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말하기와 함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남에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대표적 수단이다. 이러한 글쓰기를 통해 우리의 상상력을 외부로 표출해 낼 수 있고 짧은 상상의 올을 긴 상상의 양탄자로 짜 나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글쓰기는 말하기보다 늘 어렵게 생각해 온 게 보통이다. 정말 글쓰기는 어려울까.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이제 글쓰기를 부담스럽지 않게 해 줄 방법을 하나 소개한다. 글쓰기를 통해 상상력을 배가시켜 보자.
딱 1분 동안 글쓰기
이는 패트릭 하트웰이라는 외국인이 창안해낸 방법인데 글쓰기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 매우 적합하다. 요령은 무척 간단하다.
(1) 먼저 누가 아무 낱말이나 불러 준다.
(2) 듣자마자 그냥 떠오르는 대로 글을 써 나간다.
(3) 쓰다가 생각이 막히면 ‘모르겠다’라는 말을 쓰며, 다시 생각이 풀리면 계속 써 나간다.
(*주의 : 1분 동안 절대로 쓰기를 멈추면 안 된다. 글을 쓰다가 고민하거나 쓴 것을 도루 지워서도 안 된다. 생각나는 대로 무조건 많이 쓴다.)
이제, 직접 1분간 글쓰기를 해 보자. 낱말을 제시하고 시간을 정확히 보아 줄 사람을 주위에서 구하라. 연습 삼아 다음 낱말로 딱 1분 동안 글을 써 보자.
‘금강산!’
1분이 지난 다음, 얼마나 썼는지 글자 수를 세어 보자. 원고 분량을 계산하듯 띄어쓰기도 포함한다. 몇 번 해 보면 대부분 60∼80자 정도는 쓰게 된다. 이는 단 1분 동안 200자 원고지로 대략 1/2장 남짓 쓰는 셈이다.
이 방식은 스스로 글을 잘 쓰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열등감이나 공연히 우쭐대는 자만감 등을 잠재우는 데 효과적이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좋은 문장이나 구절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으므로, 글의 첫머리를 무엇으로 시작할까 고민스러울 때 활용하면 매우 좋다.
1분간 글쓰기 방식에 익숙해지면 시간을 조금씩 늘리며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하며 자신에게 알맞은 방법을 찿아본다. 이를테면, 처음에는 1분간 글쓰기를 2분간, 3분간------ 식으로 늘려 가다가, 어는 정도 수준이 되면 1분간 생각하고 1분간 글쓰기 식으로 바꾼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생각하고 글쓰는 시간을 적절히 바꿔 본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에 찍은 사진을 한 장 준비하여 그 사진 속에 있는 인물 중 지금 소식을 모르고 있는 친구 한 명을 골라 사진을 보며 딱 1분 동안 떠오르는 대로 글을 써 보자.
인간은 100년을 채 살지 못한다. 만일 200년을 살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하는 글을 써 보자.
자유로운 표현, 자유로운 상상력
자동차 뒷유리에 ‘초보 운전’이라는 글을 써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왜 한결같이 획일적인 표현뿐일까. 답답하다.
그런데 요즘에는 정부에서 나서서 뒤에 붙일 쪽지의 규격과 내용까지 정해 주고, 어기면 벌금까지 물린다니 참 우습고 슬픈 일이다. 자유로운 표현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자유로운 상상력의 영혼이 탄생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모하다.
이제 스스로 초보 운전이라고 상상하고 같은 뜻을 전달하는 다른 표현들을 생각해 보라. 혼자서 어렵다면 친구들과 함께 50개 이상의 표현을 생각해 보라.
1)면허증 딴 지 5분! 2)지금 연수중 3)그대는 올챙이를 보는 개구리 4)폭발물 운송중 5)아장아장 걸음마중 6)내 차 뒤를 따라 오는 당신은 진짜 초보? 7)지는 초본디유 9)
이와 같은 방법은 일종의 ‘문장 바꿔 쓰기’라 할 수 있는데, 하나의 문장을 대상으로 그 뜻이 같은(정확히 말해서 ‘비슷한!’) 문장들을 가능한 한 많이 떠올려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너를 믿는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1)너는 나에게 늘 믿음을 준다. 2)너는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이야. 3)너는 너를 의심한 적이 한 번도 없다. 4)아무도 너에 대한 나의 믿음을 부정할 수 없다. 5)너만큼 믿을 사람은 이 세상에 다시 없을 거야---- 등등’ 최소한 열 다섯 개 이상의 표현이 가능하다.
이 방법은 다양한 문장의 활용에 따른 여러 가지 상황을 상상할 수 있으며, 각각의 경우에 따른 미묘한 차이까지 구별할 수 있는 섬세한 감각도 기를 수 있어 상상력과 언어 능력을 동시에 향상시키는 데 매우 유용하다.
‘나는 너와 결혼하고 싶다’는 문장을 여러 가지 다른 문장들로 바꿔 보고 그에 따른 각각의 상황을 상상하라.
2차시
세계를 새롭게 보는 법을 알자
글은 생각의 소산
좋은 글이라는 것은 감동을 주는 글이다. 감동을 주는 글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 감동을 주는 글을 쓰도록 해야 한다. 스스로 감동하지 못하면서 억지로 써놓은 글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는 목사의 설교와 같겠지, 가장 진실해야 할 목사가 계속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찬 설교를 해야 되니 정말 끔찍한 일일 거야. 글쓰기도 마찬가지. 자기 스스로 감동시킬 수 없는 내용의 글로 타인을 감동시키려는 것은 무리야.
그럼 자기 스스로 감동할 수 있는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거야. 시인도 아닌데 어떻게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고?
‘시인은 매일 아침 새로이 태어난다’는 말이 있어. 시인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하는 세계를 늘 새롭게 본다는 말이지. 현상의 표피만을 보는데 머물던 시선이 현상의 내부를 꿰뚫어 보게 된다는 뜻이야. 그리고 새롭게 드러나는 세계의 모습에 ‘아 그렇구나’ 하는 감동이 솟아나고.
