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
거짓말 잔치
“횃불을 던지며 화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 자기의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하는 자도 그러하니라”(잠 26:18~19)
왜 사람들은 거짓말하고 가짜 뉴스를 퍼뜨릴까? 대부분은 무지하거나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도적인 거짓말과 꾸며 낸 이야기는 남을 속여 이득을 취하거나 순진하고 귀 얇은 사람을 놀려 먹기 위한 경우가 많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4월 1일을 만우절로 정하여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한 뒤 상황을 설명하는 장난을 벌인다.
심지어 거짓말 경연 대회를 열어 재미 삼아 하는 거짓말을 ‘예술’로 승화시키기도 한다. 영국 컴브리아에서는 매년 ‘천하제일 거짓말쟁이 대회’가 열린다. 변호사와 정치인은 대회에 참가할 수 없는데 “거짓말 실력이 너무 뛰어나다.”는 것이 그 이유다. 브라질의 작은 마을 노바 브레시아는 거짓말의 수도라고 불린다. 여기서는 2년마다 거짓말 축제가 열린다. 독창적이고 그럴듯한 이야기로 관객이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직업적인 거짓말이든 아마추어의 거짓말이든 거짓말은 모두 듣는 이의 심리적 반응에 초점을 맞춘다. 넓은 맥락에서 도덕적으로 용인할 만하고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와 농담 정도는 잘못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남을 헐뜯기 위해 거짓말하면 문제가 된다. 의도적으로 해를 입히기 위한 경우에는 더욱 큰 문제가 된다. 이런 마음을 잘 표현한 독일어가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이다. 샤덴프로이데란 남의 불행에서 느끼는 기쁨과 흐뭇함을 뜻한다.
성경은 거짓말에 대해 매우 엄중하다. 무엇보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진리의 영”(요 16:13)으로 그리고 사탄을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요 8:44)로 부르셨다. 솔로몬은 농담으로 하는 거짓말도 정죄했다(잠 26:18~19). 사도들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께 거짓말한 것으로 간주되어 목숨을 잃었다(행 5:1~11). 성경에 따르면 거짓말쟁이는 하늘에 들어가지 못한다(계 21:27). 어떠한 형태든 거짓말은 거짓말이며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10/40 창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한국 교회가 기도하며 동참하도록
4월 2일
분란을 일으키는 논쟁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고 신화나 끝없는 족보 이야기에 집착하지 못하게 하시오. 그런 것은 무가치한 변론만 일으킬 뿐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데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딤전 1:3~4, 현대인)
멸망이 가까운 이 시대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강조하는 특별한 기별을 맡기셨다. 하지만 사탄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우리를 ‘지엽적인’ 논쟁에 말려들게 하고 복음 기별의 핵심과 전도에서 멀어지게 한다. ‘마지막’ 교황은 누구일 것인가 하는 추측도 그중 하나이다.
27년 동안(1978~2005) 교황으로 재위한 요한 바오로 2세를 두고 수많은 사람이 창의적인 예측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그중에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사임하고 다른 사람이 잠시 바티칸을 떠맡은 뒤 요한 바오로 2세가 다시 돌아와 마지막 교황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추측은 모조리 빗나갔다. 요한 바오로 2세는 2005년 4월 2일 사망할 때까지 계속 교황의 자리를 지켰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베네딕토 16세가 잠깐 그 자리에 있은 뒤 사탄 자신이 마치 요한 바오로 2세가 부활한 것처럼 속여 인간 교황 노릇을 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들의 예측과 달리 베네딕토 16세는 8년 가까이 교황으로 지냈고 프란치스코가 그 뒤를 이었다.
이것은 지난날 등장한 수많은 공상적인 억측의 일부에 불과하다. 게르하르트 F. 하젤은 “성취되지 않은 예언에 대해서는 해석자들이 억측을 자아내거나 그 자신이 이상야릇한 예언자가 될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수님이 경고하신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께 보냄 받지 않은 자칭 선지자들을 주로 의미한다(마 24:24). 더 나아가 자기만의 해석을 임의로 갖다 붙이거나 내용 일부를 빠뜨려 성경 예언의 의미를 비틀어 놓는 이들도 여기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계 22:18~19).
하나님의 사업을 흩뜨리는 “쓸데없는 논쟁”에 대해 바울은 당연히 경고했다(딤전 1:4). 분란을 일으키는 이런 논쟁으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성경의 굳건히 확립된 예언 메시지에 집중하며 일깨움을 얻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태영/전주은 선교사 부부(서인도네시아)
훈련원에 남아 있는 건축 사업(직원 및 원장 사택)을 위해
4월 3일
일기 예보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눅 12:54~56)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주로 구름과 바람을 보고 기상을 예측했다. 현대 기술 덕분에 지금은 기상 관측이 훨씬 정확하고 믿음직하다. 1995년 4월 3일에는 노트북 컴퓨터만 한 GPS 수신기를 탑재한 저궤도 위성인 마이크로랩 1을 724km 높이의 원형 궤도로 쏘아 올렸다. 본 위성은 전자기파로 대기층을 반복 측정해 온도, 압력, 수증기 등의 정보를 수집한다. 지상의 GPS 기상 관측 장비는 하층 대기의 수증기를 감지해 습도와 잠열을 파악한다.
누가복음 12장 54~56절에서 예수님은 군중을 꾸짖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날씨는 분간할 줄 알면서도 “이 시대”의 의미는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56절).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로 여기느냐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묻자 그들은 “더러는 침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마 16:14)라고 답했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도 메시아의 오심을 깨닫지 못했고 그분의 왕국이 무슨 특성을 지녔는지에 무관심했던 것이다(요 18:36).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세상도 첨단 기상 관측 시스템을 갖추었지만 시대의 징조는 분간하지 못한다. 냉소적인 이들은 “예수가 다시 온다는 약속은 도대체 어떻게 되었소? 우리 조상들이 죽은 이후로 세상은 창조된 그대로 있지 않소?”(벧후 3:4, 현대인)라며 비웃을 것이다. 교인 중에도 ‘양서류’ 같은 이들이 있다. 변온 동물처럼 차가운 피를 지닌 그들은 온도에 둔감하고 양서류처럼 교회와 세상을 모두 즐기려 한다.
우리는 최후의 폭풍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머지않아 그리스도께서 구름 가운데 나타나실 것이다. 주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시대의 징조와 우리가 살고 있는 엄숙한 날을 분간할 수 있기 바란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해성/백관희 선교사 부부(네팔)
네팔 여성 취약 계층 및 재림 청년들을 위한 직업훈련센터가 잘 운영되도록
4월 4일
구속주이신 그리스도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
해마다 전 세계의 관광객이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를 찾는다. 이 도시는 멋진 풍경, 다양한 볼거리, 치열한 삶의 모습으로 유명하다. 코르코바두산 정상에는 두 팔로 도시를 감싸는 듯한 구세주 그리스도상이 있다. 1922년 4월 4일에 이 거대한 조각상의 주춧돌이 놓였다. 공식적으로 9년 뒤인 1931년 10월 12일에 완공된 이 조각상은 자기 앞으로 나아오는 자를 품어 주시는 사랑 가득한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2007년에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됐다.
세월이 흐르며 구세주 그리스도상은 주기적인 청소와 개선, 보수 작업을 거쳤다. 피뢰침도 달았지만 낙뢰에서 자유롭지 않은 모양이다. 브라질 우주국에 따르면 연평균 6번 정도 그리스도상이 번개를 맞는다고 한다. 이 문제로 2008년에는 머리와 손가락 부분이 손상되어 수리가 필요했다.
구세주 그리스도상을 비롯한 수많은 예수상은 생기 없이 그분의 모습을 묘사한 것에 불과하며 끊임없이 손이 간다. 그러나 진짜 그리스도께서는 ‘흠도 없고 죄도 없는 분’이다(벧전 1:19; 히 4:15). 지상에서 사역하는 동안에도 그분은 죄를 짓지 않으셨다. 이를 두고 에드워드 헤펜스톨은 “아담과 하와의 죄는 그분의 육체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끝내 도덕적, 영적으로 그분을 뒤흔들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만일 그분께서 흔들렸다면 우리의 구세주가 되기는커녕 자신도 메시아를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을 것이다.
