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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여행(Came To Believe)]
4. 강박관념에서의 해방
우리 음주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저항하려는 의지가 사라졌다. 그러나 완전한 패배를 시인하고 A.A.의 원칙을 실천하려는 마음의 준비를 완전히 갖추게 될 때 강박관념은 사라지고,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간다. 즉, 우리가 이해하는 하나님 아래서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 - Bill.,W - 편지(Letter), 1966
완전한 항복
프로그램과 나 자신에 관해 항상 나에게 가장 큰 감명을 준 것은 내가 완전히 항복하고 처음으로 A.A.에 들어왔을 때 느꼈던 참되고 정직한 환희를 다소간 되찾으려 하는 부단하고 계속적인 도전이다. 나에게는 그런 특별한 마음의 평화는 결코 재현된 적이 없었다. 이제 24시간 단위의 기간이 모두 축적된 후 그런 마음의 평화는 아마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나는 몇 번 그것에 접근한 적은 있었지만 그것은 결코 동일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프로그램에 소개되었을 그 당시에는 그런 느낌과 우리의 필요 사이에는 관계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동기 부여는 많은 정신적 고통과 하나님의 은혜가 결합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틀림없이 그것은 신기한 결합이다! 나는 A.A. 밖의 누구에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른다.
데 쁘렌느, 일리노이
그는 억제했다
나는 단주가 나에게 이익을 준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직장을 갖고 있는 아내, 아름다운 집, 크고 멋진 차, 주머니 속의 크레디트 카드가 있는데 누가 도움을 필요로 하겠는가? 술, 나이트 클럽, 싸구려 술집의 여자들이 없는 삶에 무슨 재미가 있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A.A.의 “그 주정뱅이들”이 주장하듯이 나의 행복에 관심이 있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정신병원에서 시간을 보낸 것을 시인한 사람들이 나에게 보다 나은 생활 방법을 보여줄 수 있다고는 확실히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정말 나는 그들이 나에게 하나님에 대해 말해주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나의 할머니, 고모들과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해 주려고 했었다. 비록 크리스천이라고 불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가 진실로 외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도와주실 어떤 종류의 신이 어딘가에 계신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믿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도울 수 있기에 충분한 사나이이며 영리했다! 그래서 하나님이나 그 밖의 어느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지 않았다.
지난 3년간 한편에서는 친목 모임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면서 A.A.가 필요치 않다는 나의 모든 구실을 술 속에 흡수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돈을 세면서 나의 아파트에 혼자 있었다. 89센트가 있었다. 아파트에는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89센트를 술 한 병 사는데 써야 할까?
그래, 나는 그래야 했었다! 술을 마시지 않고 아침에 세상을 대하기가 어려울 텐데. 그러나 그 때 나는 정말 아침에 세상을 대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더 이상 출근해야 할 직장이나 바가지를 끍을 아내나, 학비를 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나? 나의 마음은 이 시점에서 절망으로 피곤해졌으며, 결정조차 하려 하지 않았다. 절망 끝에 하나님은 듣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텅 빈 술병 옆에 꿇어앉아 매우 간단히 “오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하고 기도했다.