정말 그러는지 실험해 볼까. 자, 이건 책상이다. 우리가 늘 사용해왔고 어디에나 있는 종류의 물건이지. 이 책상을 시인의 눈으로 보도록 해보자. 비오는 날의 길거리라든가 황혼이 깃든 바닷가라면 몰라도 책상 같은 것을 어떻게 시인의 눈으로 보느냐고?
책상의 모서리는 많이 닳아 있다. 이 모서리 속에서 수많은 학생들을 볼 수 있단다. 물론 선배님들이지. 그들은 이 모서리를 조금씩 닳게 하고 어딘가로 갔단다. 지금쯤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외교관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사업가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네.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정치인도 있구. 아! 안타까운 일이지만 강도도 있고, 살인범도 있다. 막힌 네거리에서 짜증을 내고 있는 세일즈맨도 있고, 이미 무덤 속에 있는 사람도 있군!
또 다른 측면으로 생각해볼까. 이 책상은 모서리가 이렇게 많이 닳아 있구나. 오랜 세월을 걸쳐서 조금씩 조금씩 닳은 거지. 그런데 아무리 작다 할지라도 이 모서리에서 떨어져 나간 조각들은 세계 어딘가에 있을 거야. 먼지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의 한 부분이 되어 지구 반대편 어느 마을에 비로 내리는 모습이 보이는구나. 그러고 보면 세계는 이처럼 여러 종류의 ‘모서리들’에서 떨어져 나간 작은 조각들로 가득차 있는 것 같아.
그렇지만 어떻게 이런 생각이 글쓰기에 유용한 것일까?
떠오르는 생각을 일반화하여 새로운 상황을 적용하여 보자. 앞에서 외교관․기업가․정치가․강도범․살인범 등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학생 시절 이 책상 모서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했지. 그런데 그런 일이 과거에만 일어난 것일까? 그렇지 않지. 지금 우리들, 그리고 우리 후배들도 이 책상 모서리를 스치고 지나갈 거야. 그 말은 우리 친구들 중에 앞으로 외교관이 될 사람도 있고, 끔찍한 일이지만 살인범이 될 사람도 있을 거라는 얘기야. 그럼 어떤 친구가 외교관이 되고 살인범이 될까? 그건 운명이니까 알 수 없다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참고하면 말야, 인간의 운명이 성격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어. 그리고 성격은 습관에 의해 결정되고, 습관은 같은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형성된다고 했어. 오늘 내가 어떤 행위를 하는가가 내일의 나를 결정한다는 뜻이야. 그러니 누가 외교관이 되고 누가 살인범이 될지는 오늘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봐서 추리할 수 있다는 말이지.
나아가 미래에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하면 지금 훌륭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교훈까지 얻을 수 있게 되는 거고.
1-1.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삶이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그리고 그 사실을 근거로 10년 후, 20년 후의 삶의 모습을 연상하여 글로 써 보자.
1-2. 이미 배운 ‘차마설’이나 ‘슬견설’이 모두 일상 생활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소재이거나 하찮게 여기는 소재들에서 삶의 자세를 유추하는 상상의 과정을 보이고 있다. 이는 삶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떤 대상에서라도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생선(生鮮)’을 소재로 글을 써 보자. (1, 2 중에서 택 1)
2. 위에 쓴 글을 친구와 바꿔 읽고 표현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나 내용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을 찾아 표시해 보자.
3. 2번에서 지적된 부분이 왜 지적되었는지 이유를 알아보고 바르게 잡아 다시 써 보자.
3차시
창조적 사고 - 고정 관념 깨기
-- 능동적일 때 창조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자유발상법
글을 쓰려고 할 때 쓸 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이렇게 해보자. 먼저 소재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다음 ‘영감 떠올리기’방법을 시도해 보아라. 요즈음 회사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자유로운 토론을 하는 가운데 서로의 생각을 자극하여 기발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이끌어 내는 집단사고 계발법이 아주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를 ‘브레인스토밍’(Brain Storming;머리 속에 폭풍 일으키기)이라고도 한다. 물론 혼자서도 할 수 있다.
연습지에다가 소재와 관계된 사건이나 장면을 연상하면서 그 때 떠오르는 말들을 낙서하듯 편안한 마음으로 써내려 가면 된다.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써가는 가운데 갑자기 영감이 떠오를 수 있다. 물론 이 때는 그 내용 속에 폭 빠져 들어가야 한다. 아! 바로 이거야! 어떤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을 적는 것이다. 이 때 주의할 것은 글을 손으로 쓰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손은 단순히 마음 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하면 수단이다. 서둘러 체계를 세우려고 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오히려 생각이 막힐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하다 보면 문제가 환히 들여다 보이면서 소재와 관련된 중요한 생각들이 정리될 수 있다. 그럼 그 생각들을 조목조목 열거하여 글의 뼈대를 잡고, 이 뼈대에 살을 붙여 가며 써내려 가면 글이 된다.
1) ‘꿈’에 대하여 생각나는 것을 모두 적어 보자.
☞
2) 조목조목 체계적으로 알아보는 것도 대상의 전모를 알고 개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꿈’에 대하여 다음 항목에 따라 알아보자.
-정의 :
-종류 :
-풀이(해몽) :
-풍속 :
앞 단원에서 알아 본 ‘세계를 새롭게 보는 법’이나 여기서 알아 본 ‘자유발상법(브레인 스토밍)’은 모두 창조적 사고를 위한 것이다.
다시 한 번 시도해 볼까? 먼저 ‘자유발상법’에 의해 사고하기를 시도해 보자. ‘자유발상법’의 원칙은 1)떠오르는 대로 말하라, 2)그 의견이 어떤 것이든 결코 따지고 들지 말라, 3)대신 그 의견을 가능한 한 변형․발전시키라는 것이다. 그러면, ‘대머리에게 샴푸를 파는 방법’에 대해 자유 발상을 해 볼까.
