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을 수필 "남경으로 가는 길"과 1편

[목산솔이끼]

남경으로 가는 길


이창을


어두운 새벽 4시 휴대폰이 방정맞게 덜덜거리며 알람 소리를 내고 있다. 거실에 차가운 공기를 가로질러 귀속으로 달려온다. 멀리 있는 것 같았는데 오늘이 딸아이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딸은 지금 중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아내와 나는 딸에게 생일 하루 전 날 딸이 공부하고 있는 중국 남경으로 딸을 만나러 가겠다고 약속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서 세수를 하고 나온다. 여권이 준비 되었는지 다시 확인을 하고 어제 밤 준비해 두었던 커다란 캐리어를 끌어서 자동차 트렁크에 집어 넣었다. 집에서 전주역 까지 25분 거리다. 아들이 자동차로 데려다 주었다. 아들이 이렇게 자란 것을 몰랐다. 운전하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나는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난 걸 잊고 살았나 하며 놀라고 있다. 아내와 나는 전주역에 도착했다. 전주역은 새벽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여명이 점점 밝아오는 전주역 플랫폼은 차가운 기운이 느껴진다. 새벽은 언제나 이런 기분이었다. 온기가 없는 전날의 기운이 모두 소진되고 새로운 에너지가 처음으로 충전이 되는 그런 물리적인 시작이 아닐까... 새벽 닭의 새로운 날을 알리는 소리가 여러번 저 멀리서 들려오고 있다. 아내와 나는 6시 20분 KTX 열차를 타고 광명역을 간다. KTX 열차에 탑승을 했다. 열차는 부드럽고 빠르게 레일 위를 미끄러져 간다. 전주역을 지나 호성동을 지나고 있다. 곧 이어 송천동을 지나 동산동을 향해 순식간에 지나친다. 이제 삼례를 향해 나아간다. 삼례로 가는 열차의 서쪽으로 너른 벌판이 보인다. 늦가을 벼수확을 마친 논의 모습과 아직 수확하지 않은 벼들이 누렇게 섞여있다. 삼례를 지나 익산으로 간다. 삼례를 지나면 따뜻한 기억이 생각난다. 삼례와 익산 사이에 지금은 사라진 춘포역이 있다. 춘포역 가까운 대장촌이란 동네에 돌아가신 고모님이 사셨다. 나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만경강 둑방길을 따라서 자주 고모님 집을 방문했다. 나는 김제에서 익산으로 자전거를 타고 중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1학년 나는 키가 작아서 자전거를 타기에 버거웠다. 어른 크기로 만들어진 자전거는 내가 쉽게 다루기 어려운 숙제였다. 하지만 커다란 자전거도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두려워 하지 않고 자전거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다루기 쉬운 물건이 되었다. 시간으로 훈련된 나에게 아버지는 심부름을 시키셨다. 그때의 내 나이는 14살 이었다. 집에서 무려 20km 떨어진 먼지와 자갈과 웅덩이가 있는 비포장 길을 말이다. 아버지는 대장촌으로 시집간 막내 여동생을 무척 아끼셨나 보다. 아버지의 심부름은 철마다 달랐다. 봄이면 시금치, 여름이면 푸성귀나 애호박, 가을이면 배추나 무, 그리고 고구마나 고추를 날랐다. 이런 나를 고모님은 언제나 존칭을 했다. “조카님 오셨는가!”하면서 나를 불렀다. 대장촌 옆 둑방은 만경강이 범람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으나 상류에 많은 비가 내리면 홍수가 났다. 아버지는 여름 장마에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여 듣곤 했다. 열차는 익산역에 도착했다. 익산은 전차선과 호남선 기차가 만나는 교통 중심지이다. 또한 보석으로 유명한 곳이다. 보석을 만드는 재료인 원석이 채굴되지 않지만 원석을 가공해서 보석을 만드는 곳이다. 환경을 극복하고 육체적인 기술로 미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해낸 곳이 바로 보석의 도시 익산이다. 익산을 지나면서 열차는 최고 속력을 내고 있다. 엄청난 속도로 나아간다. 지구상에 이렇게 빠른 열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익산에서 공주를 가는 데 너른 벌판에서 크고 작은 산들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몇 개의 산을 지내 보내고 오송역, 짧고 긴 터널을 지나 광명역에 도착했다. 