예요.
그런 얘기를 쓰고 있어요. 이게 이미 신명기에서 하던 얘긴데,
너희가 하나님 아닌 것으로 나를 시기나게 했으니까 나도 내 백성 아닌 백성을 끌어안겠다, 그런 말을 바울이 캐치해서 이게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고 구원의 경륜이라.
그래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지는 기간이 있습니다.
이 기간이 끝나고 다시 유대인이 먹겠다고 하면 하나님이 이방인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는 거예요. 이제..
그래서 구원의 날이 있고 때가 있어요. 그 때를 놓쳐버리면 그땐 아무리 한번 닫으면 열 자가 없다는 거예요.
오늘이라고 하는 날에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고 열심히 전해야지, 이 때가 지나면 혼자 아무리 해도 안 돼요.
유럽 같은 데는 혼자 아무리 믿을려고 해도 안 되죠?
여러분 은혜의 강물이 흘러갈 때 같이 흘러가야지, 다 흘러가서 혼자는 흘러가지 못해요.
여기서 상당히 믿음 생활 잘 하던 분이라도 아무도 안 믿는 스위스 가서 해보니까 안 되더라는 거예요. 신앙생활이.
그래서 할 수 없이 호주로 갔거든요. 호주로 가서 신학을 하고 선교사가 돼서 다시 스위스로 갔는데, 거기가서도 아무도 안 믿는 세상에서 혼자 몸부림치듯 하니까 얼마 안 가서 탈진해가지고 우울증이 걸리는 거예요.
선교사가 우울증에 걸려요. 우울증이.. 얼마나 힘드는지..
그래서 우리가 지금 전도하는 것도 은혜의 강물이 흘러갈 때 전도를 해야지, 어떤 시기 지나면 어렵습니다.
11장 14절,
14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그래서 우리 보고 이방인들 중에 구원 받고 은혜 받았다고 까불지 말라는 얘기를 바울이 해요.
하나님께서 믿음 안에 거하지 않으니까 원감람나무 가지도 잘라버렸는데, 돌감람나무 접붙힌 것은 얼마나 잘라버리겠나, 열매 없으면 가차 없이 잘라버린다는 거예요.
그런 얘기를 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12장 넘어갑니다. 12장에 가보면,
[로마서 12장]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여러분 이게 헌신예배, 주일 밤에 헌금 천 원짜리 만 원짜리 하라 그런 말이 아닙니다.
우리 삶을 온전히, 영원히, 단번에, 전체로 헌신하는 거예요. 하나님 것으로 쓸 수 있도록..
그리고 헌신한 사람의 자세는,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러분 우리교회 표어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한 개 딱 있어요 한 개. ‘주님의 뜻을 따르는 교회’. 그것 밖에 없어요.
저는 만약에 제가 외치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니고, 목사의 뜻이면 따라오지 말라고 합니다. 성도들에게..
나를 따르라 하는데 나를 따르지 말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하는 모든 공부, 모든 노력은 첫째는 주님의 뜻을 알아내는 것,
둘째는 그것을 따라 순종하는 것, 믿어 순종하는 것,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그리고 성경구절 써붙인 것은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거 빼고 붙어있는 게 없습니다.
혹 또 다른 게 붙어 있으면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아니면 ‘세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그 정도 외에는 일절 다른 구절 붙여놓은 게 없습니다. 너절한 이기적인 구절은 없어요.
3절입니다.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각 사람입니다 각 사람..
..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4 우리가 한 몸에 (한 몸은 교회죠)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9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12장 이하는 실천편인데,
여러분 우리가 이론만 있고 실천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죠.
그리고 제가 자주 하는 얘기인데 성경을 이론적으로 빨리 끝내야 돼, 그래야 실천으로 들어갈 거 아니예요. 아니 성경 배우는데 일평생 걸리면 실천은 언제 합니까?
그러니까 더하지 말고 빼지 말고, 이것도 많아서 죽을 지경인데 더하지 말고, 여기 필요없는 건 없으니까 빼지 말고, 비틀지 말고, 노닥거리지 말고, 빨리빨리 해야 돼요 빨리빨리..
한국사람이 다른 건 다 빨리빨리 하면서 성경은 빨리빨리 안 가르치는 거예요.
아니 찬양도 잘하고, 기도도 잘하고, 헌금도 잘하고, 예배 출석률이 1위고, 선교, 봉사 다 잘해 다..
한국교회는 모든 것이 1등인데 딱 한 가지만 안 해, 성경만 안 가르치는 거예요.
