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다운 전우를 만나다!
며칠 전이다. 어느 부대 군수참모 보좌관에게 책 한 권을 보내려고 우체국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한데 도중에 한 兵士를 만난 것이다. 병사는 군복을 입었지만 잠시 땀을 훔치는 중인 듯 모자를 벗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무척이나 짧았다.
나는 평소에 하는 버릇대로 병사를 불러 세웠다.
"용사여, 휴가 중인가?"
용사라니 너무 뜻밖인 듯, 병사는 약간 어리둥절해했다. 그러나 병사는 이내 표정을 고치곤 우렁찬 목소리로 댜답한다. 맞은편 인도(人道)의 행인 몇몇이 무슨 사단이라도 난 줄 알고 걸음을 멈추고 건너다본다.
"예, 지금 오는 길입니다. 단결!"
'경례 구호가 단결'이라니 7사단 아니면 25사단인 것쯤 나도 안다 아니나다르랴, 병사는 25사단 부대마크를 달고 있다.
난 엄청나게 반가웠다. 그도 그럴 것이 25사단 즉 상승비룡(常勝飛龍)부대는 내가 제대한 그러니까 모부대(母部隊)인 옛날 26사단과 가까이 있는 사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6사단 불무리 부대는 8사단과 통합되어 없어진 지 몇 년이다. 내가 운을 떼기도 전에 병사는 그 사실을 알고있었다. 나는 속으로 감탄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병사가 대견스럽다는 생각은 버릴 수 없었다는 것은 감출 수 없었다 하자.
"어느 아파트에 사는가?"
"바로 저깁니다."
병사가 가리키는 데에 우리 아파트가 있었다. 棟만 다를 뿐 같은 울타리 안, 용인시 기흥구 동백2로 37! 우리는 같은 주소지의 이웃이었던 거다.
부대 마크를 보니 25사단이다. 지금은 없어진 내 母部隊26사단에 가까운--. 나는 强勸은 아니로되, 며칠 뒤에 커피나 한잔하자고 하곤 헤어졌다.
그러다가 오늘 오후 세 시 이웃 카페에서 그와 나는 邂逅했다. 병사는 에니메이션을 전공한다고 했다. 병사는 자기 학문에 대한 긍지심이 대단했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흔적이며 자료도 보여 주었다.
일본어 회화엔 지장이 없을 정도로 실력을 갖추고 있는 병사를 보고 난 칭찬을 할밖에. 그 정도라면 대단한 수준이었다. 우리가 일본식 표현이나 말과 글을 우리의 문학에다 잘못 인용했을 때가 문제다. 병사처럼 일본어를 學問의 경지까지 끌어올렸음을 보고선 경외심인들 어찌 아니 가질 수 있으랴!
한자 실력도 뛰어나 어지간한 故事成語 등도 척척 읽는 게 아닌가? 필순에 맞게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쓰는 걸 보고 새삼 놀랐다. 그의 이름은 簡範진(생략한다). 稀姓인 데다 아름자의 획수가 만만찮다.
내가 아는 유명한 학자이자 시인인 양왕용 교수가 생각났다. 姓에도 ㅇ이 두 개, 이름 자 둘에도 ㅇ이 각 둘씩인--.
묘한 대비다. 참 기가 막힌 체험을 했으니, 머릴 싸매면 소설 한 편을 창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簡 상병이나 梁 교수, 모두가.내겐 소중한 전우이니까.
대화를 통해 그의 우리말 우리글 수준도 보통이 넘는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 금상첨화였다 하자. 황재영 선배님의 '우리말과 글 사랑 설파' 작품이 생각날 정도였다. 노병을 깍듯이 대하는 병사의 언어에서 겸손이 넘쳐 흘렀음을 첨언하자.
노병으로선 그 전우와의 회동(?)이 엄청난 수확이었다 할밖에. 전우다운 전우가 곁에 있었던 셈이다. 다만 최전방인 병사의 부대를 찾아 그를 면회할 수 있을는지 타진해 봤으나 결론은 '불가'였으니 섭섭했다.
오늘과 같은 체험은 多多益善과 맥을 같이한다. 白眉 혹은 壓卷은 내가 건네 준 5만원 지폐 한 장을 고맙게 받아
준 것! 그 정도도 못한다면? 그 병사는 자신이 拙者임을 고백하는 것과 뭐가 다르랴! 참으로 오랜만에 모범 병사를 만난 셈이어서 오후 내내 기분이 좋다.
어느 때인가 서울역 광장에서 방금 제대한 예비역 병사가 나더러 손을 내밀던 모습이 떠오른다. 할아버지, 차비 좀 보태 주세요!
그 녀석이 노병의 만원 짜리 두어 장을 뿌리치는 관심병사(?)보다 낫다. 내가 너무 나갔나?
군내에서 행여 지역감정이 殘存해 있느냐는 내 노파심/을 의문문으로 바꿔 던졌더니 병사는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다시 박수에다 歡呼雀躍을 보탰다.
오늘 이 짧은 拙文을 스마트폰에 바로 두드려 넣게 된 데에는 한국전쟁문학회의 영향이 컸다. 특히 배정 명예회장님의 격려 말씀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
91*30(2730)≒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