길이를 알 수 없는 길고 간 기차 레일이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지상에서 찬란한 빛 줄기가 길게 올라오고 있다. 땅위에 수직의 철제 구조물을 세우고 가로와 세로로 직사각형 정사각형 그리고 원으로 수 천개의 창을 만들고 유리로 막아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공중에 거미줄을 치고 유리로 바람을 잡아 놓은 거대한 구조물 처럼 보였다. 이곳의 이름은 광명이다. 땅 위에는 레일이 빛나고 공중에는 유리창에 반사된 햇빛이 번쩍이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는 20분 간격으로 운행이 된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공항버스가 도착했다. 버스 운전사가 매우 친절하다. 내가 무거운 여행용 가방을 버스 아래로 집어 넣으려고 하자 달려와서 무거운 가방을 들어서 넣는다. 버스는 최고급 우동버스다. 버스 좌석이 27석이다. 출발하기 전 버스기사는 안전운행을 하겠다고 말한다. 안전벨트를 착용할 것을 강조한다. 버스는 광명시내를 지나 고속도로에 진입한다. 고속도로를 지나 인천 방향으로 신나게 달린다. 우리의 목적지는 인천국제공항이다. 창밖으로 바다가 보인다. 바다 위에 콘크리트 기둥을 만들고 기둥위에 상판을 얹어 자동차가 달릴 수 있도록 도로를 만들었다. 배가 다닐 수 있는 항로가 이제는 버스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된 것이다. 도로가 되었다. 버스는 별다른 저항 없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간다. 멀리 기이한 모습의 철제 구조물이 다가온다. 공항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공항에 도착했다. 국제공항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흥미진진한 곳이다. 또한 설레는 곳이기도 하다. 공항에서의 최고의 관심은 사람들에게 있다. 제일 먼저 경험하게 되는 것은 사람의 외모에 대한 것이다. 인간의 피부색이 다가온다. 그리고 키에 대한 것이 다가오고, 다음으로 언어가 다가온다. 조금도 가까이 다가가면 체취가 난다. 사람마다 고유한 향기가 나는 것이다. 향기의 DNA가 뒤섞이는 장소이다. 이질적으로 다가 왔다. 하모니를 만들어지는 곳이 바로 국제공항이다. 또한 최적의 시스템으로 최고의 효율을 만들어 내는 공간이 바로 공항이다. 낭비는 죄악으로 낙인을 찍는 곳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가장 많은 에너지가 사용되고 고가의 최첨단 기그들과 기술들이 테스트 되는 장소이다. 공항은 인간의 모든 노력의 집합체이다. 왜 인간은 이런 노력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극복하려는 몸부림 같은 것은 아닐까? 사람은 자신을 지키려고 수 많은 노력들을 하였다. 가족이나 공동체를 안전하게 유지시키는 방법들을 찾는데 최선을 다하였다. 아내는 바쁘게 공항의 이곳 저곳을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여행사와 항공사를 다니며 출국 수속을 받고 있다. 우리는 중국의 남경(난징)으로 가야 한다. 그곳에는 딸아이가 공부를 하고 있다. 유년기의 모습과 청년기의 모습이 겹쳐있어 얼굴이 흐릿해 보이긴 하지만 목소리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전화기 너머에서 항상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아빠”라고 부르고 있다. 어둡고 칙칙한 모습들이 아니었다. 긴 행렬의 끝에 우리는 서 있었다. 입국 수속을 받아야 한다. 다른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 만만치 않다. 이곳은 중국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산주의로 가는 것이다. 국가는 자국의 국민을 지키고 보호하는 책무를 다하여야 한다. 중국으로 들어가는 길은 철저하게 자국민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이곳 남경 국제공항은 밝고 깨끗했다. 담배 연기가 강하게 다가오고 어두운 카키색 복장을 입고 있는 공안들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입국 심사대 앞에서 입국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작은 눈에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여자 공안은 지문을 인식하는 기계에 손가락을 올려 놓으라고 한다. 