ㅇ가족용을 만든다. ㅇ발모제를 첨가한다. ㅇ
다양한 생각들이 나왔지. 결국, 브레인 스토밍은 양을 통해서 질을 확보하려는 사고 방식이다. 자유발상법은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모두 쏟아 놓은 다음, 시간을 갖고 여유 있게 좋은 생각들을 골라내는 창조적 발상기법이다. 한 번 더 해볼까. 다음에는 ‘우리 학급이 가장 모범반이 되려면’, 또는 ‘급우들에게 가장 필요한 친구가 되려면’이라는 내용 중에서 하나를 골라 자유 발상을 해보자.
세계를 새롭게 보는 법
이 번에는 ‘세계를 새롭게 보는 법’을 시도해 보자. 앞 시간에 책상의 모서리를 통해서 새로운 생각을 찾아 보았다. 이런 새로운 생각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고정관념을 버려야 하지. 우리들 머리 속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 있는 생각들이 많다. 그런 고정관념들이 새로운 창조를 방해하는 주범이다. 이를테면, 공기보다 무거운 것이 어떻게 날 수 있냐는 고정 관념 때문에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장면은 오랫동안 늦춰졌지. 그러면 다음 화제를 놓고 생각을 펼쳐 볼까.
어는 소년이 자기 아버지와 길을 가다가 자동차 사고를 당했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소년은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수술복 차림을 한 키가 큰 외과 의사가 수술대 근처로 다가 오더니 외마디 소리를 쳤습니다.
‘아니, 내 아들 길동이 아니냐?’
키가 큰 외과 의사는 수술대 위의 소년과 어떤 관계일까? ( )
정답을 빨리 알아내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머리 속에 어떤 고정관념이 정답을 찾는데 방해가 되었는지 곰곰 생각해 보기 바란다. ( )
하나 더 해보자구. 좋아.
어느 날 밤에 우리 삼촌이 아주 재미있는 책을 읽고 계셨는데, 숙모가 불을 꺼 버리셨어. 그런데도 삼촌은 여전히 책을 재미있게 읽고 계셨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 )
능동적으로 발상을 전환하라
모든 창조는 고정관념과 구속에서 벗어나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나, 고정관념을 단순히 거부하는 것만으로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지. 무엇이든 자유롭게 생각하고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자유로운 사고는 좀더 능동적인 발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발상의 각도를 바꿔 보고 이모저모 달리 생각해 보는 자세, 바로 이러한 태도야말로 창조적인 사고를 낳는 중요한 요소이다. 발상의 전환은 사물과 세계, 인간의 삶을 다른 각도로 새롭게 해석하게 해주거든. 그만큼 우리들의 생각을 폭넓고 유연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 자유로운 사고야말로 모든 창조적인 사고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하늘은 푸르고 해는 빛난다는 식의 흔한 생각은 창조적인 사고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창조적 사고의 예를 하나 들어 볼까.
부자들에게 자선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하나님의 심부름꾼. 하늘을 지붕으로 삼고 땅을 베개로 삼아 무소유의 철학을 몸소 실천해 보여주는 청빈 도인. 신분증이 없는 세금 징수원. 전 국민을 납세 대상자로 삼고 있으며 납세 방법은 최대한 자율화되어 있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에게서 또 다른 예수의 모습을 본다. (이외수의 「감성사전」에서)
위의
안에 들어갈 말은 무엇일까? 그래, 거지이다. 그 동안 우리는 거지에 대해 얼마나 일방적으로 생각했던가? 이 글은 거지라는 존재를 사뭇 긍정적인 각도에서 풀이하고 있다. 어두워만 보이는 거지라는 존재의 뒤편에도 의외로 봄볕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적극적으로 삶을 사랑하라
창조적인 사고를 기르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삶을 사랑하는 적극적인 자세야말로 모든 것을 다시 보게 만들고 더 깊이 생각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내 삶의 모든 사소한 것들을 사랑해야지. 결코 자만하지 말고, 결코 자기 비하도 하지 말자. 진지하게, 그리고 꾸준히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사랑해 보자.
이를 위해서 자신에게 생소한 부분을 일부러라도 친근하게 대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고전 음악을 다루는 음악 잡지나 문학 작품을 다루는 문학 잡지를 정기 구독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엄청나다. 예컨대 톨스토이의 인생론을 읽는 화가와 그렇지 못한 화가의 그림 내용이 차이 나는 것은 당연하겠지.
나아가, 관심의 분야를 다양하게 넓히는 것도 권할 만한 방법이다. 좋은 사진을 모으고, 우표를 모으고, 포스터까지도 모으는 사람은 그저 책상만 우물처럼 들여다보는 사람보다 더 창조적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자, 그러면 지금 자신이 모으고 있는 것이나, 아끼고 있는 것을 꺼내 보다. 찾기 힘들다고. 그러면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의 앨범을 꺼내 보자. 그리고, 곰곰이 뜯어 본 후 떠오르는 생각들을 쭉 써보자.
1. 앞에서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하여 글로 옮겨 보자.
2. 쓴 글을 친구와 바꿔서 1)어렵게 생각되는 어휘나 2)문맥이 잘 통하지 않은 부분, 그리고 3)전체 내용의 연결이 어색한 부분을 찾아 보도록 하자.(빨간 색연필로 표시해 주세요.)
3. 지적된 어휘나 문장을 새롭게 바꿔 써봅시다.
4차시
어떻게 하면 감동적인 글을 쓸 수 있을까
-- 욕심부터 버려라. --
앞 단원의 쓰기 시간에 ‘자유연상법’과 ‘세계를 새롭게 보는 법’에 이어 ‘능동적 발상’에 대해 알아 봤지? 이제 글쓰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거야. 아직도 힘들다고! 꽤나 욕심이 많은 모양이군. 완벽한 글을 쓴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글이 쓰여지는 법이야. 형편 없는 글이 되면 어떠냐고. 걱정할 것 없다. 글은 말과 달라서 뒤에 고치면 되니까. 그러면 다시 한 번 시도해 볼까. 자, 다음 보기를 읽어 보자. 그리고 읽는 도중에 무엇인가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부담 없이 글로 써 보자.