조각상은 누군가 관리해야 하지만 살아 계신 그리스도는 언제나 우리를 위해 탄원하고 보살피신다. “인간의 약점이 무엇인지, 부족한 부분이 어디인지, 무엇으로부터 강한 유혹을 받는지 그분은 경험으로 아신다. 모든 면에서 우리처럼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떨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를 살피신다. 시험에 빠졌는가? 그분이 구원하신다. 힘이 없는가? 그분이 힘을 주신다. 무지한가? 그분께서 깨우쳐 주신다. 상처 입었는가? 그분께서 치유하신다”(문전, 3). 우리의 구세주는 참 멋진 분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권순범/강지희 선교사 부부(대만)
감화력센터 컴엔씨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알 수 있도록
4월 5일
값비싼 은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 12:9)
수많은 사람이 은혜에 대해 말하는데 은혜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독일의 루터교 신학자이자 순교자인 디트리히 본회퍼(1906~45)는 그 뜻을 가장 훌륭하게 설명한 사람 중 하나이다. 독일의 종교 지도자 대부분이 침묵하던 시절에 그는 히틀러에 맞서 목소리를 내다가 스스로를 위험으로 내몰았다. 1943년 4월 5일, 본회퍼는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됐고 1945년 4월 9일 교수형을 받았다. 그가 갇혀 있던 강제 수용소의 인원이 모두 석방되기 2주 전의 일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39세에 불과했지만 그는 문헌으로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자신의 저서 『제자도의 대가』 제1장에서 본회퍼는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를 비교한다.
“값싼 은혜는 교회의 치명적인 원수이다. …값싼 은혜는 죄에서 떠나고 죄가 떠나가는 회개한 죄인을 의롭다 칭하는 게 아니라 죄를 의롭다 칭하는 은혜를 말한다. …값싼 은혜는 회개 없는 용서, 훈육 없는 침례, 고백 없는 성찬, 개인적 자백 없는 면죄를 설교하는 것이다. 값싼 은혜는 제자도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 살아 계시고 성육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은혜이다.”
값비싼 은혜는 그와 반대이다.
“값비싼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 명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은혜이다. 이것은 생명을 요구하기 때문에 값비싸며 진정한 생명을 선사하기 때문에 은혜이다. 죄를 정죄하기 때문에 값비싸며 죄인을 의롭다고 하기 때문에 은혜이다. 무엇보다 이것이 값비싼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생명을 희생하셨기 때문이다. ‘너희는 값으로 산 바 되었고’하나님께서 치르신 것은 우리에게 값싼 것일 수가 없다. …은혜는 인간에게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그분을 따르라고 요구하기에 값비싸다. 그러나 예수님이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라고 하시기에 그것은 은혜이다.”
구원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값비쌀 뿐 아니라 우리를 죄의 굴레에서 해방하고 참된 순종을 위한 올바른 동기를 부여하는 활발한 은혜이다. 바울의 말처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에 힘입는 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선한 일을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엡 2:8~10).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몸소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얻는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운성/조선희 선교사 부부(대만)
대학 캠퍼스 한글반 선교 활성화를 위해
4월 6일
썩지 않는 면류관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5)
1998년 6월에 그리스의 아테네, 고린도, 올림피아를 방문했다. 올림피아로 향하는 길에서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과 옛 경기장의 폐허도 보았다. 기록상 최초의 올림피아 대회는 기원전 776년 열렸고 4년에 한 번씩 그리스의 으뜸 신인 제우스를 기념하는 종교 축제 기간에 개최됐다. 올림픽은 고대 운동 경기 중 가장 중요한 행사가 되었다. 그러나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축제를 금지하면서 서기 393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15세기가 지난 1896년 4월 6일, 아테네에서 최초의 현대식 올림픽 게임이 개최됐다. 이후 4년마다 전 세계의 도시 중 한 곳에서 경기가 펼쳐진다. 먼저 고대 로마의 여신 베스타의 시녀를 상징하는 여성 11명이 고대 그리스의 올림피아에 찾아가 오목 거울에 햇빛을 비추어 성화에 불을 붙인다. 그런 다음 성화는 가장 먼저 아테네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으로 옮겨진 뒤 올림픽이 개최되는 도시로 이동한다.
고린도전서 9장 24~27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경주를 당시의 달리기 경주에 비유한다. 여기서 바울은 첫째, 그리스도인들에게 승자가 되라고 촉구한다. 올림피아 경기에서는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이다(24절). 그러나 그리스도인 경기에서는 모두 승리할 수 있다. 둘째, 그리스도인 경기에서 얻는 상은 노력해서 얻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바울은 강조한다. 당시 올림피아 경기의 승자가 받는 상은 야생 월계관이었고, 고린도 경기에서는 더 빨리 시드는 셀러리로 관을 엮어 주었다. 그리스도인 경주의 승자는 모두 “썩지 않을 면류관”(25절, 쉬운)을 얻는다.
히브리서 11장 39절~12장 2절은 그리스도인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주자들이 우리를 지켜보며 응원하는 것처럼 묘사한다. 우리의 올림픽 성화는 헤라 신전이 아니라 갈보리 십자가의 제단에서 불을 밝힌다. 또 썩어 없어질 면류관이 아니라 썩지 않을 “의의 면류관”(딤후 4:8)을 구한다. 승리를 향해 달리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진성/김종숙 선교사 부부(튀르키예)
이스탄불 탁심 국제교회 선교 사역과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4월 7일
가치 있는 투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건강은 잔고가 바닥날 때까지 다 써 버리는 예금 계좌와 같을 때가 많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건강을 최대한 뽑아 쓰려고만 한다. 자주 인용되는 캐나다 성직자 A. J. 레브 머러티의 말처럼 “수많은 사람이 건강을 잃어 가며 돈을 번 다음 건강을 되찾기 위해 돈을 쓴다.”
세계 보건 기구(WHO)는 1948년 4월 7일, 스위스 제네바에 설립되었다. 매년 4월 7일로 지정된 ‘세계 보건의 날’은 WHO의 설립을 기념하고 세계가 직면한 건강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날이다. 건강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증진할 수 있는가? WHO에 의하면 “건강은 단순히 질병과 질환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상태”를 말한다.
엘렌 화잇은 『치료봉사』에서 이렇게 진술한다.
“건강 유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극히 드물다. 병에 걸리고 나서 치료법을 찾기보다 병을 예방하는 것이 훨씬 낫다. 자신을 위해, 더 나아가 인류를 위해 생명의 법칙을 이해하고 성실히 따르는 것이 모두의 의무이다. 모든 생명체 중 가장 신비로운 것이 인체임을 모두가 알고 있어야 한다. 다양한 신체 기관과 건강을 위한 그 상호 의존 관계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정신이 신체에 또 신체가 정신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배워야 하며 이 모든 것을 다스리는 법칙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치료, 128).
화잇은 이런 말도 했다.
“맑은 공기, 햇빛, 절제, 휴식, 운동, 올바른 식단, 물의 적절한 활용, 하나님 신뢰는 진정한 치료제이다. 천연 치료제와 그 사용법을 모두가 익혀야 한다. …그 법칙을 따르는 사람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얻을 것이다”(앞의 책, 127).
이 “진정한 치료제”가 바로 뉴스타트 건강 프로그램의 근간이다. 뉴스타트(NEWSTART)는 영양(Nutrition), 운동(Exercise), 물(Water), 햇빛(Sunshine), 절제(Temperance), 공기(Air), 휴식(Rest), 하나님 신뢰(Trust in God)를 뜻한다.
이 여덟 가지 건강 법칙을 진지하고 균형지게 적용하여 생활 습관을 개선해 보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1000명선교사 운동
60기 선교사들이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으로 준비되고 사역하도록
4월 8일
종교 차별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8~10)
‘차별’에 대해 말하기는 쉽지만 차별을 직접 견디기는 힘들다. 차별이란 한마디로 자신이 제외되거나 달갑지 않게 여겨지는 것이다. 내가 있을 때보다 없을 때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것이다. 심지어 내가 살아 있기보다 죽어 버리기를 더 좋아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차별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한다.