날이 건조해서 그런지 손가락 지문을 기계가 인식하지 못한다. 몇 번을 다시 시도해도 손가락 끝의 지문을 인식하지 못하자 두툼한 얼굴을 한 여자 공안의 얼굴이 굳어지고 있다. 나는 얼굴에 미소를 짓고 여자 공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공안은 내게로 다가와 나의 손을 잡고 손가락 끝을 잡아 강하게 인식기에 누른다. 성공! 기계가 지문을 인식했다. 여자 공안이 안도의 얼굴을 하고 있다. 매일 반복해야 하는 지루하고 귀찮은 업무를 처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태연하게 입국장을 빠져나간다. 공산주의식 자본주의 나라에 처음으로 발이 들어 갔다. 남경의 10월은 밝은 가을 하늘로 우리를 반기고 있다. 딸아이가 밝게 웃고 있었다. 다른 나라의 공항에서 우리를 반기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지 않았다. 나의 마음은 무척 즐거웠다. 딸아이와 함께 택시를 타고 남경대학교로 갔다. 딸은 대학교 안에 있는 기숙사에 살고 있다. 우리는 그곳에 커다란 여행용 가방에 들어있는 물건들을 전달해야 한다. 딸이 좋아하는 고국의 음식과 과자들을 풀어 놓는다. 아이는 무척 좋아한다. 공항으로 마중을 나올 때 지하철 1시간 이상을 타고 와서 힘이 들었다고 했는데,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머리가 아프다고 얼굴이 창백해 보였다. 이제 생기를 되찾은 것 같았다. 고국의 물건들이 새로운 에너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광활한 땅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로 가는 길을 택시는 빠르게 달리고 있다. 한참을 달려가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는 신디호텔(Sunny Land Hotel)에 묵을 예정이다. 호텔은 무척 넓고 크고 깨끗했다. 호텔 로비는 3층 높이로 천정이 뚫려 있었다. 바닥은 어두운 대리석으로 만들어 있었다. 호텔 로비에는 어느 학회에서 주최하는 심포지엄을 알리는 커다란 광고가 세워져 있었다. 모임의 주제는 나노를 응용한 연구 발표회 같았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갔다. 숙소는 407호였다. 4층에 있는데 2층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호텔이 넓어서 높이를 알지 못했다.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식사를 하러갔다. 비용을 아끼려 호텔 밖으로 나가 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여행에 피곤하여 호텔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호텔 1층에 식당이 있어서 갔는데 2층으로 가라고 말한다. 1층에서는 아침을 먹을 수 있고 저녁식사는 2층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메뉴를 정하려 하는데 어렵다. 무엇을 먹어야 하지? 입에는 맞을까? 중국 음식은 향이 독특해서 먹기 어렵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메뉴판에 있는 음식에 대한 정보들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우리는 중국식 만두국, 감자떡, 새우 돌솥볶음, 그리고 동파육을 주문했다. 공기밥 3인분을 추가했다. 만두국은 엄지 손가락 크기 정도의 만두를 솥에 넣고 물을 부어 소금으로 간을 맞춰 맑게 끊였다. 맞은 담백하고 시원했다. 새우 돌솥볶음 요리는 뜨겁게 달군 넓적한 모양의 돌솥에 버터와 마늘, 소금과 새우를 넣고 볶다가 다시 엄지 손가락 크기의 뜨겁게 달군 차돌을 넣어서 음식의 온도를 유지하는 요리로 고소한 음식의 향기와 두툼한 새우살이 입안에 즐거움을 더하였다. 나는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중국에 가서 이 요리를 먹고 싶었다. 그 요리가 바로 동파육(東坡肉)이다. 오겹살 돼지 찜 요리이다. 두툼한 돼지 오겹살을 간장과 설탕 알 수 없는 중국의 향신료를 넣어 오랜 시간 졸여서 만들었다. 조금 검은 빛을 띠고 있는 요리는 우리를 오랜 시간 기다리게 만들었다. 주문한 다른 요리를 모두 먹고 나서 대화를 나눈 뒤에도 준비되지 않았다. 우리는 주문을 했는지 다시 확인을 해야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짜증이 나기 시작해서야 음식이 나왔다. 