1)어릴 때의 친구 2)중학교 때의 친구 3)시험 4)옛 선생님 5)이웃집 사람들 6)잃어버린 귀중한 물건 7)주운 물건 8)만화책 9)미팅 10)교과서 11)자율학습 12)글쓰기 숙제 13)일기 14)학생의 날 15)동생 16)교복 17)용돈 18)미래의 나 19)죽음 20)부정부패 21)신문은 믿을만 한가 22)외계인 23)미인선발대회 24)해수욕장 25)방송은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26)잠, 등등
멋있게 써야 좋은 글이 되는 건 아니다. 감동을 주는 글이 좋은 글이지. 어떻게 쓰면 감동을 주는 글이 되느냐고. 그야 진실하게 쓴 글이지. 다음 어느 초등학생의 글인데 읽어보고 글감은 어떻게 찾는 것이며, 진실한 것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자.
아주 많은 제목
아침에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하고 선생님께 가 보니, 내가 일기장에 쓸 것이 없어 사회시간에 배운 ‘자원이 바닥났다’는 말과 ‘일기의 제목을 아껴 써야겠다’는 말을 써놓은 일기를 보시고 “그렇게도 쓸 게 없니?”하고 물어 보셨다. “네”하고 대답하는 나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차례대로 말해 보라고 말씀하셨다. 아침에 엄마가 시험 점수 알아보란 일, 학교 가는 길에 찻길로 돌 던진 일, 공부 시간에 장난한 일, 집에 와서 ‘개구리 왕눈이’ 본 일, 엄마가 오셔서 목욕한 일을 말씀드렸더니 지금 네가 말한 것이 모두 좋은 쓸 거리라고 말씀해 주시며 선생님이 다음과 같이 제목을 적어 주셨다. “시험 점수, 학교 가는 길, 공부와 장난, 개구리 왕눈이, 목욕한 엄마”
나는 그 날 그 날 일기 제목이 없는 게 아니라 못 찾았다는 것을 알았다. (초등4년 백--)
자 이렇게 쓰면 되는 거야. 정말 너희들이 쓸거리가 없어서 글을 못쓴 것일까? 너희들의 손과 머리가 게을러서 안 쓰는 건 아닐까? 게을러서 안 쓰고, 안 쓰니까 못 쓰고, 그런 거 아닐까. 글감은 항상 널려 있다. 얼마나 관심을 가지느냐(머리를 쓰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
시도 마찬가지야. 멋만 부리려고 하지 말고, 우선 나오는 대로 써 보자. 다음은 어는 중학생의 시인데 읽어 볼까.
국어 선생님
국어 선생님은
내가 제일 존경하는 분이다.
전에는 선생님 말씀을
감명 깊게 들었다.
그래서 항상 존경하였다.
그러나 요즈음은
선생님께서 이상한 말씀을 하신다.
“시는 마음에서 우러나야지
다른 거짓에 의해 꾸미면 안 된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선생님께서
책을 펴내기 위해
좋은 시를 쓰라고 하신다.
역시 사람이란
이성을 억제할 수 없는 것 같다.
전국에 출판되는 책이라고
선생님께서 너무 들뜨신 것 같다.
진정한 시는
책으로 출판되지 않더라도,
좋은 시는 아니라도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중2 배--)
선생님의 고개를 푹 떨구게 하는 글이다. 꾸밈없이 쓸 것을 강조하다가도 좀더 ‘좋은 글’을 요구하면 학생들은 기교를 부리는 글을 떠올리게 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잘 쓴 글은 기발한 표현 기교에 의해 판정 받아 온 결과 때문이겠지. 아무튼 이 시는 기교가 없음에도 예리하게 그리고 진실하게 마음을 열어 놓아서, 읽는 선생님 마음을 찡하게 하는구나.
그러면 여러분들도 학교 생활과 관련된 것을 떠오르는 대로 자유롭게 열거해 보자.
그 중에서 하나를 골라 떠오르는 내용을 글로 써 보자.
5차시
글다운 글
‘말 같지 않은 말’이라는 소리를 주위에서 흔히 듣는다. 거짓으로 하는 말이나, 앞뒤가 맞지 않은 말을 일컫는 소리 일 것이다. 우리는 이 앞 시간에 ‘말 같은 말’ 즉 ‘말다운 말’이 되기 위한 조건을 알아 봤다. 이해성, 진리, 정확성, 진실성 등이 그것이었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글다운 글’이 있고 ‘글 같지 않은 글’이 있다. 글다운 글은 어떤 글일까? - - - - - 어떤 글이 글다운 글일까? - - - - - -
글다운 글은 가치관에서 나온다
‘글다운 글’은 올바른 가치관에서 생산된다. 이데올로기라 해도 무방한 이 가치관은 자기 자신과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관심에서 비로소 그 싹을 틔운다.
‘글다운 글’은 대화 지향적인 글이다. ‘글다운 글’은 글쓴 이와 글 읽는 이가 나란히 자리를 같이 한다. 글쓴 이의 목소리는 글 읽는 이를 초대하려는 손짓을 끊임없이 한다. 즉 자기 존재를 타인과의 얽힘 속에서 확인하려 하고, 확인받으려 하는 것이다. 그 손짓에는 글 읽는 이가 즐거이 참여할 수 있는 가치 있는 내용이 준비된 것을 암시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글은 가치관을 통해 독자와 연결한다
글에 대한 이런 성격 규정은 글이 단순히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가꾸는 데 도움을 주는 소극적인 입장에 만족할 수 없다는 뜻이다. 글은 ‘나’와 ‘다른 이’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글은 원초적으로 대화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글을 쓰는 의의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대화 지향성은 더불어 사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요건이다.
따라서 글쓴 이와 읽는 이를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가치관이다. 글을 읽고 감동적이라든지 비판적이라든지 하는 것은 바로 그 가치관에 대한 감동이며 비판인 것이다.