국제인권기구(ISHR)는 1972년 4월 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설립된 사설 단체이다.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추구하는 이 기구는 1981년 국제적인 지위를 인정받았고 현재 종교와 언론의 자유를 위해 힘쓰고 있다. 2009년 국제인권기구는 전체 종교 차별 행위의 80%가 기독교에 대한 것이며 아무리 낮게 잡아도 매일 기독교인 20명이 목숨을 잃는다고 추산했다.
세계신종교학회를 설립한 마시모 인트로빈은 20세기 기독교의 가장 큰 박해자는 무신론 공산당 집권 세력이었고 21세기에는 이슬람 초근본주의자들이 그 자리를 꿰찼다고 지적했다. 익명의 이라크 기독교인은 “기독교에 대한 공격이 계속되지만 세계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마치 캄캄한 밤이 우리를 집어삼킨 기분”이라고 말했다. 『기독교를 향한 세계적 전쟁(The Global War on Christians)』의 저자 존 L. 앨런 주니어는 전 세계의 교인들에게 가하는 박해를 “이 시대에 보도되지 않는 가장 큰 비극”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보고를 접할 때마다 차별자와 박해자를 혐오하고 차별하고픈 생각이 든다. 그러나 차별로 차별을 극복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하면 죄만 늘어날 뿐이다.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무기는 오로지 사랑뿐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전 세계에서 신앙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온갖 형태의 차별을 저지해야 한다. 우리가 먼저 시작해야 한다. 모든 이를 사랑해야 하며 신앙이 다르다고 낮잡아 보아서는 안 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민섭/김순임 선교사 부부(대만)
청년 선교회 조직 및 활성화를 위해
4월 9일
방언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성령의 침례를 받은 사람은 방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이 많다(행 2:1~13; 10:44~48; 19:1~7). 그렇다면 초기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언어를 사용했을까? 황홀경에 젖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을까? 아니면 사람의 말을 했을까?
고대 이단 종교와 나중에 몇몇 기독교 분파에서도 황홀경 방언을 사용했지만 이런 방언이 새롭게 부각된 것은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의 아주사 스트리트 부흥 운동에서였다. 1906년 4월 9일, 윌리엄 J. 시모어가 두어 가정에서 ‘은사주의’ 기도회를 개최할 때 에드워드 리와 흑인 여러 명이 이 현상을 체험했다. 여기서 오늘날의 방언 운동이 세계로 퍼졌다. 그런데 이 방언들이 초기 기독교의 방언과 같은 것일까?
진정한 방언의 은사는 복음 전도를 위해 성령에 의해 신자에게 주어지는 것이지 단일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 내에서 특별한 지위를 얻도록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사도 바울은 말한다(고전 14:9, 18~19, 22, 27~28). 오순절에 제자들은 외국인들이 각자의 언어로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그들의 언어로 말했다(행 2:4~13). 고넬료에게 임한 방언의 은사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확인해 주시는 증표였다(행 10:44~48). 고린도의 방언은 무역의 중심지에서 거류민과 외국인 여행객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행 19:1~7).
참다운 방언의 은사는 오늘날에도 물론 볼 수 있다. 통역자가 없는 선교지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곤 한다. 그런데 성령의 임재는 사탄도 흉내 낼 수 있는 영적 은사들(출 7:8~13; 20~22; 8:6~7)보다는 성령의 열매를 통해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갈 5:22~23). 엘렌 화잇에 따르면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모든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상담자, 거룩하게 하는 분, 인도자, 증인으로 오신다”(행적, 49). 자신의 실력과 은사에 관계없이 우리는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정태/김성진 선교사 부부(베트남)
베트남 삼육 신학교의 이전 및 건축을 위해
4월 10일
죄인을 부르러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3)
잘사는 사람에게 더 잘하고 부자에게 더 좋은 선물을 주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다. 그러나 이러한 틀에서 벗어나 어렵고 억압받는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도 있다. 그중 하나가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스(1829~1912)이다.
윌리엄 부스는 1829년 4월 10일, 영국 노팅엄에서 태어났다. 1844년에 회심을 경험했고 2년 뒤 평신도 부흥 강사가 되었다. 1865년에 부스와 아내 캐서린은 가난하고 불우한 이들을 위해 기독교부흥협회를 설립했다. 알코올 중독자, 범죄자, 매춘부까지 전도하고자 설립된 협회는 나중에 구세군이 되었다. 초기 구세군은 주류 업계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가난한 이들이 술 구매를 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아내 캐서린의 말에 따르면 부스는 “매일 밤 피로에 절어 초췌한 모습으로 비틀거리며 집에 들어왔는데 옷은 찢어지고 머리는 돌에 맞아 피 묻은 붕대로 감겨 있었다.”
하지만 부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1912년 5월 19일,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부스는 마지막 연설을 남겼다.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처럼 여자들이 눈물을 흘리는 한 나는 싸워야 합니다. 지금처럼 아이들이 굶주리는 한 나는 싸워야 합니다. 누군가 계속해서 감옥을 들락날락하는 한 나는 싸워야 합니다. 술 취한 자들, 가난하고 갈 곳 없는 아이들이 거리를 떠도는 한 나는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빛을 보지 못한 어두운 영혼이 하나라도 있다면 나는 싸워야 합니다. 나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자주 인용되는 다음의 말도 부스가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령 없는 종교, 그리스도 없는 교회, 참회 없는 용서, 거듭남 없는 구원, 하나님을 무시하는 정책, 지옥 없는 천국은 향후 1세기에 직면할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엘렌 화잇은 구세군의 활동을 인정하는 한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마지막 때 성경의 진리를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이 세우셨다고 강조했다. 그 엄중한 사명은 어떠한 사회적인 활동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람들의 신체적, 사회적 필요를 채워 주면서도 우리는 그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이끌어야 한다(요 16:13; 마 4:24; 28:20).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송해섭 선교사(네팔)
선교센터에서 운영 중인 고아원의 어린이들이 믿음 안에서 잘 성장하도록
4월 11일
외모의 기만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 16:7)
좋든 싫든 우리는 외모로 평가받는다. 키, 몸무게, 생김새, 옷차림, 일하는 방식과 태도도 그 대상이 된다. 이론 물리학자 레너드 믈로디노프는 “외모는 성격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외모는 얼마든지 꾸며 낼 수 있고”…“첫인상이 수많은 사람을 속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을 지명하기 위해 주님은 선지자 사무엘을 이새의 집으로 보내셨다(삼상 16:1~13). 거기서 엘리압을 보고 사무엘은 한눈에 매료되어 “이 사람이야말로 과연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로구나!”(6절, 현대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호와는 그런 사무엘에게 경고하셨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7절).
재림교회에서 예언 해석의 대가로 널리 인정받는 유라이어 스미스(1832~1903)도 비슷한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미시간주 배틀크리크에 처음 자동차가 나타났을 때 놀란 말이 날뛰어 한 여성이 부상당했다. 자동차의 생김새가 문제라고 생각한 스미스는 자동차 앞에 부착할 말 머리 모형을 나무로 만들었다. 1899년 4월 11일, 스미스는 ‘차체 디자인’에 관한 특허를 냈고 특허번호 US D30551 S는 7년간 효력을 발휘했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말은 자동차의 생김새가 아니라 소음에 더 많이 놀랐던 것이다.