성경만 안 가르치든지, 못 가르치든지, 잘못 가르쳐가지고 본질이 다 빠져버려요 본질이.
저는 다른 건 다 잘못합니다. 잘못하는데, 이거 하나라도 해야 돼 먼저.
제가 일절 교회에서 부흥회 이런 걸 안하고 사경회 이런 것도 없고 세미나 이런 것도 없지만, 성경만 차근차근 가르쳐도 우리 교회 성도들 헌금 제가 한 번도 강조하지 않지만 제가 볼 때마다 시무하는 교회마다 보통 이웃 교회하고 비교하면 교회 예산이 배입니다. 배.
같은 인원수의 옆에 교회의 배예요.
그러니까 괜히 헌금가지고 목사님들 징징거리며 짜지 말라고.. 짤수록 안나오는 게 헌금입니다.
하나님 말씀만 제대로 가르치면, 여러분 양들이 제대로 꼴을 먹으면 젖이 그냥 납니다.
그러니까 목회자가 할 것만 제대로 하면 돼요. 할 것만.. 안 할 것 하지 말고..
13장에는 개인생활 뿐 아니라 사회생활, 그리스도인의 사회생활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1등 시민이 돼야 합니다. 세금 같은 것 포탈하면 안 되고, 공세를 바칠 때 공세를 바치고. 거기 보세요. 6절에 보면, 아니 13장 처음부터 봅시다.
[로마서 13장]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여러분 이때 모든 권세 할 때, 그 권세는 네로황제입니다.
그 천하의 미치광이 네로황제가 로마황제로 있었는데, 그런 권세도 일단 하나님이 내셨다는 거예요.
거두어 갈 때까지는 권세가 있는거야.
3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5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6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지간하면 빚지고 살면 안 돼요.
좀 어렵게 그냥 살아야지, 빚을 너무 지고 하면 안 돼요. 사랑의 빚 외에는 안 지는 게 좋아요.
저는 제 생활에 10만원이라도 빚이 있으면 겁을 내는 사람이예요. 어지간하면 빚 안 지고 살아요. 어렵게 살아도..
누가 볼 땐 좀 융통성이 없어 보이죠.
그래도 빚지고 빚 안 갚고 하는 것 보다는 낫잖아요.
그리고 보증서는 것, 일절 누구 보증 서 주면 안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 보증 섰다, 만약에 설 때는 그 사람이 못 갚을 때 내가 정말 갚을 마음이 있을 때만 보증을 서요.
그런데 체면에 못이겨서 마음에 내키지도 않으면서 보증을 섰다가 큰 일 나는 거예요.
왜냐하면 여러분 재산이라는 게 사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으면 우리 것도 아니고 하나님 것입니다.
결국 패가망신 하면 내가 망하는 것 뿐 아니라, 하나님 이름에 욕을 돌리는 거예요.
깊이 생각해야 돼요.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그 다음에 14장에는, 언제나 교회에는 약한 자가 있습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로마서 14장]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믿음이 똑같이 되지 않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도 항상 챙겨야 되요.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그 다음에 15장도 마찬가지죠.
15장에는 강한 사람들이 할 일이 있어요.
[로마서 15장]
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여러분 강한게 지 혼자 힘 자랑하라고 강한 게 아니라고..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고 능력을 주신 거예요.
..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러면서 약한 자를 받으라는 말과 함께, 강한 자들은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고 하는 겁니다. 이것이 윤리죠 윤리..
그 다음에 15장에 보면 바울의 남은 행보가 기록됐는데 18절 보세요.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19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일루리곤은 발칸 반도 서쪽에 아드리아 해의 동편에 해변가 쪽으로 올라가는 길인데,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망하게 전하였노라.
이것을 보면 3개월간 고린도에 머물면서 로마서를 기록할 뿐 아니라, 고린도 교회를 안정시키고 일루리곤 지방에 이때 아마 니코폴리스라는 항구까지 복음을 전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바울이 가능하면 다른 사람이 교회를 세워놓고 복음을 전한 곳에는 전하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거죠.
그 얘기가 거기 15장 20절,
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1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래서 로마로 갈 마음을 먹었다는 얘기를 하고요
또 16장에 문안을 하는데,
[로마서 16장]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일군’이란 말은 집사죠, 디아코노스, ‘자매 뵈뵈’는 이 편지를 가져간 사람입니다.
2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3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지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로마에 자기 친정동네에 가서 살고 있는 모양이죠.