즉시 응답이 왔다. 나는 어떻게든 하여 술을 다시 마시지 않고 밤을 보내고 아침 햇빛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날 알코올중독자를 위한 사회복귀 수용소에 갔다. 거기에서 머무르는 동안 매일 A.A. 모임에 참석하고 개인적으로 단주생활을 하루에서 25년 동안 한 사람과 알코올중독증과 단주에 관해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믿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밤, 보다 위대한 힘이 나의 끊임없는 알코올에 대한 갈증을 없애주시고 나를 A,A,로 되돌아가도록 인도했다. 그러나 술에 대한 갈증이 되살아났다. 비록 진지하게 A.A. 프로그램을 실천하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나는 그 갈증과 끊임없이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러 단계들의 내용을 읽을 때, “우리가 이해하게 된 대로의 하나님”이라는 구절이 나를 괴롭혔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고,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이름을 “보다 위대한 힘”으로 바꾸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고참들 중 한 사람은 내가 후에 빅북에서 발견한 전기 은유법을 사용했다. “어두운 방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전기를 이해할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스위치를 찾아 볼을 켤 뿐이다.” 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매일 아침 하나님께 또 하루의 단주를 간단히 부탁드리고 밤에는 아름다운 단주를 하도록 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림으로써 영성(靈性)의 스위치를 켤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당신이 만약 그것을 정말로 믿지 않는다면 그것을 기계적으로 하십시오. 그러나 매일 하십시오. 보다 위대한 힘의 놀라운 방법을 정말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해하십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도했다. 어떤 때에는 진정으로 기도드렸고, 어떤 때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직업을 구했다. 왜냐하면 나는 더 이상 직업을 부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자랑할만한 종류의 직업은 아니었고 봉급도 적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자활(自活)하도록 하였고, 나는 사회복귀 수용소에서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어느 토요일 저녁에 나의 연민(憐憫)이라는 항아리가 나에게는 너무 크게 다가왔으며 나는 그 속에 빠져버렸다. 여기 A.A.에서 두 달 동안 단주하면서 프로그램을 매우 열심히 실천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정직했으므로 그것이 나를 해쳤다. 술에 대한 육체적인 갈증과 부단히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가? 아무 것도 없었다. 초라한 곳에서 홀로 살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경멸하는 직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헌금바구니에 넣을 25센트를 겨우 절약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고 있었다.
집어치워야지 ― 술을 마시는 편이 낫겠다! 내가 바에서 술을 마시던 후기(後期) 동안 즐겨 찾던 단골 지역으로 가면서 나는 무의식중에 길을 세 번 잘못 돌았다. 그것도 당신이 당신 자신의 거실을 알고 있듯이 내가 알고 있던 거리에서 ― 그래서 A.A.의 한 그룹에 오는 결과가 되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현관으로 올라간 후에야 내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젠장, 안으로 들어가서 작별 인사나 해야지…. 어떻든 나는 A.A.의 두 친구와 함께 근처의 모임에 가게 되었는데 그 모임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술집을 전전하려는 생각을 나의 마음에서 말끔히 사라지게 했다.
아파트에 들어가서 전기 스위치를 켰을 때 또 다른 불빛이 들어왔다. 나의 흐릿한 머릿속을 밝히는 불빛이었다!
그날 밤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하나님께 나를 A.A. 친구들에게 인도해 줄 수 있을 만큼 오래도록 나의 심신을 완전히 통제하셨고, 그렇게 함으로써 나를 “정도가 지나친 술꾼”에서 구제해 주신데 대해 뜨거운 감사를 드렸다. 그 때 그 자리에서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나에게 할 수 있고 또 해주신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 때 이후로 보다 나은 삶과 관계되는 어떤 것이든 내가 여전히 이해 못하지만 이해심 많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A.A.의 방법대로 산다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믿게 되었다.
샌 디에고, 캘리포니아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서”
북태평양의 무서운 폭풍이 휘몰아치는 동안 일단 제3단계를 받아들이자 술을 마시고 싶은 욕망이 사라졌고, 결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았다. 어찌 되었건 그것에 대해서는 여러 말 할 필요가 없다. 런던의 로이드 보험자협회의 선박의 주인에 대한 정의는 “하나님 보호하의 선장”으로 되어 있다.
A.A. 인터내셔널리스츠
새로운 느낌
어린 시절부터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으나 술이 나를 지배하게 되자 교회에 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지난 11년 동안 병원에 입원하거나 의사의 치료를 받을 때 몇 번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 없었다. 나는 여러 번 기도했으나 하나님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음을 느꼈다.
그런 세월의 끝 무렵의 어느 날, 나는 술과 이웃 의사가 준 약을 혼합하여 마시는 실수를 저질렀다. 나의 아내는 내가 죽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다음날 그녀가 전화했을 때, 전화가 단 몇 분 동안이나마 불통이 되었더라면 너무 늦었을 것이라고 그 의사는 말했다. 그 의사가 도착했을 때 나의 심장과 맥박은 멎어 있었다. 병원에서 회복된 후 2주 동안 그리고 8주 동안 더 금주한 다음 나는 여전히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두 달이 못되어 나는 죽기를 바랐으나 죽지도 못하는 시점에 도달했다.
