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구원
세광
코코는 어디서 데려왔는지 아무도 모르는 닭이었다. 병아리도, 닭도 아닌 시기에 학교로 오게 된 코코는 급하게 만들어진 사육장으로 옮겨졌다. 강아지 한 마리만 나와도 구경하기에 바쁜 초등학생들에게 코코의 등장은 엄청난 화젯거리였고 쉬는 시간, 하교 시간마다 사육장 앞은 북적였다.
메이 또한 북적인 인파 중 한 명이었다. 코코가 학교로 왔던 그해, 열 살이었던 메이에게 코코는 최고의 자랑거리였다. 수탉치곤 너무나 볼품없는 벼슬을 달고 있었지만 열 살의 메이에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제 학교에 닭이 산다는 사실이 가장 자랑스러웠고 지루한 수업을 버틸 수 있는 존재였다.
전교생이 애지중지 돌봤던 코코는 메이가 열한 살이 되던 어느 밤사이 죽었다. 그마저도 아이들은 죽음을 목격하지 못했고 우리가 잠든 새 하늘나라로 갔다는 선생님의 말이 전부였다. 새벽에 갑작스레 아팠고, 선생님이 무덤을 만들어줬으니 거기에 마지막 인사를 하면 된다는 말은 아이들에게 그야말로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몸집이 작았던 코코의 무덤은 주인을 닮아 두 손으로 감싸질 듯 작았다. 볼록한 무덤 앞에서 메이는 펑펑 울었다. 이제 다신 코코를 볼 수 없다는 건 꽤 슬픈 일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 그날 급식으로 닭강정이 나왔다. 메이는 그 닭강정에 손을 댈 수 없었다.
이튿날 메이는 손전등을 챙겨 달이 뜬 학교로 갔다.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전부 버렸던 닭강정이 자꾸만 생각났다. 야간 산책으로 운동장을 돌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 메이는 텅 빈 사육장으로 향했다. 그리곤 그 앞에 어쩐지 크기가 작다 했던 무덤을 파헤쳤다. 바닥을 드러내는 데까진 몇 분 채 걸리지 않았고 그 흙 속에는 코코의 깃털 하나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메이는 모두가 하교한 후 선생님을 찾아 물었다. 코코의 무덤에는 코코가 없었다고, 왜 그날 닭강정이 나온 것이냐 울먹이며 말하는 메이를 보며 선생님은 퍽 당황한 눈치였다. 선생님의 표정에 메이는 우리가 코코를 먹어버렸다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메이를 달래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코코는 사실 아픈 닭이었고 코코가 하늘나라로 간 건 사실이지만 코코가 더 자유롭길 원해 무덤이 아닌 다른 넓은 곳으로 보내준 것이다, 그 작은 코코로 우리 모두가 먹을만한 닭강정을 만들 순 없다, 라고.
돌아보면 코코가 닭강정이 됐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언행에 신경을 쓰지 않던 다른 선생님이 꾸벅 조는 아이한테 코코처럼 병든 닭이 됐냐고 나무랐을 만큼 코코는 항상 건강이 좋지 않았다. 사육장도 지금 떠올려보면 초라하기만 했다. 그런 코코를 굳이 키우기로 했던 당시 학교의 속사정을 알 수 없지만 대우받지 못했던 건 확실했다. 메이는 아마 밤사이 다른 동물이 코코를 물어갔거나, 썩어서 벌레가 생겨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어느 구석 흙에 묻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
메이는 뷔페식당에서 갑자기 사라진 데이를 찾아 나섰다. 어린이날이라 크게 결심하고 두 번째로 데려온 뷔페인데 동생 찾느라 입장료를 모두 버릴 순 없었다. 지난 생일에 한 번 온 이후, 다시 가고 싶다던 식당을 오랜만에 왔으니 한껏 신나서 돌아다니고 있을 게 분명했다. 메이는 두어 바퀴를 돌며 헤매다 음식 앞에 우뚝 서 있는 제 동생을 발견했다. 데이는 해파리냉채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해? 유치원생이 해파리냉채 먹으려고?”