성급한 판단 때문에 내면의 아름다움을 놓칠 수 있다. 볼품없는 외모 뒤에 따뜻한 마음과 빛나는 품격이 가려진 경우도 많다. 창조주와 구세주의 형상과 아름다운 품성을 본받는 것이 외모보다 훨씬 중요하다. 또 우리가 그리스도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지금 모습으로 남들을 판단하는 대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변화될 가능성을 엿보게 될 것이다(빌 3:12~16).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세담/박유진 선교사 부부(대만)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함께 동역할 일꾼 10명을 보내 주시기를
4월 12일
에덴에서 에덴으로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3)
이미지로 각인된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백문불여일견’이라는 중국 고사성어와 ‘천 마디 말보다 사진 한 장’이라는 영어 표현처럼 말이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 재림교회 미술가들은 구원의 계획에 관련된 중요한 순간들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중 깊은 통찰력과 영감을 선사하는 작품집 하나가 바로 재림교회 대총회 본부 주 로비에 전시된 <에덴에서 에덴으로>이다. 2015년 4월 12일 헌정된 이 전시물은 여러 화가의 70여 작품으로 구성됐다. 아래쪽 로비에는 구약 시대, 위쪽 로비와 복도에는 신약 시대에 관한 그림이 걸려 있다. 아트리움에는 하늘 궁정에 있는 구원받은 이들의 모습을 그려 놓았다. 전시물의 절정은 네이선 그린의 작품 <복된 소망>이다. 이 그림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놀랍게 표현했다. 각 그림은 뜻깊은 시각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우리가 영원한 삶의 경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예증한다.
<에덴에서 에덴으로>는 구원의 계획의 축소판이다. 천년기가 끝나고 새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보좌가 이 땅에 내려올 때 이 계획은 우주적으로 실현될 것이다(계 21:1~3). 엘렌 화잇은 그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보좌 위에 십자가가 나타나고 아담이 유혹받고 타락하는 장면, 구속의 계획이 한 단계 한 단계 잇따라 실행되는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엄청난 광경이 여과 없이 다 드러난다. 사탄과 그의 천사, 그의 부하들은 그 장면을 피할 힘이 없다. 각 당사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떠올린다”(쟁투, 666~667).
인류의 역사가 마지막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무대에 선 배우이다. 우리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모두 뜻대로 진행되고 있다. 하늘과 땅은 이 모습을 조심스레 지켜보고 있다(고전 4:9; 히 12:1~2). 우리는 회복된 에덴으로 향하는 길을 꾸준히 걸어가야 한다. 그 무엇도, 누구도 이 길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남경원/조효정 선교사 부부(파키스탄)
파키스탄의 미래를 위해 신학생들이 영적이며 올바른 리더십을 세우도록
4월 13일
하늘의 예배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계 11:15)
‘할렐루야’ 합창으로 유명한 조지 F. 헨델의 <메시아>는 가장 장엄한 음악 중 하나다. 성경의 그리스도를 주제로 한 찰스 제넌스의 가사에 맞추어 헨델은 24일 만에 곡을 써냈다. 악보의 마지막에 그는 ‘SDG’라는 글을 써넣었는데 라틴어 ‘솔리 데오 글로리아(Soli Deo Gloria)’의 약자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뜻이다. 메시아는 1742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청중 700명의 감탄 속에 연주되었다.
‘할렐루야’ 합창 대목에서 청중이 모두 일어서는 전통은 1743년 3월 런던 데뷔 공연에서 처음 시작하여 널리 퍼졌다. 음악에 감동받은 국왕 조지 2세가 일어서자 다른 사람이 모두 따라 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의문을 표하는 비평가도 있지만 기원 여부에 상관없이 수 세기 동안 높으신 그리스도께 경의를 표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할렐루야’는 킹제임스성경에 묘사된 요한계시록의 장엄한 하늘 찬양을 반영한다. “이 세상의 나라들이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어서 그분이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할렐루야,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도다”(계 11:15; 19:6, 한글킹). 요한이 본 하늘의 계시에 기초해 헨델의 합창에서는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를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계 19:16)라고 찬송한다. 하늘 음악의 맛보기라고 할 수 있다.
구원의 계획이 마련되고 시작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살면서 “하늘의 빛과 영광을 누리고 천사의 노래를 들으며 그들과 함께 노래”(교권, 123)하기 위해서다. 하늘의 찬양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늘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하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하늘이 전부이며 하늘을 잃으면 전부 잃어버리는 것과 다름없다”(아들과 딸, 349). 우리가 하늘을 잃는 것은 존재 이유를 잃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그곳에 가야만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하늘 선교사(튀르키예)
국가 경제가 안정되어 청년들이 신앙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4월 14일
생명의 신비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4)
복잡한 인체와 수많은 신체 기관의 상호 작용에 감탄한 적이 있는가? 수의근과 불수의근, 놀라운 치유 능력을 지닌 면역 체계, 과학자의 과제로 남아 있는 매우 신비로운 두뇌까지 이 복잡한 시스템이 한 사람의 몸에 들어 있다. 인간은 어떻게 생각하고 감정은 어떻게 생기는가? 모든 사람이 어떻게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가?
수백 년간 과학자들은 인체와 그 수많은 기능을 이해하려 애썼다. DNA 연구는 발달, 성장, 생명 활동의 기본적인 유전 법칙을 밝혀냈다. 그 유명한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도 인간의 모든 유전자 배열을 밝히기 위한 연구였다. 2003년 4월 14일, 유전체 프로젝트 연구진은 임무를 완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간의 뇌를 이해하는 것은 21세기 과학의 가장 큰 도전 과제로 남을 것”이라고 인간 두뇌 프로젝트의 대표자는 말했다.
2014년 4월 2일 자 영국 『인디펜던트』지에 따르면 “각 사람에게는 1,000억 개에 가까운 뇌세포가 있다. 뉴런이라는 이름의 이 세포를 한 사람이 은하수의 별보다도 많이 지닌 것이다. 한 개는 다른 1만 개와 직접 연결될 수 있고 경우의 수는 100조 개나 된다. 한 사람의 뉴런을 늘어놓으면 지구를 두 바퀴 감고도 남을 것이다. 이 가장 복잡한 신체 기관의 온갖 수수께끼를 풀다 보면 유전자 해독은 아이들 장난처럼 보인다.”
그러니 “주께서 나를 경이롭게, 멋지게 지으셨습니다. 주의 작품은 정말 놀랍습니다”(시 139:14, 우리말)라고 시편의 저자 다윗이 감탄하는 것도 당연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뛰어난 작품이다. 그리고 우리를 “성령의 전”(고전 6:19)으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벧전 1:19)를 더하셨을 때 우리의 가치는 더욱 커졌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막대한 투자를 감행하셨다. 그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건강을 가꾸어야 한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말레이시아 사바 대회에서 진행 중인 10명의 복음 교역자 파송 프로젝트를 위해
4월 15일
과신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 20:7)
20세기 초반은 선박 회사의 경쟁이 극심한 시기였다. 1908년, 해운 기업 화이트스타라인은 아일랜드 벨파스트에 있는 할랜드 앤드 울프사에 가장 크고 고급스러운 증기선을 주문했다. 어마어마한 크기와 힘을 의미하는 RMS 타이태닉호가 그 배의 이름이 되었다. 1912년 4월 10일, 타이태닉호는 영국의 사우스샘프턴에서 뉴욕을 향해 처녀항해를 떠났다. 그러나 나흘 뒤 오후 11시 40분, 북극해를 지나다가 빙하에 충돌해 우현에 큰 구멍이 생겼고 1915년 4월 15일 새벽, 충돌 후 세 시간 만에 반 토막으로 갈라져 침몰하고 말았다.
빙하를 주의하라고 수많은 선박이 타이태닉호에 무전을 보냈지만 선장 에드워드 J. 스미스는 전속력으로 달리는 배를 두고 오후 9시 20분 잠자리에 들었다. ‘가라앉지 않는 배’로 여겨진 타이태닉호에는 구명보트가 20척밖에 없었는데 이것은 다른 선박이 침몰할 때 생존자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타이태닉의 승선 인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지만 710명이 구조됐고 약 1,500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7년 영화 <타이타닉>을 보았다면 그 참상을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가라앉지 않는 배’가 침몰한 사건은 인간의 업적을 과대평가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우리 자신의 업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이런 성향을 익히 알던 다윗은 “어떤 이는 전차를 의지하고 어떤 이는 말을 믿으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믿노라”(시 20:7, 우리말)라고 말했다. 우리의 노력과 업적이 마침내 죄다 무의미해지는 날이 올 것이다. 오직 하나님과 함께한 일만이 영원히 남을 것이다.