텍사스 지방에 사는 나의 누님이 한 A.A. 회원을 만났다는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를 읽은 후 나는 동네의 한 회원과 접촉하는데 동의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거짓 약속이었다. 그러나 나는 정말로 가서 그를 만났다. 그는 나에게 빅북을 빌려주었고 맑은 정신으로 그것을 읽으며 다음 목요일 저녁에 자기를 만나서 A.A. 모임에 참석하자고 권고했다. 나의 문제를 그 사람처럼 이해하는 것 같은 사람을 전에는 만난 적이 없었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오후 7시경 나는 화장실의 술병을 보관했던 약장에 가서 내가 사놓았던 1파운드의 술을 마셨다. 그리고 A.A의 책을 읽을 준비를 했다. 1시간 가량 읽은 후 나는 자동적으로 또 한 잔 마시기 위하여 일어섰다. 그러나 맑은 정신으로 읽겠다던 약속을 했던 사실을 상기하면서 중단했다. 나는 술 마시는 것을 연기하고 계속 읽었다.
“우리는 회의론자들이다“라는 장(章)에 이르렀을 때, 나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게 되었다. ”우리는 자신에게 단 하나의 짧은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나 자신보다 위대한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금 나는 믿는가 또는 기꺼이 믿으려 조차 하지 않는가?‘“ 이 말은 나에게 매우 깊은 감명을 주었다.
나는 수년간 매일 밤에 했듯이 자기 전에 술을 퍼마시기 위해 화장실에 갔다. 내가 술병에 손을 뻗칠 때 하나님께 작은 도움을 청했더라면 아마도 내 말을 들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불을 끄고 난생 처음 정직하고 진지하게 하나님께 말했다. ‘하나님, 원하신다면 나의 말을 들어주소서. 아시다시피 저는 저의 가족, 친구들, 나 자신에게 정말 잘못했습니다. 이 술이 저를 아주 망쳐 놓았습니다. 저는 거기에 대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당신이 원하신다면 이 술을 마시지 않고 하룻밤을 편히 자게 해주십시오.”
나는 침대로 갔다. 무엇보다도 내가 안 것은 오전 6시 30분, 즉 일어나야 할 시간에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내가 침대 가에 앉았을 때 수년만에 처음으로 식은땀과 오한이 없었다. 일어나서 이른 아침 시간에 술을 좀더 마셔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거부했다. 술병은 전날 밤에 놓아둔 그곳에 있었다.
나는 6 또는 8온스의 술을 마실 필요가 없이 먼저 면도를 했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이런 변화와 내가 새로 받은 느낌에 대해 아내에게 말했다. 나는 한 손으로 잔을 들고 커피를 마시기조차 했다. 커피를 주발에 옮겨 담지도 않았고, 양손으로 들지도 않았다. “만약 하나님이 나를 돕고 계시다면 계속해서 도와주실 것을 확실히 바랍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만약 내가 스스로 도우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해주실 것이라고 아내가 말했다.
목요일 밤에 나는 A.A. 회원을 정말 만나 모임에 처음으로 참석했고, 내가 이전에 사귄 적이 없었던 가장 훌륭하고 이해심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 나는 그 때 43세였다. 나는 지금 71세이다. 나는 하마터면 실족할 뻔한 적조차도 없었다는 것을 정직하게 말할 수 있으며, 나의 침묵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동반자로서 함께 할 때 또 하나의 24시간을 단주할 수 있음을 확신한다.
에번스 빌, 인디애나
“나를 사용하라”
10월에 A.A.에 가입한 후 나는 크리스마스날 그리고 다시 섣달 그믐날 밤에 술을 마셨으나 큰 불운이 따르지 않았다. 나는 휴일을 살아남았기 때문에 대단히 잘난 체 하면서 A.A. 그룹에 되돌아갔다. 나는 여전히 이 술이라는 것을 즐기고 싶었다. 술은 나를 이기지 못했었다!
2주 후에 나는 갑자기 술을 마시게 되었다. 나는 음주를 계획하지 않았으며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나는 오로지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의식을 잃을 때까지 중단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나에게 잘못된 점이 있었다. 바로 나의 영혼 속에 깊숙이 파고든 병으로 나는 앓고 있었다. 나는 자신을 억제할 수 없었다. 나는 나의 아이들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나는 아무 것도 대할 수 없었다.
