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정의 시 세계
자연과 인간의 동질적 서정 미학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중년 인생’과 시간의 함수
현대시의 구조를 이해하려면 그 시인의 의식의 흐름이 어떠한 지향적인 사유(思惟)를 통해서 탐구하는가 하는 내적 진실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한 작품이나 시집 전체에서 적시(摘示)하는 소재와 주제 혹은 언어에 이르기 까지 그의 의식의 향방을 깊게 통찰(洞察)하는 심리적인 한 방법으로 작품을 이해해야 한다.
여기 이필정의 제5시집『사랑하기에 좋은 계절』의 원고를 일별하면서 문득 이러한 의식세계까지 집착하게 되는 것은 이필정 시인이 귀중하게 소유한 시 정신의 일면들이 그의 작품 속에서 어떻게 용해(溶解)되고 있으며 어떻게 융합(融合)하고 있는가를 먼저 살피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필정 시인은 대체로 이 시집에서 포괄적으로 현현한 시 정신과 주제는 시간성에 대한 탐색이 그의 주된 정서의 지향점임을 간과(看過)할 수 없게 하고 있다. 그가 이미 ‘책머리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시는 자기 생활을 관찰해 볼 수 있는 근사한 경험’이라는 시적 효용을 정서의 저변에 펼치면서 그가 탐닉(耽溺)하는 작품의 주제를 시간성에서 승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두운 계곡 후미진 오솔길에도
계절은 바뀌고 야생화는 자란다
온갖 세파와 동고동락하니
이제 조금은 세상을 알 것 같다
산기슭에 걸터앉은 흰 구름 멍석을 깔아놓고
세상을 내려다보며 노래하는 작은 새
한 수렁에 빠져 사시나무 떨듯 노래를 불러보자
그러다 보면 너와 나는 서로 닮아 가겠지
후생(後生)에
너는 푸른 세상 꿈꾸는 반딧불이로 살고
나는 길섶 이름 없는 들꽃으로 살자
파도가 몰아치면 살아지는 갯바위 흔적 같아도
작은 우리 큰 꿈을 꾸며 살자
짧은 삶의 노래를 위해 기나긴 인내의 시간을 갖는 매미처럼
내 인생을 꿈꾸더라도 기약하지 말고
이승의 고통은 태양에 널어놓고
신들린 행복만을 불러내어 춤추고 노래하자
폭풍우 뒤에 오는 무지개처럼 예쁜 꽃이 되자
내 주어진 몫을 나비처럼 사뿐사뿐 날아서 콩콩 뛰는 심장으로
중년의 인생 불처럼 꽃처럼 피워보자.
위의 작품「중년(中年) 인생」전문에서 알 수 있듯이 ‘온갖 세파와 동고동락하니 / 이제 조금은 세상을 알 것 같다’는 어조(語調)는 이필정 시인이 지금 중년이 되어서 인식(認識)하는 인생과 현실(세상)의 절실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나는 길섶 이름 없는 들꽃으로 살자’라는 시적 화자(話者)를 통해서 인식한 자아 성찰(自我省察)의 메시지는 그의 ‘큰 꿈’과 ‘짧은 삶의 노래’에서 원천적(源泉的)으로 관류(灌流)하는 심저(心底)를 그의 가치관으로 형상화하는 시법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또한 ‘중년의 인생 불처럼 꽃처럼 피워보자.’라거나 ‘춤추고 노래하자’는 등의 어조와 같이 ‘...보자’, ‘...하자’라는 종결어미로 자신의 소신을 명징(明澄)하게 적시함으로써 ‘중년’의 심회(心懷)를 시적 진실로 접근시키고 있다.
이필정 시인은 이러한 인생의 의미가 그의 의식 속에서 ‘인내의 시간’등으로 시간성과 밀접한 동행을 통해서 그가 추구하려는 인식의 체계가 확립되고 그가 지향하려는 시적(혹은 이상적) 인생의 행로를 설정하면서 존재를 확인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시간성에 집착하면서 인생과의 함수(函數)를 구가(謳歌)하는 일련의 가치관 창조에 정서의 중요한 요체(要諦)를 현현하는 것도 ‘흩어지며 밟히며 부서지며 / 넘어지는 / 내 인생의 아픈 기억들 // 작은 하늘에서 / 늙어 죽어 가면서도 / 어깨 위에 내려앉는 자연의 힘으로 / 지친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은행나무의 가르침」중에서)’는 그의 ‘아픈 기억들’과 ‘늙어 죽어’라는 시간성과 융합하여 거기에서 체득(體得)한 진실이 ‘자연의 힘’이며 ‘희망과 용기’라고 할 수 있다.
