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고을 산들길 3구간(학운초교-풍암호수)
무등산은 광주를 감싸고, 광주는 무등산에 의지하고
증심사 가는 시내버스가 주말이라서 배낭을 멘 등산객들로 만원이다. 나와 아내는 무등산 산행의 출발점인
증심사 종점까지 가지 않고 학운초등학교 앞에서 내렸다. 빛고을 산들길 3구간을 걷기 위해서다.
학운초등학교 건너편에 있는 사찰음식점 수자타에서 이른 점심을 먹는다.
음식이 정갈하고 싱싱한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값이 저렴하기 때문에 수자타는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식당에서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서 길을 걷기 시작한다. 식당 옆의 홍매화가 꽃망울을 머금고 봄소식을 전한다.
수자타 옆 동적골 초입에 있는 운림제(雲林霽)에서 사람들로 왁자지껄하기에 들어가 보았더니 전통혼례식을 하고 있다.
그것도 외국인 신랑과 한국인 신부라 눈길을 끈다. 2008년 문을 연 운림제는 오래된 전통 한옥을 옮겨와 보수·복원하여
품격있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운림제 한옥 앞의 너른 마당에서는 결혼식을 비롯한 각종 야외행사를 한다.
전통가옥은 예절교육장으로도 쓰이고, 별도의 건물에는 부채박물관도 마련되어 있다.
동적골 초입인 이곳은 동산마을로 불리는데, 250년 전의 자료에도 지한면 동산이라고 표기될 정도로 유서 깊은 마을이다.
동적골은 중머리재나 새인봉에서 내려오는 등산로이자 치유의 숲까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곳이다.
5월이면 동적골에는 형형색색의 튤립 꽃이 화사하게 피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준다.
골짜기에는 튤립 꽃과 어울리도록 원색의 풍차도 하나 세워놓았다.
초가지붕을 한 동적골 쉼터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동적골 쉼터 앞에서 포장길은 끝나고, 부드러운 황토를 깔아놓은 치유의 숲길이 이어진다.
길가에는 하트(♡) 모양의 돌무더기도 보이고, 나목 사이로 새인봉의 모습도 다가온다.
새인봉은 봉우리의 모양이 임금님의 옥쇄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윗사람을 받드는 일을 하는 사인(舍人)이
엎드려 있는 것 같은 모양이라 해서 사인암(舍人巖)이라고도 부른다. 산들길은 하트 모양의 돌무더기를 지나지 않고
자주봉으로 오르는 산길로 곧바로 접어든다. 산길 초입에서는 빛고을 산들길 이정표가 길안내를 해준다.
마집봉에서 자주봉으로 가는 능선으로 올라선다. 나는 무등산에 갈 때면 가끔 중머리재에서 증심사로 내려가지 않고
마집봉과 자주봉을 거쳐 소태역으로 내려가곤 한다. 이 등산로는 무등산의 다른 코스에 비하여 한적하여 조용히 걷기에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해서 가파른 길을 오르락내리락해야하는 수고로움은 아끼지 말아야 한다.
겨우내 봄을 기다려온 나무들은 이미 땅속의 봄기운을 줄기로, 가지로 전달하고 있다.
봄을 향한 생명의 포효는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 능선은 동적골을 사이에 두고 새인봉 능선과 평행선을 그으며 북서쪽으로 이어간다.
조망이 트일 때면 새인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중봉·장불재·천왕봉이 근엄하면서도 포근해 보인다.
마집봉(475m)을 지나 자주봉으로 달려오는 산줄기는 파도가 밀려오듯 다가온다.
천애절벽을 이룬 새인봉에는 암벽루트가 있어 광주지역 암벽 등반가들이 자주 오르곤 한다.
인공적인 소리라고는 조금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숲길을 걷고 있노라니 나도 자연의 일부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이런 길을 걸을 때면 정신을 집중해서 명상을 하지 않아도 자연명상이 된다.