글을 써보자고 하면 쓸게 없다는 말을 곧잘 한다. 우리가 생활하는 가운데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그 ‘무엇’이든 글의 제재가 될 수 있다는 교사의 친절한 안내도 학생들의 이 고민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 ‘무엇’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차마설」에서 ‘남의 물건을 빌어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슬견설」에서 ‘이를 잡는 것과 개를 잡는 것을 비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바로 그 ‘무엇’에 대한 의미 부여가 가치관이다. 그런데 나름대로의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당위적인 글짓기에서 벗어나야
어쩌면 그동안의 도식적인 글짓기가 우리 모두의 가치관을 옥죄었는지도 모른다. 매년 정기적으로 강요되어 온 ‘충효 글짓기’ ‘반공 글짓기’ ‘소비절약 글짓기’ ‘불조심 글짓기’ 등이 그것이다. 정신교육 차원에서 행해진 이러한 글짓기는 당위적인 결론을 내리기를 암시하는 경향을 띤다. 그 결과, 주어진 주제, 제시된 방향, 그에 영합하는 내용의 글--이러한 글쓰기가 매년 반복적으로 무차별하게 강요되어 왔다. 철저한 가치관 교육이다. 가치관을 말살하는 가치관교육!
의미를 따져보자
음------ 자신을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 하였던가? 자신의 위치를 알고 문제의 근원을 알고 있으니 해결의 방법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보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란 속담이 있다. 이건 누가 왜 만들었을까? 나는 이런 생각이 드는데---‘보리는 익을수록 고개를 빳빳이 쳐든다’라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생각은 옳고, ‘보리는 익을수록 고개를 빳빳이 쳐든다’는 생각은 잘못되었을까? - - -
이런 생각도 해볼까? 여러분은 꽃이 아름답게 보이지? 저 꽃이 그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조화를 만들어 붙여볼까? 그건 이미 죽었고------ 그렇지! 스스로 땅에 떨어져 썩어 거름이 되면 다시 꽃을 피울 수 있지.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노인이 꽃나무를 심는 모습------시험에 안나오니까 그냥 지나가---관심을 가져 보자---등이 곱으시고 숨이 차신데도 그래도 꽃을 가꾸시는 양을 보오니, 손수 공들이신 가지에 붉고 빛나는 꽃이 맺으리라고 생각하오니, 희고 희신 나룻이나 주름살이 도리어 꽃답도소이다. (정지용 ‘노인과 꽃’에서)
다음 예시에 나오는 ‘위과’의 행위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효’의 관점에서 판단해보자.
중국의 진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다. 진나라의 실력자였던 위무자에게는 나이 어린 첩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항상 아들 위과에게 자신이 죽으면 그녀를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개가시키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임종을 맞은 위무자는 그만 마음이 변하고 말았다. 그는 전날과는 달리 첩을 반드시 자신과 함께 생매장시키라고 명령하고는 세상을 떴다. 집안사람들이 모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고민했지만 위과는 별로 고민하지 않고 아버지의 첩을 다른 사람에게 개가시켰다. 어떤 사람이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고 비난하자 위과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심한 병에 걸리면 정신이 어지러워진다. 그 때문에 나는 아버님이 명령한 것 중에서 도리에 맞는 것을 따르고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은 따르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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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는 맹목적인 복종이 과연 바람직한 효인가를 생각해 봐야할 문제다. 그동안 우리는 전통 윤리라는 명목하에 ‘충효’를 강조하면서도 충과 효가 지닌 본래적인 가치는 살리지를 못하였다.
95년, 96년 계속된 홍수로 북한은 식량사정이 아주 열악한 모양이다. 북한을 취재했던 한 취재원은 나무껍질을 벗기는 여인까지 보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초근목피(草根木皮)다. 아사(餓死)자가 발생했다는 보도도 간간히 보인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한 때 쌀 지원을 추진하다 일부의 반대에 부딪혀 중단하였다. 세계는 같은 민족의 어려움을 보고도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 남한을 의아한 눈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멀리 아프리카 오지의 난민을 돕기 위해 우리 국민은 정성을 쏟기도 한다. 또한 강원도 산간지대나 제주도 한라산에 눈이 쌓이면 산짐승이 굶어 죽을까 걱정하여 헬기로 산짐승의 겨울나기 식량을 투여하는 장면도 매년 언론에 보도된다. 이런 마음이 북한 사회에만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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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 가고 있다. 생각이 남과 다르다고 해서 잘못된 생각인 것은 아니다. 미국의 어느 대통령은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에 장관도 의원도 아닌 어느 교수를 항상 참가시켰다고 한다. 그 교수의 역할은 무조건 비판하는 일이다. 즉, 누가 발언을 하더라도 그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해 내는 것이 그 교수의 역할인 것이다. 언뜻 듣기에는 엉뚱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 이야기엔 깊은 뜻이 들어가 있다. 모두가 인정하고 동의하는 의견에도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라는 것이지. 국가의 중요한 정책 결정을 좀 더 합리적이고 신중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비판이라는 것이 더 좋은 결정과 의견을 만들어 내기 위한 좋은 수단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창의적인 생각은 비판에서부터 시작된다. 비판적인 생각을 키우려면 어떤 말이든 어떤 사실이든 되짚어 따져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생각의 수준을 높이려면 물론 독서의 양을 늘려야겠지. 독서 토론 같은 것은 아주 좋은 방법이 될 거야.
※ 다음 글을 읽고 이를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글을 써 보자. (양비론이나 양시론은 피할 것)
요즈음의 신세대들은 대체로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다. 도시는 자연적인 것이기 보다 인위적인 기능이 지배하는 곳이다. 이들은 컴퓨터와 전자 오락에 익숙하다. 이들은 세련되었고, 남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이들의 도도함은 종종 버릇 없음으로 통하고, 세상의 중심임을 자처하는 이들의 개인주의는 자주 함께 살아 가는 세상 자체를 위협하는 것처럼 비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소비하는 것이며,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즐기는 것이다. 소비하고 즐기는 것, 그것이 이들 삶의 이유가 되고, 목적이 되어 있다. 아니, 그들은 이유나 목적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이념이 없는 시대의 적자(嫡子)이다. 이들은, 아마도 민주화나 정치의 무게에 시달리지 않고 자신들의 욕망을 분출하는 데 거리낌 없는 첫 번째 세대이다.
