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실현
1)예술치료사의 자기실현
예술치료사는 예술을 매개로 심리치료를 행하는 상담자로 사회적, 심리적, 정서적 문제를 안고 있는 내담자들에게 예술 활동을 통해서 갈등문제를 분석하고 진단하여 치료한다. 예술치료사는 심리학적 이론만 아니라 예술매체가 가지는 특징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비언어적으로 표현되는 특징들이 묘사하는 상징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Naumburg, 1987/2014). 예술의 본질적인 특성은 인간의 정신을 승화시키는 것으로 상처받은 인간의 마음에 위로와 기쁨과 감동을 주며 마음을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예술 활동을 통한 창조적 체험은 마음의 평온과 삶에 활력을 주고 자신과 자신의 삶의 방식에 대한 변화도 경험할 수 있다.
예술을 통한 치유성의 기원은 인간역사의 태동과 함께 진행되어 오고 있으며 고대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으며, 질병에 대한 예방과 회복을 염원하는 치료의 형태로 행해져 왔다. 이것은 인류학과 의학, 예술에 관련된 문헌들에서 예술적 표현 양식들을 치료에 적용했던 기록들을 찾아볼 수 있다(McNiff, 1992). 예를 들면, 이집트인들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노인들에게 예술 활동을 권장하였고(Fleshman & Fryrear, 1981), 그리스인들은 드라마와 음악을 치료적 회복의 목적으로 사용하였다(Gladding,1992).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사이에 의학의 보조치료 수단으로 예술을 사용하였는데 현대의 예술치료는 1940년대부터 치료의 영역으로서 발전해오고 있으며, 치료의 역할로써 예술치료가 실제적인 형태를 가지게 된 것은 1960년대부터이다.
예술의 주요소인 심미성과 창조적인 표현을 하면서 인간과 사회에 일조하려는 욕구의 발현으로,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정서의 경험을 전달하는데 있어 언어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상징적인 이미지의 시각화를 위해 예술매체를 사용하는 치료적 접근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더불어 정신의학과 심리학, 사회복지학 등의 분야에서 예술심리치료를 새로운 학문으로 구축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진행되었다(Malchiodi,2005/2009). 예술치료에 있어 예술 행위는 수단일 뿐 목적은 아니며 개인의 심리상태와 정서를 파악하고 갈등관계와 병리적인 심리와 정서적인 요소를 창조적 작업을 통하여 조화롭게 해결해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김익진, 2013). 예술치료는 내담자의 갈등 완화와 건강한 정신구조를 지향하며 예술에 치료적 개념을 포함하여 진행한다. 치료라는 부정적인 거부감을 활동적인 예술과 접목시켜 더 쉽고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으며, 내담자 스스로 치료보다는 예술 활동으로 느끼게 되어 스스로 주도적인 치료를 이끌어 낼 수 있다(조민희, 2013).
Edinger(2002/2018)에 의하면, 심리를 치료하는 치료사는 무엇보다 소명(Calling)이 있어야 하고, 두 번째, 자아의 발달과 현실에 대한 외부세계에 건강하게 적응하는 자아를 가지고 있는가? 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세 번째, 도덕적 통합성과 기본적 가치에 대한 자각과 기본적 가치에 대한 헌신할 수 있는 품성을 갖추어야 하며, 네 번째, 무의식 및 객체정신과 살아있는 관계를 가지고 있는 심층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예술작업을 통한 창조성의 증진은 치료사의 자기인식을 가능하게 하고,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치료사가 내담자의 내면을 공감하고 이해하는데 진정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으며 효과적인 치료성과를 발휘할 수 있다(Rubin, 1999/2006). 치료사의 전문적 역할과 더불어 인간의 교류와 관계, 상호작용 등이 중요하게 기능하는 심리치료과정은 치료사와 내담자의 상호작용이 치료성과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치료사의 자질과 능력 요인은 치료의 성패에 가장 핵심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이재창,1996). 치료사의 인성적 자질은 치료사의 이론적 배경의 월등함이나 그 어떤 치료기법보다 중요 하다(Wadeson, 1987/2008). 이는 효율적인 치료사와 비효율적인 치료사의 차이는 도구로서의 자아라는 신념과 특성에 있다(Combs, 1962).
인본주의 관점에서 Rogers(1978)는 자기실현을 위해서는 사회와 규정에 매이지 않고, 자기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경험하고 자기내면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자신의 책임을 다하며 자율적인 태도로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하고 자신의 이해를 바탕으로 타인을 수용하며, 온전한 자기가 되는 모든 과정을 총체적으로 '자기실현'이라 한다.