나는 느릿느릿 A.A. 그룹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경청했고, 처음으로 들었다. 그날 밤 나는 마비 상태로 집에 돌아갔다.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었다. 나의 운은 변화되고 있지 않았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알 수 있었을까? 내가 이해하는 하나님은 지금쯤은 틀림없이 나에게 정나미가 떨어졌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일찍이 했던 모든 약속을 흥정하고 속이고 위반했었다. 이제 어떻게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저 텅 빈방에 앉아 있었을 때 “하나님이 이토록 세상을 사랑하사… 하나님이 이토록 세상을 사랑하사…” 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응답한 목소리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차분하고 상냥했다. “너는 힘이 있다.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이란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있다. 나는 너와 함께 있다. 나를 사용하라.”
나는 그날 다시 태어났다. 그 순간부터 충동은 사라졌다. 그 이후 11년만에 내가 술병에서 찾던 것을 단주에서 찾았다. 나는 평화를 원했다. 하나님은 나에게 평화를 주셨다. 나는 받아주실 것을 원했다. 하나님은 나를 받아주셨다. 나는 사랑받기를 원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장하셨다.
나의 아이들은 이제는 성장했고 아름답다. 그들은 매일 규칙적으로 A.A. 프로그램의 원칙들, 즉 사랑, 봉사, 정직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함께 성장했으며 그것이 우리를 좋은 친구 사이로 만든다.
호놀루루, 하와이
사랑을 통한 단주
나는 거의 2년간 A.A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나 단주를 지속하는 데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어느 날 나는 아름다운 아내와 4명의 건강한 아이들, 어머니, 아버지, 친척들, 친구들의 사랑과 존경을 저버리고 술에 취해 토론토의 중심가에 있는 작은 방에 있었다. 나는 지겨운 완전한 고립감과 절박한 운명의 공포감을 지닌 채 다시 한번 증오, 시샘, 육욕, 태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력감이 가득한 채 A.A의 문턱에 나타났다.
나의 A.A. 친구들은 내가 원래의 A.A.에 복귀한 것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었고, 당연히 내가 원기 있게 걷는 것을 지켜보았고, 단지 6개월간의 지속적인 단주를 함께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A.A의 한 부부팀의 깊은 동정, 사랑, 이해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들은 전화 대화, 공개모임, 토론모임, 부엌 식탁에서의 장시간의 대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를 통해 내가 그 후의 45일 동안 A.A에서 생활하며 호흡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이전의 나는 대부분의 경우 이 하나님의 사업은 바보와 위선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우리의 프로그램의 정신적인 면을 비웃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내가 마지막으로 술을 마신 후 만약 내가 계속 술을 마신다면 나에게는 죽음이냐 아니면 정신이상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이번에는 나는 기도했다. 만약 나에게서 이 고통을 없애줄 수 있는 나 자신보다 위대한 힘이 있다면 그를 찾는 편이 낫겠다는 것을 웬일인지 깨달았다.
다시 단주한지 45일째 되는 날에 나는 토론토의 중심가에 있는 작은 방으로 돌아갔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우울증에 빠졌다. 마치 몸과 혼이 완전히 분리된 것 같았다. 나는 이전과는 달리 명확하게 나의 존재의 완전한 무가치와 “오직 술 몇 잔만” 마셔도 된다는 고집스럽고 자만하는 망상으로 인해 생긴 파멸을 나는 보았다. 나는 술 마시든 또는 단주하든 혼자서는 행동할 수 없는 삶의 시점에 이르렀다. 친구들이여, 그것은 결코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고독이었다.
그날 오후 매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항복하고 술 마시기를 거부했다. 거의 3시간의 고통 후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외쳤다. 그래서 나는 결코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힘과 함께 방을 나섰다. 다음 2주 동안 술이나 다른 약물 없이 “기분이 전환된 것”을 느꼈다. 나의 성인 생활 중에서 처음으로 나는 나 자신과 우주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명백히 깨달았다. 아이의 얼굴에서 아름다움을 또는 푸른 풀이나 나무를 보고 맑은 정신으로 아침에 깨어나는 기쁨을 맛보고 그날의 활동을 즐거움으로 기다리는 것은 새롭고 놀라운 경험들이었다. 분노, 분개, 공포 등 모든 것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용서하고 잊어버릴 수가 있었다.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정신적 자질을 깨닫게 되었으므로 그토록 여러 해 동안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자질이 있으므로 나는 활동하기 위해 알코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공포 대신 사랑을 통해 단주를 지속한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 때 이후 나는 17개월 동안의 단주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나 그녀가 행동, 언어, 행실에서 하나님의 뜻과는 너무나 멀리 벗어났기 때문에 다시 회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알코올중독자를 위해 이 글을 쓴다. 만약 당신이 기도할 때 진지하게 한다면 그것이 나에게 유익했듯이 이 놀라운 선물은 당신에게도 매우 유익할 것이다.