이들은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이며,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고, 명분이 아니라 실리이다. 그렇게 때문에 이들은 매우 감각적인 세대이다. 이들의 감각은 다양하지만 온전하지 않고, 화려하게 번득이지만 깊지 않다. 그들은 이미지에 이끌려 이리저리 쏘다닐 뿐 한군데 진득하게 앉아 사유하는 법을 모른다.
이들을 사로잡는 것은 단지 육체 또는 육체적인 것일 뿐이다. 이들은 움직이지 않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들은 행동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생각함으로써 존재하던 시대의 인간들과 이들은 같지 않다. 서태지나 그와 유사한 부류의 대중 음악이 이들에게 최고의 예술로 인식되는 까닭도 거기 있다. 또한 이들은 스포츠 신문의 애독자들이다. 그들의 세계관은 불안하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국어 수업 속에 끌어들인 논술/이현종 )
논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창의성'이다. 창의성 항목에 가장 높은 배점을 준다고들 한다. 그러나 창의성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창의성을 어떻게 훈련할지에 대해서는 더욱 막막하다.
사실 창의성이 무엇이냐는 물음은 그 자체를 논술의 주제로 삼을 만하다. 보통 창의성을 별스러운 것, 기발한 것, 엉뚱한 것과 관련짓는 경우가 많은데,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닐지라도 이런 생각에는 오해의 여지가 많다. 창의성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라는 통념에서 비롯된 오해다. 하지만 창의성이 이런 성격의 것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훈련할 수 있단 말인가?
창의성은 기존의 것들을 잘 융합시켜 기존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뜻한다. 제대로 된 창의성은 기존의 것들을 무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기존에 있는 것들의 핵심은 물론 빈틈을 파악하는 데서 시작한다. 따라서 그것은 끊임없는 호기심과 이해, 그리고 물음에서 탄생한다. 이는 많은 유용한 발명의 사례에서 볼 수 있다. 양들이 장미 넝쿨 쪽으로 가지 않는 현상을 보고 가시철조망을 발명한 것과 같은 경우가 좋은 예다. 여기서 기존에 없던 것은 없으며, 다만 새로운 조합이 있을 따름이다.
나아가 창의성은 기존에 도달한 지점에서 더 멀리, 더 높이까지 가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도 기존의 좋은 것을 충분히 흡수, 소화한 후에 그 발판 위에서 자기 힘을 덧붙여야 한다. 피카소의 작품이 철저하고 피나는 습작의 산물임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이를 무시하려는 경향에 대해 공자는 '배움이 없이 생각만 하면 위태롭다'고 조언했다.
그럼 논술 시험에서 요구하는 창의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료의 함의를 깊이 이해한 후 이를 근거로 자기 생각을 발전시키는 것을 뜻한다. 가령 2006학년도 서울대 수시2 논술을 보면 연령별 인구 추이 통계와 이혼율 추이 통계를 나타내는 그래프가 자료로 제시되어 있다. 전자는 출산율 저조, 수명 연장, 노령인구 증가 등을, 후자는 이혼 인구의 증가를 보여준다. 여기서 학생은 양육비 및 교육비의 증가, 여성의 사회 진출 및 자립 확대, 개인주의적 태도의 확산 등을 추론해내야 한다.
예전 같으면 여성이 경제적 여건 때문에 이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고 경제적 자립도가 높아지면서 이혼이 감당할 만한 선택이 되었다는 점은 그래프에 표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또 여성의 사회 활동 욕구가 출산 의욕의 저하로 이어지고, 양육비와 교육비 부담과 맞물려 출산이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도 표면적으로는 알기 힘들다. 이런 사실들을 그래프에서 읽어내 논제인 '행복'이라는 주제에 답하면서 행복과 경제적 요소의 관련을 다룬다면 창의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답안이 천편일률적인 까닭은 자기만의 깊은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평소 많은 의문을 품고 풀릴 때까지 골똘히 생각하는 습관이야말로 창의성을 기르는 토양이다. 아이가 묻는 것을 상세히 그 원리부터 설명해주는 것이 아이의 창의성을 높이는 길이다. 아니, 그보다도 아이에게 이런저런 물음을 던짐으로써 의문 많은 아이로 만드는 것이 더 먼저일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가 설파한 이 명제는 '인식을 위한 의문의 주체로서의 나', '인식의 주체로서의 나'의 존재를 나타내는 말이다. 수험생들은 무엇보다 논술이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의 삶, 나의 현실'과 관련된 '나의 경험'을 통해 얻은 '나의 생각'을 쓰는 것이 논술이다. 따라서 문제의 발견에서부터 문제의 해결까지 모두가 '나'의 몫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이 '문제의식'이다. 일상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대상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새로운 시각으로 대상을 해석하려는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관습적으로 굳어져 온 '사고의 관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문제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황우석 교수와 관련된 논란을 예로 들어보자.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생명윤리와 과학적 직업윤리라는 사명의식의 관계, 또는 취재윤리와 과학윤리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서만 논쟁을 벌일 것이 아니다. 하나의 과학적 발견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합의되는 과정에서 과학자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가치충돌의 문제를 해결하는 현명한 방법은 무엇인가? 연구 성과가 가져올 국가적 이득을 생각해 경제적 효율성의 논리에 너무 경도돼 있지는 않는가? 광고철회 압력에서 더 나아가 상품 불매운동까지 운운하거나 담당 PD의 가족사진까지 공개하는 모습에서 또다른 모습의 폭력이 보이진 않는가? 인터넷 여론 형성과정과 표현형식에서 포퓰리즘적 요소는 없는가? 등등. 낡은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려면 내 주변의 현실적 삶과 인간존재에 대한 문제에서부터 역사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새롭게 보고 해석하려는 가외의 노력이 필요하다. 논술은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되고, 그러한 문제의식의 충실성 여부가 좋은 논술을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그러나 이 문제의식이 논술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그 사고의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핵심어와의 관련어를 찾는 연계적 사고다. 흔히 말하는 발산적 사고가 필요한 것이다. 현재 각 대학에서 출제되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자료 제시형이다. 서로 다른 영역의 자료를 제시하고 이의 이해를 전제로 문제를 제시한다. 이는 어떤 문제가 단일한 성격으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문제와 관련돼 있기 때문에 관계적인 시각으로 통찰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경제학자 슘페터는 기업의 혁신은 창조적 파괴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논술 역시 이러한 기조와 다를 바 없다. 자기혁신으로부터 창의적 논술은 시작되고, 그 바탕은 역발상의 논리다. 사막에서 난로를 파는 중소기업 파세코는 중동도 고산(高山) 지역은 밤에 영하로 떨어지고, 중동 사람들은 영상 10도만 돼도 춥다고 느낀다는 사실에 착안해 중동시장을 석권했다. 러시아에서 에어컨을 파는 우리나라의 가전업체들 역시 추위에 익숙한 러시아인들은 낮 최고 기온이 25도를 넘는 여름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는 사실에 바탕을 둔 역발상 마케팅 기법으로 러시아 시장의 60%를 차지했다.
