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 트랜스포터 라스트 미션
룰이냐 진실의 순간이냐
두메솔 이재관 jack2816@hanmail.net
프랭크 마틴은 무슨 물건이든지 안전하게 운반하는 일을 하는 트랜스포터(운반 전문가). 우크라이나 바실레프 장관을 위협하여 폐기물을 대량으로 반입하기 위해 악랄한 유괴범 갱단이 그의 딸 발렌티나를 유괴했고, 프랑스 마르세이유로부터 흑해의 오데사까지 '운반'하는 일을 프랭크에게 강제로 맡겼다. 프랭크와 발렌티나의 팔에는 승용차로부터 75피트 이상 떨어질 경우 자동 폭발하는 전자 팔찌 폭탄이 장치되었다. 목숨을 건 여행이 시작되자 발렌티나를 가로채려는 자들과 사투가 벌어진다. 발렌티나는 얼굴이 온통 주근깨, 분명 미모는 아니다. 그녀의 시니컬한 성격과 프랭크의 프로 정신이 충돌하는데, 둘은 어떻게 될까.
좋은 영화는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관객이 특별한 시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해주며 신선한 의미를 암시해준다. 그러한 새 시각과 의미를 찾아보는 것이 영화감상의 차원 높은 재미일 것이다.
'트랜스포터 라스트미션'의 주 무대는 과거 우중충한 이미지로 알려져 온 동유럽, 그러나 기존의 유명 영화들의 주 무대였던 서유럽, 이태리, 뉴욕, 미국 서부, 홍콩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거대한 스케일의 로케이션, 프랑스의 마르세유를 시작으로 독일의 뮌헨,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 우크라이나의 오데사에 이르기까지 유럽 전역을 가로지르는 다채로운 풍광을 배경으로 스펙터클의 광속 질주가 벌어진다. 동유럽에도 현대식 빌딩, 하이웨이, 고급 승용차, 패션이 흘러넘쳐 우선 영화의 배경이 경쾌하다. 또한 제이슨 스타댐(Jason Statham, 프랭크 마틴 역)이 풍겨주는 싱싱한 매력, 최고의 액션, 초고속의 충격을 즐길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액션이나 배경은 영화가 덤으로 주는 서비스일 뿐, 핵심사항은 아니다. 영화 간판의 표어를 보자. "룰(rule)을 깬 트랜스포터(transporter), 본격적인 임무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무슨 뜻일까?
전문가(프로페셔널) 세계에서는 스스로 정하고 엄격하게 지키는 원칙(룰)이 있게 마련이다. 프랭크는 "계약조건은 변경하지 않는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배달물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파트너 없이 혼자 완수한다." 라는 네 가지 원칙을 지키며 일해 온 최고의 운반 전문가. 그러나 프랭크는 자기 철칙을 깨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면서 정의감과 인간애를 향해 순간순간 엮어나간다. 우리들의 삶도 때로는 그렇지 않을까.
잔인한 갱단 두목, 시한폭탄, 시시각각 다가오는 킬러들과 벌이는 순간순간의 대응, 그것은 평소의 원칙보다 중요하고 긴박한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들이었다. 진실의 순간이란 무엇이며 어떤 경우에 그것이 원칙보다 중요한지 말해주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스페인에서는 투우사가 황소의 정수리를 찌르는 때를 진실의 순간(스페인어 Moment De La Verdad)이라 한다. 골프에서는 공과 골프 클럽이 부딪히는 찰나가 진실의 순간이다. 아무리 준비운동을 많이 했어도 빗맞으면 소용없다. 아무리 슈팅을 많이 했어도 골인시키지 못하면 축구경기를 이길 수 없다. 기업 경영자들은 고객과 만나는 접촉지점(interface)을 진실의 순간이라고 한다. 고객이 광고를 볼 때, 회사 정문에 들어설 때, 회사의 우편물을 받아 읽을 때, 비행 중 기내식을 받아들 때 등, 그런 순간에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평생 단골이 되고 눈 밖에 나면 고객을 뺏기게 된다는 것이다. 한번 0점을 받게 되면 다른 때 100점을 받았어도 0x100=0점이 되어버린다. 스칸디나비아 항공(SAS)은 직원들이 고객을 만나는 15초 동안이 진실의 순간이라고 규정하여 철저하게 관리했다고 한다. 결정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진실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의뢰 받은 물건은 안전하게 배달하고야 마는 프로페셔널, 프랭크는 극한상황에서 자기 원칙이나 규정보다 진실의 순간에 충실한 행동을 했다. 차에서 20m 정도 떨어지면 폭발해버리는 상황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카 체이싱, 달리는 기차 위로 달려드는 고공 점핑 등, 킬러들을 따돌리자 인적 없는 초원, 곁에 앉았던 운반물(여인)이 자동차 키를 들고 위험거리 밖으로 달아나겠다고 떼를 쓰며 그에게 옷을 벗어보라고 한다. 키스를 요구한다. 로맨스도 추격전 못지않게 긴박한 '진실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넷의 익명성 룰과 무관심에 찌든 내 눈에는 아주 특이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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