나중에 여의치 않아서 에베소로 다시 가는데, 지금은 현재 바울이 편지 쓸 때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로마에 미리 가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앞으로 바울이 로마로 갈 계획이 있기 때문에 미리 가서 터를 잡았겠죠.
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 대해서 말하기를,
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참 멋진 사람들이다. 그 말이죠.
5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바울이 어디 가도 첫열매를 챙기고 있죠. 지난번에 스데바나는 아가야의 첫열매이고, 여기 에배네도는 아시아 에베소의 첫열매예요.
6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예수를 먼저 믿었다는 거예요.
8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여기 쭉 이름들이 나오는데 24명 정도 소개하는데, 그 중에 13명 정도가 거의 귀족 아니면 왕족들이예요.
그러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꼭 거지같은 사람이 믿는 게 아닙니다.
굉장한 사람도 믿는 거예요. 때로는..
그러면서 아까 13절에,
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이런 말을 해요.
알렉산더와 루포라는 사람은 구레네 시몬의 아들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다음에 아까 말씀드렸죠?
17절,
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이런 사람 따라가면 안됩니다.
항상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로 따라갈 마음을 먹어야지, 달콤한 소리를 한다고 따라가면 안돼요.
자 이런 내용이 로마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로마서는 그야말로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교리적인 책이죠. 교리서신입니다.
또 사람이 하나님 말씀으로만 사는 게 아니고 밥도 먹어야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을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은 오전 동안에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사도행전 일부와 로마서를 살펴보았습니다.
앞으로 남은 서신도 잘 살펴서 새 하늘과 새 땅까지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로마서를 읽어보는 가운데 사도바울이 아직 로마에 가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로마에 이렇게 아는 사람이 많은가요?
바울이 장차 로마로 가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수많은 일꾼들이 세계 어디에서 움직이고 있는가 하는 것을 다 간파하고 있었다는 얘긴데,
다시 말하면 여기 한국에서 선교하는 분이 미국에 있는 어떤 교회, 아니면 뉴욕에 있는 어떤 교회 일꾼들,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재들의 이름을 훤히 꿰고 있었다는 겁니다. 훤히.. 정말 큰 인물이죠.
그래서 이런 인물들이 연락이 잘 되는 네트워크가 구성된 건 아니라도 마음속으로 이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고, 또 그 하는 일들에 관심이 있고, 이런 인물이었어요.
그리고 끄트머리에 보면, 연명으로 하는데,
21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하고 바울이 조금 더 쓸 말이 없는가 하고 생각하는 사이에,
이 편지를 대서하는 더디오라는 사람이,
22 이 편지를 대서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라고 한줄 써놨죠? 그 뒤에 빠진 거 없나 하는 동안에 대서하는 더디오가 자기 이름을 써 놓고,
23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이게 바울의 식주인, 하숙집 주인, 이런 사람도 여기 나오죠.
우리가 지금의 삶이 참 각박하게 돼버렸는데, 아파트 생활이 되면서 더 그렇고 도시 구조가 생기면서 더욱 점점 각박해진 것이, 옛날에 우리가 어릴 때는 그런대로 살만한 집은 사랑방이라고 하는 게스트 룸 이죠? 하나 있었어요.
사랑방, 방이 항상 여유가 있는 거야, 손님이 오거나 객이 오거나, 과객이라도 지나가는 어떤 사람이라도 잘 곳이 없으면 하룻밤 쉴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있었는데, 지금 현대에는 사라져버렸죠.
사랑방이라는 이름도 사랑채, 사랑방 하면서 멋이 있었는데, 오늘 우리 사회에는 사랑방이 없어져버렸어요.
우리 시골에 클 때 사랑방이라는 것은 거기가 여론이 형성되는 곳이요, 흥정이 이루어지는 곳이고, 중매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온갖 것의 정보가 흐르고 하는 동네 사랑방인데, 우리 사랑방에는 우리 아버지가 이야기를 잘해요. 책을 읽고 동네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어른들이 동네 사랑방에서 놀고..
방이 따로 없어가지고 아버지하고 저하고 방을 같이 쓰는데 제 공부방인지도 모르고 영감들이 계속 놀러오는 거예요 저녁마다..
그래서 지금도 사랑방 문화가 다시 좀 회복되는 길이 없는가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그래서 교회도 지금 사랑방이 없죠.
누구든지, 노숙자가 갈 곳이 없으면 교회에서 자고 갈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그런 여유가 없어..