논술은 제시문의 내용과 논제의 요구에 따라 논의의 방향이 결정된다.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고 생각하는 문제의식과 이를 활용할 줄 아는 발산적 사고의 일상화, 그리고 역발상의 체득화를 통해 논술을 정복해야 하겠다. 지금부터라도 현상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까지 보고 생각할 줄 아는 '데카르트적 사고'를 통해 논술에 접근하길 바란다. (자료제공= 거인의어깨 논구술연구소)
논술은 삶의 근본 문제들, 사회와 역사 및 인간과 자연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나 쟁점에 대한 원리적인 사고를 요구한다. 논술은 고차적인 사고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고차적 사고력이란, 단순히 기초적인 지식으로 무엇을 이해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분석하거나 종합하는 능력, 적용하거나 평가하는 능력,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사고력, 비판적·창의적 사고력, 논리적인 논증 능력 등을 가리킨다. 이렇게 생각하는 힘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평소에 많은 글을 읽고, 생활하면서 일상사를 합리적으로 따져 보고 끊임없이 반성하고 의문을 던지며, 다른 사람과 대화와 토론을 함으로써만 고차적 사고력은 길러진다. 또한, 글은 저절로 나오지 않는다. 좋은 생각을 해야 좋은 글이 나온다. 그리고 알차고 성숙한 생각, 지혜로운 생각은 막연한 공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좋은 생각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서 만들어진다. 내가 딛고 서 있는 현실과 나와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이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정화수 같은 깨달음을 주는 생각, 다른 사람들과 즐겁고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생각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어서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는 사람은,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통찰에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좋은 글을 쓰려면 우선 문제 의식이 뚜렷한 좋은 생각을 많이 해야 하고, 알찬 생각과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는 선인들의 생각을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구체적 삶에 끊임없이 관심을 두고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다음은 일상적 나와 내면의 나, 나와 다른 사람, 나와 현실 사이에 오가는 대화의 과정에서 힘찬 상상력으로 본질을 통찰할 수 있게 하는 생각하기의 방법과 태도이다.
⑴ 열린 마음으로 생각하기
열린 생각이란, 자신이 옳거나 그르다고 믿는 사실이나 신념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 사회적으로 옳거나 그르다고 통용되는 것들에 대해 의심해 보는 것, 그래서 그 진실성의 여부를 다양한 관점과 측면에서 다시 한 번 논의할 수도 있다는 마음의 태도를 말한다. 열린 마음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그뿐만 아니라 다른 쪽의 입장에서 자신의 논리적 타당성을 살펴보거나 상대방의 올바른 비판을 수용하여 개선하려는 마음가짐을 포함한다. 다시 말해, 무슨 일이든 어떤 의미나 평가가 여러 가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새로운 사실이나 다른 사람의 주장을 편견이나 고정 관념에 의해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이치에 맞게 생각해 보는 태도를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열린 사고는 객관적 사고, 비판적 사고, 창의적 사고, 균형 잡힌 사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사고로 가는 출발점이다. 마음을 열어 놓은 사람은 고정된 형식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언제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자세를 지닌 사람이다. 이와 달리 아집(我執)과 편견에 사로잡혀 갇힌 생각과 닫힌 마음으로 생각하고 지식을 얻고 체험을 하는 사람은,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생각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도 모르게 독선과 아집의 노예가 되어 점점 더 지식과 생각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따라서 생각과 마음을 열어 생각하고 생활하는 일은 배움의 첫걸음이요,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열린 사고를 해야 나와 다른 사고 방식이나 행동 양식이 다른 사람, 나와 다른 문화권의 사람을 존중할 수 있다.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이해와 관용은 민주주의의 바탕이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기본 자세이기도 하다. 열린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잘못된 사고 방식을 극복해야 한다. 첫째, 인습적인 사고 방식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여서 형성된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둘째, 생각하는 범위가 좁아서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기의 처지와 이해 관계의 관점에서만 대상을 보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고 방식, 즉 아집을 버려야 한다. 셋째, 전체를 균형 있게 보지 못하고 한 가지 입장으로만 치우치는 편견과 어떤 문제를 양자 택일로 양극화시켜 놓고 중간 입장을 허용하지 않는 흑백 논리에서 탈피해야 한다.