음식은 맛이 있었다. 간장과 설탕의 조화 향신료와 고기의 부드러움이 입 안으로 몰려왔다. 소동파도 그 옛날 이런 즐거움을 맛보았을까? 딸아이는 오겹살의 가장 끝 부분 조금은 딱딱해진 곳을 집중적으로 먹었다. 콜라겐이 많은 이 부위가 느끼하지 않고 맛이 좋았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 딸아이와 아내를 보면서 나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창밖으로 어두움이 깊게 내리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우리의 즐거움을 막지는 못하였다. 이곳의 색은 하얀 아이보리색이다. 오래전 이곳은 청색이었다. 이 도시의 가로수는 새하얀 대리석 기둥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나무 기둥은 두 사람이 손으로 감싸 안아야 한다. 나무의 크기는 보통 50~60m는 되어 보였다. 나무의 가지는 모두 세 방향으로 올라가게 만들어졌다. 이질적으로 보였으나 특별해 보였다. 가을이 되어 손바닥 크기의 나뭇잎들이 밝게 단풍으로 물이 들고 잎들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프랑스 오동나무였다. 이 사람이 태어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이곳의 가로수는 프랑스 오동나무로 심겨지기 시작했다. 어린나무의 기둥은 차갑고 우울한 갈색을 가지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 껍질이 벗겨지면서 밝고 환한 대리석 같은 기둥을 만들어 간다. 그가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는 동안 이색적인 이 나무를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국으로 돌아와 청색의 모습을 아이보리색으로 바꾸고 싶지 않았을까? 청나라는 부채를 해결하려고 국민들에게 마약을 허용하였다. 영국은 청나라에 아편을 팔기 위해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피폐해진 그의 조국은 그 이후 일본에게 식민지배를 당하였다. 국민을 볼모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가의 운영방식에 저항하는 집회가 몽고 초원에 불이 번지는 것 같았다. 외세의 침략에 마비 되어가는 국민들을 바라보며 그는 민족을 구하고자 마음에 다짐을 하였을 것이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쉽지 않다. 매일 수 만 명, 공휴일이나 국경일에는 수 십 만 명의 중국인들이 그를 보려고 전국에서 몰려온다. 면적이 무려 8만 제곱 평방미터 ,중국의 남경 종산 국립공원(钟山 Zhongshan Mountain National Park)이다. 한국인들에게 중산릉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곳에 중국 5,000년 역사의 진정한 왕 주원장의 무덤이 있다. 끼니를 굶는 천한 농민의 아들이 왕이 되어 백성들을 평안하게 통치를 하였다고 했다. 나는 그를 보러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곳을 걸어서 자전거를 타고 온다. 오토바이나 골프 카트를 개조한 미니버스, 자가용이나 버스, 지하철을 타고 여러 곳의 출입구로 들어 온다. 수령이 100년 이상 된 프랑스 오동나무는 신전의 기둥처럼 길가에 줄을 지어 있다. 나무의 키는 너무 높아서 나무 아래에서 높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우리는 입구에서 전기버스로 갈아 타고 20분 이상 올라갔다. 그를 보기 위해서는 한참을 더 걸어가야 한다. 크고 작은 상점들이 점점 뒤로 멀어져 간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길은 신을 만나러 가는 신도였다. 중앙의 인도는 폭이 100여 미터는 되었다. 양쪽에 두개의 인도가 있었는데 인도의 폭이 15미터 이상이었다. 인도 사이에는 향나무 종류의 나무가 심겨 있었다.
하늘 아래 제일 높은 자! 신은 아니지만 중국인들이 신처럼 생각하는 자가 그곳에 있다. 그는 중화민국을 건국했다. 그때의 수도가 여기 남경(난징)이다. 일본인들이 이곳에서 참혹한 만행을 저지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완만한 경사를 계속해서 걷고 있다. 중국은 넓다. 점점 힘이 든다. 딱딱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길이 편하지 않다. 머릿속에 오래전 학생때 양시언의 시조 “태산가”가 생각이 났다.