Maslow(1970)는 자기실현을 자신의 본성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선택한 후에 그것을 표현하고 성장시켜 나가는 것과 자기의 현실을 자각하고 편안한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하였다(박태경, 2019 재인용). 이러한 자기실현적 단계에 이른 사람들의 특성은 문화나 환경의 편견에 얽매이지 않고 절정을 경험하고 사회적인 공감능력을 가지고 고독을 즐기며 유머 등과 더불어 타인을 존중한다. 또한 자기수용과 자발성이 생기며 깊이 있는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자율성으로 현실을 지각하고 개방적 태도와 새로운 관점을 갖고 목적에 초점을 두는 성향 등을 보인다(황성연, 2015). 즉 자기실현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와 소망을 인지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자 하며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이다(Maslow, 1968/1974).
자기(Self)는 하나가 된 인격을 추구하고 인간의 전체정신으로써 자기(自起: self)는 부패하지 않는 것과 더 이상 용해할 수 없는 것, 하나이자 단순한 것이며 다른 것으로 더 이상 환원될 수 없는 것이고 근원적인 것이며 동시에 보편적인 것이다(jung, 1984/2001). 그러므로 자기(Self), 즉 자기원형은 단정 짓기 어려운 초월적인 거대한 우주이면서 동시에 어떤 미지의 에너지라 할 수 있다. 자기(Self)는 가장 강력한 핵심적인 원형으로, 의식과 무의식의 양극에 동시에 포함되는 전체정신의 현상으로 인간의 의식적인 마음이며 전체심리의 중심이다(Jung et. al., 1986/2014). '자아'에 편중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진정으로 '자기'를 추구하는 삶을 살기에 어려움을 느끼고 심리적 불안과 갈등 속에 살고 있다.
Goldstein(1963)에 의해 처음 사용된 '자기실현'의 개념은 인생 후반기의 과제로 중년 이후에 부각되며, 인생 전반기의 과제는 사회에 진출하기 위하여 적응할 수 있는 준비이며 인생의 후반기에는 페르조나와 자신을 분리하여 진정한 자기를 알고 찾아서 통합하는 일이다. 또한 심리발달로서의 '자기실현'이 가진 의미는 인간의 본성 안에 이미 주어진 본질적인 소명과 같은 것으로 전인적인 삶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Jung(1984/2001)의 자기실현 과정을 살펴보면, 인간은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로 한 개인을 인식하고 개인은 자신의 역할을 통해서 사회와 접촉하며 상호작용과 관계를 형성해 가는데 외부의 세계와 접촉하는 자기의 사회적 인격을 가리켜 페르조나(persona)라고 한다. 페르조나는 한 개인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하며 그로 인한 타인의 기대와 자기 자신 사이의 중재자이자 사회와의 연결고리이다(Clift, 1984/1991). 페르조나는 진정한 자기가 아님에도 자신과 과도하게 동일시할 때 진정한 자기로부터 소외당하게 된다. 자신의 삶을 페르조나에 일치시키다 보면 진정한 자신의 본성 즉, 무의식과 단절하게 되고 신체적, 정신적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이런 현상은 중년기에 흔히 나타나 문제들을 일으키기 때문에 반드시 자신이 원하는 본성의 삶과 페르조나와 동일시한 삶을 구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만 페르조나를 버린다는 것이 곧 자기실현이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페르조나를 다루는 핵심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알고 진정한 자기의 모습과 구별하고 인식함으로써 분화시켜 무의식적으로 동일시하고 있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다(이부영, 2015).
자아의식이 높은 인격을 지향한다면 도덕적으로 열등한 이면이 반드시 있으며, 나의 뒷면은 의식화되지 못하고 미분화된 채 억압되어 또 다른 '나'를 이루게 된다(이부영, 2003b). 이런 그림자를 의식화하고 수용하고 분화시키는 것은 자기실현을 위한 중요한 과제이다. 그림자는 인간의 동물적 본성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것은 원형 중에서도 가장 강하고 위험하다(김성민, 2001). 무의식적으로 외면당하며 발달의 기회를 갖지 못한 그림자에는 창조적인 능력과 생산성과 에너지가 잠재되어 있다. 그림자가 의식에 포함되면 그 에너지와 생산성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되고 발휘되며 의식의 지평이 넓어진다. 반면 그림자가 의식화되지 않고 무의식 속의 원형적 요소와 만나서 '나의 어둡고 싫은 모습'으로 남거나 타인에게 투사되면 자아의 통제력은 불안을 유발하게 된다(이부영, 2016).