안도감에 장난이 섞인 목소리를 향해 데이는 울먹였다.
“언니, 이 해파리가 그 해파리야?”
메이는 데이가 무슨 해파리를 말하는 건지 잠시 생각했다. 뷔페식당은 2층에 있었는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왼쪽 벽에는 붙박이 식으로 수족관이 작게 설치되어 있었다. 접시 세 개 정도 크기의 수족관은 아주 파란 조명을 켜두었고 그 속엔 해파리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 처음 이곳을 왔던 날, 데이는 계단을 올라오며 수족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스무 살을 넘긴 제가 봐도 파란 해파리는 제법 신비해 보였으니 데이는 오죽했을까 싶었다. 그래서 대기 인원이 줄어들 때까지 데이는 해파리를 바라보기에 바빴다.
그날도 해파리를 구경할 생각에 신이 났던 데이지만, 어떤 이유인지 해파리는 보이지 않았다. 텅 빈 수족관에 잔뜩 실망한 데이에게 메이는 해파리가 자고 있을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그런데 하필 메뉴에 해파리냉채가 있다니. 메이는 작게 웃음이 터졌다. 불가피하게 코코를 떠올렸다. 가끔 데이가 제 동생이 아닐 거란 생각을 한 번씩 했었는데 어릴 적 손전등을 들고 학교를 찾아갔던 제 모습과 꼭 닮은 걸 보니 부정할 수 없었다. 메이는 데이를 데리고 자리에 앉아 가져온 음식을 먹이며 오래전의 코코 이야기를 해주었다. 코코의 모습이 보이지 않던 날 나왔던 닭강정까지.
“알겠지? 가끔은 기가 막힌 우연 때문에 오해를 하기도 해. 그 작은 해파리 두 마리가 어떻게 그만한 양이 되겠어.”
“못 만드는 거야?”
메이는 전혀 알아듣지 못한 표정의 일곱 살을 위해 더 쉬운 설명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때 그 해파리 무슨 색이었어?”
“파란색.”
“그 음식은 무슨 색이었어?”
“하얀색.”
“거봐. 다르지?”
그제야 데이는 밝아진 표정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코코가 죽었을 때 급식으로 닭강정이 나온 것은 기가 막힌 우연이었다. 해파리가 사라진 뒤 해파리냉채가 요리로 나온 것도 기가 막힌 우연이었다. 그럼 엄마의 귀국이 미뤄졌던 것도 우연이었을까?
오지 않을 것 같던 데이의 초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메이는 해파리가 있던 뷔페를 검색했다. 지출을 줄이고자 외식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졸업식이니 좋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엄마가 두고 갔던 통장에는 꽤 큰 돈이 있었지만 그건 모두 데이의 몫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출장 때문에 해외로 가야 하니 이 돈을 쓰라고, 몇 주만 있다가 돌아올 거라 했다. 중학생이었던 메이의 눈에도 통장에 찍힌 금액은 너무 컸다.
그때는 엄마가 쓰고 있던 통장을 준 줄만 알았다. 일이 늘어 귀국이 미뤄지고 있다는 말이 쌓이며 메이는 왜 돌아오지 않는 거냐며 화도 내봤지만 영상통화 화면 속 엄마는 메이와 똑같이 지쳐 보였다. 넌 아주머니가 청소도 해주고 데이도 보살펴주고 있지만 엄마는 여기서 엄마가 혼자 다 해야 해, 엄마 참 외로워. 마지막 말은 통화 끝에 늘 붙던 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메이는 그런 통화마저 엄마가 먼저 걸지 않는 걸 느꼈다. 외롭다고 전화를 꼭 먼저 거는 법은 없어 보였다. 울기만 하던 데이가 어느새 걷고 있었지만 데이의 걸음마를 본 사람은 자신과 엄마가 붙여준 가사도우미뿐이었다. 기묘한 위기감에 메이는 야간 자율 학습을 빠지고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데이를 교육기관에 맡길 수 있을 때쯤에는 가사도우미도 더는 부르지 않았다. 그때도 여전히 엄마는 외로웠고, 전화를 먼저 걸어주지 않았다.