스미스 선장은 스스로를 과신한 탓에 다른 배의 경고를 모두 무시했고 그 결과 참사가 일어났다. 이 이야기는 현실적인 조언과 지침을 무시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 준다. 사소한 결정으로 엄청난 일이 생긴다는 교훈도 알려 준다. 하와가 선악과를 먹기로 결심한 뒤 벌어진 일을 떠올려 보라.
주님, 오늘 그리고 매일 주님의 뜻에 따라 옳은 결정을 하게 해 주소서!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석희/전은경 선교사 부부(몽골)
몽골 게이트웨이 프로젝트와 신학교 건축을 위해
4월 16일
찬양의 목소리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 19:14)
유창하고 설득력 있는 웅변이 넘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영원한 복음을 전하라고 하나님께 부름받았다. 주어진 사명을 효과적으로 완수하려면 전달하는 내용뿐 아니라 전달하는 방식에도 신경 써야 한다. 엘렌 화잇은 “지식이 있어도 목소리를 옳게 활용하지 않으면 우리의 사업은 실패할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적절한 언어로 옷 입히지 않는다면 교육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말하는 능력을 계발하지 않으면 지식은 별 유익이 없습니다.”(6증언, 380)라고 말했다.
1999년, 브라질 후두학음성협회는 4월 16일을 ‘음성의 날’로 정했다. 3년 뒤인 2002년에 포르투갈 후두학 교수이자 유럽후두학회 회장인 마리오 안드레아는 4월 16일이 더 큰 관심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날은 ‘세계 음성의 날’로 지정됐다. 일상에서 음성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목소리 건강을 점검하여 좋은 목소리를 위한 습관을 계발하고 유지하자는 것이 그 목적이다.
말하기 문제를 노력으로 극복한 대표적인 인물은 그리스의 웅변가 데모스테네스
(기원전 384~322)이다. 그리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데모스테네스는 말을 더듬었고 웅얼거리는 발음 때문에 달변가가 되기는 어려웠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데모스테네스는 “지하 연습실을 마련하고 외출하지 않으려고 머리도 절반을 밀었고, 거기서 조약돌을 입에 문 채 숨이 찰 때까지 낭송했다. 또 큰 거울 앞에 서서 웅변 연습도 했다.”
자신의 음성이나 말하기 능력에 개선이 필요한가? 하나님은 우리의 인간적인 한계와 약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용하신다. 그러나 인내하면서 좋은 기술을 연마하면 우리는 결점을 극복할 수 있다. 우리의 음성은 하나님을 위해 써야 한다. 자화자찬을 삼가고 하나님께 영광을, 인류에게 희망을 선사하는 데 우리의 목소리를 사용하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신영천/김혜림 선교사 부부(캄보디아)
바탐방 도시선교센터를 통한 선교와 앞으로의 계획들을 위해
4월 17일
말씀으로 부흥하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 4:31)
우리는 “참된 경건의 부흥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가장 크고 긴급한 사항”(1기별, 122)이라는 말을 듣는다. 이 긴급한 문제를 의식해 2011년 대총회 연례행정위원회에서는 ‘그분의 말씀으로 부흥하라’는 프로젝트를 실행하기로 결의했다. 이것은 2012년 4월 17일에 시작해 2015년 7월 대총회 총회 때 끝났고 그 기간에 각 교인은 매일 성경 한 장씩을 읽도록 했다. 2015년 총회에서는 그 후속으로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해 5년 동안 성경을 통독하고 선별된 엘렌 화잇의 저서들을 읽게 했다.
기독교 역사에서 참된 부흥은 언제나 사람들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그분의 말씀을 열심히 탐구할 때 일어났다. 우리는 “기도 없이는 성경을 연구하지 말라.”(정로, 91)는 충고를 받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기도할 준비가 된다.”(1증언, 504)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실하고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 매일 기도로 하나님을 구하라. 또 성경 읽을 시간, 겸손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게 지내지 말라”(하나님의 딸들, 160).
부흥과 개혁은 함께 간다. 부흥이 일어나면 개혁을 위한 영적 갈망이 생기며 개혁은 참된 부흥의 결과이다. 개혁 없는 부흥은 영적 허깨비이며 부흥 없는 개혁은 윤리적 형식주의에 불과하다. 과거에 부흥 없는 개혁을 강조하는 설교가 많았다면 오늘날에는 개혁 없는 부흥을 외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사람들은 구원자 예수를 원하지만 주인 되시는 예수는 별로 찾지 않는다.
참된 부흥의 또 다른 기본적 특징은 우리를 겸손과 반성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을 높이고 남을 판단하려 든다면 성령이 그들을 이끌고 계신 게 아니라고 확신해도 된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프로젝트는 하나님을 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영적 성장을 위해 남에게 자극받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스스로 결심하고 지금 주님을 찾으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윤권/나영주 선교사 부부(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 삼육대학이 성령의 가르침에 따라 복음을 전파하도록
4월 18일
제가 여기 있나이다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눅 12:11~12)
종교 개혁의 가장 극적인 순간은 1521년 독일 보름스에서 벌어진 사건일 것이다. 마르틴 루터의 성경 해석은 로마 가톨릭의 가르침과 권위를 흔들어 놓았다. 1월 3일,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를 파문했고 3개월 뒤 루터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 앞에서 진행될 청문회에 소환됐다. 그는 4월 16일 보름스에 도착해 이튿날 의회에 출두했고 제시된 책 더미 앞에서 (1) 이 책이 자신의 저서가 맞는지 (2) 책의 내용을 취소할 생각은 없는지 질문을 받았다. 루터는 그 책들이 자신의 펜으로 저술한 것이 맞다고 시인한 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생각할 시간을 더 달라고 요청했다.
1521년 4월 18일 늦은 오후, 루터는 의회에 다시 참석했고 두 번째 질문을 다시 받았다. 자신의 책은 다른 주제를 다룬다고 설명하던 루터에게 그들은 다시 캐물었다. “마르틴, 당신만 성경을 제대로 이해했소? 당신의 판단이 그 많은 저명인사보다 뛰어나고 당신이 그들 모두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말이오?”
단도직입적인 대답을 요구받자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폐하와 영주들이 간단한 답을 원하시니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과 명백한 이성으로 저를 납득시키지 않는 한 저는 교황과 공의회의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양심을 거스르는 일이야말로 옳지도,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를 도우소서. 아멘.”
포스트모던 시대와 이후의 세상에서는 근본과 헌신이 사라지고 있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성경의 권위를 수호하려는 사람은 오늘날 많지 않다. 그러나 이 마지막 때야말로 세상과 교회에는 이런 인물이 절실히 필요하다. 여러분이 그 주인공이 되지 않겠는가?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성현/손미현 선교사 부부(캄보디아)
파송된 9기 선교사들의 사역과 10기 선교사 모집을 위해
4월 19일
인간의 지능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같이 하시니”(왕상 4:29)
오늘날의 방대한 지식과 과학적 업적을 총동원해도 인간의 지능을 재현하거나 두뇌의 활동 원리를 명확히 파악하기란 실제로 불가능하다고 신경과학자들은 고백한다. 그럼에도 인간의 지능을 측정하기 위한 여러 심리 테스트가 개발됐다.
20세기 초 알프레드 비네와 테어도르 시몽은 아이들의 지능 측정을 위한 ‘지능 척도’를 제안했다. 1912년 4월 19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5회 임상 심리학 학회에서 빌리암 L. 슈테른은 <지능 검사를 위한 심리학적 방법>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서 그는 ‘지능 지수’ 즉 ‘아이큐(IQ, Intelligence Quotient)’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이를 측정하기 위한 공식을 제안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등장한 더 현대적인 지능 테스트들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IQ란 ‘불완전하고 의심스럽다(Incomplete and Questionable)’는 뜻이라고 비평하는 이도 있다.