토론토, 온타리오
“하나님께 힘을 구하시오”
나의 부모님은 나의 양육을 위해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었고, 좋은 교육을 시켰으며, 그들이 다니는 교회에 데리고 다녔다. 그러나 그들의 무섭고 복수심이 많은 하나님에 대한 개념은 나에게는 위협이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는 떨어져 있으려고 했다. 그러나 가족과 친구들의 찬성의 필요는 나의 불신과 충돌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가르침에 합당하게 살 수 없었으므로 나는 계속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부정했다.
1955년 A.A.에 가입했을 때, 나는 겨우 31세였다. “당신은 너무 젊어요. 당신은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어요. 당신은 충분히 고통을 받지 않았어요.” 하고 몇몇의 회원들이 말했다. 나는 여전히 가정(비록 두 번째 가정이었지만), 직장, 은행 예금의 잔고를 가지고 있었으며, 집의 구입을 계획할 때였다. 그러나 생활은 항상 막다른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A.A.의 여러 모임에 참석했으며, 5개월간 나는 이 젊은이를 책임감 있는 회복된 알코올중독자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기다렸다. 그러나 나의 안목은 제한되어 있었으며, 나의 청취력은 감퇴되어 있었다. 크나 큰 정신적인 재각성(再覺醒)을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은 회복하려는 나의 노력을 태만히 하게 하였으나 술과 매번 겨룬 후 나는 항상 A.A.에 되돌아갔다.
나에게는 4명의 좋은 후원자가 있었다. 그 들 중 한 분은 나의 정신적 조언자였는데 나는 그 분에 대해 호감이 가지 않았다. 그는 연단에 설 때마다 그가 이해하는 하나님에 관해 말했다. 그가 언급한 것에 화가 나서 억지로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어느 날, 그는 나의 심금을 울려 응답을 이끌어냈다. “당신의 가족, 친구, 의사 그리고 목사들의 모든 자원을 다 써버렸을 때에도 도움의 자원은 아직 하나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며,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항상 유용하며, 자진해서 주는 자원입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이런 말들이 호텔 방에서 3주간 술을 진탕 마신 끝의 어느 날 아침 나에게 생각났다. 나는 내 생활이 난장판이 될 것을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었다. 그 때 나의 두 번째 결혼이 파경에 이르렀으며, 아이들이 상처를 받고 있었다. 그날 아침 나는 정직해질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아들로서 실패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학교에서, 군대에서 실패했으며, 내가 노력한 모든 직장이나 사업을 잃었었다. 종교와 의사라는 직업이나 A.A.에서 나는 성공하지 못했었다. 나는 완전한 패배를 느꼈다. 그 때 나는 나의 후원자의 몇 마디 말이 생각났다. “다른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밧줄을 붙잡고 매달리십시오. 하루 동안 단주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부탁하시오.”
나는 더러운 화장실에 들어가서 무릎을 끓었다. “하나님, 나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나는 간청했다. 나는 거기에 오랫동안 꿇어앉아 있었고, 일어나서 화장실을 떠날 때 다시는 술을 마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은 나의 단주를 유지시키도록 도와주시리라는 것을 그날 믿게 되었다. 그때 이후 하나님은 어떤 문제에서도 나를 도와주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술을 마신 이후 수년간 이전처럼 그렇게 많은 문제에 직면하지 않았다.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내가 하나님을 발견한 곳은 그날 아침의 호텔 방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계시는 것처럼 항상 나의 마음속에 계셨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빅복이 권고하듯이 나의 과거의 잔해를 말끔히 치워버림으로써 나는 하나님을 발견했다.