태산이 높다 하되 /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아니 오르고 / 뫼만 높다 하더라 “오르고 또 오르면”이란 구절에 힘이 들어 간다. 계단이 끝나자 이제 경사가 있는 계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단이 392계단이라고 했다. 쉽지 않았다. 마지막 100개의 계단은 경사가 급했다. 다리에 힘을 주고 다시 걸어서 올라갔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200미터를 돌아가야 했다. 8만 제곱 평방미터 산꼭대기 위에 엄청난 크기의 제각을 화강암을 다듬어서 만들어 놓았다. 지붕은 기와로 덮여 있었다. 제각 안에 하얀색 대리석으로 20m 정도의 동상이 놓여 있었다. 그는 종산 위에서 산 허리의 주원장의 능과 청색 기와를 올린 거대한 누각을 발 아래에 두고 바라보고 있다. 또한 남경시와 시내에 있는 중국에서 가장 큰 공자의 동상과 8명의 제자들을 산 아래에 두고 있다. 그는 공자의 인예(仁禮)사상이 남경을 흐르는 양쯔강에 섞여서 아득한 기억의 저편으로 흘러 아련한 추억으로 사라지게 했다. 그가 바로 쑨원이다. 쑨원은 ‘민족(民族), 민권(民权), 민생(民生)’ 삼민주의를 기초로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다. 그의 이러한 심민주의 건국이념은 그가 좋아했던 프랑스 오동나무에 오롯이 남아 있다. 중국인들은 프랑스 오동나무의 기둥을 자르고 세 개의 가지를 나오게 하여 나무를 기르는 것이다. 남경시에 있는 모든 가로수의 나뭇가지는 세 가지로 만들어져 있다. 암묵적인 상징처럼 되어 도시 전체가 쑨원의 삼민주의 이데올리기 전시장과 같다. 남경시 거리의 모든 가로수가 중국과 대만의 건국 이념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딸아이가 종산의 이곳 저곳을 다니며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갑자기 딸아이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다. 우리는 깜짝 놀라 딸아이를 보았다. 눈에 눈물이 맘으로 흘러 내린다. 아이가 당황을 하고 있다. 종산은 중국 전역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순례 코스이다. 여기 저기에서 중국어가 큰소리가 들려온다. 중산릉 관광안내소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중국의 전역에서 들어와 근무를 한다. 각 지역의 중국어 억양이 매우 독특해서 딸아이가 알아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매달 부모님이 보내주신 돈으로 중국에서 열심히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딸아이의 머릿속에 멘붕이 온 것이다. 중국어를 듣기는 듣는데 한국어로 바로 통역이 되지 않는 것을 참고 참다가 소리 없이 눈가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그러한 모습에 우리는 당황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고맙다고, 열심히 살아 주어서 고맙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많이 힘들지! 애쓰고 있구나... 사랑한다 내 딸아!’ 힘내라. 부모를 떠나 중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딸아이를 만났다. 스물 한 살 어린나이에 공부를 하고 있는 딸을 만나기 전 많은 걱정과 염려를 하였는데 남경에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딸아이에게 힘을 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중국의 작가 루쉰은 고향생각에 이런 글을 남겼다. “희망이란 없을 수도 있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은 마치 길과 같다. 
지상엔 원래 길이 없었다. 사람이 많이 다니면 길이 된다” 어젯밤 사나운 가을비가 내렸다. 아침 햇살이 맑았다. 여러 해 전에 심은 머루나무의 커다란 잎에 검붉은 색으로 단풍이 들어가고 있다. 어떤 잎은 누렇게 변해 있거나 불어오는 가을 바람에 땅 위를 뒹굴고 있었다. 새끼손톱 크기의 머루들이 가는 나뭇가지에 여러 송이 매달려 있다. 늦은 오후의 햇살에 흙진주는 붉은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사랑한다, 내 딸  한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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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을
꿈이있는교회 담임목사


너를 사랑한다


이창을

꿈이 아니었다.
