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04, 2001
여성그룹의 2강(强), SES와 핑클. 이들의 데뷔 이후 나온 신인여성그룹들은 한번쯤은 'SES와 핑클을 꺾을 만한' 혹은 'SES와 핑클과 어깨를 나란히 할'이라는 수식어를 듣곤 했지만, 그 중 어떤 팀도 이들의 위세를 누를 만큼의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데뷔 당시부터 '청순발랄깜찍'한 이미지로 10대 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얻은 것은 물론, 이 사랑을 바탕으로 세대를 초월한 스타덤을 구축해 온 SES와 핑클 들이 근래 들어 변신을 꾀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감지할 만한 사실이다.
일례로 SES는 올 초에 나온 4집 「A Letter from Greenland」부터 그간 애용해 온 유니폼 룩이나 귀여움을 강조한 의상 컨셉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하고 성숙한 컨셉으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핑클 역시 작년 3집 'NOW'의 활동당시 최초로 OL룩(오피스 레이디룩, 즉 성숙한 느낌의 정장을 의미)을 시도하는 등 두 팀 모두 '소녀그룹'에서 벗어나 주력 팬 층을 상향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핑클의 경우, 이전 활동에서 이미 사용한 바 있는 교복과 소녀풍 드레스 컨셉을 업그레이드, 재사용하기도 했다.) 어느덧 데뷔 4~5년차의 중견가수가 된 만큼 그룹 컨셉에 이와 같이 약간의 궤도 수정을 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어쨌든 이처럼 가요시장의 절대다수라고 할 수 있는 10대 시장을 한 손에 쥔 듯 보였던 이들이 변화를 꾀하는 시점에서 신인여성그룹의 데뷔가 부쩍 늘어난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SES와 핑클의 해외진출을 본격화되고 있어 휴식기 동안 빈자리가 생기는 까닭도 있을 것) 여성그룹의 수가 어느 정도 늘었는가 하면, 이번 여름을 기점으로 활동을 시작하거나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신인여성그룹들만 살펴보아도 '범람'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 특히 여성 3인조 구성이 많은데, Toya, GUY, C.O.C(Club Of Cheerleaders), C.O.C(Creator Of Craze), GIRLFrND(Girl From New Dream), E.S.P(에스파, 활동 준비중)까지, 이 모든 팀이 세 명의 멤버를 보유하고 있다. 이미 활동하고 있던 디바와 클레오, 5인조에서 개편을 거친 파파야까지 합하면 여성그룹의 황금률은 3명이라는 속설이 거의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듯 보이기도 한다. 4인조의 경우 3인조에 비해 드문드문 결성되고 있는데, 봄부터 활동을 시작한 쥬얼리나 이제 막 출발한 S가 그런 경우.
이들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몇몇은 은근히 핑클과 SES에 대한 추격 의지를 내비치기도 하는데, 후발주자로서 어느 정도 핸디캡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들이 자신 있게 먼저 내놓는 장점들은 대개 화려한 제작진. 프로듀서에 스타 작곡가 이윤상, 의상에 디자이너 박지원, 메이크업을 이경민이 맡은 GUY나 주영훈, 손무현 등의 작곡진을 자랑하는 Toya, 핑클과 클릭B 등의 음반을 프로듀싱했던 스타메이커 권정우가 앨범 프로듀서로 나선 S, 김형석과 박혜운 등의 레코딩 스태프와 차은택 감독, 정이건 주연의 초특급(^^;) 뮤직비디오를 예고하고 있는 E.S.P까지 거의가 이름난 제작진을 강조함으로써 어느 정도 보장된 음악성, 상업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물론, 각 멤버의 미모 역시 빠지지 않고 등장할 만큼 중요한 장점.
또한, 이들이 천명하는 주요 타겟 및 공략법의 다양함 역시 관심을 끄는 데, 동명을 고수하기로 하면서 일단 이목을 끄는데 성공한 두 그룹, C.O.C들은 각각 틴매거진의 모델 경력, 600대 1의 오디션 통과 등 나이에 비해 화려한 인생을 살아온 중학교 1, 2학년의 멤버들로 구성된 C.O.C(Creator Of Craze)가 'Low-teen(10대 초반)'은 물론 성인에 이르기까지 어린 나이에서만 가질 수 있는 귀여움과 당돌함을 내세우면서 인기를 모아 보겠다는 심산인 반면, 치어리더 출신의 20대 멤버들로 구성된 C.O.C(Club Of Cheerleaders)는 노골적으로 '늘씬한 몸매로 가요 팬들의 눈을 공략하겠다'는 계획이다. 소녀지향의 여성그룹에서 탈피, 철저히 2, 30대만을 공략하겠다며 데뷔 곡 'Shy Guy'의 무대의상으로 검은 가죽 의상을 코디해 강한 이미지를 구축했던 GUY도 색다른 케이스. 그리고 광고 모델로, 오락 프로그램 패널로 활동했던 김지혜가 소속된 Toya는 데뷔 무대에 앞서 음료광고에서 신고식을 치뤘으며, S는 올초 이동통신과 신용카드 광고모델로 활약한 최은영과 정유미가 소속되어 다른 팀에 비해 상대적인 친숙함이나 호기심을 자아낸다.
사실, 이러한 나름의 강점들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먼저 데뷔한 다른 여성그룹들은 이루지 못했던 목표- 핑클과 SES를 능가하는 것-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위에 언급된 팀들 중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 가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 해가 다가기 전에 우리 시야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또 하나의 현실은 이들의 '우후죽순격' 등장을 그저 반길 수만도 없다는 점. 물론, 다양성 확보의 측면에서 볼 때, 비록 비슷비슷한 댄스가요라도 이들처럼 많은 이들이 가요계에 발을 내딛는 것을 그나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이들이 처음에 당당히 내세웠던 자신들만의 특성을 살려 나가면서 여성그룹의 지평을 넓히는 데 다소라도 이바지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는 부정적인 시선을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로, 앞서 무채색 의상의 강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흔치 않은 사례를 남긴 GUY는 결국 알록달록한 의상으로 바꾸고, 각종 쇼, 오락 프로그램에서 다소 엽기적인 개인기까지 선보이며 타 팀과의 차별성을 포기했다.(사진 참고)
무더운 여름부터 늦더위가 계속되는 지금까지 여성그룹에게 TV가, 시청자가 원하는 것은 시원한 볼거리뿐이었기에, 이들 신인 여성그룹의 사계절용 진가(眞價), 즉 가수로서의 역량을 알아보고 인식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더구나 사람 수나 옷차림까지 비슷하다면) 물론, 우리 나라 여성그룹이 가수로서의 역량을 절대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이 걸리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더위가 조금 가시고 나면 어느 정도 옥석이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 중 과연 누가 살아남아 정상으로 다가갈수 있을지,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