장군봉을 지나 자주봉에 올라서자 육중한 모습을 하고 있는 무등산(無等山)이 차별 없는 세상을 보여준다.
무등산 속에서 무등산(1187m)을 가장 실감나게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자주봉(348m)이다.
정상인 천왕봉은 물론이고 병풍처럼 펼쳐지는 서석대와 장불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그 앞에서는 중봉과 중머리재, 중봉에서 바람재로 이어가는 능선이 부드러움을 더해준다.
중머리재를 지나 새인봉으로 달려가는 능선은 지척에서 포물선을 그린다.
중봉 아래로 넓게 자리를 잡은 덕산너덜도 확연하게 제 모습을 보여준다.
무등산은 포근한 육산의 면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속에 들어가면 서석대와 입석대, 규봉, 새인봉 같은 바위들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무등산을 일컬어 '오대산의 넉넉함에 월출산의 빼어남을 가졌다'고 했다.
자주봉에는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사각정자가 설치되어 있다.
자주봉 이후로는 주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중간에 전망대도 설치해 놓아 산들길 1구간인 삼각산은 물론 2구간 군왕봉·장원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바라보이고, 멀리 담양의 병풍산과 불태산도 시야에 들어온다. 무등산에 기대고 있는 광주 시가지의 모습도 조망이 된다.
비탈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바로 아래로 광주 제2순환도로가 지난다. 지원정수장 앞에서 오랜만에 ‘빛고을 산들길’ 표지목을 만난다.
지금까지 빛고을 산들길을 밟으면서 수많은 ‘빛고을 산들길’ 이정표를 만났는데, 동적골 이후 지원정수장에 이를 때까지는
표지목을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어서 길을 잘못 든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가졌었다.
무등중학교 앞을 지나 지하철 소태역 앞 도로를 건넌다. 광주에서 화순으로 통하는 도로라 항상 차량통행이 많은 곳이다.
산들길은 광주천을 건너 용산초등학교 방향으로 향한다. 도로변의 산수유가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뜨릴 기세다.
광주천 둔치에는 자전거도로와 보행로가 양쪽으로 나란히 지난다.
용산초등학교 앞을 지나서 제2순환도로 옆의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다.
제2순환도로가 뚫리기 전에는 지원동에서 광주대 방향으로 갈 때 이 길을 이용했었다.
뒤돌아보면 무등산이 듬직하게 서 있다.
용산초등학교에서 진월동까지 삭막한 도로를 따라 걷다보니 빛고을 산들길 코스를 제석산 숲길로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제석산을 통과해도 거리에 크게 차이가 나지 않고, 산길도 비교적 완만하기 때문이다.
도로변 꽃집에 핀 봄꽃들이 내 마음까지 화사하게 해준다.
진월동 8차선 도로를 육교로 건넌다. 육교 아래로는 자동차들이 끊임없이 달려간다.
육교를 건너 동성고등학교 방향으로 진입하면 곧바로 푸른길을 만난다. 광주 푸른길은 원래 경전선 열차가 다녔던 철로였다.
효천역에서 남광주역을 거쳐 광주역으로 연결된 철로는 효천역에서 광주시내를 경유하지 않고 곧바로 송정리역으로
가는 노선으로 바뀌면서 효천역에서 광주역까지의 철로가 폐선이 되었다.
폐선 부지에 대한 활용방안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었지만, 결국은 시민단체의 의견을 받아들여 걷기 좋은 푸른길을
조성하기로 하였다. 철로변에는 나무를 심어 그늘을 만들고, 철로가 지나던 자리에는 걷기 좋은 길을 만들었다.
푸른길 곳곳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와 운동시설을 설치하였다. 보기도 흉했던 폐선 부지를 녹색의 걷기 좋은 길로 만들어줌으로써
진월동에서부터 광주역까지 7.9km에 이르는 푸른길은 주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공간으로 탈바꿈되었다.
동성고등학교와 한국아델리움아파트를 지나서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금당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소나무가 주종을 이룬 숲길은 제법 가파르다. 진월동 주민들이 자주 오르는 등산로라 길은 널찍하다.
