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 답①
매회 빠지지 않고 출제되는 불교 관련 문제입니다.
부여에 있는 백제 석탑하면 정림사지 5층 석탑 하나만 떠올리면 됩니다.
백제 석탑으로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이 남아 있으며, 이들 석탑의 가장 큰 특징은 목탑의 모습을 많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충남 부여에 위치한 정림사지 5층 석탑은 1층 탑신 면에 당의 장수 소정방이 백제 정벌을 기념하여 새긴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이라는 글 때문에 한때 ‘평제탑’이라고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절터 발굴 과정에서 ‘정림사’라는 글귀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정림사지 5층 석탑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한편, 미륵사지 석탑은 서탑만 일부가 남아 있는데, 수리 복원을 위한 해체 과정에서 사리호와 사리봉안기가 발굴되었습니다. 사리 봉안기에는 무왕의 왕후가 사택적덕의 딸로 적혀 있어 충격을 주었어요. 기존에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서동 왕자(무왕)와 선화 공주가 결혼했다는 내용을 근거로 무왕의 왕후는 선화공주라고 보고 있었습니다.
①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입니다.
② 통일 신라에서 건축한 경주 불국사 다보탑입니다.
다보탑은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는 이형(異形) 석탑입니다. 이 탑은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일반적 형태)인 석가탑
(불국사 3층 석탑)과 마주보고 있는 형태로 배치되었어요.
③ 발해의 불탑인 영광탑입니다.
벽돌로 만들어 쌓은 5층 전탑으로 당나라 건축 기법과 유사한 탑면으로 조성되었습니다.
④ 경주 분황사 모전 석탑은 석재를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 쌓은 탑(모전 석탑)입니다.
원래 9층탑이었다는 기록이 전해지나, 현재는 3층까지만 남아 있어요.
⑤ 익산에 있는 미륵사지 석탑입니다.
백제 무왕 때인 639년에 만들어진 이 석탑은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석탑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쌍탑 중 서탑만 일부가 남아 있었는데, 현재 동탑을 복원해 놓았으며, 서탑은 현재 복원 중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시기별 불탑과 승탑
삼국 시대
<백제> 익산 미륵사지 석탑(전북 익산)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충남 부여)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306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308
<신라> 황룡사 9층탑 복원 모습 분황사탑(경북 경주)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287
통일신라 시대
감은사지 3층 석탑(경북 경주)과 사리장치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205
경주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과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경주 불국사 다보탑(경북 경주)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296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297
구례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전남 구례) (신라 말기) 양양 진전사지 3층 석탑(강원 양양)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282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전남 화순)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195
고려 시대
개성 불일사 5층 석탑(경기 개성) 무량사 5층 석탑(충남 부여) 백제 양식을 많이 계승
오대산 월정사 팔각 9층 석탑(강원 평창) 경천사 10층 석탑(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실내로 이전)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269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231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국립중앙박물관) 정토사 홍법국사 실상탑(국립중앙박물관)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313
조선 시대
원각사지 10층 석탑(서울 종로 탑골 공원 내) 보은 법주사 팔상전(충북 보은)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315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262
유사 기출문제
24회 고급 5번 문제
5. 부여의 유적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 답②
부여의 여러 유적들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들을 파악하는 문제네요.
답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어, 1점 배점만 해도 되었을 문제로 보입니다.
(가) 정사암은 귀족들이 모여서 재상을 선출하였던 곳으로, 이는 귀족 회의의 전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삼국 시대에는 왕권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귀족들 간의 합의제가 존재하였는데, 고구려의 제가 회의, 백제의 정사암 회의, 신라의 화백 회의가 그것입니다.
(나) 부소산성은 백제가 최후를 맞았던 곳으로, 삼천 궁녀가 백마강으로 뛰어들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는 낙화암과 고란사 등이 있습니다.
(다) 정림사지는 절터와 정림사지 5층 석탑, 그리고 고려시대 때 만들어진 석불 좌상이 남아 있습니다.
(라) 능산리 고분군은 규모는 작지만 세련된 굴식 돌방무덤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능산리 고분군, 능사터에서는 최근에 도교 사상이 반영된 백제 금동 대향로가 발견되었습니다.
능산리 고분군 중 1호분에서는 사신도 벽화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능산리 사지에서는 ‘백제 창왕명 석조사리감’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ㄱ - 정사암은 귀족들이 재상 선출 등의 중요 사안에 대해 회의를 열었던 장소입니다.
ㄴ - 성왕이 전투 중에 사망한 곳은 관산성(충북 옥천)입니다.
ㄷ -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백제의 대표적인 석탑입니다.
ㄹ - 무령왕릉에 대한 설명으로, 이는 공주 손산리 고분군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ㄱ, ㄷ으로 묶인 ②번입니다.
23회 고급 14번 문제
14. 경천사지 10층 석탑 답⑤
문화재, 그 중에서 불교와 관련한 사원, 불상, 탑 등을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그러한 불교 문화유산 중에 한국사능력시험에 출제되는 것은 몇 개 되지 않기 때문에 눈으로 익히고 간단한 특징만 파악하면 어렵지 않게 맞출 수 있으니, 제발 겁먹지 마세요.
이 문제에 국립 중앙 박물관에 다녀온 분이면 어떤 탑인지 금방 확인 가능하죠.
회원님들 우리나라 국립 중앙 박물관은 꼭 가보세요. 입장료도 없으니, 돈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경천사는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에 세워졌던 고려 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원입니다. 그리고 경천사지 10층 석탑은 고려 후기 원 간섭기인 충목왕 4년(1348)에 세운 대리석탑으로 원의 영향을 받았어요.
경천사는 소실되어 절터에는 경천사지 10층 석탑만 남아 있었는데, 1907년경 순종의 가례에 일본의 특사로 파견된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田中光顯)에 의하여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었습니다. 이때 탑을 무리하게 해체하면서 훼손이 많이 되었어요.
탑을 몰래 반출해 간 사실이 알려지자 국내 지식인들과 언론이 이를 보도하였어요. 이때 대한매일신보의 발행인이었던 영국인 베델, 그리고 한국에 와있던 헐버트 박사는 국내 신문은 물론, 외국 신문에도 이 사실을 알려 일본을 압박하는 등 반환 운동에 앞장섰어요. 이에 조선 총독이었던 데라우치도 불법 반출한 경천사지 10층 석탑을 조선에 반환할 것을 요구하였어요. 그러나 반환치 않고 버티다 1918년이 되어 반환되어 오랫동안 경복궁 근정전에 방치되었다가 1959년 재건에 착수하여 1960년부터 경복궁에 전시되었어요. 이후 보존의 어려움으로 1995년 해체한 후 다시 복원 작업을 거쳐 2005년부터 새로 만든 국립 중앙 박물관 내부로 옮겨 전시하고 있습니다.
경천사지 10층 석탑은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인 화강암이 아니라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전체적인 균형과 세부적인 조각 수법이 뛰어납니다. 3단으로 된 기단 부분은 위에서 보면 아(亞)자 모양이고, 그 위로 올려진 10층의 높은 탑신 중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자 모양이고, 4층부터는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붕돌의 처마는 팔작 지붕 형태의 기와 지붕 모습을 하고 있어 당시의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기단과 탑신에는 다양한 모습의 조각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양식은 조선 시대의 원각사지 10층 석탑에 영향을 주었어요.