이필정 시인이 천착(穿鑿)하는 시간성은 다양하게 현현되고 있다. ‘세월을 머금은 마른 갈대 / 꽃샘바람에 출렁이고 / 한파(寒波)를 이겨낸 새 생명들이 / 앞 다투어 세상구경 나선다(「학의천」중에서)’거나 ‘저녁 마지막 햇살’과 ‘세월의 끝자락’, ‘혼돈의 시간 속에 살아간다’는 등의 어조는 바로 그가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잡다한 인생의 체험을 정제(淨濟)하는 시법으로 성찰을 적시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그는 ‘중년 인생’에서 새로운 가치관을 창출하려는 정서의 중심축은 과연 인생이란 무엇인가 혹은 참다운 인생의 길은 어떤 것인가라는 철학적인 의문을 동반하고 그의 해법을 찾고 있다. 이것이 그가 명징하게 표현하려는 시의 주제이며 앞으로 영위해야 할 인생관의 목표이기도 할 것이다.
내 인생은
불빛 라일락의
빛과 향기 같은 것
--「내 인생은」중에서
이렇게 자신의 ‘인생’에 관해서 자인하고 수긍하는 성찰의 진솔한 형상화가 그의 체취(體臭)와 사유의 심연(深淵)에서 동류(同類)의 형태로 분사(噴射)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생명의 가치 무너져 / 긴 여로에 지친 발걸음 / 야심한 밤 다 무너지고 / 쓰라린 눈물만 흐른다 (「인생길」중에서)’는 고뇌도 동시에 발현하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2. 기원 의식의 시적 진실
이필정 시인의 의식에는 이와 같은 자성의 사유는 일단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게 되는데 대체로 시인들은 자신의 체험을 재생하면서 우선 인식의 단계를 거쳐서 성찰의 심리적인 안정을 구가하지만, 현실은 그들에게 안정과 긍정을 부여하지 않고 고뇌나 번민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실상과 직면하게 된다.
이필정 시인도 이러한 현실적인 갈등이 그의 내면에서는 새로운 향방의 의식을 구축하게 되는데 기원(祈願)의 의지로 분화하고 있다. 다음과 같이 몇 갈래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 온종일 / 고운 바람 향기로운 바람만 / 불었으면 좋겠다.(「바람은」중에서)
- 낙엽을 태우는 / 시간을 기다려 / 내게서 버려야할 것은 / 함께 태우고 싶다.(「산다는 것 은」중에서)
- 서로 위안이 되고 등불이 되는 / 마음에 기댈 수 있는 / 당신이 되었으면 합니다.(「당신 이 있어 행복합니다」중에서)
- 여름이면 텃밭에 / 상추, 쑥갓, 푸성귀 심어 / 향기로운 흙내음 얹어먹고 / 힘자랑 구릿빛 얼굴 / 밝은 미소로 살고 싶다(「나의 설계도」중에서)
- 숲속을 스치는 바람소리 / 바위틈을 졸졸 흐르는 시냇물소리에 / 새들이 둥지 틀어 새 생 명 잉태하는 / 산이 되고 싶다(「산이 되고 싶다」중에서)
- 빨간 장미 꽃말 / 불타는 사랑, 열정을 담아 / 사랑하는 그대에게 / 한 아름 안기고 싶다 (「꽃빛 사랑」중에서)
- 백옥처럼 눈이 시리게 / 불어오는 바람따라 새봄 찾아오면 / 꽃 피우고 튼실한 열매 맺어 / 몸과 마음 살찌우게 하련다(「새 희망을 꿈꾸며」중에서)
- 어서 / 연초록 봄이 찾아와 / 조였던 가슴 활작 열고 / 당신과의 입맞춤 포옹으로 / 새 희망 새 꿈 활짝 / 펼쳤으면......(「기다림」중에서)
- 봄이 찾아온 새날 / 눈이 부셔 현기증이 난다 / 이 좋은 날에 / 어여쁜 사람 만나 / 꽃비 맞으며 / 한없이 걷고 싶다.(「어느 봄날」중에서)