한 손에는 꽃송이, 한 손에는 졸업장을 든 데이는 2층 식당으로 향하며 계단의 벽을 응시했다. 벽에 파묻혀 있었던 작은 수족관은 사라지고 옴폭한 벽에는 다육식물이 놓여있었다. 데이는 무심히 화분을 바라보았다.
“너 여기 왔던 거 기억해? 몇 번 올 때마다 되게 좋아했었어.”
메이는 이제는 알아서 음식을 담아 온 데이에게 탄산을 건네며 말했다.
“해파리 있었잖아.”
“기억하네? 너 옛날에 해파리냉채 보고 울었잖아.”
웃음을 터트린 메이를 보며 데이도 따라 웃었다.
“언니. 해파리는 눈, 코, 귀, 뇌, 심장 그런 게 다 없대. 과학 시간에 배웠어.”
“그래? 신기하네.”
“그러니까 그 해파리도 아파하지 않았을 거야.”
“너 설마 아직도 밖에 있던 해파리로 음식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제는 초등학생도 아니면서.”
“아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해파리가 아파하지 않았을 게 중요한 거지.”
메이는 잊고 있던 코코를 떠올렸다. 왜 이 식당에만 오면 코코 생각이 나는지 알 수 없었다. 코코는 아파했을 것이다. 눈도, 귀도, 심장도, 뇌도 있었으니까. 많이 아팠을까? 작았을 때부터 병들어 있던 닭이었는데 평생을 아팠을까? 조용하고 작은 닭 생각이 꼬리를 물었지만 메이는 접시에 담긴 닭요리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언니는 왜 엄마를 찾지 않았어?”
만약 데이의 목소리에 다른 것이 담겨있었다면 메이는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데이는 오직 의문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찾아봐야 상황이 달라질 건 없고, 나만 애타겠다고 생각했어.”
“돌아올 거라고 생각한 적은 있어?”
“돌아올 사람이었으면 돈을 그렇게 주고 갈 리 없었지.”
메이는 엄마가 참 치밀했다고 생각했다. 재정적으로 데이와 자신을 어려움에 빠트리지 않게 했고, 영상통화를 통해 일이 바쁘지만 아이를 버리지 않았다는 걸 증거로 남겨둘 수도 있었으니까. 만약 메이가 엄마를 찾아내 이 모든 걸 묻는다 해도 우연처럼 귀국이 늦어져 못 왔을 뿐이라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기가 막힌 우연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는 걸, 코코와 해파리가 알려주었다.
‘우연 같은 상황이었거나, 아니면 정말….’
그만두자. 메이는 곧 잊어버렸다. 사실이 어떻든 지금 메이의 생활이 변할 순 없었다.
*
“내일부터 나 더 늦게 들어올 거야. 학교에 야자 안 한다고 말하고 웬만하면 해 떠 있을 때 집에 들어와 있어. 허락 필요하면 언니한테 전화하라 해.”
“왜 늦게 오는데?”
“야간 근무 하나 더 구했어.”
“지금 언니 월급으로도 우리 충분하잖아.”
“너 2년 있으면 대학 가는데 바짝 벌어둬야지.”