① 백제에서 건축한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입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계승(이 탑의 건립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백제 멸망 직전 시기로 봅니다)하여 목조탑 형식을 많이 보존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죠. 신라와 연합해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 ‘평제탑’이라고 잘못 불리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어요.
② 통일 신라에서 건축한 경주 불국사 다보탑입니다.
다보탑은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는 이형(異形) 석탑입니다.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일반적인 형태)이라 할 수 있는 석가탑(불국사 3층 석탑)과 마주보고 있는 형태로 배치되었어요.
③ 발해의 영광탑으로 벽돌로 만들어 쌓은 5층 전탑입니다.
당나라 건축 기법과 유사한 양식으로 조성되었습니다. 현재 중국 동북 지역에서 현존하는 고탑(古塔) 가운데 연대가 가장
오래 되었어요..
④ 고려 시대의 다각다층탑인 평창 월정사 팔각 9층 석탑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다각 다층탑이 많이 건축되었는데, 월정사 팔각 9층 석탑(12세기)은 송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⑤ 고려 후기 원의 탑 건축 양식에 영향 받아 건축된 경천사지 10층 석탑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22회 고급 8번 문제
8. 고대의 불탑과 승탑 답②
불교와 관련된 승려들의 사상과 활동, 건축물, 불탑, 불상에 대한 문제는 매회 빠지지 않고 출제됩니다.
이번에는 불탑과 승탑에 대한 문제가 출제되었는데, 문제에 출제되는 불탑과 승탑의 종류는 그렇게 많지 않으니 어렵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꼭 눈으로 잘 익혀두세요.
(가)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868)
승탑은 불가에서 제자들이 스승이 돌아가시면 세우는 것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선종이 들어온 이후 유행하였습니다.
선종은 신라 하대에 지방 호족과 결합하여 각 지방에 근거지를 마련하였는데, 그 중 대표적인 9개의 선종 사원이 9산 선문이었습니다. 9산의 각 선문에서는 법문(法門)을 개창한 개산조(開山祖)와 그를 따르는 승려들에 의해 종파의 계보가 이루어졌어요. 이에 따라 그들의 조사(祖師)를 숭앙하여 평시에 그가 설법한 내용이나 교훈 등을 어록으로서 남기고, 입적 뒤에는 선사를 추앙하기 위하여 조형적인 장골처를 남기면서 승탑과 승비가 세워지기 시작한 것이죠.
이때는 팔각원당형을 기본형으로 삼고 있는 승탑이 만들어졌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입니다. 이 밖에도 진전사지 승탑, 흥법사 염거화상 승탑 등이 있습니다.
(나) 정림사지 5층 석탑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계승(이 탑의 건립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백제 멸망 직전 시기로 봅니다)하여 목조탑 형식을 많이 보존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 ‘평제탑’이라고 잘못 불리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어요.
(다) 불국사 삼층 석탑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한 후 전제 왕권이 유지되던 742년(경덕왕 원년)에 건축되었습니다. 이 탑은 석가탑(釋迦塔) 또는 무영탑(無影塔)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동탑인 다보탑(多寶塔)에 대칭되는 호칭입니다. 불국사 3층 석탑은 이중 기단 위에 3층으로 쌓는 전형적인 통일 신라의 석탑 양식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1966년 이 탑의 수리 과정에서 2층 탑신의 상면 중앙에 있는 네모난 사리공 안에서 사리를 비롯한 사리용기와 각종 장엄구(莊嚴具) 및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습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8세기 초에 만들어진 두루마리 불경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목판 인쇄물입니다.
ㄱ - 승탑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하는 탑입니다.
승탑(부도)과 승려의 일대기를 기록한 탑비는 우리나라에서는 선종이 들어와 널리 퍼지면서 유행하였어요.
ㄴ -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관련된 설명입니다.
2009년에 미륵사지 석탑을 해체·보수하는 과정에서 금제 사리호, 금제사리 봉안기 등 사리장엄이 발견되었습니다.
ㄷ - 불국사 삼층 석탑을 해체, 수리하는 과정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사리함 등이 발견되었어요.
ㄹ - 시기적으로 (나)→(다)→(가)의 순으로 만들어졌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ㄱ, ㄷ으로 묶인 ②번입니다.
20회 고급 8번 문제
8.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 답④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는 시험 당시에 역사적 이슈 등을 소재로 하여 문제를 출제하기도 합니다.
특히, 문화유산과 관련한 것은 출제 가능성이 매우 높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미륵사지 석탑 해체 복원, 불국사 3층 석탑 해체 복원과 관련한 내용이 자주 출제되었어요.
이런 내용들이 기사화될 때는 카페에 [한국사뉴스 스크랩]방에 바로 올려드립니다.
불국사 3층 석탑 해체와 관련한 기사도 바로 올려드렸어요.[ http://cafe.daum.net/hankuksalove/XFsw/122 ]
불국사 3층 석탑의 해체 수리 작업이 시작된 것은 2012년 9월인데, 그때 실시된 17회 시험(10월)에서 이 내용이 문제로 출제되었고, 이번에는 유물이 새로이 발견되면서 또 출제되었네요.
불국사 3층 석탑은 창건 이후 원형을 보존해 왔으나, 1966년에 도굴범이 탑 안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리함을 도굴하기 위해 탑을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에 따라 그 해에 탑신부의 해체 수리 작업이 시작되었고, 그 해 12월에 복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때의 해체 수리 과정에서 2층 탑신의 상면 중앙에 있는 네모난 사리공 안에서 사리를 비롯한 사리용기와 각종 장엄구(莊嚴具) 및 두루마리 형태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습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임이 밝혀져 당시에 커다란 관심을 불러 일으켰어요.
2010년에 들어 불국사 3층 석탑을 안전 점검하던 중에 균열이 발견되어 이를 해체 수리하기로 결정한 후 2012년 9월부터 해체 수리에 착수하였습니다.
해체 과정 중이던 7월에 상층 기단 속에서 문제에 제시된 탑의 조성 시기인 8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금동불 입상이 발견되었습니다.
①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다각다층탑인 평창 월정사 팔각 9층 석탑입니다.
② 백제 석탑인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입니다.
③ 불국사 3층 석탑과 나란히 있는 다보탑입니다.
다보탑은 이중 기단 위에 3층으로 쌓는 전형적인 통일 신라의 석탑 양식에서 벗어난 이형 석탑입니다.
④ 불국사 3층 석탑입니다.
이중 기단 위에 3층으로 쌓는 전형적인 통일 신라의 석탑 양식의 완성을 보여 주죠.
⑤ 신라 말에 들어 탑신에 조각을 새기기 시작하였는데, 양양 진전사지 3층 석탑이 그 시초입니다.
양양 진전사지 3층 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놓은 전형적인 통일 신라 석탑이면서, 아래층 기단에는
비천상(飛天像)을 양각하였고, 위층 기단에는 구름 위에 앉아 무기를 들고 있는 팔부신중(八部神衆)이 양각되었으며,
1층 탑신에는 불상을 양각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19회 고급 22번 문제
22. 조선 초기의 불교 건축물 답②
문제에 주어진 자료의 설명은, 조선 초기에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사원이나 석탑은 발달하지 못했지만, 왕실과 관련 있는 사찰 건축물 중에는 규모가 웅장하고 예술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이 있다는 것이네요.