1983년에 하워드 E. 가드너는 지능을 단순히 이성적인 생각 이상이라고 보고 서로 다른 7가지 다중 지능 영역을 제안했다. 1999년에는 이것을 8가지로 늘려 언어 지능, 논리 수학 지능, 음악 지능, 공간 지능, 신체 운동 지능, 인간 친화 지능, 자기 성찰 지능, 자연 친화 지능으로 분류했다. 그런 가드너조차 2003년에는 “유전학과 사이버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탐구할 때마다 내 지능이 더 높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오늘날에는 수많은 기계에 인공 지능이 활용된다. 인공 지능의 ‘지능’은 기계 장치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인간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자기 뇌의 신경 세포 지도를 어느 순간 다 파악한다 해도 그때쯤이면 뇌는 이미 새로운 배열을 시작했을 것이며 이 과정은 무한히 반복된다.
현대 심리학자 중에는 복잡한 인간의 지능이 자연 진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는 이가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약 1:17)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분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렘 9:23~24).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그대의 지능과 재능을 활용하고 있는가?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석곤 선교사(몽골)
재학생들의 제자 훈련을 위해
4월 20일
우리의 하늘 집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마 22:13)
2014년 9월에 오스트리아 북부의 역사적 장소를 방문했다. 브라우나우암인에 들어서자 모퉁이에 있는 낡은 집 한 채가 눈길을 끌었다. 그 집 앞의 돌에는 “파시즘은 평화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수백만 명이 죽음으로 경고한다.”라는 글귀가 독일어로 쓰여 있다. 놀랍게도 그 집은 125년 전인 1889년 4월 20일에 아돌프 히틀러가 태어난 곳이다. 그의 어머니 클라라 히틀러는 자기 품에 안긴 아기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기억될지 짐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2004년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 수용소에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실감했던 2차 세계 대전의 모든 만행이 히틀러의 생가에서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천년기 이후에 각 시대의 악인들이 깨어나는 요한계시록 20장의 장면도 그려 보았다. 그중에는 분명 아돌프 히틀러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 무리는 “넓은 땅으로 올라와 성도들의 진영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도시를 포위”(9절, 현대인)한다. 이것은 모든 악인과 마귀의 세력이 총집결하여 불경한 연합을 이루는 전무후무한 사건이 될 것이다.
오싹한 사실이 있다. 잃어버림을 당하는 사람은 하늘의 행복을 누리지 못할 뿐 아니라 2차 세계 대전의 악명 높은 나치보다 더 악독한 마귀의 군대에 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때가 이르면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고 예수님은 경고하셨다(마 22:13). 우리는 결코 구원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어떤 물건이나 우리의 노력도 하늘의 복에 비할 수 없다.
엘렌 화잇은 이렇게 호소한다. “온 하늘이 우리의 구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저는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무관심해서야 되겠습니까? 구원받느냐 못 받느냐를 별것 아닌 문제처럼 소홀히 여기고 우리를 위해 치르신 희생을 가볍게 취급해도 된단 말입니까?”(1증언, 124) 그대와 나는 하늘에 가야 한다. 그곳이 우리 집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선/이아리 선교사 부부(필리핀)
새롭게 시작한 선교사 생활 중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시도록
4월 21일
정체성의 상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
종교 사회학적 연구에 따르면 신앙 운동은 자신이 속한 문화를 개혁하고픈 열망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이삼백 년 세월이 흘러 선도자와 그 추종자들이 사라지면 그 운동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애초에 개혁하려던 문화로 재흡수되어 버린다. 사도 시대 이후의 기독교와 종교 개혁 이후의 개신교에서도 이 과정을 흔히 볼 수 있다.
19세기 중엽의 미국 감리교는 가장 활기 넘치고 역동적인 교단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의 열정이 사그라졌다. 1972년 4월 21일, 연합감리교 총회에서는 교리적 다원주의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오직 성경’이라는 개신교의 대원칙을 저버리고 네 가지 동등한 교리적 권위를 지닌 요소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들은 “기독교 신앙이 성경으로 계시되고 전통으로 조명되고 개인적 경험으로 생동감을 얻고 이성으로 확인되었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결의로 감리교회는 갖가지 상반되는 가르침과 문화적 가치에 스스로 문을 열어 놓은 셈이다. 『다원주의의 문제와 연합감리교회의 정체성 회복』이라는 통찰력 있는 책에서 저자 제리 L. 월스는 다원주의가 감리교회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지적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현재 창립된 지 150년이 지났고 동시대의 문화에 강력한 영향을 받고 있다. 우리는 로마서 12장 2절에 기록된 바울의 충고를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문화에 너무 잘 순응하여 아무 생각 없이 동화되어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대신에 여러분은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십시오. 그러면 속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것을 흔쾌히 인정하고, 조금도 머뭇거리지 말고 거기에 응하십시오.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는 늘 여러분을 미숙한 수준으로 끌어 낮추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서 최선의 것을 이끌어 내시고 여러분 안에 멋진 성숙을 길러 주십니다.”
우리는 재림교인이자 실제적인 세상에서 오늘날 세상 사람들처럼 살고 있다. 이 시대의 문화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보편적인 원칙과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북한선교부
남북 대화가 평화적으로 재개되어 선교적 활로를 찾도록
4월 22일
지구를 돌보자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 1:31)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을 잘 돌봐야 한다. 그러나 “기름 유출, 공장과 발전소의 오염물, 하수 방류, 유독성 폐기물, 살충제, 도로 건설, 황무지 개간, 야생 동물 멸종” 등으로 수많은 자연 자원이 무분별하게 훼손되고 있다.
1969년 초,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에서 발생한 초대형 기름 유출 사고로 바닷새, 돌고래, 물개, 바다사자 1만여 마리가 목숨을 잃었다. 이후 활동가들은 환경 규제, 환경 교육은 물론 지구의 날까지 지정하라고 목소리를 냈다. 1970년 4월 22일, 미국에서 처음으로 지구의 날을 기념했고 집회에는 무려 시민 2천만 명이 동참했다. 이 운동은 눈에 띄게 성장했다. 1990년에는 141개국에서 약 2억 명이 재활용을 증진해 “1992년 리우 지구정상회의의 초석을 마련했다.”
‘환경의 청지기’라는 문서에서 재림교회는 지구 자원을 파괴하는 무책임한 행위를 규탄하고 생활 습관을 본질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본 문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서는 사람들이 고삐 풀린 소비주의, 재화의 축적, 쓰레기 생산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단순하고 건전한 생활 양식을 옹호한다. 자연의 존중, 세계 자원 사용의 제한, 필요의 재평가, 창조된 생명체의 존엄성에 입각한 생활 방식의 개혁이 요구된다.”
재림교회에서는 이 세상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믿는다(창 1:2). 원래 세상은 “매우 좋았다”(창 1:31, 바른). 또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것을 가꾸고 지키게” 하셨다(창 2:15, 킹흠정). 태초부터 지금까지 모든 세대는 하나님의 청지기이며 최선을 다해 그분의 창조물을 지켜야 한다. 자연은 창조주의 품성을 드러낸다. 따라서 자연을 파괴하면 그분의 계시를 방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결국 “새 하늘과 새 땅”(계 21:1)을 창조하실 것이라고 해서 청지기 생활을 소홀히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장차 다가올 영광스러운 세상의 맛보기가 되게 하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지훈/신은주 선교사 부부(미얀마)
MPM 직업훈련센터의 영어 학원이 잘 운영되도록
4월 23일
경기장의 사나이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잠 24:16)
역사를 이뤄 내는 사람은 재능과 참을성을 겸비한 경우가 많다. 토머스 에디슨은 자신의 실수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저는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작동하지 않는 1만 가지 경우의 수를 찾아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910년 4월 23일, 파리 소르본에서 ‘공화국의 시민’이라는 주제로 연설하면서 인내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부분은 ‘경기장의 사나이’라고 알려진 다음의 대목이다.