버밍검, 앨라배마
산산이 부서진 술잔
“그 때가 가장 좋은 시절이었다. 그 때가 가장 나쁜 시절이었다 …” 찰스 디킨즈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는 이런 말로 시작된다. 나의 생애에서 1968년이 바로 그런 해였다. 그 해가 시작되자 모든 움직임은 나를 절망으로 보다 가까이 몰아가고 있었다. 나의 가족은 오래 전에 내가 곧 자신이 갈 길을 찾기를 바란다는 말을 한 것을 제외하고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다행히 그들은 내가 혼자서 그것을 성취하게 했다. 알코올중독자들이 이런 기회를 갖는 일은 없다. 나는 집에 연행되어 숨겨지던가, 정신병원에 수용되던가, 나는 가망이 없으니 포기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 대신 사랑과 보다 위대한 힘에 대한 믿음이 나의 가족들에게 지켜보면서 기다리라고 말해 주었다.
내가 처음 A,A,에 전화한 것은 어떤 문헌을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그 책이 왔을 때 한 구절도 빠짐없이 탐독했고,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마침내 나는 A.A.에 다시 전화했다. 비록 나는 정신이상이라는 것을 확신했지만 나를 정신병원으로 보내달라고 집에 전화하는 것이 두려웠다. 정신이 정상인 사람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술을 마시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약 3개월간 나는 1주일에 4번 여러 모임에 참석했다. 프로그램에 마주칠 때마다 보상을 받았지만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기도드렸던 평온함을 성취하는데 있어서는 빠져나갈 큰 구멍이 여전히 있는 것 같았다. (이 동안에는 빅복은 나에게 언급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기분이 매우 우울한 가운데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것은 마치 다른 사람이 나 대신 행동하는 것 같았다. 나는 술잔을 떨어뜨렸다.
내가 또 한 잔 따랐을 때 나는 내가 도와달라고 기도하고 있음을 알았다. 두 번째 술잔이 첫째 잔처럼 떨어지고 산산이 부서졌다. 동요되지 않고 나는 또 한 잔 따랐고, 그 잔을 두 손으로 꼭 잡고 그 잔을 비웠다. 갑자기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공포가 겉으로 드러나게 떨면서 나는 전화통에 달려가서 떨리는 손으로 새로 온 친구에게 다이얼을 돌렸다. 그녀는 즉시 왔고, 나와 함께 꼬박 그 밤을 보냈다. 우리는 제1단계를 토론했으며, 나는 그 말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리가 제2단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완전한 혼란을 인정했다. 그날 밤늦게 그녀는 빅북이라 불리는 575 페이지의 영감의 책을 나에게 맡겼다.
나는 즉시 앉아서 읽었다. 제4장 전후에서 “희망”이라는 말이 여러 페이지에 네온사인의 불빛처럼 생생하게 등장했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나서 웃음과 눈물이 교차되는 가운데 나는 더 이상에 앉아 있지 않고 미친 여자처럼 방에서 왔다갔다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마치 무거운 짐이 나의 어깨에서 내려진 것 같았다. 처음으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술을 마셔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다는 것과 이제는 다른 사람과 같아지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결국 크리스마스를 지켰음을 깨어나고서야 알았을 때의 또 다른 디킨즈의 명작 <크리스마스 캐롤> 속의 스크루지처럼 나는 느껴졌다. 스크루지는 마치 나처럼 춤을 추고, 외치고 크게 웃는다. 스크루지와 나는 이전에 몰랐던 삶을 다시 태어나서 살았다.
이런 경험의 정점(頂點)은 몇 시간 계속되었다. 내가 피곤해서 잠에 빠졌을 때 나는 마침내 알코올중독자로서의 삶에 적응하기 시작했음을 알았다. 그 순간부터 사물이 내부에서 변화하는 것 같았다. 점차로 내가 나 자신의 방법대로 하고 있음을 인정 때 옆으로 비켜설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의 뜻이 아닌 당신의 뜻”이 단순한 말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계시를 고수하기 어려울 때가 여러 번 있었으나 그것이 서서히 점차 쉬워지는 것 같다. 나의 진행과정은 항상 완전한 패배로 끝나는 대신 두 걸음 전진하고 한 걸음 후퇴하고 두 걸음 더 전진하게 되었다. 살아가는 날들이 너무나 짧지도 또 단조롭지가 않다. 매일 단주를 지속하며 곧바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려는 도전이다.
찰스턴, 웨스트버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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