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광양에서 완도로 권태순
작은 아들이 광양 경찰서에서 근무를 했다. 어느날 집에 와서 엄마 고향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해서 순천으로 오라 했더니 아버님이 순천경찰서 계시니까 안온다 하더니 몇 년이
지났는데 엄마 나 완도 경찰서로 발령났습니다. 그래 우리 아들 잘 갔다 엄마 어릴때 고향
에다 읍내서 사촌 언니가 살고 있었다. 광양에서 완도로 가는데 저만 보낼수가 없어서 내가
같이 가기로 했다. 읍내 도착하니까 밤 12시가 되서 그냥 사촌 언니집으로 갔다.
조카 두 부부가 반갑게 대해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아들은 가는 뒷 날 읍내 파출소로 발령
이 났다. 나는 아들 살 방을 구해야 하는데 한달을 집보러 다녀도 마땅한 방이 없다.
그때는 아들 직장하고 갓차운데만 보러 한달을 다녔다. 어느날 군민회관 앞에 동백수퍼를
들렸다. 이 부근에 방이 있을까요 했더니 누가 살아요 하기에 아들이 여기 파출소로 와서
방이 필요해서 다녀도 없네요 하니까 그럼 내가 한번 알아볼깨요 자기 가게 앞집이 방 두개
가 있대요 그리 이사 했다. 그 뒷날 우리 언니한테 전화했더니 언니가 왔다 이사했는데 화장
지라도 사로 간다고 두리 동백수퍼 갔더니 언니를 보더니 아이고 어머니 오셨어요
우리 동생이 아들방 때문에 순천서 왔네 그럼 이모님이네요 파출소 소장님이 이사하셨냐고
왔다. 저기 사정이 석온이 이모라 하시데요. 나는 정돌이가 집이에요 하면서 석온이 하고는
친한 친구입니다. 고맙읍니다 안그래도 방도 구해 주어서 한 번 차자갈려고 했는데 소장님
이 오섰네요 앞으로 우리 아들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십시요 동생이다 생각할라요 감사
합니다. 내가 완도서 방을 얻어주고 2개월만에 순천집으로 왔다. 한 몇 년이 지난는데 어느
날 아들이 집에 와서 하는말이 아버지는 엄마하고 여태 살아스니가 이제부터는 엄마을 내가
좀 모실랍니다 하니가 알았다 해서 완도로 가기로 했다.
순천은 큰아들, 큰딸이 살고 있으니까 걱정은 안했다. 그때 아들이 약산 지서로 발령나서 나
도 같이 갔다. 거기서 작은 며느리가 짜짜루 중화요리를 했다. 장사하면서 땅 두필지를 샀다.
한 15년이 넘었다. 지금도 밭은 그대로 있는데 잘 못간다. 내가 완도와서 약산에서부터 사는
것이 아들이 섬으로 발령가면 섬마다 같이 갔다. 약산에서 정이 들어 한 2년 살았는데 헤어
지게 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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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광양에서 완도로
작은아들이 광양 경찰서에서 근무했다. 어느 날 집에 와서 엄마 고향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해서 순천으로 오라 했더니 아버님이 순천경찰서 계시니까 안 온다고 하더니 몇
년이 지났는데 엄마 나 완도 경찰서로 발령났습니다. 그래 우리 아들 잘 갔다 엄마 어릴
때 고향 읍내서 사촌 언니가 살고 있었다. 광양에서 완도로 가는데 저만 보낼 수가 없어서
내가 같이 가기로 했다. 읍내 도착하니까 자정이 돼서 그냥 사촌 언니 집으로 갔다.
조카 두 부부가 반갑게 대해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아들은 가는 뒤 날 읍내 파출소로 발령
이 났다. 나는 아들 살 방을 구해야 하는데 한 달을 집 보러 다녀도 마땅한 방이 없다.
그때는 아들 직장하고 가까운데 만 한 달을 다녔다. 어느 날 군민회관 앞에 동백 슈퍼에
들렸다. 이 부근에 방이 있을까요 했더니 누가 살아요 하기에 아들이 여기 파출소로 와서
방이 필요해서 다녀도 없네요 하니까 그럼 내가 한번 알아볼게요 자기 가게 앞집이 방 두
개가 있데요 그리 이사했다. 그 뒷날 우리 언니한테 전화했더니 언니가 왔다 이사했는데
화장지라도 사러 간다고 두리 동백 슈퍼 갔더니 언니를 보더니 아이고 어머니 오셨어요?
우리 동생이 아들 방 때문에 순천서 왔네 그럼 이모님이네요 파출소 소장님이 이사하셨냐고
왔다. 저기 사장이 정온이 이모라 하시데요. 나는 정도리가 집이에요 하면서 석온이 하고는
친한 친구입니다. 고맙습니다 안 그래도 방도 구해 주어서 한 번 찾아가려고 했는데 소장님
이 오셨네요. 앞으로 우리 아들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동생이라 생각하려오
감사합니다. 내가 완도서 방을 얻어주고 2개월 만에 순천 집으로 왔다. 몇 년이 지났는데
어느 날 아들이 집에 와서 하는 말이 아버지는 엄마하고 여태 살아서 네가 이제부터는
엄마를 내가 좀 모시렵니다 하니까 알았다 해서 완도로 가기로 했다.
순천은 큰아들, 큰딸이 살고 있으니까 걱정은 안 했다. 그때 아들이 약산 지서로 발령 나서
나도 같이 갔다. 거기서 작은 며느리가 짜짜루중화요리를 했다. 장사하면서 땅 두 필지를 샀다.
15년이 넘었다. 지금도 밭은 그대로 있는데 잘 못 간다. 내가 완도 와서 약산에서부터 사는
것이 아들이 섬으로 발령 가면 섬마다 같이 갔다. 약산에서 정이 들어 한 2년 살았는데 헤어
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