뒤돌아보면 진월동 아파트들이 내려다보이고, 분적산(412m)이 노대동 아파트들을 감싸고 있다.
광주 제2순환도로는 훌쩍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가깝다.
높이 올라갈수록 무등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주봉이 무등산 안에서 무등산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라면, 금당산은 무등산 밖에서 무등산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금당산(304m) 정상에 서니 무등산과 무등산의 품에 안긴 광주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광주 시가지를 동쪽에서 무등산이 감싸주고, 담양의 병풍산과 불태산은 북쪽에서 스카이라인을 형성한다.
북서쪽 아래로 풍암지구와 월드컵경기장이 지척이고, 더 멀리 상무지구를 비롯한 광주시 서구의 시가지가 펼쳐진다.
그러니까 금당산에서는 무등산을 비롯하여 광주를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와 시가지의 대부분이 조망된다.
금당산은 주변의 풍암지구·금호지구를 비롯하여 진월동 주민들이 틈만 나면 올라오는 산이다.
우리 집도 금호지구여서 주말에 다른 일정이 없을 때는 금당산을 오르곤 한다.
그래서 나에게는 금당산 정상에서 풍암호수로 내려가는 길은 눈을 감고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하다.
금당산에서 풍암호수로 가는 길은 험준하지 않는 암릉과 숲길이 번갈아 나타난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안부에는 운동기구와 정자들이 설치되어 풍암지구 주민들이 올라와 운동을 하고 내려가곤 한다.
남쪽으로는 송암공단이 발아래로 와 있고, 멀리 나주의 산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가온다.
나주혁신도시와 나주 금성산도 가슴에 안겨온다.
능선을 가운데 두고 왼쪽은 송암공단이, 오른쪽은 풍암지구가 자리를 잡고 있다.
황새봉을 지나 금당산 산줄기가 끝나는 언덕 위에 풍암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풍암정에서 내려다보는 풍암호수 풍경은 장관이다.
둔덕 같은 산으로 둘러싸인 풍암호수는 검푸른 물과 주변의 나무들이 어울려 도심 속의 낙원을 이루었다.
풍암호수 근처 월드컵경기장의 낙하산 같은 지붕도 호수공원과 함께 한다.
광주월드컵경기장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우리 대표팀이 4강 신화를 이루었던 경기장이라 의미가 깊다.
풍암호수는 원래 이곳에 도시가 형성되기 전, 호수 아래 쪽 논에 물을 공급하던 저수지였다.
주변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호반에 산책로를 조성하고,
여러 가지 위락시설을 만들어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호수공원이 되었다.
호숫가에는 장미원도 조성되어 있고, 소규모 공연을 할 수 있는 야외공연장까지 설치되어 있다.
호반길을 걷다보면 무등산이 멀리서 다가오고, 금당산은 호수를 조용히 내려다본다.
근처에 살고 있는 나는 이런 풍암호반을 수시로 걷는다.
풍암호수는 늘 내게 삶의 여유와 행복을 가져다준다.
(2015. 3. 7)
*여행쪽지
-빛고을 산들길 3구간은 동적골-자주봉-소태역-용산초교-금당산-풍암호수로 이어지는 길로써 거리가 11.5km에 이른다. 그러나 동적골은 대중교통이 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반차량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학운초등학교부터 걸을 수밖에 없다. 학운초등학교에서 동적골까지의 2.7km를 합하면 실제 걸어야할 거리는 14.2km로 5시간 정도 걸린다.
-학운초등학교는 증심사 버스종점 두 코스 전에서 내리면 된다. 광주시내 대부분 지역에서 증심사 가는 시내버스가 운행된다.
-풍암호수를 지나는 시내버스가 여러 노선이 있다.
-풍암호수 아래 주차장 건너편에는 식당들이 많다. 주자창 앞에서 도로를 건너 200m 쯤 골목으로 들어가면 보신탕을 잘 하는 풍암정(062-681-4812)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