⑵ 비판적으로 생각하기
비판적 생각이란, 무조건 잘못된 점이 있다고 비난하는 방식의 사고가 아니라 아무리 그럴 듯한 견해나 주장·이론·사상·상식일지라도그것의 이치를 따져 보는 사고 과정을 거쳐 그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의 사고를 가리킨다. 물론 이치를 따지는 기준은, 믿을 만한 증거가 뒷받침되는 주장인지 주장이나 근거 간에 모순은 없는지 등 객관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비판적 사고는 당연한 것,자명한 것, 길들여진 것, 자연스러운 것, 정상적인 것, 금지된 것, 익숙한 것에 대해 거리두기를 통해의심하는 것이고 저항하는 것이며 '왜 그런가'에 대해 묻고 또 묻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자연스러운 것의 억압성과 비자명성(非自明性)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비판적 사고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유와 해방을 쟁취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비판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기존의 통념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기'이자 '뒤집어 생각하기'이며 '더 많이 생각하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많은 문제점을 내포한 관습적 삶의 방식과는 다른 삶의 양식을 추구하여 '다르게 행동하고 생활하기' 곧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살아가는 밑바탕이 된다. 진정한 자신의 생각을 갖고 주체적으로 그리고 자율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회적 통념이나 자신의 무의식적인 믿음, 미래와 공동체의 관점이 고려되지 않은 눈앞의 유용성이나 개인적인 이익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그래야 수동적 사고와 생활에서 벗어나 자기 나름의 줏대 있는 사고를 지키고 주체적인 삶을 건설할 수 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단편적인 지식들을 비판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생각과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아무런 기여를 할 수 없다. 그런 지식은 아무리 많이 얻는다 해도 죽은 지식에 불과하다. 마음을 풍요롭게 가꾸고 삶의 조건을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지혜는, 주어진 지식의 체계에 대해서 비판적 성찰과 창조적 수용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비판적 사고가 결코 문제의 어느 한 쪽에만 치우쳐 독단적으로 고집하는 사고가 아니라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는 모든 것에는 다양한 측면이나 차원, 구조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다양한 측면이나 구조에 대한 이치를 따지는 것이다. 자신만의 분명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좋으나, 그것이 지나치게 편협한 사고이거나 주관적인 편견에 사로잡힌 생각이어서는 안 되겠다.
⑶ 객관적으로 생각하기
객관적인 생각이란 자신의 처지나 이해 관계, 감정적 요소를 배제하고 냉정한 제3자의 입장에서 문제의 대상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사고의 태도이다. 또한, 객관적 사고는 앞뒤가 어긋나지 않고 이치에 맞게 생각하는 생각의 논리성을 말하기도 한다. 논술에서의 객관성이란, 보편적인 논리나 객관적 사실, 공인된 통계나 권위 있는 의견을 매개로 주관적인 견해나 주장을 객관화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을 고려하여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고 판단함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언제나 객관적 근거와 연결시키고 논리적인 모순을 범하지 않으며 일관성 있게 사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⑷ 관계적으로 생각하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인간과 사회, 그리고 자연(또는 나와 타인, 자연과 우주)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이 세 가지는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 각각은 그 구성 요소들 간의 긴밀한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관계의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크든 작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관계적 존재이다. 따라서, 우리는 문제가 되는 대상에 접근할 때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관계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을 취해야 한다. 평면적인 사고가 아닌 구조적 사고, 피상적인 사고가 아닌 본질적 사고, 단편적 사고가 아닌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관계의 성격을 결정짓는 연관을 본질적인 관계, 내적인 연관성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문제되는 대상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본질적인 관계성을 정확히 파악한다는 것이다. 본질적인 관계는 개인의 관점보다는 사회적인 관점에 섰을 때, 또 현재의 관점보다는 과거나 미래를 포함한 역사적 관점에 섰을 때 쉽게, 그리고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관계성에는 상호 의존적 관계, 독립적 관계, 종속적 관계, 상하 관계, 내적 관계나 외적 관계, 인과 관계, 반대 관계, 모순 관계, 정신적·물질적 관계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문제가 되는 대상이 과연 다른 것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깊이 따져 보아야 한다. 논술에서 관계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논제와 관련된 여러 사항을 상호 연관성 속에서 파악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논제를 구성하는 물음들이 무엇이고 각각은 논제 속에서 어떤 위치와 기능을 차지하고 있는지, 각 물음들의 상호 관계는 어떤 특성이 있는지, 그 논제가 속한 더 큰 맥락은 무엇이고 그 맥락은 다른 맥락과 어떤 관계인지 등을 연관지어 생각을 정리해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문제에 대해 다면적으로 판단하는 준거를 마련하여 자기 견해에 대한 근거를 풍부하게 마련할 수 있다. 특히, 논술에서는 인과 관계를 따져 보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현상이 있으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원인에 따라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를 추론해야 한다. 어떤 문제를 헤아릴 때에는, 항상 그 문제와 관계되는 요소들의 인과 관계를 고려하고 원인에 따른 해결책 등을 연관지어 사고하는 것이 논술에서 요구하는 분석적 사고의 기본이다.
⑸ 창의적으로 생각하기
창의적 생각이란, 문제의 대상을 타성이나 습관에 젖어 있는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방향과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대상을 새로운 방향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문제의 대상에 대해 지금까지 지켜 왔던 질문의 방향을 바꾸고 논리적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해야 가능하다. 독창적 사고는 원리적으로 생각하고 다면적·다각적으로 사고해야 가능한 것이다. 논술에서의 창의성이란 논제가 지니는 다양한 측면을 발견해 내는 것, 논제를 일반적인 시각과 다른 관점에서 탐색하고 이해하는 것,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과 대안을 설정하는 방식에서의 독특성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⑹ 현실적으로 생각하기
우리의 모든 사고와 관념의 모색은 결국 현실로 되돌아와서 현실과 부단히 대화해야 한다. 현실이 모든 생각과 감정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관념적으로 그럴 듯한 논리도 역사적 현실과 동떨어진 것일 때, 그것은 공허해진다. 현실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을 올바르게 파악하려면 현실을 항상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논제를 풀 때에도 항상 앎과 현실적 삶의 관련성을 염두에 두고, 내용을 항상 자신의 체험과 연관지어 보면서 일상사에서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설명하거나 논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논술의 모든 논의는 논리적으로 타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현실적 가능성에도 부합해야 하기 때문이다