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추수감사절은 청교도에서 비롯되었다. 영국의 청교도들은 국왕 제임스 1세가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자 종교의 자유를 찾아 새로운 곳으로 가고자 했다. 처음엔 네덜란드로 갔으나 만족스런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없어 미국으로 가기로 하였다. 청교도들은 배를 구입하기 위해 런던의 버지니아 회사의 직원들이 되어 7년 동안 일해서 메이플라워호를 구입하였다. 1620년 9월 16일에 180톤의 작은 배에 102명이 타고 66일간 풍랑과 식량난으로 많은 고생을 하며 항해한 끝에, 같은 해 11월 11일에 케이프 코드의 프로빈스타운에 입항하였다. 선박을 수리한 후, 12월 21일 오늘날 매사추세츠 주(州) 연안으로 이동하여 추운 겨울에 플리머스 항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그곳의 땅을 개간하고 나무를 베어 교회부터 짖었다. 1년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지었지만, 풍토병과 각종 생활의 질고로 약44명이 사망하였는데도 장례식을 제대로 못 치른 때가 많았다. 인디언에게 사람 수가 적어지는 것이 알려지면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디언과 화친을 맺으면서 옥수수를 심는 법을 배웠고, 그해 가을 즉 1621년 10월에 거두어들인 곡식을 바치며 하나님께 기쁨과 감격의 감사제를 드렸다. 이 날 청교도들은 호의를 베푼 인디언들도 초청하여 부근에서 우연히 잡은 칠면조 고기를 먹게 되었는데, 이것이 추수감사절이 되면 칠면조 고기를 먹는 유래가 되었다.
1789년에는 죠오지 워싱턴 미국 대통령이 순례자들이 지킨 첫 감사절을 기념하여 미국전역에 공식적으로 '추수감사절 날'을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의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추수감사절이란 '왕정시대의 한 관행'이라 하여 중단시켰다.
그 후 1828년 Godey's Lady's Book이란 잡지의 편집인이요 시인이었던 헤일 부인이 감사절을 국경일로 지킬 것을 호소하는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1863년 링컨 대통령이 그녀의 호소를 진지하게 듣게 되었고, 매년 11월 넷째 목요일을 '국가적 감사절 날'로 공식 발표하기에 이르렀으며, 1941년에는 미합중국 국회에서 최종적 비준을 받게 되었다.
그 후로부터 미국에서는 해마다 11월 넷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켜오고 있다. 온 가족이 모여서 풍성한 음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지나간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시고 축복해 주신데 감사하는 날로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