보라.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언어는 ‘......싶다’라는 보조 형용사의 빈도수(頻度數)이다. 이러한 기원의 언어는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실재(實在)의 사실과 시적 사유의 융합이 괴리(乖離)되거나 갈등 요인이 발생하여 이를 정화하고 화해하는 요소로서의 심리적 변화가 기원의 의지로 형상화하는 시법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필정 시인은 그의 시적 원류를 형성하고 있는 내재적인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 지향적인 사유를 흡인하여 현실과 이상의 세계에서 새롭고 좀더 진취적인 휴머니즘(humanism-인본주의)의 성취를 위한 노력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대체로 그의 기원은 그동안 절실하게 구현하려던 ‘사랑’의 대전제를 위해서 ‘벚꽃잎 지더라도 / 예쁘고 아름다운 사랑 / 영원하길 소망한다.(「안양천」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예쁘고 아름다운 사랑’이거나 ‘사랑하는 그대’ 혹은 ‘그대 품에 안기고 싶’은 사랑에 대한 합창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시집의 표제시가 되는「사랑하기에 좋은 계절」에서는 ‘가을은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 더욱 생각나게 하는 / 마력이 있나보다 / 불과 몇 시간 전에 보았던 / 너의 얼굴이 또 아른거리니’ 또는 ‘가을은 / 이렇게 연인들의 마음을 / 가만 못 있게 하는 / 사랑하기에 / 좋은 계절인가 보다.’는 등의 어조가 내포(內包)한 사랑의 미학을 위한 시법의 전개가 다채롭게 현현되고 있다.
조금은 쌀쌀한 새벽에
발길 없는 한적한
공원 벤치에 앉아
너와 이슬냄새 나는
가을바람을 느끼고 싶다
가을 달을 보고 싶다
홀로 서 있는
가로등 불빛이
분위기를 더할 때
너와 입 맞추고 싶다
사랑을 속삭이고 싶다
--「사랑하기에 좋은 계절」중에서
그렇다. 이필정 시인이 갈구(渴求)하면서 탐색하는 사랑 미학은 기원의 의지가 계절적인 시간성과 불가분의 관계로 시적 상황(situation)을 설정하고 그가 지향하는 존재의 이유를 투영하는 시법으로 형상화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3. ‘그리움’이 승화한 내적 성찰
한편 이필정 시인의 사유에는 사랑학의 단초는 ‘그리움’에 근원을 두고 있다. 그는 이 ‘그리움’의 시적 원류가 바로 사랑의 대상인 시적화자 ‘당신(혹은 너)’에 대한 애절한 정표를 메시지로 전달하는 내적 성찰의 인정 넘치는 언술로 현현되고 있다.
어렴풋 꿈결인가
새벽 빗소리 들려와
잠결에 눈을 뜨니
불빛 새던 창가에
살며시 찾아온 뉘 발소린가
들릴 듯 말 듯 발소리 낮추어
내 곁에 나란히 눕는 새벽 빗소리
꿈길로 찾아오는 아련한 사람아
나의 빈 뜨락을 적시는 정겨운 이여
돌돌돌 어릿한 물소리
꿈결에 넘쳐넘쳐
꿈의 이랑 넘치네
그리움이 이랑을 넘치네.
--「그리움」전문
이필정 시인의 ‘그리움’은 ‘나의 빈 뜨락을 적시는 정겨운 이’에게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이 그가 기다리는 사랑의 지향점이지만, ‘꿈길(혹은 꿈결)’이라는 허황의 상황이 설정되면서 그의 심중에 깊게 자리한 이상적인 사랑으로 변전(變轉)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가을도 눈물겹게 tm민다 / 낙엽에 그리운 사람아, 사람아 / 이 가을이 떠나기 전에 사랑의 꽃을 피우자.(「가을날에」중에서)’라거나 ‘눈이 시리도록 / 꽃 속에 묻힌 그리움으로 / 빈 가슴 채우다가 / 쌓인 연정 꽃향기에 피어난다.(「새 희망 꽃향기」중에서)’라는 절규의 언어가 ‘가을’이나 ‘봄’의 시간성과 접맥(接脈)함으로써 그의 사랑 이미지는 더욱 정감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편 그의 ‘그리움’은 ‘낙엽’이나 ‘억새꽃’, ‘스쳐가는 바람’, ‘어스름 저녁 햇살’ 등 일상적인 사물에서만 그 이미지를 추출하는 것이 아니라, 고향이나 친구에게서도 이 그리움은 순정적인 정서를 환기시키고 있다.