한번은 스님이 회심을 하고 제 방송을 듣다가 우리 교회에 찾아왔는데, 와서 제 곁에서 설교 들으면서 신앙생활 하고 싶다고 했는데 교회가 얼마나 각박한지..
그 스님이 회심하고 돌아왔는데 그 스님을 위해 방 한 칸을 내 줄 힘이 없는 거예요.
참 서글프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마음에 여유가 잘 안 돼서 그런데, 할 수만 있다면 교회는 언제라도 밥을 먹을 수 있고, 언제 누가 와도 잠을 잘 수 있는 그런 여유 공간이 있어야 하지 않나.
아직 아무도 그런 생각을 못하지만 그랬으면 참 좋겠어요.
방을 한 칸 별채를 따로 만들어가지고 시내 그 교회 구역 내에 노숙자가 있다고 하면 교회가 책임을 져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고, 때를 굶는 사람이 있다면 교회가 역시 책임을 느껴야하지 않겠는가, 선교사들이 해외에 갔다가 어떻게 돌아왔을 때, 당장 임직을 했으면 좋지만 갈 곳이 없어요.
제가 또 목회자로서 한 교회를 개척해가지고 14년을 섬기다가 결국 목회를 시원찮게 해서 쫓겨나게 됐는데 아무 임지도 없이 길바닥에 나 앉은 거예요.
갈 데가 없어요. 갈 데가 없으니까 길 가다가 빈 창고가 있으면 눈이 그쪽으로 가는 거예요.
공부하는 아이들 셋씩이나 거느리고 아내하고 나하고 다섯 식구인데, 이 다섯 식구 어디 가서 머리 둘 곳이 없나 하고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지금 교회나 성도들의 삶이 너무 각박하게 돼버렸어요.
전혀 어떤 다른 사람이 우리 집에, 방에 와서 쉴 수 있는 그런 방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여기 내일쯤 인사하러 오지 싶은데 CTS 부산 경남 지사장 권사님이 저하고 같이 일생을 보내려고 500m 떨어진 곳에 집을 짓고 남편 장로님하고 거기 살거든요. 자녀들도 다 결혼했고..
이 분 소원이 극동방송 같이 근무할 때부터 항상 집을 좀 넉넉하게 해가지고 사랑방이 있는, 게스트룸이 있는 그런 집을 짓고 살면서 누구든지 쉬고 싶거나 조용히 기도하고 묵상하고 싶은 사람이 와서 편하게 쉴 수 있는 집을 가져보는 게 소원인데 소원을 이뤘어요.
그래서 진짜 사랑채가 하나 있습니다. 누구든지 와서 쉴 수 있게..
그래서 그 집 이름이 ‘쉴만한 물가’예요.
장로님 사는 그 집 이천 평 되는 땅에다가 자기 사택하고 사랑채를 지어가지고 들어가면 ‘쉴만한 물가’라고 집 이름이 그래요. 주소가 쉴만한 물가, 누가 ‘푸른 초장’할 사람 없어요?
그래서 그 권사님이 마음이 넉넉한 그런 분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쉬고 기도하고 하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니까 다른 사람은 쉬는데 장로님, 권사님이 쉬지 못하는 거예요.
워낙 실력이 있고 하니까 여기 와서 조용히 말년을 보내려고 했는데 CTS에서 부산 경남 지사장으로 위촉을 해가지고 열심히 뛰어다니는데 내일쯤 오지 싶어요.
그 분 보면 마음씨가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집을 지을 때 사랑채 하나 지으려면 거금이 들거든요.
사용료 누가 주는 것도 아니고 어지르고만 가고 그런 식인데, 그래도 그런 공간이 있어야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거죠.
여러분도 너무 어려울 때는 힘들지만, 조금 여유가 생기거든 교회에 손님이 오면 우리는 항상 빈 방이 있습니다,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저도 지금 집을 너무 각박하게 지어가지고 빈 방이 없어요.
그래서 몸이 안 좋은 사람 있으면 빈 방이 있어서 쉬게 했으면 참 좋겠는데, 여러분 ‘빈 방 있습니까’ 하는 연극 아시죠?
해마다 성탄절 전후되면 서울에서 극장에서 ‘빈 방 있습니까’ 라는 연극을 하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좀 빈 방이 하나 있어야 돼요.
마음에도 빈 방, 여유 공간이 좀 있었으면 좋겠고 너무 각박하게 사는 것 같아요.
이건 좀 서글퍼지는 거죠.