따라서 조선 초기에 건립된 사원이나 탑을 고르면 되겠네요.
조선 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을 폈기 때문에 불교는 쇠퇴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선 초기에도 왕실에서는 불교를 신봉하여 비호를 받았기 때문에 불교와 관련된 건축 중에서도 뛰어난 것이 있었습니다.
목조 건축물로는 강진 무위사 극락전과 해인사 장경판전이 대표적입니다.
강진 무위사 극락전은 주심포식 건물로 검박하고 단정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의 장경판전은 15세기 건축물로서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당시의 과학과 기술을 집약하고 있는 건축물입니다. 이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대장경판과 고려각판을 포함하여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석탑으로는 세조 때에 대리석으로 건축한 원각사지 10층 석탑(세조 11년, 1465년경)이 대표적입니다.
이 석탑은 고려 말에 세워진 경천사 10층 석탑을 계승하여 건축되었기에 그 모양이 거의 똑같습니다.
현재도 서울 탑골 공원에 있는 이 탑은 현재 비둘기 등의 오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유리로 만든 사각형 관으로 봉해져 있답니다...ㅠ.ㅠ
① 평창 월정사 팔각 9층탑은 고려 시대에 건축된 다각다층탑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다각 다층탑이 많이 건축되었는데, 월정사 팔각 9층 석탑(12세기)은 송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③, ⑤ 구례 화엄사 각황전, 김제 금산사 미륵전은 조선 후기인 17세기에 건축된 건축물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정치·경제적인 변화속에 양반과 새롭게 부상하고 있던 부농, 상공업 계층의 지원 아래 많은 사원이 세워
졌습니다.
17세기의 건축으로는 금산사 미륵전(1635), 화엄사 각황전(1702), 법주사 팔상전(1605) 등을 대표로 꼽을 수 있어요.
이것들은 모두 규모가 큰 다층 건물로, 내부는 하나로 통하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건축물들은 불교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양반 지주층의 경제적 성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④ 부석사 무량수전은 고려 후기의 건축물입니다.
이 시기의 불교 목조 건축물 중에 안동 봉정사 극락전(1363년 중수, 13세기 초로 추정)은 가장 오래 된 건물로 알려져
있고,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1376)과 예산 수덕사 대웅전(1308)이 대표적입니다.
이들 건축물의 공통점은 주심포 양식, 배흘림 기둥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19회 고급 7번 문제
7. 신라 중대의 왕권 강화와 불교 문화 답①
문화재 건축 연대와 지역까지 파악해야 하는 문제라서 이런 유형을 푸는데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근현대사 파트에서 출제되는 이러한 유형의 문제는 1,2~10년 이내에 건축된 문화유산들을 제시하고 답을 찾게 해 풀이에 무척 어렵게 느껴지죠.
하지만 전근대사에서는 제작 시기가 많이 차이나는 문화유산을 제시하여 답을 찾기가 조금더 수월합니다.
(가)에 들어갈 답으로는 신라 중대에 만들어진 불교 문화유산을 찾으면 됩니다.
특히, (가)에 들어갈 것은 감은사 건립(682)과 불국사 건립(751)사이에 만들어진 불교 문화유산이 아니라, 신라 중대(654~780)에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 경주에 있는 불교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유의하며 풀어야 합니다.
신라 중대인 무열왕 ~ 혜공왕 시기(654~780)에는 왕권이 강화되었고 예술도 전성기를 이룬 때였습니다.
불교가 융성함에 따라 왕실의 후원 등으로 사원을 많이 축조하여 훌륭한 불교 문화유산이 많이 만들어졌어요.
대표적인 사원이 신문왕 때인 682년에 아버지 문무왕을 기리기 위해 감은사와 경덕왕 때인 751년에 김대성에 의해 세워진 불국사와 석굴암입니다.
이들 사원의 건립과 함께 사원 내에 세워진 석탑도 통일 신라 석탑을 대표하죠.
감은사에는 이중 기단 위에 3층으로 쌓은 감은사지 3층 석탑, 불국사에는 이를 계승한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 그리고 형태가 특이한 다보탑이 건립되었습니다.
한편, 이 시기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평창 상원사 동종(725)과 비천상 무늬와 신비한 종소리로 유명한 성덕대왕 신종(일명 에밀레종, 771)이 만들어졌습니다.
① 성덕대왕 신종은 혜공왕 때인 771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이 종은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 그 뒤를
이은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한 것으로, 현재 국립 경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어요.
② 경주에 있는 첨성대는 선덕여왕(632~647) 때 천체 관측을 위해 세운 건축물입니다.
③ 쌍봉사 철감선사 부도(승탑)는 신라 하대인 868년에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지역적으로도 경주가 아니라 전남 화순에 있습니다.
④ 분황사 모전 석탑은 선덕여왕 때인 634년에 창건된 분황사의 건립과 함께 세워진 석탑으로 보고 있습니다.
⑤ 진흥왕 순수비는 진흥왕(540~576) 시기에 세워진 것입니다.
진흥왕은 활발한 정복 활동을 통해 넓힌 영토를 직접 살펴보고(순수) 4개의 순수비를 세웠습니다.
답지에 제시된 것은 한강 유역을 정복하고 551년경에 세운 북한산비로,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18회 고급 3번 문제
3. 분황사 탑의 특징 답②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문화 문제는 정치 다음으로 출제 비중이 높습니다.
그리고 문화 부분에서 가장 출제 비중이 높은 주제는 불교 문화 유산에 대한 것입니다.
따라서 건축, 불상, 탑(불탑, 승탑), 인쇄술 등의 불교 문화유산은 시대별로 구분하여 그 특징을 꼭 알아두셔야 합니다.
(가)에 들어갈 석탑은, '안산암이라는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서 쌓아 올린 석탑(이를 모전 석탑이라고 합니다)으로, 현존하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네요.
삼국 시대 석탑 가운데 현존하는 것으로는 백제의 익산 미륵사지 석탑,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 신라의 경주 분황사탑을 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에 들어갈 석탑은 분황사탑(모전 석탑)입니다.
삼국 시대에 만들어진 신라의 탑으로는 선덕여왕 때 건립되었던 황룡사 9층탑과 분황사탑이 유명하죠.
황룡사 9층탑은 자장의 건의로 호국적인 염원을 담아 건축된 목탑으로 고려 시대에 몽골의 침입 때 불타 버렸습니다.
분황사는 634년(선덕여왕 3)에 창건되었으며, 석재를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 쌓은 탑, 즉 모전 석탑으로 원래 9층탑이었다는 기록이 전해지나, 현재는 3층까지만 남아 있습니다.
① 익산에 있는 미륵사지 석탑입니다.
백제 무왕 때인 639년에 만들어진 이 석탑은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석탑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쌍탑 중 서탑만 일부가 남아 있었는데, 현재 동탑을 복원해 놓았으며, 서탑은 현재 복원 중에 있습니다.
목탑의 모습을 많이 지니고 있으며, 이를 계승한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이 남아 있습니다.
③ 경주 감은사지 3층 석탑입니다.