무의식 안에는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숨겨져 있는데 외부적 인격인 페르조나와 대극 관계에 있는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쉽게 드러나지 않으며 사회적 가치와 도덕과 윤리를 대변하는 페르조나의 억압으로 표면에 나타나기 쉽지 않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다가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해방되었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이부영, 2015). 집단 무의식의 특성으로 아니마는 남성의 무의식 안에 있는 여성적 요소이며, 아니무스는 여성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남성적 요소를 말한다. 여기서 남성적, 여성적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적 페르조나를 넘어선 원초적인 것이며,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특성은 자율성이다(이부영, 2003b).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이 결합된 독특한 무의식의 콤플렉스로 이런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인간의 온전한 발달을 위해서는 자신의 페르조나를 지각하고 그림자를 탐색하며 수용하고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통합하는 것이 필요하다(Sharp, 1992/2008). 이런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통합해 나가는 과정이 곧 '자기실현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실존주의 심리학자인 May(1981)는 인간을 '무엇인가를 향해 항상 움직이는(always going toward something)' 존재로 보았으며 '실존'과 함께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에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감(sense of being)을 중요하게 보았다. 이때 존재감은 무엇이 되는(becoming) 과정이며 역동적인 과정과 울림을 통해 존재감이 형성된다. 즉 존재감은 '지금-여기'라는 시간과 공간속에서 생성되는 한 개인의 선택적인 움직임과 내적인 울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여기'에 해당되는 자기 존재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자신에 대해 얼마나 소중한 존재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지에 대한 총체적인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실존적인 공허를 극복하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것은 Jung이 중년기의 위기에서 위기감과 상실감을 경험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중년기의 위기극복을 위한 삶의 의미추구는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김한태, 2015 재인용).
자기 자신의 삶의 의미를 추구함으로 진정한 의미의 인간이 될 수 있으며, 자신의 삶을 통해 경험하고 겪어 내야할 고통의 의미를 수용할 때 비로소 문제를 해결해 나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각 개인마다 고유한 의미가 있으며 각자의 삶은 특별한 존재론적인 의미를 지니며(Frankl, 2005/2012),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그 의미와 가치에 대한 해석과 적용방식은 각자 다르고, 개인의 고유한 독특성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존재감에 대한 확신은 자신에게 잠재된 능력과 재능을 발견하고 개발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에 대한 실현욕구는 자기 존재에 대해서 긍정적인 확신이 있을 때 비로소 자기실현을 위한 욕구와 동기가 활성화될 수 있다. 존재감에 대한 실패와 왜곡된 인식은 자기실현을 저해하고, 좌절감과 무기력과 불안과 우울감에 빠지게 하며, 용기와 능력을 잃게 하여 실제적인 존재에 직면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존재감의 확신은 자기의 생각과 감정에 대한 왜곡과 두려움 없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으며 자신감을 가지고 불안과 우울, 좌절과 무기력에 대응하는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May, 1996/2010). Jung(1984/2001)의 개성화는 '개체'로서의 인간을 존중하며, '본래 자기(Selbst)'의 모습을 발견하고, 인간이 본래의 자기 모습을 찾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면에서 May(1996/2010)의 개별화와 '자기실현'이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도 예술치료사가 되기 위한 많은 시간의 노력들이 있었고, 끊임없이 온전하게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문과 고민을 거듭하며 탐구해 오고 있다. 그렇지만 타인을 의식하는 삶을 살며 진정한 나의 내면의 모습을 잃어가고 주어진 역할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과 고민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다. 특별히 불안하고 불안정한 시대적인 상황이나 개인적인 고뇌 속에서 모든 유기체가 그렇듯이, 자아의 성장과 자기 찾기에 대한 고뇌와 자아 정체감에 대한 질문을 거듭하며 예술 치료사의 자기실현의 경험과 기회를 갖고자 하였다. 인간으로서의 존재와 성장에 대한 경험과 책임에 대한 것은 자기실현과 결정에 관련되어 진정한 자기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차크라 색채명상을 통한 예술치료사의 자기실현에 관한 자전적 내러티브 탐구/ 전진옥 건국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치료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