신장에 이상이 생겼다. 몸과 다리, 발과 손, 온 몸이 부어서 커져 가고 있다. 붓기가 가슴으로 올라오면서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쉴 수 없다. 응급차의 벨소리를 들으며 응급실에 들어왔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많은 양의 피들이 채취되어 검사실로 옮겨져 성분별로 계산 되어져 나온다. 추가 검사가 진행된다. 신속하다 계산된 결과에 따라 알 수 없는 약들이 투명한 작은 관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간다. 몸에 나타나는 반응들이 정해진 시간이 따라 모니터링 되어 의사들이 모여 치료 방향이 결정되면 환자와 보호자에게 전달되고 시행한다.
투석의 방향으로 결정되어 시술이 시행되었다. 배에 있는 복강에 여러 가닥의 튜부을 삽입하는 외과 수술을 했다. 수술을 하는 가운데 복강에 있는 엄청난 양의 오염되어진 체액이 나왔다. 건강한 성인이면 복강 안에 두 말 정도 들어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나는 투석을 거부했었다. 인터넷을 보면서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다. 투석을 하지만 삶의 정해진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사간을 조금 연장 시킬 뿐이다. 오래 살았다. 이만큼 살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고백을 했으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 침례도 받았다. 농기계 수리점에서 기계 기술을 배워 일을 하고, 섬유 공장에 취직하여 12시간 교대로 근무했다, 보석을 가공하는 곳에서 오랜 동안 일했다. 조금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여 신학, 영문학, 심리학, 교육학을 공부했다. 교회를 설립하고 작은 교회를 섬기는 큰 은혜를 입었으니 잘 살았다. 요리도 잘한다.. 예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엄마를 닮은 예쁜 딸과 나보다 멋진 아들이 생겼다. 자녀들은 자라서 대학생이 되어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예쁜 아내도 외롭겠지만 견디면서 살 수 있는 마음이 강한 여자로 거듭난 것처럼 보인다. 나의 많은 조력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슬프지만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거절했다.
의사는 단호했다. 나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투석을 해야 한다고 나는 이미 생각해 왔기에 거절했다. 담당 교수는 당황한 눈빛이었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급히 연락이 왔다. 수술을 할 수 없는 환자가 생겨서 바로 수술을 할 수 있는데 수술을 하겠냐고 수술 동의서를 가지고 의사들이 다가 왔다. 보호자와 가족들이 아무도 없었다. 외로웠다.
수술실 문이 열리고 수술이 시작되었다. 외로움에서 출발한 시술은 견디기 쉽지 않았다. 크고 작은 고통들이 다가 왔다. 참으려 했으나 힘들었다. 불현듯 의사들이 엄청난 마음의 고통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통증이 오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수술을 마친 의사가 나에게 ‘직업이 뭐냐?’물었다 나는 목사라고 대답했다.
회복실로 가는 길 위 침대에 누워 있다. 몸은 차갑고 공기도 차다. 보호자와 가족이 수술실 앞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나를 기다리는 보호자는 없다. 아내는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가고, 아이들은 예정된 약속이 있어 집을 떠나 있다. 수술을 하게 되어도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투사의 말에 가족들은 일상을 삶을 살고 있었다. 혼자 있다. 침대에 누워서 흐느끼고 있다. 눈물이 눈에서 나온다. 조용한 울음이 소리를 내어 계속되고 있다. 슬픈 울음을 멈추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어서 깊은 침묵이 시작되었다. 알 수 없는 견디기 힘든 어두움이 다가 오는 것 같았다. 그때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 너를 사랑한다!
○○○, 너를 사랑한다!
○○○, 너를 사랑한다!
○○○, 너를 사랑한다!
○○○, 너를 사랑한다!
○○○, 너를 사랑한다!
○○○, 너를 사랑한다!”

일곱 번 들린 음성은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나는 죽기 전에 그분의 음성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해 왔었다. 음성을 들었다. 외로운 마음이 너무 편해졌다. 병실에 누워 있다. 힘들지만 괜찮다. 외롭지 않다. 나를 사랑한다는 그 소리가 나를 편하게 한다. 힘을 준다. 살만하다. 투석을 받고 있다. 신장을 기증받아 이식을 해야 한다. 이제 기다리는 일이 남았다.

이른 아침잠에서 깨어 감사하다고 그분께 말씀을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