통일 신라 초기의 석탑(감은사는 682년(신문왕 2년)에 창건되었으므로 이 탑의 건립도 그 무렵으로 추정)으로, 이중
기단 위에 3층으로 쌓는 전형적인 통일 신라의 석탑 양식이 시작된 석탑입니다.
통일을 이룬 신라의 힘있는 모습을 보여 주며, 똑같은 모양과 크기의 동탑과 서탑이 남아 있습니다.
④ 양양 진전사지 3층 석탑입니다.
신라 말에 조성된 석탑으로, 기단과 탑신에 부조로 불상을 새긴 것이 특징입니다.
⑤ 평창 월정사 8각 9층 석탑입니다.
고려 시대에 유행한 다각다층탑으로 조성된 고려 전기의 불탑으로, 당시 송나라의 선진 문물이 수용되며 송나라에서
유행하던 8각탑이 수용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17회 고급 5번 문제
5. 경주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 답③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는 시사적인 이슈와 관련된 주제도 출제됩니다.
시험 당시에 이슈가 되는 주제, 즉 중국이나 일본과 일어나는 역사 분쟁이나 갈등, 그리고 문화재 발굴이나 보수 등과 관련된 주제들을 문제로 출제하기도 합니다.
최근에 불국사 3층탑을 보수한다는 기사가 나왔었는데, 이 문제는 그것과 연결시켜 출제된 유형입니다.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불탑이죠.
이 탑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한 후 전제 왕권이 유지되던 742년(경덕왕 원년)에 건축되었습니다.
불국사 3층 석탑은 석가탑(釋迦塔) 또는 무영탑(無影塔)이라고도 하는데, 석가탑은 동탑인 다보탑(多寶塔)에 대칭되는 호칭입니다.
불국사 3층 석탑은 이중 기단 위에 3층으로 쌓는 전형적인 통일 신라의 석탑 양식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석탑은 기단부나 탑신부에 아무런 조각이 없어 간결하며, 각 부분의 비례가 아름다워 전체의 균형도 알맞아 안정된 느낌을 주는 뛰어난 석탑입니다.
불국사 3층 석탑은 창건 이후 원형을 보존해 왔으나, 1966년에 도굴범에 의해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에 따라 그 해에 탑신부의 해체 수리 작업이 시작되었고, 그 해 12월에 복원이 이루어졌습니다.
해체 수리 과정에서 2층 탑신의 상면 중앙에 있는 네모난 사리공 안에서 사리를 비롯한 사리용기와 각종 장엄구(莊嚴具) 및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습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두루마리 불경으로, 불경의 글자 중에 당나라의 측천무후자(則天武后字)가 사용된 것이 발견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임이 밝혀져 당시에 학계에 커다란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또한 이 탑에는 백제의 공인(工人)인 아사달과 그를 찾아온 부인 아사녀의 애화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① 선종은 신라 말에 수용되었으니, 선종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이 탑의 건립 시기와 맞지 않습니다.
신라 말에는 선종이 널리 퍼지면서 불탑과 같은 조형 미술은 쇠퇴합니다.
대신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과 같은 승려의 사리를 봉안하는 승탑, 승려의 일대기를 기록한 탑비 등이 유행합니다.
② 제시된 탑의 사진만 보아도 탑신에 아무런 조각이 없음을 알 수 있죠?
불국사 3층 석탑은 기단이나 탑신에 아무런 조각이 없어 간소하고 날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탑신에 조각을 새기기 시작한 것은 신라 말부터로, 양양 진전사지 3층 석탑이 그 시초입니다.
양양 진전사지 3층 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놓은 전형적인 통일 신라 석탑이면서, 아래층 기단에는
비천상(飛天像)을 양각하였고, 위층 기단에는 구름 위에 앉아 무기를 들고 있는 팔부신중(八部神衆)이 양각되었으며,
1층 탑신에는 불상을 양각하였습니다.
③ 1966년 탑의 해체 수리 과정에서 2층 탑신 안에서 사리용기와 각종 장엄구,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습니다.
④ 경주 분황사탑에 대한 설명입니다.
분황사탑은 634년(선덕여왕 3년)에 건립된 것으로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입니다.
⑤ 백제 석탑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들 두 석탑은 목탑의 모습을 그대로 본떠 각 부 양식을 나무 대신 돌로써 충실하게 재현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17회 고급 9번 문제
9. 공주와 부여의 백제 문화유산 답①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와 부여에 남아 있는 유적과 유물을 파악하는 문제입니다.
(가)~(마) 유적, 유물 이름이 제시되어 있으니 각각의 특징을 파악하면 되겠네요.
하나씩 살펴보자구요.
(가) 송산리 고분군은 공주에 있는 무덤입니다.
웅진(공주) 시기(475~538) 대표적 무덤은 바로 무령왕릉입니다.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인 것 아시죠?
송산리 고분군에는 무령왕릉을 포함해 총 7기의 무덤이 있는데, 그중 6호분은 무령왕릉과 같은 벽돌무덤이면서 벽 네 면의 일부에 사신도를 그려넣은 벽화가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나) 공산성은 백제가 웅진(공주)에 도읍한 시기 궁궐이 있던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된 산성(山城)입니다.
(다) 정림사지는 절터와 백제의 정림사지 5층 석탑, 그리고 고려시대 때 만들어진 석불 좌상이 남아 있습니다.
(라) 궁남지는 백제의 별궁 연못입니다.
궁남지의 조경 기술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 조경의 원류가 되었다고 합니다.
(마) 능산리 고분군, 능사터에서는 최근에 도교 사상이 반영된 백제 금동 대향로가 발견되었습니다.
능산리 고분군 중 1호분에서는 사신도 벽화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능산리 사지에서는 ‘백제 창왕명 석조사리감’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① 돌무지덧널무덤은 신라만의 독특한 무덤 양식입니다.
돌무지덧널무덤은 다른 무덤에 비해 도굴이 어려워 금관을 비롯한 껴묻거리(부장품)가 발굴되었습니다.
백제의 벽돌무덤인 무령왕릉에서도 금관을 비롯한 다양한 유물이 대량 발굴되었다는 것도 알아두세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16회 고급 6번 문제
6. 선종과 관련된 문화유산 답②
선종에 대한 문제도 자주 출제되는 주제입니다.
주어진 자료에 나타난 '도의', '선(禪)'을 통해 선종에 대한 내용임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신라 말에는 당에서 귀국한(821) 도의에 의해 선종이 도입되었습니다.
선종은 경전의 이해를 통하여 깨달음을 추구하는 교종과 달리, 실천 수행을 통하여 마음 속에 내재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을 중시하여 널리 확산되었습니다.
선종은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자 하는 지방 호족의 이념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지방 호족과 결합하여 각 지방에 근거지를 마련하였는데, 대표적인 9 개의 선종 사원이 9산 선문입니다.
문화적으로는 선종이 널리 퍼지면서 승려의 사리를 봉안하는 승탑과 탑비가 유행하였습니다.
승탑은 팔각원당형을 기본으로 하였는데,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 전흥법사 염거화상탑, 연곡사 동부도 등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승려의 일대기를 비에 새겨 세운 탑비는 세련되고 균형감이 뛰어나 이 시기의 조형 미술을 대표합니다.
① 익산 미륵사지 석탑입니다.
백제의 미륵사지 석탑은 목탑의 모습을 많이 지니고 있습니다.