더덩실 더덩실 춤추며
함께 뛰어 놀던
두메 산골
어릴 적 내 고향
꽃피는 그리움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어릴 적 내 고향 . 2」중에서
어디서 별똥별이라도 내리면
산 너머 그곳에 찾아가 보자던
친구들이 그립다
--「백운산 한여름 밤」중에서
이필정 시인은 이러하듯이 ‘어릴 적 내 고향’에 대한 체험적 정서가 그의 뇌리(腦裏)에서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그리움’의 대상으로 현존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고향의 애정을 간직하고 있다. 어릴 적 추억은 곧 내 삶의 원천이며 인생의 지표로 남아 있다.
그는 ‘내 어릴 적 고향 그리워하며 / 잊지 않고 찾아오는 새봄을 마중한다 // 어릴 적 재잘대던 발길 사이로 / 새록새록 솟아나는 새싹과 같이 / 강인한 힘!힘!힘! / 한 걸음 한 걸음 희망으로 다가오던 // 그때 그 시절 봄이 그립다(「어릴 적 내 고향 . 1」중에서)’는 그리운 ‘희망’이 계절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그의 삶(또는 존재)의 의미를 충전하는 요소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정황은 ‘친구’에게서도 동일한 양상으로 전개하고 있어서 그가 천착하는 ‘그리움’의 영역이 시간과 공간의 합일점에서는 어디에서든지 재생하는 상상의 범주(範疇)에서 그의 시적 진실로 승화하고 있는 것이다.
4. 자연 서정과 사랑의 메시지
이필정 시인에게서 지금까지 보아온 인생과 기원과 그리움에 함축된 정서의 본령(本領)은 서정성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 서정은 자연과 인간의 가교를 연결하는 중심에서 그의 시는 발현하고 있으며 그의 시적 지향점은 사랑의 메시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가을’ 등의 계절적 시간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산’에서 탐색하는 서정이 그의 시적 의미의 창출을 통해서 형상화하는 보편성이 심도있게 표출되고 있는데 그는 천성적으로 자연 서정과 인간의 사랑이 동질적으로 결합하는 섭리를 순수성으로 수용하고 있는 듯하다.
떨어진 낙엽들 어디로 가려는지
갈바람 타고 초행길 나서는
망설임이 초라하다
내 영혼도 낙엽처럼
대자연의 한 모퉁이이 돌아
불타는 가을빛 속으로 침몰한다.
--「가을 여행」중에서
가을바람에 곱게 물든 단풍미인
단(丹)이와 풍(楓)이가 만나 사랑 속삭이면
타오르는 뜨거운 가슴 풀어
행복한 단풍길에서 그녀를 만나야겠다.
--「청계산 단풍잎」중에서
이필정 시인은 ‘가을 여행’과 ‘가을 산’을 좋아한다. 그가 취택하는 소재가 그의 직접 체험과 상관이 있어서 정서의 내면에 잠재(潛在)한 이미지의 확대가 그의 시심(詩心)으로 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가을 여행’이나 ‘단풍잎’에서 유추할 수 있는 이미지는 결실과 풍요의 보편성을 넘어서 ‘영혼’과의 교감을 통한 ‘망설임’과 ‘침몰’이라는 최후의 극단적 이미지를 포괄함으로써 시적 의미의 극대화를 지향하고 있으나 반대로 ‘행복한 단풍잎’과 ‘그녀를 만나’는 정황에서는 새로운 변신의 긍정으로 분사하여 서로 대칭적인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다.