여기 옛날 사람들의 사랑을 보면요, 바울의 식주인, 바울이 어디 가서 바울의 아내가 없고 하니까 떠날 때까지 식주인 이런 사람도 있고,
아까 그 앞에 보면, 16장 13절에 보면,
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할 때, 이 사람도 아마 다마스커스나 안디옥 이런 데에 살 때 바울이 신세졌던, 그리고 이제 로마로 가 있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점점 잘 사는 것 같은데 놀랍게도 마음의 여유는 줄어들어서 점점 더 각박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어릴 때는 웬만한 집은 다 사랑채가 있었어요. 노인이 있든 없든 간에 사랑채가 있고 사랑방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방 운동을 좀 일으킬 필요가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자 로마서 맨 끝에다가 다시 ‘사도행전 20장 3절로 돌아간다’고 쓰세요.
여러분이 알아서 써야 합니다. 꼭 쓰라 한다고 쓰고 나중에 전화를 또 자꾸 하지 말고,
‘목사님 어디로 갔습니까?’ 하고 전화가 가끔 와요. ‘뭐가요?’ 하니까, ‘어디까지 읽었는데요 그 다음엔 어디로 갑니까?’ 그런 전화가 가끔 오는데, 그런 이야기는 전화로 하지 말고, 에스라하우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구약을 읽어가는 순서, 신약을 읽어가는 순서 다 나와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3절,
[사도행전 20장]
3 거기 석 달을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를 작정하니
이제는 로마서를 써서 겐그리아 여집사 뵈뵈라는 자매의 손에 로마서를 보내고, 석 달을 거기 고린도에서 머물렀다가, 배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의 이야기를 해봐야 되겠죠.
‘배 타고 수리아로 간다’는 말은 예루살렘까지도 수리아영에 속합니다.
지도를 보세요.
바울이 지금 여기 고린도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로 가는데 여기가 수리아입니다.
수리아의 수도 안디옥인데 여기를 간다 할 때, 수리아를 가면 꼭 안디옥을 가는 게 아니라 수리아영에 속하는 예루살렘이예요. 예루살렘까지 수리아영에 속합니다.
수리아 총독이 예루살렘까지 다 관할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참 어렵게 됐죠?
지금 바울이 내일 배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가야 되는데, 유대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이 바울을 해하려고 공모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결국은, 지도를 보세요.
바울이 여기서 배를 타고 쭉 가면 될 텐데, 배 놓쳐버리면 못 타는 거야.
못 타고 육지로 이렇게 돌아가는 거죠. 길이 얼만데 말이에요.
왜냐면 배가 내일 또 있는 게 아닙니다. 이번 배 가고나면 두 달 있다가 석 달 있다가 배가 있고 이런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의 거리나 교통하고는 전혀 다른 개념이죠.
바울이 ‘믿습니다’ 하고 배 타도 암만 ‘믿습니다’ 해도 ‘풍덩’하면 죽는 거예요. 그냥.
공모하는 놈들이 ‘바울이 거금을 가졌다는데 우리가 바울을 잡아다가 한 밤 중에 풍덩하면 왕복 경비가 빠진단 말이야’
세상에 예루살렘에 가는 유대인들이 뭐 하러 가나하면, 명절 지키러 하나님께 예배하러 가거든..
여러분 하나님께 예배하러 가는 사람들의 심리가 그래요.
바울을 해하기로 공모한 거예요.
그래서 그걸 듣고는 바울이 배를 타지 못하고 배는 그냥 가버리고,
이 사람들은 가다가 ‘바울이 어디 있는지 찾았겠죠?’
그래서 로마서는 여기까지 하면 되겠습니다. **
[정리]
◎ 로마서의 내용
- 1장 1절 ~ 1장 17절 : 로마서를 쓰게 된 동기, 방문계획, 문안인사, 주제설명
- 1장 18절 ~ 1장 32절 : 하나님께서 내버려두는 사람들의 죄악
- 2장 : 종교(기독교, 유대교, 카톨릭)를 가지고 있어도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다.
- 3장 :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다 죄인이다.
- 4장 :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 회복 - 칭의(稱義)
- 5장 :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 6장 ~ 7장 : 인간 내면의 원죄의 성질과 심각성
- 8장 : 죄로부터 해방(죄와 이혼하고 그리스도와 재혼한다 )
- 9장 : 동족 유대인의 구원
- 10장 : 선교의 원리
- 11장 : 구원론의 완성
- 12장 : 헌신의 권면
- 13장 : 그리스도인의 사회윤리
- 14장 ~ 15장 : 연약한자에 대한 관심
- 16장 : 문안(로마에 있는 24명 정도의 동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