탑을 수리하기 위해 해체하는 과정에서 사리봉안기가 나왔는데, 그 내용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죠.
②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입니다.
팔각원당형을 하고 있는 초기의 승탑입니다.
③ 경주 불국사에 있는 다보탑입니다.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는 이형(異形) 석탑입니다.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일반적인 형태)이라 할 수 있는 석가탑과 마주보고 있죠.
④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입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백제의 석탑입니다.
⑤ 경주 분황사 모전 석탑입니다.
신라의 석탑으로, 석재를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 쌓은 탑(모전 석탑)이며, 지금은 3층까지만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 교종과 선종의 비교
교 종 | 선 종 | |
분파 | 5교 | 9산 |
성격 | 불경·교리 중시, 전통·권위 중시 | 좌선·참선 중시, 형식과 권위 부정, 실천 |
지지 | 중앙 귀족 | 지방 호족, 6두품 |
융성 | 신라 중대 | 신라 말기 (하대) |
영향 | 조형 미술 발달, 중앙 집권화 | 조형 미술 쇠퇴, 중국 문화 인식 확대, 지방 역량 증대, 고려 개창 기반 |
15회 고급 9번 문제
9. 신라 말 선종과 관련된 문화 유산 답⑤
(가)는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전남 화순), (나)는 진전사지 3층 석탑(강원도 양양)입니다.
신라 말에는 선종이 널리 퍼지면서 승려의 사리를 봉안하는 승탑과 탑비가 유행하였습니다.
팔각원당형을 기본형으로 삼고 있는 승탑과 승려의 일대기를 비에 새겨 세운 탑비는 세련되고 균형감이 뛰어나 이 시기의 조형 미술을 대표합니다.
이 시기에는 석탑에서도 다양한 변화가 나타났는데, 강원도 양양 진전사지 3층 석탑은 기단과 탑신에 부조로 불상을 새긴 것이 특징이라는 것, 꼭 알아두세요.
① (가)는 석탑이 아니라 승탑입니다.
전형적인 통일 신라 양식의 석탑은 이중 기단 위에 3층 석탑 형태로,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이 대표적입니다.
② 일본의 목탑 양식에 영향을 준 것은 백제 양식의 석탑입니다.
③ 승려의 사리를 봉안한 조형물은 승탑입니다.
(나)는 승탑이 아니라 부처님과 관련된 불탑입니다.
④ (나)는 불국사 3층 석탑보다 시기적으로 훨씬 후에 만들어졌습니다.
⑤ (가), (나) 모두 선종이 도입된 이후인 신라 말에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13회 고급 5번 문제
5. 경주 지역에 남아 있는 문화유산 답⑤
이 문제 유형도 자주 출제된다고 말씀드렸죠?
1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3번 문제 해설에서 이전에도 동일하게 출제되었던 문제유형이라고 해설하면서 경주를 포함해 중요하게 알아두어야 할 지역들을 선정해 알려드렸어요.
아래 링크를 클릭하고 참고하세요.
http://cafe.daum.net/hankuksalove/mXDt/49
특정 지역을 표시하고 그 지역에서 발굴된 문화유산이나 그 지역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묻는 문제들은 앞으로도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자주 나오는 유형으로 자리잡을 것이니 꼭 공부해두세요,
문제의 지도에 표시된 지역이 경주임을 파악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죠?
모르겠다면 교과서에 제시된 지도에서 고대~근세까지의 중요지역을 꼭 파악해두세요.
삼국의 도읍, 중요 유적지, 가야의 금관가야와 대가야 위치, 신라의 5소경, 청해진, 고려의 3경과 12목, 조선의 4군 6진, 팔도 등등 중요 지역은 꼭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문제에 표시된 지역은 앞서말했듯 경주 지역이니,
문두에서 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문화 유산이 아닌 것을 고르라고 했으니 그것을 찾으면 됩니다.
이 말은 경주에서 출토되었어도 다른 곳, 예를 들어 박물관 등에 있으면 볼 수 없는 것이고, 다른 곳에서 발굴된 문화유산이어도 경주에서 볼 수 있으면 되는 거네요.
① 경주 남산 근처에 있는 포석정이네요.
포석정은 역대 왕들이 전복 모양으로 생긴 유상곡수(流觴曲水)에 술잔을 띄워 놓고 시를 읊으며 연회를 하던 장소라고
알려져 있어요.
② 경주 남산 아래에 있는 경주 배동 석조 여래 삼존 입상입니다.
포석정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요.
이 불상은 중앙의 본존불과 좌우 협시불로 구성된 삼존 입상으로, 푸근한 자태한 부드러운 미소가 그 특징입니다.
③ 경주에 있는 분황사탑입니다.
특이하게 석재를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신라의 탑으로, 지금은 3층까지만 남아 있습니다.
④ 국보 제275호 기마 인물형 토기(騎馬人物形土器)입니다.
이 토기는 김해에서 출토된 가야 토기로 추정되지만 현재 국립 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43
기마 인물형 토기와 유사한 형태로 신라에서 만들어진 국보 제91호 도제 기마인물상(陶製騎馬人物像)은 현재 국립 중
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답니다.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226
⑤ 전남 구례 화엄사에 있는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입니다.
이 석탑은 통일 신라의 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얹은 후 꼭대기에 상륜부를 얹어놓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
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위층 기단의 사자 조각은 탑 구성의 한 역할을 하고 있어 불국사 다보탑과 더불어 우리나라 이형(異形) 석탑을 대
표하는 석탑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12회 고급 5번 문제
11. 삼국 시대의 문화유산 답②
이 문제는 비교적 쉬운 문제일 수도 있으니 의외로 헛갈려 하는 분들도 있었을 문제입니다.
문제에 제시된 자료는 삼국 시대의 불교 문화유산 사진전 안내장이고
그렇기 때문에 안내장 (가)에 들어갈 사진 자료는 <삼국시대+불교 문화유산>에 해당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즉 시대적으로 삼국 시대 것이 아닌 불교 문화유산도 안되고
불교 문화 유산이 아닌 것도 안된다는 것이죠.
이러한 문제가 나왔을 때 두가지 관점에서 접근해 봐야 합니다. ① 답지에 제시되는 자료에 삼국 시대가 아닌 것이 제시되어 있는 것을 찾는 문제로 출제하였는지, ② 답지에 불교 문화유산이 아닌 도교라든가 기타 종교 유물이 들어가 있는 것을 찾는 문제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
그럼 답지를 하나씩 살펴볼까요?
① 고구려 불상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구 연가 7년명 금동 여래 입상)입니다.
② 발해의 이불병좌상입니다. 이 불상은 흙을 구워 만든 것으로, 두 분의 부처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③ 삼국 시대에 많이 만들어졌던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있는 금동 미륵보살 반가상(반가사유상)입니다.
④ 백제에서 만든 익산 미륵사지 석탑입니다.
이 탑을 수리, 복원하기 위해 해체하는 과정에서 금판으로 된 사리 봉안 기록판과 금제 사리 항아리 등 유물 500여 점
을 발굴했어요. 금판 앞뒷면에 194자로 새겨진 사리 봉안 기록에는 시주자의 신분이 무왕의 왕후이며, 좌평인 사택적
덕의 딸이라는 사실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백제 서동 왕자(무왕)가 향가 ‘서동요’를 신라에 퍼뜨려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 공주와 결혼했다는「삼국유사」의 내용과는 다른 것이라 연구자들을 놀라게 했답니다.