“중요한 것은 비평가가 아닙니다. 뭐가 문제였고 어떻게 해야 했는지 지적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공로는 실제로 경기장에 나가 얼굴이 먼지와 땀과 피로 범벅이 되도록 용감하게 싸운 사람, 거듭 실수하고 기대에 못 미쳐도 실제로 뛰는 사람, 무한한 열정과 헌신의 가치를 아는 사람, 값진 대의에 자신을 바치는 사람의 몫입니다. 그는 끝까지 노력해 마지막에 크나큰 승리를 쟁취할 것입니다. 설령 실패하는 최악의 경우라도 최소한 과감히 도전하다 실패했으므로 승리도, 패배도 모르는 냉정하고 소심한 영혼들은 결코 그를 대신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선악의 대쟁투가 벌어지는 경기장에서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엡 6:12)에 맞서 끊임없이 싸우며 살고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지도를 받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타고난 재능과 인내심이 있어도 패배하고 말 것이다. 엘렌 화잇은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의 노력에 결합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가장 위대한 결과를 이루는 사람은 전능하신 분의 팔에 전적으로 매달리는 사람이다.”(부조, 509)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하루를 주셨다. 자신의 힘으로만 이 하루를 맞이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순간에 그분의 능력과 이끄심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오늘은 승리하고도 남는다. 주님께서 그대 곁에 매 순간 동행하시기를, 아멘.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현규/최선아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복음 서적을 통해 구도자들이 진리를 깨닫도록
4월 24일
우주 탐험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사 40:26)
1990년 4월 24일, 오랜 제작 기간과 검증 끝에 허블 우주 망원경이 발사됐다. 허블 우주 망원경은 저궤도 우주 망원경으로 유럽 우주국과 나사(NASA)가 공동 개발했다. 이 우주 관측 장치는 대기권 밖에서 지구 주위를 돌면서 아주 먼 우주의 놀라운 장면을 보여 준다. 132억 광년 떨어진 은하 사진을 보내온 적도 있다.
망원경의 개발과 천체 궤도를 설명하는 물리 법칙의 발견으로 천문학은 한층 발전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구원받고 영원한 삶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는 직접 우주를 탐험할 것이다. 물론 망원경도 필요 없다.
“우주의 모든 보화가 하나님의 자녀 앞에 탐구의 대상으로 공개될 것이다. 죽음의 지배에서 벗어난 그들은 아득한 세계들을 향해 지칠 줄 모르고 날아간다. 그 세계들에서는 인간의 고통을 바라보며 슬픔으로 전율했고 영혼이 구원받은 소식에 기쁨의 노래를 불렀다. 지상의 후예들은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타락하지 않은 존재들과 즐거움과 지혜를 나눈다. 여러 세대를 거쳐 하나님의 손길을 묵상하며 얻은 지식과 지혜의 보배들을 함께 나눈다. 창조의 영광을 그들은 뚜렷한 눈으로 바라본다. 태양과 별들, 천체가 모두 하나님의 보좌 주위를 일정한 궤도에 따라 돌고 있는 모습을 본다. 지극히 작은 것에서 가장 큰 것에 이르기까지 만물에는 창조주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의 풍성한 능력이 드러난다”(쟁투, 677~678).
우리의 제한적인 두뇌로는 우주와 영생이라는 두 가지 말의 의미를 온전히 깨달을 수 없다. 하나님이 죄로 물든 세상에 직접 오시어 자기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고 영생을 선사해 손수 지은 우주의 작품을 우리가 탐구할 수 있게 하셨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영식/조효정 선교사 부부(몽골)
선교사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위해
4월 25일
기본 교리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
초기 재림교인들은 공식적인 기본 교리를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재림교회의 신조에 대해 묻는 사람이 많아졌고 재림 기별을 왜곡하여 거짓 주장을 펼치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래서 유라이어 스미스는 1872년에 『재림교회에서 가르치고 실천하는 기본 신조 선언문』에서 25가지 진술문을 소개했다. 1889년에 이 진술문은 약간 수정됐고 28가지로 늘었다. 1931년 『재림교회 연감』에는 22가지 ‘기본 교리’의 새로운 진술문이 등장했다. 1980년 4월 25일 텍사스 댈러스에서 개최한 대총회에서는 27가지 기본 교리의 공식 진술문을 처음으로 결의했다.
본 진술의 특징을 서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성경을 우리의 유일한 신조로 받아들이고,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분명한 기본 교리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제시하고 있는 이 교리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교회의 이해와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교리들은 교회가 대총회 회기 시 성령의 지도를 받아 성경 진리에 대한 더 깊은 이해에 이르거나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에 대한 더 나은 표현법을 찾아냈을 때 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성경만이 변함없는 유일한 진리이며 기본 교리는 개정될 수 있다고 구분 짓는 것이다. 실제로 2005년 미주리 세인트루이스 대총회 총회에서는 정령 사상에 대한 우려와 악한 세력에 대응하고자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남>이라는 진술문(제11항)을 새로 추가했다. 2015년 텍사스 샌안토니오 대총회 총회 때는 더 명확하고 쉽게 이해되도록 여러 교리의 문구를 수정했다.
성경만이 우리의 유일한 신조라는 사실은 결코 변함이 없지만 『교회 요람』에 소개된 재림교회의 28가지 기본 신조는 성경의 가르침과 소망의 이유를 간결하게 설명할 때 도움이 된다(벧전 3:15).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소개할 수 있도록 이 내용을 잘 알아 두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원상/김수경 선교사 부부(방글라데시)
150여 임시 사역자를 위한 지원 확대와 생활 개선을 위해
4월 26일
영혼 불멸인가 부활인가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인간의 영혼이 원래부터 불멸하다면 왜 신약 성경에서는 죽은 자의 최종적인 부활을 가르치고 있을까? 여기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다. 이 궁금증에 대해 가장 강력한 대답을 제시한 사람 중 하나가 유럽의 선도적인 개신교 신약학자 오스카르 쿨만(1902~99)이다. 1955년 4월 26일, 쿨만은 하버드 대학교 앤도버 예배당에서 개최한 잉거솔 강의에서 인간의 불멸성에 대해 논했다. <영혼 불멸과 죽은 자의 부활-신약의 증언>이라는 그의 강의는 하버드 신학 대학 회보에 실렸고 나중에 소책자로 출간됐다.
쿨만은 영혼 불멸이라는 그리스 사상이 기독교에서 믿는 부활과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볼 때 본래적인 영혼 불멸이라는 그리스의 철학적 관념은 신약 성경에서 가르치는 죽은 자의 최후 부활과 조화되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서기 150년경에 이미 순교자 유스티누스(100~165)는 “죽은 자의 부활이 없고 영혼이 죽으면 하늘로 이끌려 간다고 말하는”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했다.
고린도전서 15장 16~18절에서 바울은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라고 논증한다. 많은 이가 믿듯 의인이 죽어 그 영혼이 하늘로 이끌려 간다면 그리스도께서는 굳이 부활하실 이유가 없다. 또 이미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있을 것이므로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에 대해 “망하였으리니”라는 말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와 반대로 신약의 복음은 잔인하고 슬픈 죽음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의해 그리스도께 완전히 정복당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14).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랑하는 사람이 마침내 죽음에서 깨어나 영생을 얻는다니 이 얼마나 복된 소식인가!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갑숙 선교사(말라위)
한국연합회의 후원으로 건축된 두 교회가 지역 사회에서 등대가 되도록
4월 27일
선교사의 아내
“누가 어진 아내를 얻을까?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다. 남편은 넉넉히 벌어들이는 아내를 믿고 마음이 든든하다. 백 년을 한결같이 속 썩이지 않고 잘해 준다”(잠 31:10~12, 공동)
우리는 용감한 선교사들의 모범적인 헌신과 희생에 깊이 감동받는다. 예를 들면 1793년에 인도로 간 윌리엄 케리, 1816년에 아프리카로 파송된 로버트 모펏, 1841년에 아프리카로 항해한 데이비드 리빙스턴 등이다. 그렇다면 선교사 아내와 자녀들은 어떨까? 선교사의 아내 중에는 값비싼 희생, 어쩌면 선교사인 남편보다 더 큰 희생을 치르며 머나먼 선교지에서 주님을 섬긴 이가 많다. 그들은 오랫동안 외로움을 견디며 이방 문화 속에 살아야 했고 심각한 정서 장애를 겪기도 했다.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선교사 로버트 모펏의 딸인 메리 모펏(1821~62)은 남아프리카 그리쿼타운에서 태어났고 그때 부모는 선교사로 봉사하고 있었다. 1845년 1월 2일에 메리는 역시 선교사인 데이비드 리빙스턴과 결혼했다. 이후 메리는 남편의 선교 활동 조력과 자녀 교육이라는 두 가지 일로 아프리카와 영국을 오가며 애써야 했다. 남편과 함께 잠베지강 슈팡가에 있을 때 메리는 질병에 걸려 1862년 4월 27일에 사망했다.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리빙스턴 박사의 사랑하는 아내 메리 모펏,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기쁜 부활을 소망하며 여기 잠들다.” 메리는 남편 못지않게 아프리카 선교지를 위해 삶을 바쳤다.