데이는 덤덤하게 대학교 얘기를 하는 메이가 신기했다. 당연히 대학교를 보내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언니처럼 성인이 되면 바로 일을 하겠다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사실 고등학교를 인문계로 갔을 때, 선택사항이 된 야간자율학습을 하겠다고 신청했을 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자신은 다행히 대학교에 가게 될 것이란 것을. 굶주리지 않는 삶이긴 했지만 메이와 단둘이 살고 있었기에 메이의 모습이 제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데이는 어딘가 겁이 났다. 아무렇지 않은 척 친구들이 아르바이트하고 있기에 나 또한 해보고 싶다고 메이에게 흘리듯 말했었지만 메이는 거절했다. 데이, 우리 돈 없는 거 아냐, 나만 일해도 먹는 거, 자는 거, 다 괜찮아. 그때 메이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화장실 문 너머 샤워기 물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데이는 씻고 나와 거실에서 머리를 말리는 메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서른세 살. 그거보단 나이가 들어 보였다. 눈은 짙었고 피부도 칙칙했다. 조금 전까지 보고 있던 예능프로그램 속 연예인도 서른세 살이라던데 그 사람은 이십 대처럼 보였다. 하지만 연예인들은 당연히 좋은 화장품을 쓰고 피부과에서 관리를 받고 있으니 당연했다. 데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연예인이 아닌 서른세 살을 떠올려봤다. 메이는 그보다 더 나이 들었다. 그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다.
남들에게 언니라는 존재는 메이와 달랐다. 언니가 자신 때문에 나이 든 건 참을 수 없이 미안했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왜 중학생이었던 언니가 제 보호자 역할을 했던 것인지, 공부를 포기한 채 일찍이 일을 시작했는지, 지금도 왜 언니와 엄마의 모호한 경계선에서 자신을 돌보고 있는 것인지 모두 버거웠다. 데이는 앞으로 메이의 인생을 어떻게 갚아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만큼 막막했다. 만약 그 예전 메이가 걷지도 못하는 데이를 모른 척했더라면 무거운 은혜보다 손쉬운 원망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메이가 자신을 버리길 원했냐 묻는다면 그렇다고도 할 수 없다. 과거의 메이에게 절대 버리지 말아 달라고 했을 것이다. 데이에게 버거운 건 메이의 인생일 뿐, 메이는 있어야만 하는 존재니까.
그럼 나는 메이를 구해줄 수 있는가. 그 질문은 영원히 풀지 못하는 문제였다.
“언니는 코코가 아니라 해파리를 닮았으면 해.”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어.”
하지만 어쩐지 메이는 코코를 더 닮아 버린 듯했다. 그러다 문득 해파리가 고통은 느끼는지 궁금했다. 다수의 기관이 없어도 어떻게든 고통을 느낄 순 있지 않을까? 식당의 작은 수족관의 그 해파리들도 건들면 아파했을까?
“아니야. 언니는…해파리냉채가 되면 안 되니까 해파리도 일단 닮지 마.”
메이는 그제야 데이가 어떤 해파리를 이야기하고 있는지 깨닫고 헛웃음을 지었다.
“너 솔직히 말해봐. 그 해파리 못 잊었지? 너 산타도 믿겠다?”
“산타 믿어. 마법도 믿어. 호그와트는 진짜 있는 곳이잖아.”
“그래? 그럼 어디 괜찮은 주문 좀 알려줘 봐. 퇴근 당기는 주문 같은 거 없어?”
“안 그래도 방금 주문을 만들었어.”
데이의 입매가 장난스레 올라갔다.
“자, 메이 학생. 호그와트 교수로서 특별히 알려줄게요. 이 주문은 당신에게 유효합니다. 우리 이름을 붙여서 만들었어요. 수리수리마수리……메이데이!”
메이를 향한 데이의 손가락은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네, 네, 아주 잘 써볼게요.”
메이는 대충 웃어넘기며 쥐고 있던 드라이기를 정리했다. 부스스해진 메이의 뒤통수를 보며 데이는 조금 전 주문을 속으로 되뇌었다. 메이는 주문을 외울 자격이 있다. 주문을 외운다고 하더라도 메이에게 도움이 되어줄 수 있을 진 모른다. 그냥, 메이는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나는 항상 해파리고 언니는 항상 코코여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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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해파리에 가까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