그는 다시 ‘내가 가고, 해가 가고, 가을이 가고 / 꽃이 피는 작은 흙길에서 / 저녁 이슬 내 발등을 적시는 / 이 아름다운 서정의 결실을 / 당신께 안겨 드립니다.(「가을 편지」중에서)’ 는 절절한 연민의 언어가 우리들의 공감영역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 ‘서정의 결실’은 바로 자연이 우리들에게 헌사(獻辭)하는 침묵의 향연이기에 이를 ‘당신께’ 전하는 거룩한 정성이 승화하고 있다.
또한 작품「산에 오르면」에서도 ‘평화와 사랑을 배우고 / 자연의 섭리에 흠뻑 빠져든다’는 어조가 자연 서정과 인간의 사랑이 ‘섭리’를 순응하면서 시의 위의(威儀)를 탐구하고 있어서 그는 ‘어둠의 길 밝히는 꽃향기로 / 오늘도 나와 묵언(黙言)의 동행(同行)을(「한가위 보름달」중에서)’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오른 가지에서
꽃봉오리 터지듯
겨우내 움츠렸던
봉긋한 가슴 활짝 펴고
봄바람은 외출을 시작한다
초록 긴 가지 끝
서성이는 노란 설램에
행복한 미소 느린 동작으로 그리고
산새들 부리 끝으로
봄소식 물고와 내려 놓는다
우주의 빅뱅은
봄볕의 따사로움으로
적막 뒤에 머물던
새 생명을 잠에서 깨울 때 시작된다.
이 작품「외출」에서 읽을 수 있듯이 ‘새 생명의 잠’은 ‘행복한 미소’로 깨어날 때 ‘봄볕’은 우리들의 한정된 인간의 섭리뿐만 아니라, ‘우주’의 광범위한 만유(萬有)의 진리를 포용하면서 교훈적인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이러한 작품은 「오대산의 사계절」「금낭화」 「서낭당 해바라기」「당신에게 띄우는 가을 편지」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심취한 자연의 서정이 넘쳐나고 있다. 이는 이필정 시인이 ‘책머리에’에서 밝혔듯이 ‘꽃보다 사람이 더 아름다운 까닭을 알아야 한다’고 초월적인 철학을 천명함으로써 그가 간직한 ‘무집착이 좋다 / 무소유보다 탐하지 아니하는 무집착이 훨씬 높은 곳에 있다. / 그렇게 살고 싶다. 왜냐하면 소유하지 않는 것도 좋지만, 무소유라는 소유하지 않는 것조차 잊어버려야 하니까’라는 비범한 시정신(poetry)의 창조적 개념으로 우리들의 공감을 유로(流露)하고 있다.
이필정 시인은 이 시집『사랑하기에 좋은 계절』을 통해서 그가 지금까지 동반한 자의식(自意識)의 융화와 화해로서 시적 진실을 현시하여 그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것이 고양된 그의 시정신이며 지향해야 할 시 창작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
또한 그는 ‘앉은 자리에서 / 한숨만 쉰다고 해결될 것도 아닌데 /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보자(「불꽃 잔치」중에서)’라는 강렬한 삶의 의지와 순수가 결집하면서 그의 서정 시학은 정리되고 절정에 이르게 된다.
일찍이 프랑스의 사상가 파스칼(B. Pascal)은 그의 저서『팡세』에서 ‘자연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고 신학까지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그로부터 배우는 사람이야말로 자연을 깊이 존중하는 사람이다’라는 명언과 같이 이필정 시인은 자연에서 ‘무소유’와 ‘무집착’이라는 잠언(箴言)을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려는 자연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은 그의 예민한 흥분된 눈망울을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하늘로 굴리며 시인의 상상은 모르는 사물의 형체를 구체화시켜 시인의 펜으로 그것들에게 형태를 부여하고 형상 없는 것에게 명칭을 부여해 준다는 셰익스피어의 말도 경청(傾聽)할 필요가 있으리라.
시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간직한 상상력이 어느 시점에서 초탈(超脫)의 세계를 여행하고 새로운 창조력으로 형상화하는 기능을 살려야 하는 특성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시 창작에 더욱 고뇌의 감응(感應)을 탐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필장 시인의 시적 본질이나 진실의 추구는 이러한 자연과 인간의 교합(交合)이 서정성을 축으로 하여 시적 정의를 꾸준히 형상화한다면 더욱 좋은 작품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앞선다.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