⑤ 백제에서 만든 부여 정림사지 5 층 석탑입니다. 이탑은 미륵사지 석탑을 계승하여 목탑 양식을 많이 지니고 있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12회 고급 11번 문제
11. 고려 시대의 문화유산 답⑤
고려 시대 불교 문화 유물에 대해 파악하는 문제네요.
이러한 유형의 문제들은 자주 나오는 유형입니다.
그러니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유물 사진을 반드시 공부해두어야 한다는 것...꼭 알아두세요.
유물사진은 카페에 시대별로 올려져 있으니 한번씩이라도 반드시 눈으로라도 봐두세요.
문제에 제시된 (가) 유물은 국보 86호로 지정되어 있는 경천사 10층 석탑입니다.
고려 시대의 석탑은 다각 다층탑이 많았고, 통일신라의 석탑에 비해 안정감은 부족하나 자연스러운 모습을 띠었습니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서 고대 삼국의 전통을 계승한 지역적 특징을 보이는 석탑이 조성되기도 하였습니다.
고려 시대의 석탑으로는 개성 불일사 5층 석탑과 오대산 월정사 팔각 9층 석탑이 유명하며,
고려 후기의 경천사 10층 석탑은 원의 석탑을 본뜬 것으로, 조선 시대 만들어진 원각사지 10층 석탑에 영향을 주었어요.
아래 사진을 보면 두 탑이 거의 쌍둥이탑처럼 보이지요.
<경천사 10층 석탑> <원각사지 10층 석탑>
(나) 유물은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입니다.
처음 보시거나 생소하게 느낀 분들이 많았을텐데 모양은 불탑처럼 생겼으나 지광국사 해린(984∼1070)을 기리기 위해 만든 승탑(부도)입니다.
고려 시대의 승탑은 고달사지 승탑처럼 신라 후기 승탑의 전형적인 형태인 팔각원당형(아랫부분에 유사기출문제를 풀어보시면 그림과 함께 그 특징을 알 수 있어요)을 계승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이나 정토사 홍법국사 실상탑처럼 특이한 형태를 띠면서 조형미가 뛰어난 승탑도 만들어졌어요.
<지광국사 현묘탑> <홍법국사 실상탑>
(다)는 혜허가 그린 양류관음도입니다.
고려 후기에는 왕실과 권문세족의 구복적 요구에 따라 불화가 많이 그려졌습니다.
그 내용은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아미타불도와 지장보살도 및 관음보살도가 많았습니다.
혜허가 그린 관음보살도가 대표적인 작품으로 현재 일본에 있습니다.
정확한 제작 시기는 알 수 없지만 1300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는 버들잎 모양의 후광속에 서있는 양유관음을 그린 그림으로, 풍만하고 장엄하며 여유로운 표정은 고려 시대 귀족의 모습을 연상케 해준답니다.
고려 시대 불화는 카페에 사진과 함께 설명이 올려져 있으니 살펴보세요
① (가)의 경천사 10층 석탑은 원의 석탑을 본뜬 것입니다.
통일 신라 석탑 양식은 불국사 3층 석탑 양식을 떠올리면 됩니다.
불국사 3층 석탑이 통일신라 시대 석탑의 전형 양식으로 2층의 기단 위에 3층 석탑이라는 일반적인 특징을 가집니다.
② 원나라 조형 예술의 영향을 받은 것은 (가)의 경천사 10층 석탑입니다.
(나)의 지광국사 현묘탑은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새로운 양식의 승탑입니다.
③ (다)의 양류관음도는 탱화(보살님의 모습, 경전의 내용 등을 그려 벽 등에 걸도록 그린 그림)입니다.
불교 경전을 필사하거나 인쇄할 때, 맨 앞장에 그 경전의 내용을 쉽게 이해하도록 그림으로 설명한 것은 사경화죠.
④ (나)는 승려의 사리를 모시기 위한 승탑입니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만들어진 탑은 불탑, 선종 승려(주로 명망 있는 고승)가 죽은 뒤 그 사리를 모셔놓기
위해 만들어진 탑은 승탑이라고 합니다.
⑤ (가)와 (다)는 고려 후기인 원 간섭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 시기 지배층은 권문세족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11회 고급 10번 문제
10. 익산 미륵사지 석탑 답④
이 문제는 문화재 관련 뉴스를 자주 접하였던 분들에게 유리하였던 문제입니다.
문제에 제시된 탑은 해체와 발굴, 조사 과정을 한참 진행하고 있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입니다.
특히 미륵사지 석탑은 해체 과정에서 사리호와 사리봉안기가 발굴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사리 봉안기의 내용이었지요.
발견된 사리 봉안기에는 무왕의 왕후가 사택적덕의 딸로 나와 있었으니까요.
삼국유사에는 서동 왕자(무왕)와 선화 공주가 결혼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 기존에는 무왕의 왕후는 선화공주라고 보는게 일반적이었는데 말이죠.
백제 무왕 때 세워진 미륵사지 석탑은 서탑만 일부가 남아 있는데, 목탑의 모습을 많이 지니고 있습니다.
① 통일 신라 탑의 일반적인 형식을 완성한 경주 불국사 3층 석탑입니다.
여기서는 세계에서 사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죠.
② 부여에 있는 정림사지 5층 석탑입니다.
③ 통일 신라에서 만들어진 감은사지 3층 석탑입니다.
문무왕릉인 수중릉 근처에 세워진 감은사에 세워진 탑으로, 동탑과 서탑 쌍탑으로 구성되어 있죠.
④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모습입니다.
⑤ 송파 석촌동 돌무지무덤의 모습입니다.
백제 건국 세력이 고구려에서 내려온 세력임을 알려주는 유물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10회 고급 7번 문제
7. 삼국~고려 시대 석탑의 특징 답②
삼국 시대~고려 시대의 석탑들을 파악하는 문제네요.
(가)는 경주 불국사 3층 석탑, (나)는 경주 분황사탑, (다)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 (라)는 월정사 팔각 9층 석탑입니다.
(가)의 석탑에서는 수리 과정에서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어요.
(나)의 분황사탑은 중국의 전탑을 본떠 만든 것은 맞는데, 벽돌을 구워 만든 전탑이 아니라, 돌을 다듬어 쌓은 탑입니다.
(다)미륵사지 서탑을 수리하기 위해 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사리호와 사리봉안기가 발견되었어요.
(라)는 월정사 팔각 9층 석탑은 다각다층 석탑입니다.
조선 시대에 건립된 원각사지 10층 석탑에 영향을 준 것은 고려 후기에 건립된 경천사 10층 석탑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9회 고급 32번 문제
32. 각 시대 탑의 특징 답②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매회 빠지지 않고 출제되죠.
이 문제는 삼국 시대~ 조선 시대의 여러 탑의 특징을 파악해 보는 문제입니다.
각 탑의 특징들을 간단하게 살펴 보자구요.
(가)는 백제의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입니다.
백제에서 세워진 탑은 목탑의 모습을 많이 지니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이를 계승한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이 대표적입니다.
(나)는 통일 신라 신문왕 때 세워진 경주 감은사지 3층 석탑입니다.