엘렌 화잇은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들은 자신의 일을 하찮은 봉사로 여길 때가 많다. 이것은 좀처럼 인정받지 못한다. 그의 수많은 염려와 부담감을 남들은 거의 모른다. 매일 어김없이 몰려오는 사소한 의무들은 하나같이 참을성 있는 노력과 자제력과 기지와 지혜와 자기희생적인 사랑이 요구되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위대한 업적처럼 자랑할 수도 없다.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느낀다. …그의 이름은 세상에서 주목받지 못한다고 해도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치료, 376~377).
선교사인 남편을 도우며 무대 뒤에서 묵묵히 일했고 또 여전히 일하고 있을 여인들을 우리는 소중히 여기고 응원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BMW 코리아
에티오피아에 진행 중인 교회와 학교 건축이 잘 마무리되도록
4월 28일
우주여행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시 8:3~4)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1724~1804)는 “생각할수록 새롭고 더 큰 감탄과 경외감을 자아내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의 머리 위에 있는 별빛 찬란한 하늘과 내 속에 있는 도덕법”이라고 말했다. 천문학자와 우주 과학자들은 하나님의 우주에 경이로움과 호기심을 느끼며 그 신비를 열심히 탐구해 왔다. 그러나 지금껏 우주 비행사들은 달보다 더 먼 곳을 가지 못했다.
1961년에 소련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우주를 여행한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여기에 감명받은 데니스 티토(1940년생)는 우주여행을 꿈꾸기 시작했고 2001년 4월 28일에 마침내 소유즈 TM-32 우주 정거장에서 7일 22시간 4분 동안 머물며 지구를 128번 선회할 수 있었다. 억만장자인 데니스 티토는 자기 돈으로 우주를 여행한 인류 최초의 우주 관광객이 되었다. 이 모험을 위해 그는 자그마치 2천만 달러를 지불했지만 결코 지구 궤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재림 때가 되면 각 시대에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께 충성했던 자녀들이 별빛 찬란한 우주를 통과하며 하늘로 이끌릴 것이다(요 14:1~3). 이 땅에서 하늘에 이르는 우주여행은 ‘7일’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초기, 16). 일주일 동안 여행하는 이유는 안식일을 한 번도 지켜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하늘에 들어가기 전에 다른 별에서 안식일을 지내고 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성경이나 화잇의 글 어디서도 이런 암시를 찾을 수는 없다. 화잇은 단지 하늘로 올라가는 기간이 7일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이 우주여행을 위한 비용은 얼마일까? 돈 한 푼도 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이미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우주 비행사들은 몇 안 되는 동료와 작은 우주선 안에 갇혀서 우주를 여행하지만 성도들은 하나님의 이동 수단을 타고 하늘에 간다. 그들은 이 땅에서 구속받은 모든 사람과 기쁘게 합류하며 거룩한 천사들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거기에 함께한다. 이 상급은 인간의 그 어떤 노력과 성취에도 견줄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대와 내가 거기 있게 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동혁/김아림 선교사 부부(캄보디아)
침례 공부 중인 17명의 고등학생이 아름다운 영혼의 열매를 맺도록
4월 29일
결혼 예복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자. 이는 어린양의 혼인날이 이르렀고 그분의 신부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며, 그 신부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는 것이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실이다”(계 19:7~8, 바른)
결혼식에서는 장식물, 하객, 순서 또 무엇보다 신랑·신부를 최대한 완벽하게 준비한다. 가장 화려한 결혼식 중 하나는 2011년 4월 29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거행된 케임브리지 공작 윌리엄 왕자와 캐서린(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이다. 케이트의 웨딩드레스는 고급 패션 브랜드인 알렉산더 매퀸의 수석 디자이너 세라 버튼이 디자인했다. 아이보리와 흰색 공단으로 몸통을 만들고 등에는 가자르와 오간자 실크로 된 단추 58개를 달았고 상체 부분은 꽃무늬 레이스로 장식했다. 의상 디자이너 마크 배드글리는 이 웨딩드레스에 대해 “모든 가운이 다 그렇지는 못하지만 이것은 세월의 시험을 견뎌 낼 가운이며 세상의 모든 신부가 입고 싶어 할 옷”이라고 말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왕실의 결혼식이 끝나고 얼마 안 되어 시중에는 이 드레스의 복제품들이 등장했다.
성경은 갖가지 결혼식 이미지를 사용해 그리스도와 충성스러운 교회의 관계를 설명한다. 혼인 잔치의 비유(마 22:1~14)에서 교회는 왕자의 신부가 아니라 결혼식의 하객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특별한 예식을 위해 모든 하객은 예복을 입도록 요청받는다. 예복을 착용하지 않은 손님 한 사람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계 19: 7~10)에서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다.
“우리의 모든 의로운 행동도 더러운 옷”과 같다고 했는데(사 64:6, 쉬운) 어떻게 결혼식 예복이 “성도들의 옳은 행실”(계 19:8)이 될 수 있을까? 엘렌 화잇에 따르면 흰 예복은 “왕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의, 그분의 흠 없는 품성이며 그분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실물, 309~310). 탕자의 비유(눅 15:11~32)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자신의 의로 된 흠 없는 옷을 입혀서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있게 하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함영식/김지은 선교사 부부(오만)
현지인(토착민)을 전도할 수 있는 문이 속히 열리도록
4월 30일
문화의 유혹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수 세기 동안 하나님 백성에게 가장 큰 시련은 사회적 가치와 신앙이 상충할 때도 끝까지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일이었다. 문화는 늘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하는데 1960~70년대에는 전통적 가치에 극단적으로 저항하는 반체제 문화가 성행했다.
당대의 문화에 환멸을 느끼고 특히 베트남 전쟁(1955~75)에 지친 미국의 수많은 젊은이가 ‘전쟁이 아니라 사랑을 하자’라는 구호를 내걸며 들고 일어났다. 이들은 가족을 등졌고 일부는 히피 공동체 일원이 되어 자유연애, 마약, 환각적인 록 음악 등으로 악한 욕망을 표현하기 딱 좋은 환경을 찾았다. 반문화 운동은 1969년 8월 15~18일 뉴욕주 베델에서 개최된 우드스톡 페스티벌로 극에 달했다.
길고도 불행했던 베트남 전쟁은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의 함락으로 끝났고 그동안 미국인 5만 8,000명이 사망했다. 히피 운동은 결국 사라졌지만 1960~70년대 반문화 운동의 여파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오늘날의 사회는 음향과 영상에 지나치게 자극받으며 성에 집착하는 문화가 두드러진다. 게다가 포스트모던 사고방식에서는 성경의 절대적 가치를 의심한다.
문화적인 유혹에 둘러싸인 이 시대에는 “젊은이가 어떻게 해야 그 인생을 깨끗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길, 그 길뿐입니다”라는 시편 119편 9절(새번역)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로마서 12장 2절을 메시지 신약에서는 다음과 같이 옮겨 놓았다.
“문화에 너무 잘 순응하여 아무 생각 없이 동화되어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대신에 여러분은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십시오. 그러면 속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것을 흔쾌히 인정하고, 조금도 머뭇거리지 말고 거기에 응하십시오.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는 늘 여러분을 미숙한 수준으로 끌어 낮추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서 최선의 것을 이끌어 내시고 여러분 안에 멋진 성숙을 길러 주십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아버지께 중보 기도를 드렸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 17:15). 그분의 기도가 오늘부터 매일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바란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송을섭/이옥진 선교사 부부(일본)
갈수록 복음 전하기가 힘들어지는 일본 선교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