이는 통일 신라 초기 석탑으로 장중하고 웅대한 모습을 보이는 데, 이는 통일을 달성한 신라의 기상을 반영한 것입니다.
이중 기단 위에 3층 석탑이라는 통일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다)는 고려 시대에 세워진 평창 월정사 팔각 9층 석탑입니다.
이 석탑은 송이나 거란 등에서 유행하였던 다각다층 석탑의 영향을 받아 세워진 고려 초기 석탑입니다.
(라)는 조선 세조 때 세워진 서울 원각사지 10층 석탑입니다.
고려 후기에 세워진 경천사 10층 석탑(지금은 국립 중앙 박물관에 전시) 양식을 계승하였습니다.
①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목탑 양식을 하고 있습니다.
② 자장의 건의 따라 선덕여왕 때 세워진 탑은 황룡사 9층탑입니다.
감은사지 3층 석탑은 신문왕 때 아버지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세워졌어요.
③ 월정사 팔각 9층 석탑은 강원도 평창 오대산의 월정사에 있습니다.
④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경천사 10층 석탑과 동일하게 만들어졌습니다.
⑤ (가)백제-(나)통일 신라-(다)고려-(라)조선 시대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8회 고급 16번 문제
16. 고려 시대 승탑의 특징 답③
고려 시대의 승탑을 파악하는 문제입니다.
신라 말기에 선종이 널리 퍼지면서 승려들의 사리를 봉안하는 승탑과 승려의 일대기를 새긴 탑비가 유행하게 됩니다.
이때의 승탑은 팔각원당형(기단과 탑신, 옥개석이 8각형으로 이루어진 형태)을 기본형으로 삼고 있는데, 쌍봉사 칠감선사 승탑, 흥법사 염거화상탑 등이 대표적입니다.
고려 시대 들어서도 신라 말의 승탑 양식을 그대로 계승합니다.
고달사지 승탑과 같이 신라 후기 승탑의 전형적인 형태인 팔각원당형을 계승하는 것이 많았으나
그러나 팔각원당형의 일반적인 승탑 양식에서 벗어나 특이한 형태를 띠면서 조형미가 뛰어난 승탑이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정토사 홍법국사 실상탑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모르더라도 문제에 제시된 승탑을 보면
ㄱ과 ㄹ은 동일한 승탑 양식(팔각원당형)이고,
ㄴ, ㄷ은 그 둘과 다른 특이한 양식임을 눈으로 알 수 있죠?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ㄴ, ㄷ으로 묶인 ③번입니다.
6회 고급 4번 문제
4. 부여 지역의 백제 문화유산 답④
백제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에는 백제와 관련한 많은 문화유산이 남아 있습니다.
① 왕흥사지는 왕흥(王興)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그 위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백제 법왕이 왕흥사를 세우려 터를 닦았으나 세우지 못하고 죽자 아들 무왕이 완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007년에는 왕흥사지 목탑터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백제 시대의 사리 장엄구가 발견되었습니다.
② 규암면 외리 절터 유적에서는 산수무늬·산수봉황문무늬·산수귀신무늬·봉황무늬·연화무늬 등 불교와 도교적 요소를
띠는 다양한 무늬의 벽돌이 발굴되었습니다.
특히, 산수무늬 벽돌은 산과 구름, 신선이 사는 집 등이 조작되어 있어 도교적 영향을 알 수 있습니다.
③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목탑 양식을 하고 있는 백제를 대표하는 석탑입니다.
1층 탑신에 당의 장수 소정방이 백제 정벌을 기념하여 새긴 ‘대당평백제국비명’이라는 글 때문에 ‘평제탑’이라고
불리기도 하였으나, 절터 발굴 과정에서 ‘정림사’라고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정림사지 5층 석탑으로 불립니다.
④ 궁남지는 백제 무왕이 만든 별궁 연못으로, 백제의 조경 기술을 엿 볼 수 있습니다.
백제 금동 대향로는 궁남지가 아니라, 부여 능산리 고분군 사이 절터의 한 구덩이에서 우연히 발굴되었어요.
⑤ 부여 능산리 고분군은 왕실의 무덤군으로, 규모는 작지만 세련된 굴식 돌방무덤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1호분에서는 사신도 등이 그려진 벽화가 발견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6회 고급 13번 문제
13. 시대별 불교 문화유산 건축 순서 답④
시대별 불교 문화유산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 파악하거나 시기별로 연결하는 문제가 자주 출제되는데, 이 문제도 그러한 유형 중의 하나네요.(나)는 백제 때 만들어진 서산 마애 삼존불상으로, '백제의 미소'로 유명합니다.
(다)는 고려 후기에 제작된 수월관음도로, 현재 일본에 있습니다.
(라)는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여주 고달사지 승탑으로, 신라 양식을 계승해 팔각원당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나)-(가)-(라)-(다)로 이루어진 ④번입니다.
6회 고급 24번 문제
24. 각 시기의 불탑 답④
이 문제는 각 문화재의 제작 시기에 있었던 모습을 파악하는 문제네요.(가)는 조선 후기인 17세기에 제작된 법주사 팔상전입니다.
17세기에는 불교의 사회적 지위 향상되고 양반 지주층의 후원을 받아 김제 금산사 미륵전, 구례 화엄사 각황전, 보은 법주사 팔상전 등 규모가 큰 다층 건물이 만들어졌습니다.
(나)는 신라에서 7세기경에 제작된 경주 분황사 모전 석탑입니다.
(다)는 고려 전기에 송 등의 영향을 받아 다각다층탑으로 제작된 평창 월정사 8각 9층 석탑입니다.
(라)는 통일 신라의 감은사지 3층 석탑입니다.
이중 기단 위에 3층탑으로 만들어진 통일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마)는 원의 석탑을 본떠 고려 후기에 제작된 경천사 10층 석탑입니다.
① 삼국~고려 시대에 대한 설명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부유한 양반층, 또는 사회적으로 크게 부상한 부농과 상인의 지원을 받아 사원이 세워졌어요.
② 조선 중기 이후에 해당하는 설명입니다.
③ 고려 후기에 대한 설명으로, 이에 해당하는 불교 건축물로는 경천사 10층 석탑을 들 수 있습니다.
④ 통일 신라에 들어와 석탑은 이중 기단 위에 3층으로 쌓는 전형적인 통일 신라의 석탑 양식을 완성하였습니다.
⑤ 조선 후기인 18세기에 대한 설명입니다.
18세기에는 사회적으로 부상한 부농과 상인의 지원을 받아 그들의 근거지에 장식성이 강한 사원이 많이 세워졌는데,
논산 쌍계사, 부안 개암사, 안성 석남사 등이 대표적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3회 1급 12번 문제
12. 통일 신라 시기의 건축물 답②
제시된 향가는 국어 시간에 배웠던 제망매가네요.
제망매가는 통일 신라의 승려 월명사(8세기 중반 경덕왕 때 활동)가 지은 대표적인 향가라는 것 배웠던 기억 나죠?
월명사가 죽은 누이를 그리워하는 내용이죠.
그럼 통일 신라 때 세워진 불교 건축물을 찾으면 되겠네요.
이 시대에는 불교가 융성함에 따라 사원을 많이 축조했는데, 그 중에서 8세기 중엽에 세운 불국사와 석굴암이 통일 신라의 사원 건축을 대표합니다.
탑으로는 감은사지 3층 석탑,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 다보탑, 구례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 양양 진전사지 3층 석탑이 대표적입니다.
석등으로는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선종의 유행과 함께 승탑이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 흥법사 염거화상탑(이라고 전해짐)을 들 수 있습니다.
① 익산 미륵사지 5층 석탑으로, 백제 무왕 때인 639년경에 건축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② 경주 불국사는 통일 신라 경덕왕 때인 751년에 건축되었습니다.
③ 보은 법주사 팔상전은 조선 후기인 17세기의 건축된 목탑입니다.
④ 예산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시대인 1308년에 만들어졌어요.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입니다.
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고려 시대에 건축된 목조 건축물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3회 1급 24번 문제
24. 선종과 관련된 문화 유산 답②
이 문제는 1점짜리 문제지만, 문제에 제시된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면 3점짜리로 느껴질 문제입니다.
이 사료에 나와 있는 개념이나 핵심을 파악해야 하죠.
힌트되는 개념이나 내용을 찾아볼까요?
먼저, '당나라 때 승려 도의가 중국에 가서 불교를 배우고 귀국(821)하여 그윽한 이치를 처음 전하였다'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도의는 선종을 국내에 처음 도입, 보급한 승려라는 것, 공부하셨죠?
다음, '대붕의 높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기왕에 공부했던 경전 외우는 데만 마음이 쏠려'라는 내용을 통해 경전만을 중시하는 교종을 비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이 두 가지 사실을 종합할 때 자료에 나타난 새로운 동향이란 선종의 도입임을 알 수 있어요.
그럼 선종과 관련하여 사찰(절)에 새롭게 나타난 대표적인 조형미술이 무엇이죠?
바로 승려의 사리를 봉안한 승탑, 승려의 일대기를 비에 새겨 세운 탑비입니다.
① 고려 후기에 혜허가 그린 불화, 양류관음도입니다.
고려 후기에는 왕실과 권문세족의 구복적 요구에 따라 불화가 많이 그려졌는데,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아미타불도와
지장보살도 및 관음보살도가 많았습니다.
② 신라 말 승탑인 전 흥법사 염거화상탑입니다.
③ 통일 신라 때 만들어진 불국사 3층 석탑입니다.
④ 통일 신라 때 만들어진 법주사 쌍사자 석등입니다..
⑤ 삼국 시대에 만들어진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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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 눈엔 왜 다 같아 보이는 걸까요 . . . 철저히 분석해서 외울필요가있습니다
설명 감사합니다.
정말 자세히 해설되어있네요 감사합니다~^^
문화 부분은 철저히 반복하고 익히는 게 정말 중요할 듯 하네요..
기출문제 해설이 많이 도움될 것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관광통역안내사 시험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출제되는 것 같네요.
문화 정말 어렵네요.. 감사합니다.
문화 부분이 어려운거 같은데 해설이 정말 장되있어서 좋은것 같습니다.ㅎㅎㅎ
감사합니다~
아래에 이렇게다 정리해서 보여주시니...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박 해설입니다~!!
공부해야 할 길이 멀군요;;
충청남도 부여군 이라는 단서와 글이 새겨져있다는것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탑은 지역이 상당히 중요해 외울때 지역도 같이 알아두는 편입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댓글은 사양합니다.
문제에 대한 내용
즉 난이도, 포인트 느낌 등에 대한 내용을
댓글로 부탁드려요.
화이팅!!!
그리고 한 문제에만 댓글 달지 말고
여러 문제에 댓글 달아주면
합격의 복이 함께 할 겁니다.................^^
문제지에 자주 나오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나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 석가탑은 금방 인식이 되는데 다른 불상이나 석탑은 더 눈에 익혀야 겠네요 ㅠㅠ 그래도 역사적인 사실을 덧붙이니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합니다^_^ 감사해요~
탑이랑 건출물 섞이면 어려워지네요
감사합니다
석탑이 그게그거같고 그렇네요.. 하아..
문화 파트부분이 헷갈리고 어려운데... 이렇게 정리해주시니까 반복반복!! 되네요.감사합니다. 가기전에 이걸 보고가야겠어요.
3회에서는 예산 수덕사 대웅전이 1308년 우리나라 제일오래된 목조건물이라하는데 25회 기출 14번문제에서는 보기에서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을 찾는건데 답이 안동 봉정사 극란전일까요??
사진이 많아서 정리하기 좋네요. 시험 전에 보고 가야겠어요.
정림사지 5층 석탑, 다보탑, 불국사 3층 석탑, 감은사지 3층 석탑까지는 잘 알겠는데, 나머지 석탑이나 불상은 더 눈에 익혀둬야 겠네요. 보다보니 헷갈리는 부분도 많고, 시기별 구분, 지역별 구분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 탑이랑 건물 섞이니까 너무 어렵네요ㅜㅠ흐규ㅠㅠ
한꺼번에 모아서 반복해서 탑을 모니 외워지는 것도 같구요 ㅎㅎ 다외웠다가 싶다가도 은근 까먹드라구요..너무 헷갈리는 파트입니다ㅠㅠ 시대별로 특징을 생각해서 모양을 외우기는 하는데 참 어렵습니다..
석탑은 봐도봐도 헷갈리네요
정말 여러번 보고 또 봐야 할 것 같아요 ㅡㅜ 맨날 혼동 ㅋㅋ
석탑이랑 사찰은 봐도봐도 헷갈려서 머리 터질 것 같아요ㅠㅠㅠ
와 정말 잘 설명해 주신다. 감사 감사
감사합니다 :)
자세한 해설 감사합니다!!
무덤 탑은 양이 어마어마하네요.. ㅍㅍ
기출문제를 보니까 탑 구분을 명확하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관련 사료들을 한 번에 볼 수 있으니 정말 편리하네요 감사합니다
12회 고급5번 예제는 답이 3번인데 2번으로 잘못 표기되었나싶네요!
항상 같은 그림만 봤는데 링크로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커서 놀랐습니다. 특징만 외워두면 왠만하면 맞추기 껄끄럽지 않네요
승탑이 봐도봐도 헷갈리네요ㅜㅜ 계속해서 봐야겠어요
탑은 봐도 봐도 헷깔리네요. 자세히 다시 보아야 겠습니다.
분황사 모전 석탑 : 안산암을 벽돌 모양으로 잘라서 쌓은 현존 신라시대에 가장 오래된 탑
층 6면에는 감실을 만들고 좌우에 법의 수호신 인왕산을 각각 1구씩 새긴 화강암을 끼움(최초의 조각)
경천사 10층 석탑 : 회색 대리석 석탑으로 고려 충목왕 4년 친원세력 강융과 고용봉이 건립
기단과 3층 까지는 한자어 아(亞)자형의 사면 돌충형 평면, 탑 1층-3층까지 탑신이 감축
탑의 기단부 및 상륜부 형식은 원나라 라마탑 영향을 받늠
헌화사 7층 석탑 : 1020년 현종(11년)때 건립, 당초 개성 현화사에 건립된 것을 현재 개성 고려박물관으로 옮김
기단부를 판석 면석으로 쌓지 않고 큼직한 모전석으로 질서 있게 쌓음
안동 법흥사지 7층 석탑 : 한국에서 기장 크고 오래된 석탑(높이 17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